책 기증의 회의(懷意 )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저자들이 붙여오는 책 중에는 소설집은 아주 드물고 시집은 가끔 한번씩, 그러나 수필집은 하루 한권 꼴이 된것 같다. 그러한 건 내가 수필가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심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형편에 다른 인문서나 기술서적 같은 건 전무하다시피 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에는 의외로 이론서나 역사서적들이 꾀나 된다. 그중에는 수석에 관한 대형원판 사진첩을 비롯하여 각종 도록들이 상당수 차지한다. 취향이 그쪽으로 치우치다보니 보이는 편향적 현상이다. 그중에 가지고 있는 문학이론서는 따로 구입한 건 거의 없고 아들이 보내준 것이다. 학교 교재용이거나, 신문사에 있을 때 신간을 받은 것으로 내가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앉아서 매번 책을 받고만 있는 건 아니다. 내 쪽에서도 책이 생기면 이곳 저곳의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보내고 있다. 거기다 책을 상재하거나 동인지가 출간되는 때는 그 범위를 대폭 늘려서 보낸다. 오늘 아침 나는 여수수필과 동부수필을 들고 시내를 순회했다. 먼저 경우회에 들러서 수권의 책을 내려놓고 문화원에 들러서는 원장에게 읽어보라고 두권을 선물했다. 그리고 원로문인을 만나서는 활동경력을 보고삼아 또 전해드렸다. 일전에는 복지센타 후원회 밤 행사가 있어서 역시 책을 한뭉치 들고나가 전했다. 그렇게 공짜 책을 받는데도 이골이 났지만 책을 나눠주는데도 뒤지지 않는 편이다. 지금까지 받은 수필집은 도합 670여권. 1989년 등단하면서 받기 시작했으니까 26년간 받은 책들이 그 정도 된다. 나는 받은 기증본을 잘 간수하고 있다. 보내준 성의로 봐서도 그렇지만 작가들과 함께하며 호흡을 한다는 생각에서 중히 여긴다. 이는 내가 초창기부터 견지해온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하나의 철칙을 가지고 있다. 책을 받으면 가까운 곳에 살아 늘 만나는 처지는 그렇지 않지만 꼭 답장을 한다. 한 두 편 읽거나 어떨 때는 다 읽고 나서 편지나 메일을 쓰고 더러는 전화를 하여 잘 읽었음을 알린다. 이즘에는 주로 문자를 보내는 편이다. 그러면 상대편에서는 대개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온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비록 대면은 않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계기도 되고 나를 알릴 수 있는 방편도 된다. 그런데 책을 기증하는 때는 상황이 판이하다. 물론 아는 작가에게 보낼 때야 7,80 페센트 연락이 오지만 그 밖의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게 보통이다. 책을 받고서 고맙다거나 잘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쩌다 한 두 사람 정도로 거의 반응이 없다는 게 맞을 정도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과연 보낸 책을 펼쳐보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아니 그냥 누구의 말처럼 냄비 받침으로 전락하거나 버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언젠가 어느 분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을 본적이 있다. 한때 같은 문학도였고 글을 좋아한 친구라서 자기가 쓴 첫 소설집을 보냈는데 얼마 후 찾아가니 그 책이 포도봉지 씌우개로 전락했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불쾌하고 황당했는지 이치는 울화를 토로하고 있었다. 혹여 내가 보내준 책도 그런 취급은 받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자기가 좋아 글을 쓰고 고양된 흥분 때문에 기증자도 잘 읽어줄것으로 믿는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책을 받고서 대답이 없으니 맥이 풀릴수 밖에 없다. 오늘 나눠주고 온 책도 어떤 경위를 밟게 될지 모르고 또한 궁금하다. 말로는 잘 읽겠다고 했으니 믿어볼 수 밖에 없지만 나중 만나서나 전화가 없다면 기대는 접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리 생각하는 것은 너무 비참하기에 내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옛날에는 장서가(藏書家)를 칭송하고 존경하며 대단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책보다는 고급술이나 기호품을 모으는 사람에게 괸심을 보인다. 그러니 서점이 문을 닫게 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까.서글픈 현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책을 받고서 ‘좋은 책 잘 받았습니다.’ 혹은 '어떤 글을 보니 공감이 가고 좋던데요.‘ 따뜻한 격려나 감상평을 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을 들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자는 글을 잘 쓰면 무얼 그런 걱정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워낙에 책을 읽지 않고 답 또한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푸념도 해보게 된다. (2015) |
첫댓글 작가로써 많은 책을 받고, 그리고 남에게 나눠 주었을 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 노인들은 책을 줘도 읽지 않고 곧 쓰레기통 신세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복지관에 장서가 가득한 책방이 있는데 하루 평균 1~2명 옵니다.
탁구장이나 장기 바둑 하는 곳은 수십명인데 말입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고 외면한다고 해도 작가는 글을 써야 하고 남기는 사명을 다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메아리없는 발품을 팔지만 책이 생기면 나눠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성경책도 읽지 않는 판국입니다.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독서량은 연간 9권 정도에 불과하고 성인 10명중 4명은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9권도 통계에 허수가 많이 개입된 듯합니다.
고금을 통하여 책 속에 지식과 진리가 있으니 시대가 바뀌어도 책의 소중함은 바뀌지 않을 것같습니다. 책을 왜 소중히 생각지 않고 잘 읽지도 않는 것인지 철저한 분석을 통하여 원인을 찾아내서 국민 독서풍조를 진작시켜야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자신도 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 편입니다. 시력이 나쁘다는 핑계를 계속해야 하는지 자못 부끄럽습니다.
저도 한국수람이 일년에 몇권의 책을 읽은다는 통계를 접하고 그마저도 뻥튀기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만이라고 책을 읽는다면 문을 닫은 서점이 생기겠습니까.
책을 받아보고서 문자하나 전화한통 보내는 것은 하나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동부수필'을 이곳저곳에 보낸 지가 좀 되었는데 받았다는 소식은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
그러니 제대로 읽어보기나 하겠는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0권 가까이 보냈는데 문자온곳은 다섯 곳에 불과하군요.
디지털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적인 문화는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는 거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변해가는데 고집만 부려서 될 일이 아닌거 같습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퀸만큼 독자의 기호에 맞추어 디자인도 새롭게 하여 내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