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전에서 그랜드 페스티벌로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모두 베토벤이었구요, 지휘는 마렉 야놉스키였습니다.
에그몬트 서곡
피아노 협주곡 5번 (피아노: 조성진)
교향곡 3번
이었습니다.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과 야놉스키의 공연은 아마 2009년 1월말이었던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김선욱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그리고 교향곡은 베토벤 5번을 했었죠. 서곡 대신에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했었습니다. 당시 베토벤 연주가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는 연주여서 이번 공연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프로그램도 제가 좋아하는 곡들로 이루어져있었구요.
공연 전에 놀랐던 것은 먼저 현악기의 배치였습니다. 첼로를 아웃에 두는 일반적인 배치였지만 독특했던 것은 현악기 주자간의 거리였습니다. 대전예당 아트홀의 경우 무대가 상당히 넓은 편인데 무대 가장자리를 모두 비우고 가운데로 밀집한 형태였습니다. 저 정도 거리에서 현악기 주자들이 과연 연주를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뭉쳐있는 대형이었습니다. 아마 퍼스트 바이올린만 8풀트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보통 교향악단이면 5풀트 정도의 인원만 차지할 공간에 다 들어가있었으니까요.
아마 대전예당의 음향 때문에 현악기 주자들끼리 서로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오밀조밀 모여 앉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에그몬트의 시작은 여러모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야놉스키가 약간 보수적인 스타일이라 그 부분을 느리고 장엄하게 늘이지 않을까 했는데 반대로 매우 담백하게 처리했습니다. 느린 서주부의 템포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고 과장없이 지나갔습니다. 역시 주부도 조금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물 흐르듯 계속 부드럽게 지나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관악기의 멜로디를 현의 코드로 프레이징을 끊어주는 부분도 그냥 부드럽게 넘어갔구요.
피날레도 딱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처리했습니다. 크레센도 효과를 주면서 한껏 멋을 부릴법도 한 트럼펫의 8분음표 반복이라든가 마지막 팡파레도 과장없이 처리했구요.
피협 5번은 서곡과 교향곡에 비하면 약간 지루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 사운드도 아까 연주하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기도 했구요. 조성진 군의 연주는 무난했다 정도로만 기억나네요. 마지막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었는지 집중력을 잃어서 실수했는데 오케스트라도 함께 무너져서 좀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올해 광주시향과 협연한 이진상씨의 연주가 너무 인상깊어서였을까요. 아무래도 대전예당의 안 좋은 음향도 조성진 군에게 좀 불리하게 작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몇몇 있었는데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주에 별로 집중하지 못한 저한테도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구요.
교향곡 3번 연주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연주였습니다. 악장별로 특정 부분이 인상깊었다기 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일단 현악기도 정말 많이 썼고 목관도 더블링한 편성이었습니다. 전 베토벤 교향곡, 특히 3번 같은 경우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캄머필하모니 처럼 적은 편성으로 날카롭게 연주하는 것을 선호해서 제 취향과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편성 연주의 이점을 잘 살리면서도 소편성 연주의 장점을 놓치지 않으려한 연주였습니다.
대편성임에도 불구하고 템포가 느리지 않아 장엄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을 강조한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탁월한 것은 성부간의 균형이었습니다. 처음 연주해보는 홀이라서 음향상태와 밸런스에 애를 먹을만도 한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밸런스가 잘 잡혔습니다. 야놉스키는 중간중간에도 관악기의 현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지시를 몸으로 했구요. 퍼스트와 세컨이 주고받는 부분, 바이올린 파트와 비올라 파트간의 균형, 현악기 군과 목관악기의 밸런스 등이 정말 이상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트럼펫 호른 팀파니도 딱 필요한 부분에만 적당히 나와주었구요. 아쉬웠던 게 있다면 첼로와 베이스가 잘 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4악장에서 현이 마르카토로 연주하는 변주 부분에서 첼로 베이스가 마디 마다 음을 굉장히 강렬하게 긋는 부분이 있는데 야놉스키도 그 부분을 열심히 강조하려고 했지만 주자들의 노력에 비해서 제대로 전달 되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좀 더 좋은 공연장이었다면 얼마나 멋졌을지 궁금하네요.
1악장의 경우 템포도 빠르고 박자 변환도 잘 이루어졌습니다. 3번 1악장에 자주 나오는 오프비트의 스포르찬도는 상당히 골치아픈 부분인데 그 부분을 잘 살려내려고 노력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분위기 전환 때 약간씩 루바토를 해가며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도 인상깊었구요. 제시부를 다시 반복했는데도 전혀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코다에서 클라이막스로 쌓아 올라가는 것도 정말 탁월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트럼펫에 바인가르트너 가필로 멋지게 처리했지만 크게 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2악장의 경우 좀 느렸는데 특히 뒷부분은 좀 심하게 늘어뜨린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일 인상깊었던 건 역시 2악장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푸가 부분이었지요. 현악기 위주로 진행되는 1,4악장의 푸가와는 달리 2악장은 관악기와 현악기가 주고받아야하기 때문에 밸런스를 잡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때 더블링의 이점이 잘 나타났습니다. 처음에 제시되는 바순 주제를 4명이서 부니 확실히 또렷하게 전달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플룻의 경우 음정이 불안한 단점도 있었지만요.
3악장은 현도 안정적이고 호른 트리오도 정말 좋았습니다. 세컨 서드 호른 주자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서 호른 3중주의 매력을 한껏 살린 연주였습니다.
4악장도 빠른 템포로 유려하게 잘 흘러갔는데 마지막 코다가 등장하기 전 느린 변주에서 클라리넷과 다른 목관이 좀 호흡이 맞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끝의 짧은 코다에서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평범했던 것 같구요.
베토벤 3번은 작년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뵐저뫼스트의 연주가 인상 깊었었는데 그 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연주였습니다. 이렇게 큰 편성으로 연주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을 살린 베토벤 연주는 흔치 않을 것 같네요.
아무 생각없이 써나가다 다 쓰고나니 뭔가 두서 없는 글이 된 것 같네요. 정작 제 느낌은 많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기도하고.....
그래도 요즘 공연 보는 것들을 한번 꼬박꼬박 리뷰 쓰는 습관을 길러보려고 해요ㅎㅎ
다음에는 좀 읽는 사람을 고려할 수 있게 노력해봐야겠어요ㅜㅜ
첫댓글 전문적이고 깔끔한 리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대전에서도 공연했군요. 전주에 있었다면 분명 가봤을텐데...ㅡ,ㅡ;;
대전예당은 워낙 홀사운드가 나쁜 곳으로 악명이 높지만 실력있는 악단은 이런 악조건 마저도 무마시키는 힘이 있더군요. 저번 이반 피셔-BFO의 대전공연 때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좋은 악단의 좋은 연주를 보신 것 같아 무척 부럽습니다. 그러고보니 대전에 가본지도 참 오래됐네요...ㅎㅎ
와우~전문용어가 많아서 리뷰가 어렵지만 지식인이 되어가는 거 같습니다. 다샘님~리뷰 고맙습니다.덕분에 꼼꼼히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올해 광주시향 협연한 이진상씨의 연주도 보셨나봐요?마침, 저도 이진상씨가 마침 객석 제 앞자리에 올라오셔서 인상깊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넘 수줍어하셨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