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우포/ 박병래(김천)
엄마 없는 세상이 꿈결처럼 보이는 날
가만히 두 눈 감고 내 몸을 만져보면
외로운 두루미 한 마리
한쪽 발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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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을 때/ 이성이
하얀 눈을
화려한 색이라고 부르는 것은
녹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뜻도 없이 녹아
사라질 줄 알기 때문이다
제 몸을 딛고 간
햇살의 발목에 대해
영원히 침묵하는
저 순교
마음이 마음에게로 갈 때처럼 눈만 부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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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익을 뻔했네/ 박숙이
맨 처음 나를 깨트려 준 생솔 같은 총각 선생님,
촌 골짜기에서 올라와 혼자 제자리 찾아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불안 불안한, 갑갑한 이 달걀에게
여린 정신이 번쩍 들도록, 음으로 양으로 깨트려 준 샛별 같은 그 선생님
당신이 날 깨트렸으므로 혁명의 눈을 초롱초롱 떴네
한 번뿐인 생달걀, 생이 한 번뿐이라는 걸 가르쳐 준 그 후부터 나는
익지 않으려 기를 쓰며 사네, 그러나 하마터면 익을 뻔했네,
익으면 나 부화될 수가 없네
깨트려 주는 것과 깨지게 한 것과 망가뜨린다는 것의 차이점을
사전 속 아닌 필생 부딪히면서, 익지 않으려 애쓰면서 에그,
하마터면 또 홀랑 반숙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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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최영희(인천)
머리와 꼬리가 닿았다
선 하나가 돌고 있다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번뇌가
그 안에서 돌고 있다
틈조차 없는 견고한 운명이
고집스럽게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광활한 우주가 점지해준
작은 세계가 벗어날 수 없는 궤도
시작과 끝이 꿰어진 채
한 땀 한 땀
시간의 고리를 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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