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이 오고있지만, 아직까지도 바람은 매우 매섭게 불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대의원 총회를 마치고 오늘 이동장터를 시작하는 날, 매서운 바람 떄문에 감기 걸리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햇살은 매우 뜨겁지만, 바람은 냉골같아 감기 걸리기에 좋은 조건이었지요.
이런 날임에도 어르신들은 마늘 농사와 고추 농사를 준비해야하다보니 찬바람 맞으면서 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친 환경에서 노동하신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는 날로 갈수록 안좋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출발해봅니다.
9시 18분,
오늘도 아침일찍부터 마을 곳곳을 풀 메고 계시는 어르신들. 주차하고 기다리다보니 지나가는 다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일자리 어르신들 모두 없는데? 어쩌지~"
한편으로는 우리 점빵은 어르신들만 이용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차 운전이 가능하신분들은 주로 읍으로 장을 보러다니다보니, 이동장터에서 사시는 일이 비교적 적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은 더 싸고 더 좋은 물건을 선택하는것이 시장의 논리이니 어쩔수 없습니다. 그런 사이 다른 분께서 오셔서 필요하신 물건 사서 가십니다.
9시 35분,
"오늘 그거 사왔어?"
지난번 주문해주셨던 사리곰탕면 이야기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주문하신 사리곰탕 작은 컵 6개 드렸습니다. 오늘은 뒷집 어르신도 함께 나오셨습니다. 두부와 식용유를 사시고는 어르신께 이야기하십니다.
"운동 갈텨?"
평소에 두분이서 걸음보조기를 몰고 마을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십니다. 천천히 걷고 다니는 일이 운동이 되시나 봅니다. 하지만 그길이 도로 옆을 걷는지라, 어르신 동네에도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9시 50분,
도착하자마자 집 안 불투명한 유리 뒤로 2분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난주엔 안오셨었는데, 이번주는 계셨습니다.
오늘도 불가리스 각 2줄씩 사십니다. 그러곤 두부 2모, 1모. 지난주엔 병원에 약 받으러 가느라 못오셨다고 합니다. 주문해주신 것을 잘 사주시는 어르신들 고맙습니다.
10시,
오늘도 안계시나 싶다가 뒤 돌아보니 어르신이 문 앞에 서계십니다.
"커피 마실텨?"
아침에 커피를 안마시고 왔는데, 어르신 덕분에 카페인 충전합니다. 미리 보온병에 뜨거운물 받아오셨다며 커피 두잔 주십니다. 그러곤 안쪽에 계셨던 어르신께선 간식을 주십니다.
"차타고 돌아다니면서 먹어~ 피곤할텐데~" 하십니다. 제 얼굴이 많이 피곤해보였나봅니다. 덕분에 좋은 간식 챙겨서 갑니다.
어르신께서는 지난 주말에는 봄꽃보러 딸들과 여행 다녀왔다면서 한참 이야기하십니다. 자녀들과 나들이 한 번 다녀오는 일이 어르신에겐 자랑거리이신가봅니다. :D
10시 15분,
지난번 공병을 28박스 주신 어르신이 계십니다. 소주로 약 560개 입니다. 지난번 공병수거하며 어르신께 여쭸습니다.
"어르신 혼자 이걸 다 드셔요?" 간수치는 괜찮은지 여쭤보니
"울 동네 사람들 다 와서 같이 먹어~ 명절 이후로 처음 주문한건데, 선사가 많이 들어와~ 내가 한 병 마시면 울동네 사람들 2~3병 먹어~ 나는 괜찮어~" 하셨습니다.
어르신댁은 동네에 사랑방 같은 곳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마을마다 사랑방 같은 집이 있다면, 함께 얼굴보고 밥 한끼, 술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구실이 중요하다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 25분,
"어제 대의원 총회는 내가 못가서 미안하네~" 하시는 어르신.
어제도 아내분과 함께 고추농사 작업한다고 고춧대, 비닐 한참 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오늘도 작업하셨다는 어르신.
아궁이에 불이 한참이기에 맛있는거 삶으신지 여쭤보니 "닭주려고 감자 삶네~" 하십니다. 어르신 집에는 염소부터 닭, 강아지 등 다양한 동물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집안에 살피면 어르신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는 어르신의 집. 그런 와중에 오늘은 아무것도 살게 없다며 미안해하시는 어르신입니다.
11시,
어르신께서 나오시지 않아 오늘은 어디가셨나 싶었는데, 저멀리가 감독하고 계시는 어르신. 직접 농사는 짓지 못한다고 하시지만, 어르신 땅을 빌려주고 동네 사람에게 갈아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직접 농사를 하지 못해도 내 땅이 노는 모습은 용납 못하는 어르신들. 그 덕에 어르신들이 관리하는 전답은 늘 정리가 잘 되어있나 싶습니다.
11시 20분,
회관에 방문하니 어르신들께서 다 같이 쪽파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회관 앞 텃밭에서 캐오신 파. 어르신들은 다 같이 둘러 앉아 손 작업하며 수다를 나누십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콩나물, 파, 마늘 등 다양한 농산물들을 함께 다듬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고, 함께하니 어르신들도 심심해하지 않습니다.
한 어르신께서는 지난주에 놓고간 콩나물 값을 지불하시며, 다른 집에 소주 한 박스 놓고 가달라고 하십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들고 가기 힘들다보니, 점빵차를 이용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시곤 합니다. 박스 앞에 이름써서 집 문 앞에 두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직접 주면 좋겠으나, 갈 수 없다보니 점빵은 그 마음 대신 전해드립니다.
11시 40분,
오늘은 어르신댁에 어르신이 안계셔서 어디계신가 싶었는데, 아래쪽에서 어르신이 손짓하십니다.
어르신들이 함께 앉아계시는 의자에 3분이 같이 계셨습니다. 바람이 찬대, 어떠하신가 싶었는데, 햇살이 따뜻해서 좋으시다며 괜찮다고 하십니다.
아까 다른 마을 어르신들께 받은 과자가 생각나서 어르신들께 하나씩 나눠드렸습니다.
"오메~ 어찌 물건 갈아주지도 않았는데, 이런걸 주는가~" 하십니다.
별거 아니지만, 작은것으로 어르신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 지역 어르신들 덕분에 저도 나눠드립니다.
13시 40분,
오늘도 회관에서 물건을 갈아주시려고 하시나봅니다. 간담회 이후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구매 노력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부 5개, 콩나물 5개, 동태 등 사람이 많다보니 많이 사주십니다.
금액이 크던 작던 늘 사주시는 마음은 항상 감사합니다.
회관에 다른 어르신은
"울 손주가 그렇게 매운 라면을 잘 먹어~" 하십니다. 그래서 불닭볶음면 추천해드리며, 더불어 함께 비벼먹을 수 있는 짜파게티를 추천해드렸습니다. "이걸 섞어먹는단 말이지?" 하시며 즐겁게 사가시는 어르신. 이번주 손주에게 좋은 말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D
14시,
평소와 같이 간식 거리를 사시던 삼촌, 늘 찾던 빵을 안 집으셨습니다.
"오늘은 빵 안셔요? 안 사시면 제가 다 먹어야겠네요~" 하며 웃으니, "그럼 두개 주세요~" 하십니다.
워낙 식사 대용으로 빵을 자주 사셨던지라, 항상 챙기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삼촌도 그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4시 30분,
읍에서 버스가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어르신께선 읍에 나가서 뻥튀기 한봉지 큰거를 사오십니다.
"밀가리 있어?" 점빵차를 보시곤 바로 필요한 물건 사서 다시 가시는 어르신.
내 두발로 읍내를 나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사올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어르신들에게는 큰 자존감으로 있습니다.
14시 40분,
회관에 잠시 정차하고 있는 사이, 동네에서 이모님 오십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우유랑 커피를 산다는게 깜박했지~" 하시며 우유 2개 달라고 하십니다.
우유를 드릴려고 하던 찰나, 날짜를 보니 유통기한이 3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모님에게는 날짜가 짧아 하나만 사시라고 말씀드리니 알겠다고 하시며 고맙다고 해주십니다. 마트에서도 사셔도 되는데 늘 생각하시고 점빵 와주시니 감사했습니다.
15시
오늘도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니 모르는 분이 계셨습니다. 방문요양선생님과 함께 계셨던 어르신. 나중에 알고보니 안쪽에 계셨던 분은 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최근에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님 집을 온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 챙겨주는 자식들이 이렇게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르신께는 아까 다른 동네에서 받은 사탕 하나와 보리과자 하나 챙겨드리니 함박 웃음 지으십니다.
"어찌이렇게 찾아와서 맛난걸 주꼬~" 하십니다. 어르신 웃는 모습보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15시 20분,
근 3개월가량 안보이시던 어르신이 집에 보이셨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확인해보니, 어르신 건강이 매우 안좋아지셨습니다.
"접때 병원가서 MRI 찍어보니 간수치도 그렇고,, 여러가지 내 몸이 많이 안좋아졌어." 하십니다.
평소에는 잘 걷고 다니셨는데 이제는 걷는것도 어지럽다는 어르신. 요양보호사는 아침 7시에 와서 10시까지 있다가 간다고 합니다. 10시 이후로 어르신의 일상생활은 누가 함께 봐주시는지..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르신께는 조심스럽게 저희 센터로 오시는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이번주 제사로 아이들이 모두 오니, 한 번 의논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일상이 안전한 일상이 되길 바래봅니다.
16시 20분,
최근 주간보호를 오셨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신 어르신.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어르신께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집에 찾아뵈니, "저짝 밭에 거름좀 뿌리고 왔더니 몸이 아파서 계속 누워있었네" 하십니다. 일하지 않으셔야하는데... 눈에 보이면 일을 해야하는 것이 어르신들의 마음입니다.
어르신께는 지난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며 어르신 편하신대로 하시자고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곤 어르신은 평소대로 늘 주문하시는 떠먹는 불가리스와 우유를 사셨습니다.
"고마워~~ 안그성 먹응께~"
어르신의 상황이 염려가 되고, 동네분들하고 자주 만났으면하는것도 사회복지사인 제 기대였나싶었습니다.
그래도 요양보호사가 회관까지 데려다 주고, 회관에서는 다른 어르신이 집으로 데려다 준다고 하시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 사이, 어르신 집에는 사라진 나비 대신 다른 고양이가 와서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과 금새 또 가까워져있는 모습을 보니 다시 예전에 어르신의 삶으로 돌아가셨구나 싶습니다.
오늘도 어르신들의 삶을 살피며 이동장터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하루가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