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비오는 날은 나가지 마이소'》는 책의 제목이다. 내 페친 이수길 선생님이 전국장터를 돌며 장돌뱅이 소상인들의 애환을 글로 옮긴 현장감이 살아있는 책이다. 대형마트에 밀려 서서히 사라져가는 5일장의 장터풍경과 몇 십년 씩 장터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며 가족과 자식들을 책임져 온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 후대에 귀한 자료가 될 소중한 책이라 본다.
그들의 삶을 엿보며 그에 못지않게 고달픈 삶을 사셨을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는 2대 독자다. 일찌감치 조실부모하고 엄마같은 누나와 외롭게 사셨다. 1950년 말 쯤 가톨릭에 '아가다'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으신 어머니와 달리 선조들 제사를 모셔야 한다며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이다. 우리 고향에 첫 성당이 지어질 때도 발벗고 나서서 솔선수범 힘을 보탰지만 끝내 세례받기를 거부하셨다. 일요일에 어머니와 자녀들이 성당에 나가도록 허락하셨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바치는 기도도 묵묵히 듣고 계셨다.
고생하는 부모님께 ' 어매 날도 더운데 오늘은 좀 쉬이소' 라는 정스런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농사일을 천직으로 아셨고 돌아서면 자라는 풀 때문에 손을 놀릴 수가 없으셨다. 울어대던 매미도 더위에 지쳐 숨을 고를 한낮에 논에 엎드려 피를 뽑으시던 아버지와 밭고랑에 쪼그려 앉아 쉴새없이 호미질을 하던 두 분 등에서 나던 단내가 지금도 코끝에 맴돈다.
농사일를 '주께하듯' 하셨던 분들이다.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처럼 사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하듯 하고 사람에게하듯 하지마라.' Whatever you do,work at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not for men.
땡볕이 잦아들고 해가 꼴딱 서산으로 넘어가야 허리를 펴고 머리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흥이 많으시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품의 아버지셨다.
진도 임회 장터의 박용순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신발을 팔아 9남매를 죽을 힘을 다해 키웠다며 장터를 그녀의 보금자리라고 말한다. 주름진 얼굴에 흥겨운 노랫가락 ' 내 나이가 어때서' 를 구성지게 부르며 자식들 다 키워고 잘들 살고 있다며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활짝 웃으신다. 장터에서 만나는 인정과 인연으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며 상인들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지금 쯤이면 향긋한 냉이와 달래가 밥상에 올라 잃었던 입맛을 돋을 때다. 장날이면 생선을 지푸라기로 엮어 들고 마당에 들어서던 하얀고무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장터 국밥집 할아버지의 까칠한 수염이 내 볼을 부벼대 도리질치던 감촉도..
오늘도 나갈 채비를 하고 장화를 신으며 '주께하듯' 을 주문처럼 외운다. -Junga Ja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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