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7주일 강론 : 소화 데레사 성녀 영성 특강 2 >(10.6.일)
* 소화 데레사 성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면서 발견한 “영적 어린이의 길”을 철저히 실천함으로써 성녀가 되었습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 전교의 달을 맞아, 기도와 전교를 더욱더 충실히 하기로 결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전교의 주보성녀가 된 비결
① 기적적인 회심(13세 때인 1886년 성탄) → 이상한 병과 세심증에서 탈출/ 인생 3기 시작
② 영혼 구원에 대한 갈증
1887년(14세) 7월 어느 주일미사 후, 미사책을 정리할 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성화 상본’이 책갈피에서 삐져나왔다. 고귀한 주님의 피가 땅바닥에 떨어지는데도,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어서, 영혼 구원을 위해 주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르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갈멜 성소가 점점 뚜렷해지는데, 그 성소를 확신한 것은 앙리 프란지니 사건이었다.
③ 앙리 프란지니 사건(1887년 3-8월)
1887년 7월 ‘십자가’(La croix) 신문을 통해 끔찍스런 살인사건을 알았다. 3월 19일과 20일 밤, 빠리에서 부인 2명과 12세 소녀가 죽은 사건이었다. 사건 이틀 후, 경찰은 30세의 용의자 프란지니를 마르세이유에서 체포했다. 그는 증인들과 판사들에 대한 태도가 비정상이었고, 범행 자백을 거부했지만, 7월 13일 사형이 선고되었다.
데레사는 그의 영혼 구원과 갈멜 성소의 확신을 청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의 구원을 위한 지향으로 기도, 선행, 미사를 봉헌했으며, 셀린도 동참했다.
사형집행일인 8월 31일 새벽, 프란지니는 무죄를 주장하며 단두대로 끌려 나갔다. 교도사목신부로부터 회개 권유를 받아도 상대하지 않다가, 단두대에 매달리기 직전에 신부님이 들고 있던 십자가에 세 번 입맞춤 한 후, 단두대에 매달렸다.
데레사는 다음날 신문에서 그 소식을 들었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그녀의 기도가 이뤄졌고, 원했던 표징(십자가에 입맞춤 = 회개의 표징)도 얻음으로써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일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하면서 갈멜 성소를 확인했다. 그 후 데레사는 본격적으로 갈멜 입회를 준비했다.
④ 갈멜 입회(1888년 4월 9일)
1888년(15세) 4월 9일 리지으 갈멜 수녀원에 입회하며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라고 불리게 된 그녀는 “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갈멜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15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교에 대한 자신의 소명을 입회 때부터 명확히 표현했다.
1889년 1월 10일로 연기된 착복식을 앞둔 피정 때, 치매환자 부친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전 세계의 죄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 연옥에 있는 이들도 천국에 들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⑤ 부수련장의 역할 애로점
⑥ 찌끄러기 빵을 애덕으로 먹음
⑦ 빨래터 일화
⑧ 영적 오빠들(M. 벨리에르/ A. 룰랑 신부들)
⑨ 봉쇄 안에서 기도(9년 5개월 21일(1888.4.9.-1897.9.30))
리지으 갈멜 수녀들이 창립한, 베트남의 사이공 갈멜 수녀원에 가고 싶어도 건강 때문에 불가능했기에, 봉쇄 안에서 선교방법을 찾았다 :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
1896년 9월, 데레사는 자신만의 성소를 찾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명, 남성들에 한정되었던 성소를 원했다 : “예수님, 당신의 배필이 되는 것, 갈멜 수녀가 되는 것, 당신과 결합해 영혼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갈멜 수녀, 당신의 배필, 영혼들의 어머니가 되는 특권들이 제 성소임은 틀림없지만, 군인, 사제, 사도, 학자, 순교자 같은 다른 성소도 원합니다.”
→ “제 사랑이신 예수님.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⑩ 봉쇄를 초월한 전교 : 소화데레사 전교방법으로 회심, 입교, 세례
2. 영적 어린이의 길 발견/ 실천
→ 소화데레사 성녀는 어린 시절에 딸들 중에서 제일 작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가장 컸다.(162cm)
① 셀린(1869-1951)의 입회/ 셀린의 성경노트를 보며 "영적 어린이의 길"의 성서적 근거 찾음
② 영적 어린이의 길 발견/ 엘리베이터 영성
→ 소화데레사는 여러 성소를 갖고 싶어도, 자신과 성인들 사이에 큰 차이를 느꼈다. 성인들의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느낌/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아무리 작아도 성덕을 욕심낼 수 있겠지. 나를 크게 만드는 것은 안 되는 일이고, 수많은 결점투성이인 나 그대로를 견뎌 나가야 해. 그러나 아주 곧고, 가깝고, 아주 새로운 작은 길을 통해 천국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예수님 계신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만났으면 좋겠다.”
“저를 하늘까지 들어 올려줄 엘리베이터는 예수님 팔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저는 큰 사람이 될 필요 없이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오히려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 영적 어린이의 길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 책은 < 권고와 추억 >
③ 수련수녀들과 함께 실천
→ 성녀가 실천한 “영적 어린이의 길”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작은 모습으로 남아있고, 점점 더 작아진다면 하느님과 이웃을 더 잘 사랑하고,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④ 1923년 시복/ 1925년 5월 17일 시성(쟌다르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