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동굴진지군
명량대첩 후 이충무공은 목포 고하도에서 100여일을 머물며 선박을 건조하고 정비한다. 이런 계기로 고하도에는 이충무공의 모충각과 기념비가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여! 고하도는 수많은 비극의 레이어들이 겹쳐있다. 충무공 기념비는 일본인의 총탄으로 상처를 입고, 가까이엔 거대한 일본군의 반공호가 함께 있다. 바로 옆 고하도의 간척지 목포신항만에는 세월호가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국가폭력의 실상을 묻고 벌겋게 녹슬고 있다. 그것뿐인가? 지금도 바로 옆 목포해군기지가 있다. 고하도에 침범하는 파도처럼 우린 아직 전쟁의 비극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충무공유적 북쪽, 즉 유달산 노적봉을 바라보는 해안의 벼랑들에 일제의 동굴진지들이 여럿 남아 있다. 나는 다섯 곳을 찾았다. 제주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와 유사하다. 연합군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은 선박을 이용한 자살폭발 공격 등을 감행할 목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적봉 아래 목포항이 마주 보인다.
내가 찾아본 일본진지 동굴들은 10미터 정도의 길이였다. Y자형으로 갈라진 동굴도 있었고, 대개는 1자형 동굴이었다. 밀물 때면 입구가 물에 잠긴다. 어느 동굴은 파도가 밀어놓은 굴껍데기로 내부가 이미 절반 막힌 곳도 있었다. 하지만 목포시에서는 이곳을 송악산 해안동굴진지처럼 다크투어 코스로 알리거나 안내판도 붙여놓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 감화원 아이들을 시켜 동굴을 파게 하고, 유사시 아이들까지 동원할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감화원은 가미가제 소년병들을 기르기 위해 한껏 폭력적이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쓰레기들! 해안은 흡사 누군가 쓰레기들을 유기한 장소 같이 보였다. 하지만 안다. 이것은 모두 바다에서 떠내려와 쌓인 것이다. 줍지 못한 역사의 쓰레기들처럼. 바닷물에 밀려온 양파들도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만약 일본이 항복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곳 동굴진지에서 야음을 틈타 출발한 고아소년병사들의 배가 목포항의 연합군 배를 향해 돌진하지 않았을까? 끔찍한 상상이다.
동굴진지나 감화원 같이 사람들이 머물렀던 장소가 오싹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놀라운 아이러니도 있다. 바로 동굴진지를 파며 나온 돌의 잔해들이 해변에 흩어지고 쌓여 굴밭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은 동전의 다른 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