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강원도 평화기행기
2011년 6월 19-23일 4박 5일 일정으로 동해에서 DBS크루즈페리를 타고 블라디보스톡과 우스리스크를 방문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앞뒤 1박 2일씩 강원도 여러 지역을 방문했다. 시민들이 지역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다닌 여행이었다. 간략히 소개한다.
18일(토)
아침 외곽순환도로로 남양주를 거쳐 장애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화천의 시골교회 공동체(임낙경목사)를 방문해 요양 치료차 머물고 있는 군포의 활동가 윤여창을 만나 점심 먹고, 농사 짓고 된장 담그는 현황을 소개 받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화천의 파로호와 화천안보전시관을 방문했다. 1944년 일제 말 전쟁수행을 위한 전력확보차 북한강에 건설된 화천댐으로 인해 조성된 인공호수인데 산 자락에는 자유수호희생자 위령탑이 있고 전시관에는 중공군 3만명을 수장시켰다는 파로(깨뜨릴 破 사로잡을 虜)호라고 이승만대통령이 이름을 붙였다’고 소개되어 있다. 60년 전의 격전지에서 1992년 한중 수교와 화해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생각했다. 비목 공원과 평화의 종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한참을 달려 동해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김현동 동북아평화연대 대표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연해주 고려인 이주 정착 사업을 지원해 주고 있는 현황과 고향마을 등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참 수고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동해의 작은 집에 들러 큰 형님과 늦은 술잔을 기울이다 잠이 들었다.
19일
아침에 작은 집을 나와 오전 11시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 정다겸사무국장을 비롯해 김선복 박정원 신현숙님을 만났다. 함께 강릉-동해 고속도로로 산 중턱의 옥계 휴게소에서 동해를 보기도 했고, 물회로 점심을 먹고 동해항에 도착했다. 투어러시아의 여행상품인데 오가며 배에서 2박을 하고 현지에서 2박 3일을 다니는 일정이었다. DBS는 작년 7월 시마네현을 방문할 때 이용해 보았기 때문에 익숙했다. 3시를 조금 지나 출항한 배에 자리를 잡고 앉아 풍경을 바다보다 저녁을 먹고 좁은 2층 침대방 벽면을 스크린 삼아 준비해간 연해주방문기 고려인 정착사업과 우스리스크의 고려인문화센터 등 영상물을 보았다. 갑판에 올라 별 빛 하늘 구경도 하고 중고자동차 무역을 하는 원일무역의 홍사장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톡 현장에서 만난 국경지대 외화벌이로 나온 북조선 출신 간부와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동안 러시아 선교사로 활동중인 노부부도 만나 나름의 활동도 들을 수 있었다. 일행 다섯명이 침대칸이지만 방을 쓰게 되어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1시 반경 넘어 잠이 깨 버렸다. 밖으로 나와 책을 읽다가 다국적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술꾼 캐나다인 피터, 수의사가 될 러시아의 젊은 친구들, 조사차 방문한다는 일본의 가가와시 공무원 등이 참석한 자리였는데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술이 모자라 옆 자리에 있던 대전팀에게 소주 2병을 빌려 평화를 위한 건배로 마시면서 대화가 이어졌기에 평화와 우호를 위한 '국가연합 술자리였다'는 평까지 들었다.
20일
아침 8시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러시아어로 프리모르스키라고 하는 연해주 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어 긴장도 되고 기대 되었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0년 한러 수교가 이루어졌고 1991년에는 남북(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160번째 / 대한민국 161번째)의 유엔동시가입, 1992년에는 한중수교도 이루어 졌다. 분단을 넘어 동아시아 교류가 현실화된 지 20년이 지나 이제는 일부지역에서의 무비자 관광도 가능한 정도이다. 이미 북중러간에는 부분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앞으로 남북중러일 연계여행도 가능해 질 것이란다.
프리모르스키 지역은 연해주라는 한자식 표현으로 익숙한데 러시아가 동진하여 헤이룽강에 이르렀던 하바로프의 탐험대가 1651년 우수리강 하구에 아찬스크(지금의 하바로프스크)성을 구축하여 근거지를 확보하였고 청은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와 전투를 벌였는데 이 때 조선은 두차례의 원병을 보내기도 했다. 1669년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었고 제정러시아가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졌던 청국 정부와 1858년 아이훈(愛琿. 헤이룽장성내)조약과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현재의 영토를 국경선으로 확정하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1867년 제정러시아는 알라스카를 미국에 720만불에 팔아 버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와 당나라연합군에 패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주변 부족들을 결속해 세운 발해가 229년 동안 해동성국으로 자리잡았던 옛 땅이기도 하다. 점심 식사 후 갑판에서 만난 부산 출신의 DBS 크루즈페리 정선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전면의 운행실 안내를 받는 행운도 누렸다. 전자항법 모니터 장치를 통해 배의 위치와 항로 등을 볼 수 있었고. 탁 트인 시야에서 블라디보스톡 전경에 관해 설명도 들었다.
점심 후 오후 3시경 도착해 무비자 여행객이 먼저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여행사 가이드 천병규씨와 김현주소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모두 15명이 한 그룹이 되었다. 청도에서 온 단체관광갱도 있고, 강원도의 경제인들 그룹도 있고 세미나를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관심이 갔는데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러시아 볼세비키혁명을 기념하는 혁명광장이었다. 1917-22년 러이아혁명 기간 표시가 선명하다. 혁명광장은 블라디보스톡역과 항구와 연결되는 위치에 있고 프리모르스키주(연해주) 청사 빌딩이 높이 자리잡고 있다. 2차 대전 중 많은 독일 잠수함을 격침시킨 C-56 잠수함과 전몰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원의 불 개선문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해군부대로 보인다. 잠수함 박물관에는 혼자 100루불의 입장료를 내고 실내를 돌아보다 스탈린 초상도 보고 각종 뱃지와 돈으로 조합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근처의 푸쉬킨동상과 기념관을 방문해 각종 전시물을 돌아보고 나니 청도 단체 관광객이 합류했다. 이어서 2층 강당에서 전통의상을 갖춘 4인조 러시아 민속가무단이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반겼고 이어서 함께 놀 수 있는 게임으로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 주었다.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마치고 한식당에서 해물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해양공원을 방문했는데 모래가 줄어 들고 있는 모습(부산의 해운대처럼)과 새로 단장 중이라 어수선 해 보였다. 숙소는 해양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는 블라디보스톡 호텔이었다. 무비자라 개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이드의 겁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근처 가게를 찾아 맥주와 안주를 준비해 방에서 일행 5명이 함께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21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흐렸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이주해온 고려인이 마을을 이루었던 신한촌 기념비를 찾았는데 주변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다. 메가투어 김현주소장이 와서 열쇠를 열고 기념비 앞에서 역사를 설명해 주었고 시정부에서 이전을 요구하고 있어 영사관에서 대체 부지를 모색중이라고 했다. 이어서 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에 세워진 안중근의사 기념비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서울보건신학연구원과의 협정서에 의거해 설립된 것이라는 설명을 담은 석판이 붙어 있었다. 한글로만 쓴 안내문이라 러시아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을 방문했다. 4층의 박물관 1층은 이주 경로와 곰과 호랑이가 싸우는 모습 등 각종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자연사전시장이고 2-3층에는 역사와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학습공간도 있어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아이들이 열중하고 있었다. 발해가 표기된 지도도 전시되어 있었다. 4층에는 사진전이 열리는 중인데 인상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사진 촬영에도 제한이 있어 명찰을 받은 나 혼자 찍어야 했다.
이어서 블라디보스톡항과 붙어 있는 블라디보스톡 역앞에 열려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다 언덕에 자리잡은채 주변 정비중인 레닌 동상을 만났다. 오른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일까 싶다. 러시아 혁명의 종착지였던 이곳인데 이제는 바다를 가르키는 것 같다. 바로셀로나항에 세워진 콜롬버스탑에서 오른 손을 들어 바다를 가르키는 것과 유사한 분위기다. 한산섬의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키는 자세와는 대조적이다. 그 옆에는 슈퍼마켓과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우스리스크행 완행열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우골나야 역을 거쳐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수이펀강 가에 자리잡고 있는,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를 갔던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의 지도자 이상설선생 유허비로 가서 함께 인사를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낮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것은 전부 고려인으로 보였다. 가게마다 김치가 먹음직스럽게 자리잡고 있어 확인해 보니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호두 등 견과류를 함께 구입하기도 했고 시장 특유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우스리스크 시내에 있는 러시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선생 생가를 찾았다. 안중근의사가 이토오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일을 돕고 나중에는 유족까지 도왔던 독립운동가의 주택이 지금은 개인 주택으로 사용중인데 외벽에 소개 동판이 붙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 모두 아쉬움을 느꼈다. 이어서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했다.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지역으로 정착해 들어간 것은 1863년이라고 러시아 공식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두만강은 강폭이 좁아 쉽게 넘나들수 있었기에 그 전부터 연해주지역에 정착하기도 했단다. 1층의 고려인역사관을 둘러보니 초기 이주에서부터 최근의 고려인 이주까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러시아공훈 인물리스트로 처음 보는 사진이라 인상적이다. 특히 1937년 8월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고려인 20만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해 다음 해 봄까지 지냈던 토굴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탈린시대의 아픔이었고 이제는 다시 귀환이 시도되는 중이다. 꽤 널찍한 공간에 여러 가지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앞으로 우스리스크만이 아니라 연해주 지역 고려인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식당 메아리에서 중국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블라디 보스톡으로 돌아왔다. 도로는 왕복 4차선이었지만 여기 저기 확장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길 가에는 방치된 모습의 널찍한 초원이 좌우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내에서 대형수퍼마켓을 들렀는데 많은 해산물과 각종 술들 특히 2.5리터 맥주가 눈길을 끌었다. 함께 다니며 친숙해진 대전 그룹 여행객들과 자연스레 합류해 맥주 한 잔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의 즐거움이다. 술자리를 파하고 호텔 마당을 돌아보니 호텔의 나이트 클럽과 독특한 마사지 광고가 눈 길을 끄는데 몇 안되는 영어간판이라 이해가 쉽다.
22일
아침에는 다시 날씨가 좋아져서 다시 독수리 전망대를 찾았다.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비롯해 각종 도시 경관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는 러시아어 알파벳인 키릴문자를 만든 성 키릴과 메디투스(Cyril & Methodius)형제 동상이 러시아정교회 첨탑 아래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기념품이 있고 영문안내 책자와 지도를 볼 수 있어 구입했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굼백화점을 잠시 방문했는데 좀 썰렁했다. 굼 백화점앞에서 손풍금을 켜는 노악사에게 10루불 기부하고 눈인사하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는 교통체증이 매우 심했다. 길 양옆에는 불법주차된 승용차가 서있고 곳곳에서 공사도 진행중이다. 2012년 여름 APEC총회 개최지로서의 준비로 분주한데 러시아 정부의 동아시아 진출이라는 야심찬 계획이 추진되는 중이란다. 곧 이곳을 방문할 메드베데프대통령이 김정일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 퍼져 있었다. 여객터미널에서 출국 수속 대기중 잠시 블라디보스톡 역을 방문해보니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한산했다. 다음에는 횡단열차를 꼭 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비자라 먼저 수속을 하고 배에 오르니 여유로웠다. 배가 출발하자 대전 참가자들이 고소톱판을 마련했는데 시간 보내기는 최고라니 나름대로 실감이 간다. 대전여행객들과 같은 방을 배정받았기에 준비해간 영상물 2007년 MBC에서 방영된 연해주 고려인 재정착을 다룬 다큐멘타리 '귀향'을 보게 되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중고차 수출을 하는 무역상인 홍사장을 다시 만나 대화하던 중 노래방으로 불려가 일행들과 함께 노래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배 안이라 그런지 일찍 문을 닫는다.
잠이 오지 않아 배 안에서 만난 러시아인들과 동석하게 되었다. DBS가 블라디보스톡과 동해 일본의 사카이미나토를 연계하기 때문에 일본을 방문하는 러시아인들이 많아 보였다. 그 중에는 일본에 머물렀던 경우도 있어 일본어를 조금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하는 대화지만 재미있고 새벽까지 이어진 대화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
23일
아침 날씨가 흐리다. 갑판에 나가 보니 비가 조금씩 흩날리는데 아직 망망대해다. 다시 배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않으니 옆 자리에 앉은 러시아 젊은 부부 중 남편인 스타스는 한국어를 꽤 잘했다. 극동기술대 출신으로 광고회사를 다니는데 2주간의 휴가로 서울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부부(부인은 러시아인)를 만나 함께 제주를 갈 예정이란다. 그래서 러시아 정치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우크라이나에 살지만 한국 김포로 일하기 위해 다시 방문하는 중년의 고려인 알라씨를 만났다. 그녀는 러시아어도 유창했고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기에 노트북으로 어제 보았던 ‘귀향’을 다시 보여 주었다. 한국 공장에서의 경험이 좋았던 것 같다. 오후 1시경 동해항에 도착했다. 군위에서 오신 할아버지 두 분은 기차 시간에 맞춰 가느라 서둘러 출발하고 대전일행과 인사하고 우리 일행은 승용차로 묵호항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동해안 등대 고래박물관 등을 비롯해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강릉버스터미널에서 헤어졌다.
다시 강릉한살림생협의 목영주이사장을 만나 경포대 주변의 선교장을 방문했다. 여주인 홍규연님으로부터 삶은 감자와 참외를 대접받고 동석해 준 일꾼으로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연주까지 덤으로 들었다. 전주 이씨 문중에서 살았던 300년전의 99칸 양반가옥인데 국가문화제로 등재되고 입장료 수입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양반 가옥을 그대로 볼 수 있었는데, 열화당에는 구한말 당시 묵었던 러시아 공사가 감사의 선물로 전한 청동테라스가 그대로 남아 있기에 동해 뱃길로 방문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 유적이 될 것이라고 한 마디 보탰더니 반가워 하신다. 여운형선생이 교사로 머물기도 했던 학교(1910년 초당의숙) 등의 모습도 있고 아직까지 후손이 실제로 거주해서 살고 있다. 다시 차를 몰아 속초의 성암교회를 방문해 이성헌목사부부와 식사를 하고 야간 빗길을 달려 다시 춘천으로 이동했다.
24일
춘천에 살고 있는 대학 동기도 잠시 만나 중년여성으로 사는 이야기도 듣고 여행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남춘천역 근처 일식당 머구리에서 김홍영춘천시민연대 공동대표와 식사를 하면서 춘천이야기 그리고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강원도에서 이루어졌으면 싶은 일들을 이것저것 의논했다. 최근 개최하게 된 춘천역사문화강좌 안내지를 받아보니 잘 기획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블라디보스톡과 관련을 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향후 중국 동북3성과 연해주 지역, 그리고 일본 시마네현 등과의 연계를 고려하는 움직임을 준비해야 한다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다. 식당주인 김남덕사장은 강원일보 기자 출신이자 사진작가이면서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분이었기에 소중하게 느껴졌다. 2시경 자리를 마치고 헤어져 수원으로 향했다. 7박 8일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