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그 지정학적 위치의 조건으로
소련의 남진정책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제정 때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려고 했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영국등은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도와주고 있었지요
아프가니스탄은 73년의 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으나 78년에 쿠데타로 친소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타라키 정권은 국내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노골적인 친소정책 등으로
내부혼란과 반정부 활동이 늘어나고 이에 강경대응으로 악순혼이
반복되다가 결국 79년의 반란으로 타라키가 살해됩니다
그 뒤에 정권을 잡은 수상 아민은 반소정책으로 나가자
소련은 직접적인 군사행동으로 노선을 바꾸게 됩니다
초기 소련의 침공
79.12.24 105공수사단의 카불공항 침투
79.12.27 부대 침공
곧 침입부대를 두개로 나누어
북동부에 360,16,210,105공수사단
서북부에 66,54,357사단 배치
초기에 소련군은 한정적인 작전을 실시합니다
약 8만의 병사로 전략요충지 도시 공로의 확보 위주
동조않는 정부군의 무장해제
이것으로 소련군은 단기간내에 수습할거라 생각했으나
난처한 내전과 게릴라전으로 빠져들게 됨
아프가니스탄 반정부 게릴라들은 그들의 이름을 무자헤딘이라
칭하고 이들은 크게 세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이슬람 복고주의그룹
국가주의그룹
부족주의 그룹
이들은 주로 30-40명씩 움직이고 목표는 주로
주둔지 항공기지 병참기지 병참선 이동부대 등이며
목적은 적에게 피해를 입히고 치안상태를 파괴함으로써
정부군과 소련군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있었답니다
지형에 익숙한 이들은 철저히 히트앤드런의 수법을 쓰며
보유무기는 주로 영국제 엔필드 소총(엄청 구형) 중국제AK-47
기관총 박격포 RPG-7 휴대용 SAM SA7 등이며 최대 무기 공급원은
정부군과 소련군이었답니다 ^^
소련군의 실패 요인
첫째 게릴라전과 산악전투의 미숙
둘째 장교들이 전술교리는 알지만 임기응변능력과 창의력의 부족
작전게획 행동의 보안유지 결여
셋째 소련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
병사들은 군사훈련없이 2주내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6개월간
복무하고 싸우는 이유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답니다
소련군은 미군처럼 게릴라를 소탕하는 작전에서는 성공했으나
전지역을 통제하는데 실패했고 지역주민에 대해
승리할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게릴라전을 정규군의 방식으로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입증했답니다
즉 아무리 현대화된 군대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게릴라군을
무기로 이길수 없는 것이며 대게릴라전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를 지원해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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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게릴라를 제압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조금 잔인하기는 하지만
모든 시민들을 수용소에 집어넣고
도시와 마을 불태워버리는 방법입니다
그러다가 몇명정도 죽고 자그마한 반란이나 폭동이야
무자비한 학살로 이어지면 되니 신경도 안쓰면 됩니다
그러면 게릴라는 상당히 세력이 줄어들죠
어차피 게릴라는 마을사람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활동을 못하거든요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요
가장 확실하기도 하고요
너무 잔인한가 생각도 들지 모르지만
우리 편이 죽어나가는 것보다야 낫지요
원래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면전으로 국민들의 전쟁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박살내버리는게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