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 현기영 / 창비
허무성: 학생운동 중, 기관에 잡혀 고문을 당해 변절하고 기관의 후원으로 대학교수까지 지냄
김일강: 허무성을 고문한 검사출신 기관의 직원, 후에 국회의원을 지냄
송난주: 허무성과 같은학교 교수, 패미니스트, 허무성의 술 친구
오용미: 허무성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여대생
문정선: 허무성의 학생운동 동료,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 후 허무성을 만나 재혼하였으나, 결별
한석민: 허무성의 학생운동 동료, 기관의 협조를 얻어 국회의원을 지냄
강한일: 허무성의 학생운동 동료, 논술학원 운영
이종구: 허무성의 학생운동 동료, 노숙자
6월항쟁 때에 잡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조직을 발설하여 변절자로 살아가야하는 허무성의 이야기와 김일강으로 대표되는 기관의 움직임을 다루는 내용이다.
작가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메세지를 전하는 방법을 많이 있을 것이다. 통상 주인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인공의 삶을 통해 나타내기도 하고, 주장하는 바를 완전히 감추어 곱씹어보지 않으면 원하는 메시지를 읽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암울했던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고, 최근의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장년에 접어들고 있는 그 5월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의 아픔이 잊혀지고 폄하되고 심지어 날조되고 있음에 경종을 울리고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명한 루쉰의 <아Q정전>은 중국역사와 더불어 루쉰이 누군지 모를때는 나에게는 이해 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한 권의 소설로는 모두 전할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주제들이 허무성과 김일강의 대화를 통해 줄줄 새어 나온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전개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이미 햇볕에 바짝 말라 딱딱한 가죽처럼 되어버린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들의 대화는 (작가가 사실로 강력하게 받아 주기를 원했는지 모르지만)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소설에나 나올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나는 소설 속의 인물이 되어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으나 이 책은 한 편의 차디찬 미숙한 논문을 읽는 기분으로 이야기 전개 방법이 불편했다.
주된 이야기는, 허무성을 그들의 장학생으로 삼아 일본 유학시켜 대학교수로 삼았다. 그리고 기회가 오자 기관은 현대사 특강으로 그를 "박정희와 그의 시대" 의 강좌의 강사로 앉히여고 한다. 파시즘의 부활이다.
"허무성은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90년대를 낳았음에도 두 시대는 어느 한 구석 닮기는커녕, 완전히 적대적이라고 판단했다. 90년대가 80년대의 자식이었지만, 자식이 곧 아버지를 잡아먹어버린 것이다. 80년대의 시대정신은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젊은 영혼을 달구었던 이성·명예·희생·용기 등의 단어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83쪽
허무성이 젊은이들에게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설명된다. 작가는 허무성의 입을 빌어 강하게 토로한다. 본인은 변절을 했음에도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 가치가 더 순수했다. 그러나 어쩐다! 들어줄 이는 없다.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는 '오용미' 그리고 그 삶을 이해하는, 그 가치를 이해하는 그녀와는 이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순수한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그의 타락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이제 단호하게 결심해야 했다. 그녀의 진실한 마음이 모욕당하는 일은 결고 있어선 안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설령 그녀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녀의 열정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러한 호기심은 금방 시들어버릴 게 분명하니까. 용미야, 너에게 이 허무성은 다만 낯선 세계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일 뿐이야. 이제는 폐기 처분되어버린 세계,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이지..." - 286쪽
그렇게 노숙의 인생으로 떠난 허무성은 또다른 형태로 저항을 하는 사람들은 본다. 그라파티. 그것은 용미의 방법이었다.
"날이 밝아 드러난 그라파티는 벽돌을 뚫고 나온 커다란 주먹이었는데, 그위에 FUCKING USA! 라고 씌여 있었다. 미순 효순 압살사건에 대한 항의 포스터임이 분명했다. 그 그림낙서는 열흘쯤 지나 공원관리인에 의해 깨끗이 지워졌다." -290쪽
시대가 바뀌면 추구하는 가치관도 달라지고 저항하는 방법도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저항하는 방법을 찾을 길이 없는 저자의 고뇌를 이런 방법으로 독자에게 전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바꾸려고 한 시대가 도리어 그들을 바꿔버렸다(84쪽)"고 한 허무성의 말을 통해 바뀔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 대한 변명인가.
"하여간에 우리 조직은 불멸이야. 북한의 위협이 더이상 없더라도, 국내 저항세력이 없더라도, 우린 얼마든지 위협을 만들어 날 수 있지, 흐흐흐" -178쪽
얼마전 필리버스터라는 제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고국의 '태러방지법'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 조직이 만들어낸 위협이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무서운 세상이다. 끝. (2016년 3월 19일. 평상심)
참고:
누란(累卵) 쌓거나 포개 놓은 알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누란 (樓蘭, Loulan)은 현재 중국령인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고대 도시의 작은 국가였다. 그 도시를 중심으로한 국가를 누란국이라 하였다. 서역의 남도와 이어져 공작하 하류의 로프누르 호의 서안에 위치하며 비단길 교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약 1,600년 전 누란국은 소실되었고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