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의 고조부 백강 이경여(李敬輿, 1585-1657)는 친명배청의 척화파였다. 한때 심양에 연행된 적도 있어 노론 사회 전체의 존경을 받았다. 이인상 역시 겸재의 스승격인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 속한다. 아울러 그의 절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노론계 인물들이었다.
동갑인 송문흠(宋文欽, 호는 한정당(閒靜堂), 1710-1752)은 노론영수 송시열의 오대 후손이다. 능호관 보다 4살 적었지만 막역하게 지낸 이윤영(李胤英, 호는 단릉(丹陵) 1714-1759) 역시 노론계로 안동김씨 가문과 가까웠다.
능호관은 친구 이윤영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봄 숲의 고독한 꽃 같았고 가을 들판의 선명한 백로’와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인품과 자질로 보면 능히 노론계의 중심적 문인이 될 만하지만 그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은 아니다. 증조부가 서출인 까닭에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음죽 현감을 마지막으로 45살 이후에는 설성(충북 음성군의 옛이름)에 은거해 들어가 살았다. 세상과 선을 긋고 지낸 것인데 이는 자신의 성격과 외적 환경이 빗어낸 복합적 사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인상 <풍림정거>와 부분, 지본담채 30.5x40.5cm 간송
이러한 능호관이 이최중에게 ‘강남춘의’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려주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했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는 당연히 「강남춘」의 시인 두목(杜牧, 803-853)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능호관은 두목 시에 대해 관심이 깊었는지 정식으로 그의 시를 가지고 그린 시의도가 전한다. 그가 소재로 삼은 두목 시는 「산행(山行)」이다. 이 시는 「강남춘」이상으로 유명하며 때로는 한 수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탁월한 자연 관찰 뿐만 아니라 기발한 발상과 절묘한 대구로 예부터 한시 교과서에 단골로 수록된 시이기도 하다.
遠上寒山石径斜 원상한산석경사
白雲深處有人家 백운심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쓸쓸한 가을산 멀리 오르니 돌길 가파르고
흰 구름 깊은 곳에 인가 보이네
수레를 멈추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늦가을 단풍
서리 젖은 단풍잎 이월 봄꽃보다 붉도다
이 시의 가장 큰 묘미는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다고 묘사한 대목이다. 흰 구름과 붉은 단풍을 대비시킨 외에 이 구절은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예전부터 절찬을 받아왔다. 한산은 쓸쓸한 가을 산이다. 그리고 2월은 음력 2월이므로 이월화는 실제로는 4,5월의 화사한 꽃을 가리킨다.
능호관의 <풍림정거(楓林停車)>는 가을 산속에 앉아 이월의 꽃보다 붉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서로 뒤엉켜 하늘을 가린 계곡가 너럭바위에 한 선비가 앉아 있다. 그 옆으로는 폭포를 이룬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그림 전체는 짧게 끊어지는 선으로 바위의 윤곽을 잡았다. 그리고 담묵과 담채로 입체감을 나타낸 뒤 농묵의 태점으로 액센트를 주었다. 필획수가 많아 자연 그대로의 깊은 계곡이란 느낌을 주지만 한 편으론 경물의 구분에 혼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한쪽에 적힌 시구는 이 시의 후반 두 구절이다.

『고금화보(古今畵譜)』와 『명공선보(名公扇譜)』

두목의 「산행」은 유명세로 인해 명대 말기부터 화보 속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명대 말기에 나온 화보집인 『고금화보(古今畵譜)』와『명공선보(名公扇譜)』에도 이 시를 소재로 한 그림이 나란히 들어있다. 그 중에서도 명나라 화가 오요(吳燿, 1573-1620)가 그린 『명공선보』의 내용은 능호관 그림과 거의 유사하다. 부채 그림속에는 강가를 배경으로 한 것만 다를 뿐 나무숲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단풍을 즐기는 처사의 모습이 거의 같다. 한켠에 수레를 대기시켜 놓은 것조차 일치한다.

정수영 <풍림정거> 지본담채 24.4x32.6cm 간송
「산행」은 이인상 이후에도 그치지 않고 반복해 그려졌다. 이인상 보다 한 세대 뒤의 정수영(鄭遂榮 1743-1831) 역시 이를 가지고 그린 것이 있다. 그는 조선후기 지리학자 정상기의 증손자으로 유명한 문인화가이다. 그는 금강산 등 실경을 그리면서 뾰족한 윤곽선에 담채를 주로 쓴 자기만의 화풍을 남기기도 했다.
정수영의 <풍림정거>에는 일체의 시구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붉은 잎으로 물든 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처사의 모습이 이인상 그림과 닮았고 또 『명공선보』를 참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풍림정거>는 정수영 자기만의 개성이 아직 발휘되기 이전의 남종화풍 필치이다. 나무와 산 그리고 인물에는 언밸런스한 모습이 보여 수련기의 어느 한 때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인장 속에 백문으로 쓴 군방(君芳)은 그의 자이다.

안중식 <풍림정거> 견본채색 29.5x29.4cm 간송
정수영 이후에 또 등장하는 「산행」시의도는 구한말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것이다. 그가 그린 ‘풍림정거’는 두 폭이 전한다. 하나는 간송미술관에 있는 소품이며 다른 하나는 리움 소장의 대작이다. 두 그림 모두에 시구는 없다. 대신 제목으로 풍림정거라도 화가 자신이 적어 놓았다.

안중식 <풍림산수> 견본채색 164.4x70.4cm 삼성미술관리움
두 그림 모두 시에서 그려주는 이미지 대로 단풍잎에 물든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단품잎에 물든 자연을 감상하는 모습니다. 구도는 앞서의 『명공선보』와는 사뭇 다르다. 수레는 나무 사이에 그대로 멈추어 있지만 시인은 나무 숲에서 걸어 나와 다른 쪽 바위에 걸터 앉아있다.
시대가 지날 만큼 지나면서 원형이 된 화보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시구 또한 알려질 대로 알려져 제목 한마디로 족하게 되었다. 참신한 모습으로 18세기에 등장한 시의도는 이렇게 19세기 후반까지 흘러 흘러오게 되면 다른 어떤 사조와 마찬가지로 진부해지고 형해화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게 된다.(y)
첫댓글 많이배우고갑니다. 건강하세요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