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삐비’를 아시나요?
딸과의 산책길에 만난 삐비, 그리고 작은 행복
추억 속의 '삐비'는 과거 보릿 고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 삐비다. 삐비가 다 새었네. 안 샌 게 어디 있나?”
잔디를 곱게 민 묘지 근처에 삐비가 피어 있습니다. 추억 속의 보릿고개 삐비를 보고 반가움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
“이게 삐비란다. 옛날에는 이걸 먹었지….”
“이걸 먹어요? 옛날에 가난했을 때 말에요?”
“그래.”
“아빠도 먹었어요?”
“그래. 산에서 놀다가 간혹 먹었지.”
“야, 색깔이 참 곱네요? 나도 찾아 먹어봐야지….”
피어 오른 '삐비'
딸애와 풀밭에 앉아 바짝 허리를 숙여 아직 피지 않은 삐비를 찾는데 쉽지 않습니다. 겨우 두어 개를 찾아 딸애를 부릅니다.
“와~, 아빠 이건 통통하니 토실토실하네요. 내가 찾을 때는 안보이더니 아빠는 금방 찾네. 제가 뽑을께요?”
“그래라. 이것은 안쪽에 있는 대를 잡고 힘을 주고 쭈~욱 뽑으면 이렇게 쑥 딸려 나온단다.”
“아, 이렇게 뽑히네요.”
“이리 줘봐. 껍질을 까면 하얀 속살이 이리 나온단다. 이걸 빼내 먹으면 돼. 먹어봐.”
'삐비'를 씹는 표정이 묘합니다.
삐비, 오래 씹으면 껌이 된다? … 인내의 한계
절반을 나눠 아이에게 줍니다. 입에 넣자 연한 풀향이 코끝을 간직거립니다. 딸애가 가볍게 인상을 쓰며 삐비를 씹습니다.
“맛이 어때?”
“맛은 괜찮네요. 말랑말랑하니 부드럽고 쌉쓰름하면서 뽀송뽀송 꼬들꼬들 하네요.”
“엉, 꼬들꼬들? 그런 맛이 나니? 피어버린 건 딱딱해 맛이 없고 안 핀 것은 괜찮아. 이거 오래 씹으면 껌처럼 된다?”
“정말 그래요?”
껍질 벗기기
속살 잡기
부드러럽고 뽀얀 속살.
아내의 경험에 따르면 삐비를 오래 씹으면 껌처럼 된다고 느낄 뿐이라 합니다. 껌과 삐비가 같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장흥이 고향인 아내는 경험담을 살포시 끄집어냈습니다.
“소금하고 삐비를 같이 씹으면 껌이 된다 해서 굵은 소금하고 열심히 씹었지요. 껌이 된다는 소리에 소금의 짠맛을 참아가며…. 삐비를 계속 까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지요. 웬걸 아무리 씹어도 턱만 아프고 껌이 안돼. 그 때는 인내의 한계라 생각하고 인내심 없는 나만 탓했지 뭐예요. 호호.”
껌이 된다하니 곧잘 먹습니다.
삐비꽃 바람에 날리며
한들한들 나들이 간다.
가득 찬 그리움은
행복의 나래를 편다.
언제나 그랬듯이
통통한 옥색치마
부풀은 사랑의 밀어가
귓전에 속삭인다.
핸드폰이 불러주는
당신의 하모니
그대 가슴에 숨겨놓은
내 사랑 별이여
삐비꽃 하늘에 흔들며
사뿐사뿐 춤추며 간다
입가에 붉은 입술
달콤한 사랑의 키스를
언제나 퍼붓듯이
보일 듯 블라우스
남몰래 사모한 심정이
가슴을 요동친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반짝인 두 눈물
당신 가슴에 흘려놓은
내 사랑 당신아
- 송병완 ‘삐비꽃의 연가’ -
이제 잘 뽑습니다.
삐비, 아이에겐 풀이 아닌 생명?
딸애와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14일 저녁, 딸애와 여수시 화양면 호두마을로 가벼운 산책을 하며 만난 작은 행복입니다. 15일 스승의 날, 학교가 쉰다 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입니다. 밭두렁 사이로 삐비가 보입니다.
“어, 유빈아! 여기는 새지 않은 삐비가 많네.”
“어, 정말 그러네. 여기는 저기보다 더 토실토실하네요. 아빠! 그거 내가 뽑을께요?”
“그래라.”
무척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흐뭇합니다. 바쁘게 뽑습니다. 옆을 지나치던 아주머니 ‘부자지간에 뭐한다냐’는 표정입니다. 한웅큼 쥔 것을 딸애에게 건네주니 싱글벙글입니다.
“삐비 보관은 어떻게 해요? 습기 있는 곳에 하나요, 마른 곳에 하나요?”
“아빠도 모르겠는 걸. 어떻게 보관하지?”
“그럼, 습기 있고 햇볕 드는 곳에 놔야겠네요.”
“왜~ 에?”
“그래야 오래 갈 것 아니예요.”
헉,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풀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아이에겐 생명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기도 합니다. 삐비는 소나무, 칡, 쑥과 더불어 힘든 보리 고개 넘겨 준 생명이었지요.
'삐비'는 풀이 아닌 생명
“어, 삐비가 피었네”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멸치 그물을 정리하던 아주머니 삐비를 보며 “어, 삐비가 피었네” 합니다. 그들과 사이가 멀어지자 딸애,
“아주머니도 삐비를 아네요. 어른들은 이거 다 알아요?”
“그럼, 다 알지. 추억 속에 있는 삐비인데 모르겠니?”
아내 기억 속의 삐비는 ‘띠’라고 합니다. 삐비가 샌 후 자라면 밑둥을 잘라 햇볕에 말려 서로 엮어 김발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김발 대신 기계로 김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작업을 했기에 발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합니다. 딸애는 “아빠 너무 고마워요” 합니다. 고마울 것 까진 없는데. “고맙다니 아빠도 고맙구나” 서로 보며 웃습니다. 아이가 껍질을 까, “아빠 드세요” 합니다.
“아빠 맛있어요?”
“그래. 너도 먹지 왜 아빠만 줘. 별로 맛이 없어?”
“조금 달고 상큼한데, 별로 입맛에 안 맞아요?”
예전과 입맛이 많이 달라지긴 달라졌나 봅니다. 하기야 다른 먹거리들이 지천인데 접해보지 않은 삐비가 입에 맞겠나 싶습니다.
생각은 저만치 과거 속 뒷동산에서 뛰놀던 때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작은 행복을 나누었습니다.
청미래 넝쿨, 일명 '맹감' 열매처럼 작은 행복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퍼온 글입니다
출처= 닥터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