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은 영원히 제 가슴에
-春川 사암리 누님 칠순잔치에 부치는 글-
글- 德田 이응철(대진고 교사)
누님!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윤기나는 알밤이 투욱 툭 떨어지고, 용암처럼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무성하던 초목들을 다독이며, 들판은 서서히 물기를 건조시키며 여기저기 머리를 깎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계절앞에서 오늘 옷깃을 여미고 사랑하는 누님께 수확하는 농부처럼 흐뭇한 마음으로 배운 얼을 되새김질 해 봅니다.
한평생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지만 누님한테 배운 인간애는 영원할 것입니다.
대룡산 아래 논가운데 집으로 시집 가시어 매운 시집살이 하시며 누님은
경주 이씨 종손답게 효를 몸으로 보여주셨지요.
층층시하의 시어머님과 시할머님께 손수 텃발을 일구시며 삼 세끼 불을 때
따뜻한 진지상 차려주시던 60년대 누님의 손은 거칠대로 거칠고 급기야는
마음까지 아프고 쓰리고 눈물로 상처를 닦아내시던 여자의 일생-.
누님의 고통은 영광스런 신사임당 효부상을 수상하셔 우뚝 자리매김 하셨지만
피나는 고통과 얼룩진 삶에 비하면 그 상은 새의 깃털에 불과할 뿐이지요.
누님의 인간애는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지아비에 대한 지고지선의 사랑과 하많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를 날갯죽지와 가슴사이로 따뜻이 품고 있는 형상이셨습니다,
어느 자식에게나 뜨거운 사랑을 퍼주시기에 잠못 이룬 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저는 간간이 처가에 갈 때면 아내를 채근합니다. 장모님을 맞이하는 딸의 몸짓 때문이지요. 예전에 누님이 친정에 오실 때면 동구밖 둔덕집 생기삼 우물터에서부터 엄니를 부르며 달려오시던 게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 또한 맨발로 달려나가 모녀가 부등켜 안고 얼굴을 대며 대문을 들어서던 모습은 정녕 아름답습니다. 밤새도록 모녀가 나누던 이야기는 새벽까지 계속되어, 자다깨도 한 여인의 삶의 질곡은 방안을 온통 이야기 꽃으로 피웠습니다.
누님!
큰 나무는 그림자 역씨 크고 진한 법이지요.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특히 명절 때면 강조하는 것이 누님이 가르쳐준 만남의 반색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우애는 반색으로 싹 트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집니다.
누님은 언제 어디서 봐도 그 특유의 표정과 명쾌한 목소리로 친척간의 우애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시며 살아오셨지요.
인생은 살아보니 예정된 운명론이라 생각됩니다.
운명의 신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작은 짐승으로 몰아 후달굽니다.
제가 작은 짐승일 때 누님은 따뜻이 곁에서 마귀를 쫒고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누님!
누님의 칠순은 아름답습니다. 유난히 동생할머니가 외탁을 했다던 문수 조카 내외가 만년의 누님을 너무 포근히 모시어 고맙습니다.
거기에 힘을 실어주며 항상 주머니를 챙겨주는 선희 딸과 인제산 사위의 후덥한 손길이 오늘도 누님의 강을 맑게 흘러줍니다.
누님!
며칠 전, 미역 한 올을 들고 찾아 갔을 때였지요.
아내에게 넣어준 고춧가루와 강낭콩 깐 것은
아직 먹지않고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늘 누님처럼 열어보고 있습니다.
예전엔 人生七十古稀來라 했지만 누님에겐
미수(米壽)와 백수(百壽)가 푸르게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누님의 날입니다.
하늘도 땅도 모두 누님을 위해 축복을 내립니다.
이제 누님은 고생의 긴터널을 빠져나오셔서
남은 것은 못다한 행복을 사정없이
누리는 일 뿐입니다.
누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누님은 영원하십니다.
고개숙인 오곡처럼 만인이 존경합니다.
누님-. 사랑합니다.(끝)
2005. 10.9 누님의 막내동생 이응철
추신-이 글은 고희잔치인 10/9일 춘천 삼천리 호텔에서 낭송하여
많은 이의 눈시울을 적신 졸고이지요.(德田)
첫댓글 산촌엽서님과 소솜님께서 댓글을 올려주셨는데 문장이 불안정해 다시 수정하는 바람에- . 고맙습니다.
이 형제애 진한 글을 보며, 지금 아이들은 어떨지 잠시 생각에 빠져 보았습니다. 덕전선생님! 누님의 고희를 축하드립니다. 서양화가:정정신
덕전님 누님의 칠순을 진정 축하드립니다. 만물의 영장을 작은 짐승으로 몰아 후달군다는 운명론이 그럴듯 합니다. 저도 간간이 그런걸 느끼곤 합니다. 낭송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박수소리 힘차게 들려옵니다.
가족에 대한 정이 듬뿍 가슴으로 밀려옵니다. 칠순 축하드리며 오래오래 행복하세요.^ㅇ^
사암리에서 이씨댁 종부로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누님의 칠순잔치를 늦게나마 축하드리고, 누님의 복으로 글잘짓는 좋은 아우 두심도 축하할만 합니다. 누님의 인생을 줄줄 풀어 아름다운 獻辭를 지어 읽으신 그날, 잔치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을듯합니다.
모든 분 고맙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쓰는 글쟁이니 이런 때 한 몫하고 싶어서 늘 이벤트를 만들곤 하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