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천사지 / 국가 사적 제66호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는 고려 중기 법상종을 대표하는 절이었다.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가 출가하고 입적한 곳이다.
법천사 창건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통일신라 때 창건, 고려 때 크게 번창한 절이었다고 한다.
문벌 귀족 후원을 받아 번성,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솬웅, 지광, 정현, 덕겸, 관오, 각관 등 고승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 학자 유광선이 제자를 가르쳤는데,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제자였다고 한다.
허균이 '유원주법천사기'를 썼는데 법천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차서 없어졌다고 한다.
(법천사지 안내문에서 내용 정리)
원주 부론면에 오고 싶었다. 부론면을 걸처 제천시 백운면, 박달재를 넘어 제천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론면엔 전통사찰은 없지만 사적인 옛 절터가 두 곳이 있다.
법천사지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절터라고 한다. 가장 큰 곳은 익산 미륵사지이고 두 번째는 들었지만 잊었다.
아마도 강릉시 학산면에 있는 굴산사지가 아닐까 싶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가 있는 골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原州法泉寺址智光國師塔碑 / 국보 제59호
고려 선종 2년(1085) 지광국사 행적을 기록한 탑이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세에 출가, 21세 승과 급제, 문종 때 국사로, 문종 24년(1070) 87세에 입적.
거북머리는 거북이기보다는 용머리 같다. 거북 등껍질에 왕王자을 새겼다. 특이한 점이다.
비석 양면에 승천하는 용문양은 매우 정교하다. 전체 높이 4.55m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3호) 터
1911년 왜인인 왜국으로 밀반출
1912년 조선 총독 데라우치가 반환 요구, 반환. 경회루 부근 등에 안치.
6.25 때 피폭, 파손 됨
2005년 경복궁 고궁박물관 뜰에 존치 /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시 안전상 문제로 가져가지 않았음
2015년 보존처리를 위하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전
*보존처리는 끝났다고 한다. 이 승탑을 어디로 갔다 놓을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해설사)
원주시는 당연 환지본처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을 봤을 때 매우 아름다운 승탑이다.
법천사 금당 터
고목나무가 매우 인싱적이다.
법천사지 당간지주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
높이 3.9m, 이곳이 원래 자리라면 법천사 규모는 엄청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법천사지유적전시관
절터에 유적 전시관이 있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30억 원이 넘는 건물이라고 한다.
이 유적지에서 문화해설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야외는 석탑, 석등 등 부자재가 샇여져 있다.
파손된 불좌상, 배례석, 광배.
광배 앞에 석조 불좌상이 있었을 것이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을테다.
기와, 수막새와 암키와
영상관, 추정하여 만든 법천사 경내
청동 불입상(좌), 청동 보살입상, 금동 여래입상(우)
철제 은상감재갈
재갈은 말 입에 물리는 도구, 철이나 금동으로 만든 것은 있으나 은상감은 흔한 게 아니다.
철제말, 청동제 말
말은 삿된기운이나 악귀를 쫓는 벽사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해설사에게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나중 들리는 거돈사지 유적전시관엔 철제 말이 여러 점 있다.
기와
돌계단이라고 적어 놓았지만 이 용도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양이 쓰인 곳, 사례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이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연화좌대
불두
석조 공양보살상
받침돌은 제것이 아닌 것 같다. 상체는 약품 처리를 하였고 좌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제것이다.
석조 공양보살상은 법천사지, 개태사, 신복사지, 월정사 등 4구만 있다.
나를 안내한 해설사 분은 대구에서 학교를 나왔고, 원주에서 은행원으로 일 하셨다고 한다.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고마움 마음을 표한다.
거돈사지 / 국가 사적 제168호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한계산 기슭, 신라 후기 9세기경 창건, 고려 초기 보수/확장, 조선 초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탑식 가람으로 신라 또는 고려 초 사찰로 보기 드문 형식이다. 대다수 쌍탑 형식이다.
법천사지와는 4.3km 떨어졌다. 차로는 10km 가까이 된다.
이곳에서도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설명을 들으면서 절터를 구경하였다.
이곳 유물 전시관은 폐교를 사용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큰 절이 두 곳이 있었다는 건 의미가 있다.
보호수, 1,000년, 높이 20.8m, 느티나무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 보물 제750호
전형적인 신라탑 형식, 석축을 쌓고 그 안에흙으로 메운 후 탑을 세웠다. 특이한 점이다.
금당, 주춧돌 모양을 봤을 때 화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 보물 제180호. 복제품
이 자리에 있는 탑은 복제품으로 2007년 세웠다.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본 카페, 절을 찾아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 편을 참조)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原州居頓寺址圓空國師塔碑 / 보물 제78호
원공국사 지종(智宗)은 930년(고려 태조 13)에 출생, 1018년(현종 9) 88세로 입적한 고려 전기의 고승이다.
광종대를 일시나마 불교계를 주도하였던 법안종 승려로 활동하였다.
이 비는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웠다. 해동공자로 불린 최충이 비문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해서체, 중국 구양순 서법을 이어 받은 것으로 고려시대 여러 비에 새긴 글씨보다 뛰어나다.
법천사지 탑비 거북등처럼 왕王자가 있으나 딱 두 곳에 있다.
법천사지에 비해 출토된유물은 많지 않다.
철제 말
금당과 강당(뒤), 추정하여 만들었다. 금당은 이층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증거가 없다.
금당 안에 세워진 불상을 고려했을 때 단층은 아니였는 것으로 여긴다.
긴 화랑이 특이하다.
금당 안에 있었을 좌대
거돈사지 당간지주
누워 있지만 10m가 넘는다고 한다. 굴산사지 당간지주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고 하지만 이것보다 조금 짧다고 한다.
(해설하신 정 선생님 말씀)
거돈사지유물전시관, 부론초등학교 정산분교가 폐교, 폐교한 건물을 이용하고 있다.
해설하신 분이 차를 권하여 30여 분 담소를 나눴다. 원주 분으로 1958년 생이라 한다. 철도 공무원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직.
차도 고맙고, 설명도 고마웠다. 다음 원주에 가면 찾아 뵐 생각이다.
경순왕 경천묘(敬順王敬天廟) / 원주시 향토유적 제1호
-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경순왕 경천묘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2008년 3월 발족한 원주시 향토유적 보호 위원회에 의해 원주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경천묘가 있었는지는 몰랐다. 원주시 귀래면에 있는 삼층석탑과 마애불을 찾으니 네비게이션이 이곳을 가르켜 준다.
이곳에 주차, 1km 가량 미륵산을 올라야 한다. 마애불은 정상 근방에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삼층석탑이 있다고 한다.
오후 6시에 가깝다. 흐린 날에 초행. 1시간 만에 갔다 올 수 없어 돌아섰다. 다음 기회에!
제천으로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계속 김해 가가운 족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문경을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충주 가는 국도, 장호원은 우측으로 가라고 하고 해는 서산 넘어 간다.
2023년 3월 8일(수) 오후에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절터 두 곳을 돌아봤다. 이것도 큰 성과이다.
남한강 따라 건립한 사찰을 묶어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는 계획을 원주시에서 가지고 있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여주시 신륵사등도 함께 신청하는 게 등재 받기에 유리하다고 권하여 여주시와 의논하고 있다고.
시에서 부담하는 비용 문제가 있어 그리 시원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해설사 분들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