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은 곧 받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무엇을 보내주었느냐에 따라 내가 삶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 무엇인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보내는 것엔 관심이 없고 들어오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돈 좀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을까, 사랑받을까, 자식이 성적을 더 잘 받아올까 이런 것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단 말입니다. 내보내는 것, 자비를 나누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 이웃에게 기부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손해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업(業)이라는 원인의 주도적인 행위에 따라 결과인 보(報)가 뒤따르는데 업은 짓지 않고 과보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유행한 것이 바로 『시크릿』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서는 항상 ‘끌어당김의 법칙’을 얘기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내보내는 것이 곧 끌어당겨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내보내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것에 중심을 둔 표현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에 사람들이 더 혹한단 말입니다. 내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부와 명예와 권력과 건강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끌어당길 수 있을까요? 무엇을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끌어당겨지는 것이 결정됩니다. 핵심은 끌어당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내보낼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크릿에서는 내보내는 것보다 끌어당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구미에 더 와 닿는 것입니다. 내보내고 나누고 베풀고 보시하라는 말 보다는, 그 결과인 부자가 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춰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끌어당기는 데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와 내보내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 어떤 차이가 생길까요?
끌어당기는 데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를 가정해 봅시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단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마음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고 만족하면서 남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베풀어야 끌어당겨지니까요. 그런데 끌어당겨 지는데만 관심이 있게 되면, 이것을 알고 마음속에서는 ‘내가 먼저 베풀어야 끌어당겨지는 것이구나’ 하면서 계산적인 마음으로 베풀게 됩니다. 끌어당겨질 것을 염두에 두고 내보낸다 말이에요. ‘아, 내가 부자가 되려면 베풀어야지’ 하는 계산이 깔린 순수하지 않는 마음으로 베풀게 된단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떻습니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라. 상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하라’고 말합니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순수하게 보시하라고 합니다. 내보낼 때는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고 내보내면 안 됩니다.
마음에 계산이 깔리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법계의 근원적인 에너지, 근원적이 힘이 붙지가 않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아니라 ‘내보냄의 법칙’을 말합니다. 무엇을 내가 세상에 내보낼 것이냐, 무엇을 베풀 것이냐, 어떤 업을 지을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내보냄의 법칙은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이지만, 끌어당김은 그 결과 미래에 받게 될 ‘미래’의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행으로 무엇을 내보내고 계신가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을 읽으니 '흥부와 놀부'가 생각납니다.
예전에 '시크릿' 읽고 해봤는데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속 여행을 했고 지금 여기에서 멈췄네요.
그래서 스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지고 있던 소소한 것들을 놓아버리고
그 대신 자유와 행복을 얻었으니 성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