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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문화유산 탐방 `두 번째 이야기`- 통영 밤바다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68 14.08.11 18: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4월호 문화재 사랑에 실린 제2회 문화재사랑 문화유산 탐방에 많이 지원하셨나요?

 

문화재 사랑 독자분들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탐방>이 작년 12월 초에 처음으로 시작되어 이번 5월에는 통영으로 두 번째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쏟아지는 엽서에 본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많은 분이 지원해주셨습니다!

 

손수 쓰신 사연인 만큼 구독자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만큼 모두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추첨을 통해 30분밖에 함께 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기사를 통해나마 통영에서 무엇을 보고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느덧 집합 완료! 처음은 어색하기 마련, 새벽에 일어나셔서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굽이굽이 살펴오신 선생님들을 위해 나눠주는 폭풍 간식으로 갑자기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자기소개 시간

 

방금 몇 분 전만 해도 요조숙녀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더니 마이크를 잡으시자 오잉? 버스 복도로 나오시기 시작합니다. ^^

본인소개와 지역소개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시고 깨알 같은 재치로 빵빵 터트려 주셨습니다.

(왠지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됩니다...^^)

전주, 부산, 울산, 유성, 화성……. 정말 방방곡곡에서 오신만큼 다양한 직업은 물론 지역별 사투리를 한자리에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

무엇보다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액지원 여행이라는 점~!!

모르는 사람들과 저 땅끝 중에도 땅끝 통영으로 12일 여행을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신 나간 여편네!! (뜨악 아버님 아니아니아니 아니 돼 옵니다~)가 아니냐는 아버님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참석할 수밖에 없는 묘한 아니 드러내놓고 매력적인 문화재청 문화유산 탐방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직하고 하루 만에 휴가를 제출하고 나와 돌아가면 책상이 없어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분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모인 만큼 잠시 일상은 접어두고 뜻깊은 여행에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느덧 세 시간을 달려 한국의 나폴리 통영도착!

통영에는 사진속에 나온것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예술가가 통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저희는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모였기에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다녔는데요. 제일 먼저 간 곳은, 이순신을 배향해놓은 충렬사~!

 

 

 

 

사적 제236호 통영 충렬사 (지정일 1973.06.11)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게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선조 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개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하였으며, 현종 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입니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문화유산 해설자님을 긴장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학구열과 질문공세를 보여주신 선생님들~ 역시 문화재 사랑 구독자는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국보 제305호 통영세병관 (지정일 2002.10.14)

 

 세병관은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1604년(선조37)완공한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 전라, 충청)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무로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 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고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합니다.

 

 

지금은 세병관 앞에 집들이 들어서있지만 통제영으로 사용하였을 당시에는 세병관 앞으로 바다가 바로 보였다고 합니다. 아직도 공사중에 있어서 주위경관은 어수선했지만 세병관 현판의 크기에 압도되어 현판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됩니다. ^-^

 보통 남자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큰 현판은 태어나서 처음봤습니다. 한 때 폭풍우에 현판이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하는데, 무게도 보통이 아니라 현판을 다시 다는데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통영 초등학교로 사용되었습니다. 국보임에도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랬지만, 건물 아래서 단청을 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영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해저터널~ 아쿠아리움을 생각했다면 저처럼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터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듣고서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저터널은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돼있는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어민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통영과 미륵도의 거리단축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바다에 죽은 일본 선조의 머리를 누르고 갈 수 없다 해서 해저터널을 짓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선조가 많이 죽게 된 아픔이 있습니다. 터널 안에는 공사과정 및 통영의 유적지 등 통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 별신굿 (지정일 1987.07.01)

 

마을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하며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비는 굿으로, 남해안의 통영과 거제도를 중심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립니다.

무당의 노래가 뛰어나고 반주악기에 북이 첨가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동해안별신굿과 달리 진행과정에서 무다이 악사와 주고 받는 재담이 극히 드물고 사설이 없으며 굿이 진지합니다. 춤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박하며 혼자 추는 독무가 많습니다.

남해안별신굿은 오락성이 적고 이야기는 많지 않으나, 오랜 전통으로 규모가 크며 관중엑 주는 신앙의 신뢰성이 뛰어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 (지정일 1964.12.24)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합니다.

통영오광대는 전체 5과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31명으 인물이 등장합니다. 민중의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심하며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성니지 약한 편입니다.

 

 

 

 모두 하나 되는 시간이 바로 통영오광대의 남사동 놀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흥겨운 가락에 모두 절로 어깨가 들썩들썩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춤을 추시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으나 소중한 선생님들을 지키다보니 올릴 만한 사진이 극히 적었습니다... ^^

 남사동 놀이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어느 한 선생님께서 전수조교님의 손을 꼭 붙잡고 울먹이시며 우리 무형문화재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어르신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의 가장 뜻깊은 장면이었습니다.

 

 

 

 

두분 오늘 처음 만나신거 맞으시죠? ^0^

통영에서의 잊지못할 멸치회로 더욱 끈끈해진 인연~ 오래오래 가시길 바랍니다!!

 

 남자 선생님들 曰 나무꾼이 나무를 덜 패서 아직 할 일이 남으셨다며 신이 나는 탈춤을 한바탕 추시고 드시는 술은 아무래도 더 맛있겠죠? 다음날 아침 제시간에 맞춰 나오신 모습에 역시 아버지들의 수 십 년 내공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

 

 

 

 

사적 제113호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지정일 1969..01.21)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 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습니다.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지만,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영조 15년(1592) 이곳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한산도는 아름다운 녹색 바닷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있다 보니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 다시 현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저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었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요? ^^

 

꿀빵과 충무김밥을 너무 많이 사서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몸도 마음도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저와 함께 통영여행 잘하셨나요? 기사를 쓰면서 다시금 기억이 새록새록 나니 통영을 두 번 다녀온 기분입니다! 통영은 많은 문화를 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또한, 통영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통영을 더 발전시키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통영에서의 12일은 너무나 짧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오래오래 남아 있을 거라 감히 말해봅니다.

평균나이 45, 한 세대를 뛰어넘는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다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여행에 참여하신 모든 분의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소감에 부산에서 온 제일 어린 친구는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그 사이에 많은 정이 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다음 인연을 기약하며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제3회 문화재사랑 문화유산 탐방을 노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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