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찌히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팀이 3만9000~4만7000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다섯 구의 유전체를 새로 분석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1일자에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유전체가 분석된 네안데르탈인의 수는 모두 아홉 구에 이르게 됐다.
네안데르탈인은 통상 24만년 전 유럽지역에서 나타나 유럽과 서남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부근까지 넓게 퍼져 살다가 4만년 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상에서 존재가 서서히 사라질 무렵에 살았던 이번 후기 네안데르탈인들은 알타이 산맥 부근에 살았던 더 오래된 네안데르탈인들보다 현대인 조상에게 DNA를 전한 네안데르탈인들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유전체는 또한 네안데르탈인 인구집단이 그들의 역사 종말 무렵에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에게 DNA를 전해주었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으나,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 및 초기 현생인류와 상호작용을 했던 시기와 이들이 사라진 시기 바로 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벨기에 스파이(Spy 94a)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윗쪽 어금니 ⓒ I. Crevecoeur
가장 최근까지 생존한 네안데르탈인들
지난해애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 사는 현대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로부터 1.8~2.6%에 달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0년에는 비아프리카 현대인과 네안데르탈인이 99.7%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인간과 침팬지가 98.8%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네안데르탈인은 ‘유인원 같은 존재’가 아니라 현생인류와 매우 가까운 고인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은 돌 도구를 만들어쓰고 매장 풍습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색깔 있는 그림까지 그린 인류 최초의 예술가로 밝혀지기도 했다.
표본 수가 적은데다 아주 오래된 유해로부터 인체 DNA를 얻는데 따르는 어려움 때문에 세포 핵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분석된 네안데르탈인 수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런 가운데 2010년 이래 크로아티아와 시베리아 및 러시아 코카서스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네 구의 전 유전체가 분석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연구에 따라 이전에 확보했던 자료보다 후기이면서 더 광범위한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유전체 분석이 더해지게 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라이프찌히 그룹이 개발한, 미생물이나 현대인으로부터 오염된 DNA를 제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벨기에와 프랑스, 크로아티아 및 러시아에서 발굴한 네안데르탈인 다섯 구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발굴한 뼈와 이빨에 차아염소산염을 처리해 유전체 커버리지를 두 배로 늘렸다. 이 네안데르탈인들은 3만9000년~4만7000년 사이에 살았던 고인류로, 유럽에서는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표본 정보와 0.5% 차아염소산 처리 효과. ⓒ Nature, 21 March 2018
유전적 유사성 지리적 위치와 밀접하게 관련돼
연구원들은 이 같은 여러 개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분석 결과를 가지고 네안데르탈인 인구집단 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논문 제1저자인 마테야 하이딘약(Mateja Hajdinjak) 박사과정생은 “이들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유전적 유사성은 그들이 거주했던 지리적 위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유전체들을 코커서스에서 발굴된 좀더 오래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와 비교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인구집단은 그들의 역사가 끝나갈 무렵 코커서스 지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거주지를 이동하고 서로 자리를 바꾸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원인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나, 멸종 무렵에 인구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에 따른 생존 위협이나 현생인류에 의한 병원체 유입 등 어떤 환경 변화가 가해졌음을 엿보게 한다.
연구팀은 또 이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전체를 오늘날의 현생 인류 유전체와 비교해 봤다. 그 결과 모든 후기 네안데르탈인들은 시베리아에 살았던 더 오래된 네안데르탈인들보다 아프리카 밖에 살고 있으면서 현대인에게 DNA를 남긴 네안데르탈인들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초기 현생인류에게 전해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군은 적어도 7만년 전에 분기된 하나 이상의 인구군에서 유래되었다고 밝혔다.

후기 네안데르탈인의 계통 발생 관계도 ⓒ Nature, 21 March 2018
‘이종교배’ 했으나 현생인류 DNA는 안 흘러가
후기 네안데르탈인 네 명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이미 유럽에 도착했을 당시에 그곳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였던 만큼 사냥감 등을 놓고 경쟁하거나 적대적인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고, 일부 학자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사냥했다는 견해도 내놓았었다.
그러나 현생인류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네안데르탈인 남성과 현생인류 여성이 만나 일종의 ‘이종 교배’를 통해 자손을 퍼뜨린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네안데르탈인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이들이 현생인류에 남긴 유전자도 희석됐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유전체가 분석된 후기 네안데르탈인들이 현생인류와 공존한 시기에 살았으나 이전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서도 탐지 가능한 현생 인류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현대인에게 이르는 유전자 흐름은 대부분 단방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논문의 시니어 저자이자 이 연구소 생물정보학 미네르바 연구그룹 리더인 재닛 켈소(Janet Kelso) 박사는 “우리 연구는 이제 기술적으로 수많은 고인류 개체들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한편, 시간과 지리적 범위를 가로질러 네안데르탈 인구집단을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