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김대건 길
2021.12.4
정기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않아(비만 전단계, 고혈압 초기 등)
체중조절하기로 결심하고 한동안 걷지않던 올레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유럽인들은 자기 집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출발점까지가는 타지역 순례객들은 부러울 뿐이지요.
하지만 제주도 올레길은 우리집에서 출발할 수 있는 코스가 3곳 있습니다.
올레 12코스와 13코스 그리고 김대건 성지순례길이지요.
이틀전 13코스를 걷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 중간지점에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가랑비가 내렸지만 오늘도 쉰다면 작심삼일이 될 것 같아
산티아고에서 입었던 방수잠바를 입고 집을 나섰는데
다행이 1시간 후에는 날이 개어 화창한 날씨에 김대건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성지 순례길중 반(고산성당 ~ 김대건 표착 기념관)을 걸었고
다음에 나머지 반을 걸을 예정입니다.
8시 45분 출발하여 오후 12시 20분(3시간 35분) 걸으면서 마음의 청소를 했습니다.
출발 8:45
고산성당 도착 9:34
9:40 수월봉 가는 길에서 본 당산(봉)
10:12 수월봉 입구 도착
올레길 표시인 간세(하늘색 조랑말 모양), 주황색 화살표(성지순례 표시)가 보임
수월봉은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홀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수월봉에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왔다가,
누이인 수월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자 녹고는 슬픔을 못이겨 17일 동안을 울었다고 한다.
이 녹고의 눈물이 곧 녹고물이라고 전하며 수월봉을 "녹고물 오름"이라고 한다.
수월봉 정상에서 본 차귀도(왼쪽)와 오른쪽 해안가로 이어지는 올래길 12코스이자
김대건 순례길인 엉알해안산책로(수월봉지질트레일)
그리고 오른쪽 봉긋 솟아오른 오름이 당산(봉)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서쪽 방향인 수월봉 정상에 있는 고산기상대.
가장 바람이 강한 곳임. 태풍이 올 때 전국에서 가장 바람이 세게 부는 곳임.
태풍 ‘매미’가 기록한 초속 60m(시속 216Km)는 우리 기상관측사상 풍속 부문 1위에 해당한다.
겨울이면 평균 풍속이 어지간한 소형 태풍 수준인 초속 20m를 넘나든다.
엉알해안산책로(수월봉지질트레일)를 걷는 내내 파도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유치환의 시 '그리움'이 생각나서 낭송하면서 걷다가 사진을 찍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그리움’ 전문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청마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없는 어울림이였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었다.
미모와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살에 출가해서 딸 하나를 낳고
29세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던 정운 이영도는
해방되던 그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그 사람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에 청마의 첫눈에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의 청상 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5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하였다.
처자가 있는 청마로써는 그녀와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숙명 일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영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 위의 시다.
방향에 따라 여러모양으로 변하는 차귀도
맨왼쪽 매섬, 그 옆 2개 봉우리는 지실이(감자)섬, 그 앞 장군바위(잘 보이지 않음),
등대가 있는 죽도(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표착한 곳), 맨 오른쪽이 와도(누운섬)
이 모두를 합쳐서 차귀도라고 함
11:06 당산봉
11:50 김대건 신부님 표착 기념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성당에서
페레올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은 성 김대건 신부는
8월31일 조선으로 귀국하기 위해 라파엘호를 타고 상하이항을 출발했다.
길이25자(7.5m), 너비9자(2.7m), 깊이7자(2.1m)인 라파엘호에는 페레올주교,
다블리신부(안 안토니오신부), 김대건신부와 조선신자 11명이 승선했다.
조선신자 중에는 나중에 성인품에 오른 현석문(가롤로)과 최 형(베드로)도 있었다.
상하이 출발 다음날부터 풍랑을 만난 라파엘호는 망망대해에서 28일간 표류 끝에
9월28일(일요일) 제주 차귀도(옛날이름은 죽도)에 표착했다.
이곳에서 조선땅에서의 감격스런 첫미사를 봉헌한 일행은 라파엘호를 수리하고
물과 양식을 얻어 10월1일 제주를 떠나 10월12일 충청도 강경나바위에 도착했다.
절부암節婦巖
조선말기 차귀촌(遮歸村) 출생의 고씨는 19세 되던 해
같은 마을에 사는 어부 강사철(康士 喆)에게 출가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고 말았다.
고씨는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식음을 잊은 채 시체나마 찾으려고
며칠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해안가를 배회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러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소복단장하고
용수리 바닷가, 속칭 ‘언덕동산’ 숲에서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그러자 고씨가 목을 맨 바위의 나무 아래로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떠올랐다고 전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중국 조아(曹娥)의 옛일 같다고 찬탄하였으며,
1866년(고종3) 이를 신통히 여긴 판관(判官) 신재우(愼裁佑)가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새기게 하고 부부를 합장하였다.
그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전을 마련하여 용수리 주민으로 하여금
해마다 3월 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도 마을 에서는 이들의 산소를 소분하고 제사를 지낸다.
첫댓글 제주도 성지순례 - 김대건 길(1) 은 제주도 방문시 꼭 순례해야겠네요.
역사의 한 페이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순례하시게 되면 연락주세요.
집이 가까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