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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0-37
악녀 이세벨의 최후 / 한서노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사 시대에 와서 응하게 되어, 예후가 이스라엘의 10대 왕위에 올라 아합(이스라엘의 7대 왕)의 집을 진멸하는 가운데, 이세벨의 최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왕상 19:15-17절“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명하신 말씀이다.
님시의 자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백성의 왕을 삼으라고 하셨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이리라고 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로 돌아와 치료하던 중 예후의 손에 죽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사건이다.
요람 왕
부친은 아합이요 모친은 이세벨인데 그 형 아하시 아를 이어 12년간 재위중 수리아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패하여 부상한 것을 예후가 활로 쏘아 죽였다 (왕하9:24).
왕상 21:29절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한 때는 아합도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모습을 보였다. 이 큰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왕하21:27). 그래서 아들 요람(왕하8:16) 시대에 아합 가정의 몰락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예후는 이스르엘에서 아람과의 전투로 입은 부상을 치료받던 요람 왕을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 죽이고, 성내로 들어와 이세벨을 죽였다.
요부라 불리던 이세벨은 내시의 손에 의해서 창문으로 던지어 져서 죽게 되고, 예후의 발에 밟혀지고, 개들이 와서 시체를 먹어,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했다.
한 때는 나라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던 이세벨이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다. 아합 왕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우상을 섬겼던 그 화려했던 지난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우리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가는 죽음의 길...
그 화려했던 지난날은 오간 데 없다.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 성도들이 배울 점은 무엇일까.....를 살펴 보고져 한다.
1.잘못된 결혼의 비극
왕상 16:29-33절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아합은 오므리의 아들로 남쪽 유다 왕 아사 38년에 즉위한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다. 북쪽 이스라엘 왕가가 다 그러하듯, 아합도 여로보암처럼, 바아사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의 길을 걸어갔다.
아합의 이러한 잘못된 삶은 그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왕비 이세벨의 영향이 크다. 바알 신을 섬기는 이방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은 그의 결혼에서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① 결혼의 참된 의미
창세기 2: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이다(창1:28).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하나 되어 독립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깊이를, 오묘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결혼이란 제도를 주신 것이다.
바울선생은 고후 11:2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주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를 성경은 여러 곳에서 부부 관계로 설명을 하고 있다. 한 남성이 여성을, 한 여성이 남성을 향해 가지는 사랑의 진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 총각은 다 알지를 못한다. 결혼을 통한 부부의 삶을 살아가는 자라야 이성에 대한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과 성도간의 사랑이 그런 깊고, 오묘한 것이라는(신29:29)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성도와 주님간의 사랑도 깊은 체험을 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느끼는 "주의 사랑"은 다르다.
우리 성도들은 결혼을 통하여 "주님과 나" 사이에 부부와 같은 하나 됨, 친근감, 애정 등을 깨달아 아름답고, 신성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②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함
신명기 7:3-4절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 이니라"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주신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깊고 오묘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방인과의 결혼은 자신의 육신적인 사랑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방 신을 섬기는 배우자의 유혹으로 우상을 섬기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결혼의 제도를 세우신 근본 뜻에 반(反)하는 일이 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래서 인간을 가장 잘 아신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신 이유 그대로 오늘 본문의 아합집이 이세벨의 유혹에 말려 바알 신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로 멸절되는 모습이다.
③ 함께 할 수 없는 그리스도와 벨리알
고후 6:14-17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 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 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이 말씀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같은 멍에를 멜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농부가 쟁기질을 할 때 두 마리의 소에 하나의 멍에를 메우고 쟁기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 지방의 쟁기로 밭을 갈 때의 멍에 메우는 것은 이렇게 두 마리의 소를 사용한다. 그래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것으로 같은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삶이 결혼이다.
같이 멍에를 할 수 없는 것을...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을 예로 들고 있다.
고전 6:15-17절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 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의 몸을 가지고 창기와 합하면, 우리의 몸을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것이 된다. 둘이 한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창2:24). 그러므로 주와 합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곧 그리스도의 신부의 위치이다.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우리 성도들은 결혼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결혼 제도를 주신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목적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인가? 신중한 자세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
솔로몬의 경우를 보라...전무후무한 지혜를 얻었고,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더하여 얻는 축복을 누렸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자신이 취한 이방 여인들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그 태평성대를 자랑하던 솔로몬 제국이 찢겨지고 말았다.
이 시간 우리는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결혼에서 배우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기억하자.
왕상21:25절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아합 가정의 비극은 잘못된 결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나의 창조자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셨다.
유혹으로 이방 신을 섬기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진노로 멸절 당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나의 육신의 사랑에 빠져 하나님 사랑을 잊어버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일은 파멸의 길로 스스로 가는 것이 된다.
2 사치하는 자의 최후
본문 30절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교활하고, 요사스럽고, 악독을 자행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죽이고 피를 흘린 이세벨 그녀가 하나님의 진노로 예후 앞에서 죽어 가는 모습이다.
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이세벨이 최후의 순간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다. 보통 사람이면 망연자실하고 정신을 잃고 기절을 할 일인데, 자신의 용모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터인데,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자신의 용모를 단정히 하고 요람 왕을 죽이고, 입성하여 자신을 향하여 나아 오는 예후를 창 밖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나봇을 모함하여 죽인 교활함, 당신이 왕이냐?
그까짓 포도원 때문에 식사를 않느냐? 내가 해결하겠다.
왕의 도장을 마음대로 찍어 장로와 귀인들을 떡 주무르듯 하는 요사스러움과 악행, 못 말리는 여인이다.
왕상18:19절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 선지자 450명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다.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사치를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있다.
누가복음 7:25절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야고보 5:5절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요한 계시록 18:7절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 사치가 있다.
갈멜산 위의 바알 선지자들을 생각해 보라(왕상18:25-29).
그 광란의 춤, 그리고 외치는 고함 소리.... 여기에 종교의 예식까지 겹쳐지면 사치와 연락이 판을 치게 된다.
② 주인을 죽인 자여
본문 31절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예후와 시므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므리는 이스라엘 왕 엘나를 죽이고, 바아사 왕가를 멸족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으나 자신은 오므리에 의해 7일만에 죽임을 당한 자이다(왕상16:11, 15)
사치와 연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자신들이 망하게 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것이다. 지금 이세벨이 반역으로 왕위에 올라 보았자 7일만에 죽은 시므리 같은 자야..... 라며,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아합 왕가의 잘못이나, 자신이 저지른 죄악은 생각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십자가 위의 주님을 향해 침을 뱉고 저주를 하는, 저 유대인들의 모습이다. 바로 함께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어 가면서 예수를 욕하는 강도의 모습이다. 마음에 찔림을 받아 이를 갈고, 귀를 막고, 돌로 스데반을 쳐죽이는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이다.
요한 계시록 2: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 이세벨은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꾀어 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하는 자를 대표하고 있다. 요사스럽고 교활한 이세벨 같은 사람들이 오늘에도 있다. 사치와 연락을 좋아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왕상 21:25절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세벨과 같은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마세요.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를 떠나게 됩니다. 그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게 됩니다.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아름다움을 가꾸기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은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아름다움이 없는 자들입니다. 외적인 아름다움 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됩시다. 바로 주님이 기뻐하실 아름다움입니다.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우리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점이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3.하나님 말씀의 두려움
본문 36-37절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 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이세벨의 최후의 모습은 일찍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왕상21:23).
이 예언의 말씀을 예후도 알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왕상 21:29절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합의 죄가 비록 악하나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아들의 시대로 그 재앙의 때를 미루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회개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진노의 채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의 변함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벧후3:4절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문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터인데(빌2:12)
말세가 되면 기롱하는 자가 일어나고(벧후3:3),
또 그들의 기롱의 말에 빠져 재림을 부인하는 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고전 15:33-34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그 기롱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롱을 당하기도, 속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두려움을 아는 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간다.
마태복음 25: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이 최후 심판이 선언되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갈 것뿐이다. 이 최후 심판이 오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되면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
가룟 유다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세벨의 최후를 바라보며....』
잘못된 결혼으로 아합 왕가의 파멸을 생각해 봅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사치와 연락에 빠진 자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의 두려움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닙니다.
주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때가 이르매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날, 바로 약속이 성취되는 그날, 우리 모두 강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무리 속에 나도 함께 있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