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7】 4
<4> 자체의 업이 다른 업을 도와 성립하다
佛子야 此中無明이 有二種業하니 一은 令衆生으로 迷於所緣이요 二는 與行作生起因이며
“불자여, 이 가운데 무명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중생으로 하여금 반연할 바를 미혹하게 함이요, 둘은 행을 생겨나게 하는 인[生起因]을 짓느니라.”
▶강설 ; 무명에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첫째는 무지무명이기 때문에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반연할 바를 미혹하게 한다. 또 하나는 다음의 인연인 행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生起因]이 된다. 무명 안에 이미 그와 같은 두 가지 업이 내재되어 있다.
行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生未來報요 二는 與識作生起因이며
“행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능히 미래의 과보를 내는 것이요, 둘은 식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강설 ; 행에도 이미 두 가지 업이 내재되어 있다. 항상 첫 번째는 그 인연의 자체 성질이고, 두 번째는 항상 다음의 인연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는다. 아래의 식이나 명색이나 육처 등 모든 인연도 그와 같다.
識亦有二種業하니 一은 令諸有相續이요 二는 與名色作生起因이며
“식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모든 존재[諸有]를 서로 계속하게 함이요, 둘은 이름과 물질[名色]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名色도 亦有二種業하니 一은 互相助成이요 二는 與六處作生起因이며
“이름과 물질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서로 도와서 성립케 함이요, 둘은 6처를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六處도 亦有二種業하니 一은 各取自境界요 二는 與觸作生起因이며
“6처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각각 제 경계를 취함이요, 둘은 촉(觸)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觸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觸所緣이요 二는 與受作生起因이며
“촉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반연할 것을 능히 부딪침이요, 둘은 받아들임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受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領受愛憎等事요 二는 與愛作生起因이며
“받아들임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러운 일과 미운 일을 받아들임이요, 둘은 사랑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愛亦有二種業하니 一은 染着可愛事요 二는 與取作生起因이며
“사랑에도 또한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할 만한 일에 물듦이요, 둘은 취함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取亦有二種業하니 一은 令諸煩惱相續이요 二는 與有作生起因이며
“취함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가지 번뇌를 서로 계속케 함이요, 둘은 유(有)를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有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令於餘趣中生이요 二는 與生作生起因이며
“소유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능히 다른 갈래에 태어나게 함이요, 둘은 태어남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生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起諸蘊이요 二는 與老作生起因이며
“태어남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온(蘊)을 일으킴이요, 둘은 늙음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강설 ; 사람은 오온으로 되었으며 그 오온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또 태어났으므로 반드시 늙는다. 그래서 다음의 “늙음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라고 하였다.
老亦有二種業하니 一은 令諸根變異요 二는 與死作生起因이며
“늙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근(根)이 변하여 달라지게 함이요, 둘은 죽음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느니라.”
▶강설 ; 늙음이란 곧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뚱이와 의식 등 모든 기관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변하여 달라지는 일이다.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단 음식을 먹고 애착하며 길러도 이 몸은 결정코 무너지며, 부드러운 옷을 입어 지키고 보호해도 목숨은 반드시 끝날 때가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또 늙으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사람이 혹자는 늙지 않고도 죽는 일이 있는데 하물며 늙었는데 죽지 않은 이가 있던가. 그래서 다음의 “죽음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을 짓는다.”라고 한 것이다.
死亦有二種業하니 一은 能壞諸行이요 二는 不覺知故로 相續不絶이니라
“죽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파괴함이요, 둘은 깨달아 알지 못하므로 서로 계속되어 끊어지지 않느니라.”
▶강설 ; 이와 같이 12인연에 각각 두 가지 업이 있어서 자체의 성질과 다음의 인연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있음을 밝혔다. 실로 죽음은 모든 행을 파괴한다. 죽음 앞에 파괴되지 않는 일은 없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던가. 몸이 있던가. 마음이 있던가. 재산이 있던가. 명예가 있던가. 산하대지와 산천초목이 있던가.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죽음이다. 또 죽음의 실상을 깨달아 알면 곧 생사를 초월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생사윤회를 계속하지 않는다. 생사문제를 깨달아 아는 것이 곧 생사윤회를 영원히 끊고 초월하는 것이다.
<5> 서로 떠나지 않고 있음을 관(觀)하다
佛子야 此中無明緣行으로 乃至生緣老死者는 由無明乃至生爲緣하야 令行乃至老死로 不斷助成故요
“불자여, 이 가운데서 무명(無明)은 행(行)을 반연하고, 내지 태어나는 것은 늙어 죽음을 반연하여 무명이나 내지 태어남이 연(緣)이 되어서, 행이나 내지 늙어 죽음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고 도와서 이루게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면 “무명이 행을 반연하고, 행이 식을 반연하고, 식이 명색을 반연하고, 명색이 육입을 반연하고, 육입이 감촉을 반연하고, 감촉이 받아들임을 반연하고, 받아들임이 애착을 반연하고, 애착이 취해 가짐을 반연하고, 취해 가짐이 소유를 반연하고, 소유가 살아감을 반연하고, 살아감이 늙고 죽음을 반연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반연 攀緣)- 마음이 대상에 의지하여 작용을 일으킴)
無明滅則行滅로 乃至生滅則老死滅者는 由無明乃至生不爲緣하야 令諸行乃至老死로 斷滅不助成故니라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滅)하므로 내지 생이 멸하면 늙고 죽음이 멸한다는 것은 무명과 내지 생이 인연이 되지 아니함을 말미암아서 모든 행과 내지 늙고 죽음으로 하여금 소멸하여 이루어짐을 돕지 않게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이 내용도 역시 구체적으로 인용하면,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입이 멸하고, 육입이 멸하면 감촉이 멸하고, 감촉이 멸하면 받아들임이 멸하고, 받아들임이 멸하면 애착이 멸하고, 애착이 멸하면 취해 가짐이 멸하고, 취해 가짐이 멸하면 소유가 멸하고, 소유가 멸하면 살아감이 멸하고, 살아감이 멸하면 늙고 죽음이 멸하느니라.”라고 하였다.
<6> 갈대의 묶음과 같음을 관하다
佛子야 此中에 無明愛取不斷은 是煩惱道요 行有不斷은 是業道요 餘分不斷은 是苦道라 前後際分別이 滅하면 三道斷이니 如是三道가 離我我所하야 但有生滅이 猶如束蘆니라
“불자여, 이 가운데서 무명과 사랑과 취함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번뇌의 길이요, 행(行)과 유(有)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업의 길이요, 다른 것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고통의 길이니라. 앞의 것[前際]이라, 뒤의 것[後際]이라 하는 분별이 소멸하면 세 길이 끊어지나니, 이러한 세 길은 ‘나’와 ‘내 것’을 여의고, 다만 나고 소멸하는 것만이 있는 것이 마치 묶어서 세워 둔 갈대[束蘆]와 같으니라.”
▶강설 ; 번뇌의 길과 업의 길과 고통의 길을 세 가지 길[三道]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길은 과거니 미래니 하는 시간성이 소멸하면 세 가지 길도 끊어진다. 번뇌와 업과 고통은 그 실체가 없어서 ‘나’와 ‘나의 것’을 떠났다. 다만 그 셋이 생기고 소멸하는 일만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갈대의 묶음 세단을 가지고 서로 의지하여 세우면 잠깐 세워져 있는 것과 같다. 한 단만 제거해도 나머지 두 단 마저 넘어져버린다. 실로 12인연이 모두 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