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발효식품 장(醬)
세계 최고의 요리(料理)대회로 꼽히는 ‘마드리드 퓨전(Madrid Fusion)’이 2003년부터 매년 1월 스페인(Spain)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다. 금년에도 세계 정상급 요리사(料理師)들과 식품ㆍ외식기업(外食企業) CEO, 음식 전문기자 등 800여명이 참석한 ‘Madrid Fusion 2013’이 1월 21일 개막되었다.
‘마드리드 퓨전’은 역사는 길지 않지만 세계 음식요리계의 영향력 있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주빈국(主賓國ㆍGuest Country)을 선정해 그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집중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멕시코, 일본, 중국, 호주, 싱가포르 등이 초대됐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 제10회 마드리드 퓨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행사 주제인 ‘발효(醱酵)음식’에 맞추어 김치와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전통 발효식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세계 요리전문가들이 한국의 발효음식에 주목하여, 2013년 마드리드 퓨전에서 우리나라 발효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졌다. 특히 된장, 간장 등 한국의 장(醬)이 세계 식재료(食材料)로 화제가 되었다.
우리 장(醬ㆍJang)의 외국어 표기를 이전에 개최된 국제요리대회에서는 간장을 ‘소이 소스(soy sauce)’, 고추장을 ‘칠리 페이스트(chilly paste)’ 등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마드리드 퓨전에서는 모두 우리말 발음대고 간장은 ‘GanJang’, 된장은 ‘DoenJang’, 고추장은 ‘GochuJang’으로 소개한 것은 장(醬)이 한국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1월 21일 개막 당일부터 23일까지 스페인의 최고 음식 연구기관인 알리시아 재단(Alicia Foundation)의 ‘장(醬)을 이용한 서양 요리 연구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샘표식품이 재단 측에 제안해 이뤄진 이번 연구의 주목적은 오믈렛ㆍ스튜ㆍ수프 등 유럽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음식의 원래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장류(醬類)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자우마 베르네스(Biernes) 수석요리연구원은 “한국의 장을 스페인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서양 음식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6개월 동안 연구한 결과 고추장ㆍ된장ㆍ간장이 서양 음식의 맛을 대단히 풍요롭게 향상시킬 수 있으며, 유럽인들에게 건강(健康) 등 여러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유럽 사람들이 육류(肉類)를 너무 많이 먹어 건강을 해치고 있는데, 장(醬)은 고기 섭취를 낮추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베르네스는 “장을 넣으면 풍미(風味)가 좋아지는 서양 음식 400가지를 찾았고, 이 중 150개의 요리법을 정리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페인식 오믈렛에 된장을 조금만 넣어주면 일반(一般) 달걀도 유기농(有機農) 유정란을 사용한 것처럼 깊은 풍미가 생긴다. 콘소메 수프에 간장 소스를 넣으면 훨씬 깊고 풍요로운 맛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슐랭 레스토랑 가이드 최고 등급 3스타를 받은 키케 다코스타(Dacosta) 요리사는 “유럽인에게 없어선 안 될 식재료와 장(醬)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 이어간다면, 나중에는 한국의 장이 유럽 음식에 없어선 안 될 기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파스칼 바르보(Barbot)는 “201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스님에게서 배운 장아찌 제조 기술을 활용해 만들었다”면서 ‘간장에 숙성시킨 국화꽃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보였다. 그는 이 국화꽃 장아찌를 굴(oyster)에 얹고 우유 거품으로 덮어 요리를 완성했다. 또 파리에서 자신이 직접 담갔다는 배추김치와 소금에 절인 산초 열매를 살짝 익힌 굴과 소 골수에 올린 요리도 선보였다. 그는 “한식(韓食)은 요리사가 아니라 시간이 요리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부터 해마다 10월이면 전라북도 전주(全州)에서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International Fermented Food Expo Jeonju)’가 열리고 있다. 전주엑스포는 ‘발효’를 주제로 열리는 세계 유일의 국제행사로서 민족 고유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전 세계 발효문화 유산(遺産)들의 폭넓은 소통과 확산으로 우리나라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엑스포 개최 목적은 (1)발효식품(醱酵食品)을 통한 대안문화, 문화산업 강국 기틀 확보, (2)한국 전통 식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범국민적 홍보의 장 마련, (3)발효 콘텐츠 활용을 통한 지역발전 견인차 역할 수행 등이다. 또한 생명, 고부가가치(高附加價値) 산업으로서 발효식품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현대 및 미래 음식문화 대안으로서 발효의 과학성 획득, 발효음식문화 확산을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 글로벌 산학(産學)연관 네드워크의 선순환 등이다.
지난해 ‘IFFE 2012’는 ‘생명을 살리는 발효’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주월드컵경기장 만남의 광장에서 국내외 20개국 350업체가 참가하여 장류(醬類), 김치류, 초(醋)류, 수산절임류, 젓갈 등을 출품하였다. 금년 제11회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11th International Fermented Food Expo Jeonju)는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개최된다.
지난해까지 3년 동안 함께 열렸던 문화광광부의 ‘한국음식관광축제(Korea Food Festival)’가 끝나 올해부터는 다시 ‘발효식품엑스포’ 단독으로 개최된다. 이에 행사 규모는 작아지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발효음식’을 특화한 엑스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
발효는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알려졌던 현상으로 과일주(酒), 맥주, 빵, 치즈 등의 제조에 이용되었다. 하지만 발효의 원인은 화학자들의 촉매설(觸媒說)과 미생물학자와 세균학자등의 효모설(酵母說)이 논쟁을 벌였다. 파스퇴르는 1857년 우유의 락트산 발효와 당(糖)의 알코올 발효에 대한 실험을 통해 발효가 ‘산소 없는 미생물의 생활’이라고 단정하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부흐너는 효모추출법을 통해 발효에 관여하는 효소(酵素)와 조효소(助酵素)를 잇따라 발견하고 분리하면서 발효의 전모가 밝혀졌다. 퀴네라는 효모 속에 존재하는 물질인 효소(enzyme)를 1878년 처음 발견하였다.
효모(酵母)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微生物)이 사람에게 이로운 다른 성질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을 ‘발효(醱酵)’라고 하며, 발효작용을 이용해 만든 식품을 ‘발효 식품’이라고 부른다. 발효식품은 재료의 특유한 성분들이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되고 새로운 성분이 합성돼 영양가가 높아지고 기호성과 저장성이 우수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즉 미생물의 작용으로 식품의 성분이 분해되고 새롭게 합성되어 독특한 풍미(風味)를 갖게 되고 영양가와 저장성이 높아진다.
우리 선조(先祖)들은 오래전부터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으며 건강을 지켜왔다. 발효식품은 우리 몸에 해(害)를 주는 미생물과 독(毒)이 되는 물질을 억제해 식중독(食中毒)을 예방하고 소화를 돕는다. 즉 젖산균, 효모 등 미생물의 발효 작용을 이용해 만들어 유산균과 효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이 물질들은 몸에 쌓인 노폐물(老廢物)과 불순물을 빨아들여 혈액순환을 돕고 피를 맑게 한다.
옛날 전통 한옥(韓屋) 마당의 장독대에는 옹기(질그릇과 오지그릇)들이 옹기종기 있으며 크기가 큰 독에는 된장과 간장이, 독보다 크기가 작은 항아리에는 고추장이 담겨있다. 또한 부엌의 부뚜막에 초두루미(항아리)를 두고 매실, 막걸리 등 과일과 곡류를 발효시켜 식초(食醋)를 만들었다.
김치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먹던 대표적인 발효 식품이다. 자연 발효한 김치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포도상구균, 비브리오균, 병원성 대장균(大腸菌) 등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김치에 들어 있는 유산균(乳酸菌)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드는 된장, 간장, 고추장은 우리 전통 음식의 양념 역할을 한다. 된장과 청국장은 콩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발효 식품으로 혈관에 쌓이는 혈전(血栓) 제거와 암(癌)세포의 발생과 성장을 억제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식초는 어육(魚肉)과 채소의 독을 소멸시킨다고 기록돼 있다. 즉 식초는 식중독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요즘 웰빙 열풍으로 장수(長壽)의 비결로 꼽히는 발효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발효 식품은 살아 있는 음식이며, 발효균은 끓이면 효소가 파괴되기 때문에 생(生)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된장과 청국장을 생으로 먹는 것이 힘들면 음식을 조리할 때 맨 마지막에 풀어 살짝 끓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몇 년간 ‘한식(韓食) 세계화’ 사업을 통하여 많은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 전통음식 한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또 각국 언론에도 한식이 소개되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요리대회 ‘마드리드 퓨전’에도 초청받았고, 뉴욕 시민들은 한식에 대한 인지도(認知度) 및 호응도가 41%로 오르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한식 세계화 추진단’의 명예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글/ 靑松 朴明潤(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청송건강칼럼(253). 2013.2.1. www.nandal.net www.ptc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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