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선지식및명찰순례(제2회)55차 서산 부석사,간월암을 다녀와서(2011.05.08)
0.행여 오늘 어버이날이라 회원들은 부모님께 안부 및 가족들과 행사관계로 참석인원이 혹시나 많이 불참하면 어쩌나 조바심에 청하단장님과 인솔자는 출발전 여기저기 지하철출구 계단쪽과 지나가는 택시와 버스를 살펴본다.
0.출발 몇분전 2호 차량에서 참가신청 인원보다 결원이 많이 생겼다. 순례 예정지가 먼거리 순례라 10여분이상 지체하기 어려워 차량은 1호차 ,2호차 인원점검과 저녁 공양에 필요한 국수, 상단 공양물, 떡, 생수를 몇몇 회원들이 2대의 차량에 분배를 하고 차량은 최종 인원 점검을 마치고 출발을 하였다.
-07:10경 1호차32명, 2호차29명 총61명을 태우고 차량은 목적지인 서산 부석사로 출발했다.
0.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및 명찰 순례단 단장 장재영
-1호차량 인솔자 김동훈, 집전담당 최영찬, 일정소개 이경태, 안전담당 장춘원, 회원소개 박수경, 재무담당 서태교등.....
-2호차량 인솔자 신경순, 집전담당 장건환, 일정소개 이영미, 안전담당 윤상호, 사찰안내 정종국, 재무담당 유미경등....
-07:10경 보현사 신협앞 차량은 서서히 출발을 했다.
0.1호 차량 내에서는 오늘 53선지식행사 일정표,사찰안내 유인물과 공양으로 준비한 백설기 떡, 53선지식 명찰, 생수등을 서태교, 김정자, 최영찬님 참석한 회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었고, 차량은 대구시내 계산오거리를 지나 옛날 명성웨딩 자리를 거쳐 침산변전소네거리 신천대로를 향해 질주를 하고, 신천대로를 지나 북대구 교차로 인근 경부 고속도로 좌우 미니축구장 주변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나 눈꽃처럼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07:20경 차량은 출발과 함께 53선지식 단장 장재영님은 어제 저녁 늦게까지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 제등 행렬에 동참하시느라 모든분들 수고 많이 하셨고, 오늘은 어버이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동참해주신 회원들께 깊은 감사를 보내면서 인사말씀을 하셨다.
-07:30 - 08:00경 어제 오후부터 저녁 늦은밤까지 봉축법회 연등 제등행사 관계로 피곤함을 잠시 개개인 휴식을 취했다.
-08:00 - 08:20경 차량은 김천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08:20경 김천휴게소를 출발하고 이어 차중법회에 들어갔다.
0.1호차량 52학번 최영찬님 집전으로 천수경,예불문,이산해연선사 발원문,석가모니불정근, 반야심경순으로 차중법회를 하였다.
-09:30경 차중법회를 마감하고 일정소개를 53선지식 감사 이경태님이 부모님 은혜를 상기 시키면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부모님와 자식은 항상 모두가 빛을지고 있다.언젠가는 서로가 되물려 갚아야한다 라고 인사말과 함께 일정을 소개하였다. 안전교육은 혜각장춘원님 항상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를 강조하셨다.
-09:40경 차중 개인소개는 박수경님이 맨처음 전영미님은 대구불교대학 자랑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한껏 자랑을 하여 오늘 동참한 지인을 오빠라고 소개를 하였고, 53선지식 단장 청하 장재영님은 홀로계시는 장모님께서 멀리서 사위가 왔다고 연로 하신몸을 이끌고도 자연산 가자미를 구입 직접조리까지 해주셨다라고 하시면서 가슴아파 잠시 목이 메이셨다... 55학번 백경이님은 전날 재등행렬후 감기몸살로 인하여 밤새 힘들었지만 53선지식 행사 동참하기 위해서 저녁늦게 링겔주사를 맞고 잠을잤다,
-10:00 - 10:15경 차량은 예산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10:20경 차내에서 개인소개를 박수경님이 계속하고, 53학번 김명숙님은 시댁에 시부모님께 인사를 해야되는데 마침 대불 55학번에 시댁형님이 후배라 어제 저녁 연등행사 제등 행렬에 같이 동참을하고 서로가 불교행사에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니 먼저 시댁형님이 오늘 53선지식 행사에 동참하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 정말 감사하다 라고 인사를 하면서 개인소개를 하였다.
-10:50경 낭낭한 목소리로 박수경님의 개인소개를 마감을 하고 차량내에서는 개개인 휴식을 취했다.
-11:20경 차량은 어느듯 서산 부석사 주차장 입구에 도착을 하였다.
*충남 서산 부석사
서산 부석사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이름이 같아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곳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처럼 유명하거나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그 창건설화와 역사는 희한하게도 영주 부석사와 똑 같이 전해옵니다.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 바다에 떠 있는 부석, 소박한 사찰의 규모, 그리고 중국을 마주보는 절의 위치가 오히려 더욱더 사실감을 높게 합니다.
부석사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지만 677년에 의상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극락전’의 상량기와 1330년 우리 부석사에서 조성된 아름다운 관세음보살님이 지금 일본의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져 있어 천년 고찰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무학스님이 중창하시고, 근대에는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들께서 이 도량에 머무시며 수행정진 하셨습니다. 인중지룡(人中之龍)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목룡장(牧龍莊)’과 지혜의 검을 찾는 곳이라는 ‘심검당(尋劒堂)’ 현판은 경허스님의 글이고, 부석사 큰방에 걸려있는 ‘부석사(浮石寺)’ 현판은 만공스님께서 70세에 쓰신 글입니다.
큰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목룡장과 심검당 큰방은 누워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는 우유(牛乳) 약수라고 하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법당 건너편 개울 아래에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구수통(여물통)이 있는데, 이 구수통에 물이 계속 넘치면 부석사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100여 년 전에 부석사 약수가 끊어져 이상하게 여겨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부석(검은여)에 가보니 누군가 몰래 무덤을 썼기에 주인을 찾아 무덤을 파고나니 다시 약수가 솟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석사와 부석(검은여)간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통하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극락전 아래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극락전이 부처님의 집이라면 안양루는 극락세계 대중들의 머무는 곳이 되겠습니다. 법회가 있을 때 법당에 공간이 부족하면 안양루에서 법회에 참석하게 되어있습니다. 법당 좌측으로 올라가면 산신각이 있습니다. 산신각에는 중앙에 산신님, 우측에 선묘낭자. 좌측에 용왕님을 모셨습니다. 산신각의 좌측으로 돌아가면 산신각이 올라가도 남을 만큼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거북바위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바위가 부석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우리 부석사의 부석은 분명히 바다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혹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법당좌측으로 조금 내려오면 작은 요사가 있는데, 이곳은 주지스님의 처소입니다. 그 곳에서 다시 조금 아래에 2층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일화당(一花堂)인데, 이 곳은 원래 스님들의 수행처로 지어졌지만 스님들이 선원에 가셨을 때에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부석사에서는 일화당 2층의 전망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부석사의 인물
의상 [義湘(相), 625~702] 신라시대의 승려.
활동분야: 종교 주요저서: 《화엄일승법계도》 《십문간법관》
화엄종(華嚴宗)의 개조. 644년(선덕여왕 13) 황복사(皇福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661년(문무왕 1) 해로(海路)로 당(唐)나라에 가서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현수(賢首)와 더불어 화엄종을 연구하고 671년 귀국했다. 676년(문무왕 16) 왕명에 따라 부석사(浮石寺)를 짓고 화엄종을 강론, 해동(海東)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전국에 10여 개의 화엄종 사찰을 건립,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 일에 힘썼다. 그의 문하에서 오진(悟眞)·지통(知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 ‘의상십철(義湘十哲)’이라 일컫는 10대덕(大德)의 고승이 배출되었다.
고려 숙종으로부터 해동화엄시조 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記)》 《소아미타경의기(小阿彌陀經義記)》등이 있다.
자초 [自超, 1327~1405]
고려 말 ·조선 전기의 승려. 호: 무학(無學)·계월헌(溪月軒)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삼기(三岐
주요저서: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주요작품: 《인공음(印空吟)》
속성 박(朴). 호 무학(無學)·계월헌(溪月軒). 삼기(三岐:陝川郡) 출생. 18세에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혜근(惠勤)과 지공(指空)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356년 귀국하여 1373년에 왕사(王師)가 된 혜근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1376년 혜근이 회암사(檜巖寺)에서 낙성회(落成會)를 연 때 수좌(首座)로 초청하였으나 사양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왕사가 되어, 대조계종사(大曹溪宗師)·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전불심인변지무애부종수교홍리보제도대선사(傳佛心印辯智無碍扶宗樹敎弘利普濟都大禪師)·묘엄존자(妙嚴尊者)의 호를 받고 회암사에서 지냈다.
이듬해 태조를 따라 계룡산과 한양(漢陽)을 오가며 지상(地相)을 보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 데 찬성하였다. 1397년(태조 6) 왕명으로 회암사 북쪽에 수탑(壽塔)을 세우고, 1402년(태종 2) 회암사 감주(監主)가 되었다가 이듬해 사직하고, 금강산 금장암(金藏庵)에 머물다가 죽었다. 저서에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인공음(印空吟)》이 있다.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는 조선 말기의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 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 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俗名은 동욱 東旭,법명은 성우性牛, 법호는 경허 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宋斗玉과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 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 桂虛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절에 와있던 어느 거사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우고 기초적인 불교교리佛敎敎理를 익혔다. <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교화와 불교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이다. >
이후 당시 교계의 태두였던 동학사의 만화강백 萬化 講伯에게 천거되어 불교경론을 배우니 이로써 그는 불교의 일대시교 一代時敎뿐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老莊등의 사상을 고루 섭렵하였다. 그리고 23세에 스승인 만화강백 萬化 講伯의 뒤를이어 동학사 강백으로 추대 되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어느날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문자공부가 죽음의 두려움을 조금도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후 오로지 영운 靈雲선사의 "나귀 일 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는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중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것(無)이무슨 말인가?" 라는 한 사미의 질문에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육신을 초탈하여 작은 일에 걸리지 않고 유유자적 하였다. 그후 천장암에서 1년간 보림 후에 활연대오하니 생사에 자재하였으며 56세에 만공스님에게 전법게 傳法偈를전한 후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생활로 말년을 보냈던 스님은 1912년 4월 25일 함경도 갑산 甲山 웅이방雄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니 세수 世壽 64세,법랍 56세였다.
전국 곳곳에 선원과 선실을 개설하여 불교계에 새로운 선수행 禪修行의 풍토를 조성, 선풍을 진작시킨 그의 문하에는 근대 한국불교 선문 禪門을 빛낸 만공 滿空, 혜월 慧月, 수월 水月등이 있다.
만공 월면(滿空 月面,1871~1946 ) 선사는 근대 한국 선 禪의 중흥조인 경허鏡虛의 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 시킨 위대한 선지식이다.
스님의 속명은 도암 道 巖,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 이다.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송신통 宋神通과 모친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 13세 되던 해 김제 금산사 金山寺에서 불상을 처음보고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 동학사 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경허 스님을 따라 서산천장사天藏寺로 와서 태허 泰虛 스님을 은사 恩師로 경허를 계사 戒師로 사미십계 沙彌十戒를 받고 법명을 월면 月面이라 하였다.
경허 스님의 법을 이은 스님은 덕숭산에 와서 금선대 金仙臺를 짓고, 수 년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 衲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 修德寺, 정혜사 定慧寺, 견성암 見性庵을 중창하고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선학원 禪學院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 운동 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하였으며,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에게 직접 일본의 한국 불교정책을 힐책하였다. 이는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만공의 사상은 생사를 초탈한 선사의 가풍이라 할 것이다.
말년에는 덕숭산 정상 가까이 전월사 轉月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지내다가 입적하니, 1946년 10월 20일 그의 나이 75세, 법랍 62세였다. 그 뒤 제자들이 정혜사 아래에 만공탑 滿空塔을 세우고 진영 眞影을 경허. 혜월 스님과 함께 금선대에 봉안 하였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그의 문하에는 비구 보월寶月, 용음龍吟, 고봉高峰, 금봉錦峰,서경西耕, 혜암惠庵, 전강田岡, 금오金烏, 춘성春城, 벽초碧超, 원담圓潭 등과 비구니 법희法喜, 만성萬性, 일엽一葉등 당대에 뛰어난 제자들이 있다.
- 이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 안내 책자 및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임 -
-11:40경 부석사에 도착을하여 회원들은 각자 준비한 공양물을 나누어들고 돌개단을 한 개단씩 올라 대웅전 마당에 도착을 하였다,인솔자와 청하 장재영단장님은 종무소에 들러 종무소임자에게 오늘 일과를 설명하고 정기법회 장소를 허락을 받고 점심공양 준비를한 공양간으로 회원들을 안내를 하였다.
-11:50 - 12:30경 공양간에서 부석사에서 준비한 점심공양을 회원들은 즐겁게 공양을 마감하였다,공양후 주지이신 주경스님께서 사찰안내 및 법문을 설設하신다고 회원들을 공양간 요사체에 집결을 요청하셨다.
-12:45경 주경주지스님 법문..
0.충남 부석사 유래와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설화, 부석사 산신각뒤 거북바위 유래 큰바위 8개 떠있다는 간월도 간월암 경허, 만공스님께서 수행 정진하신 옛 부석사 요사체 건물소개를 하셨고 소(牛)모양 형태의 우물에 대한 설화까지 상세히 설명을 해주신후 차 한잔 여유까지 회원들에게 하사 하시었다.
-13:30경 주지스님 법문을 종료하고 단장님 인사말씀과 전동문회장을 지내신 대웅 김상수님의 간략한 인사말씀 어제 저녁늦게 까지 제등행렬 동참을 하여주신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 의식봉사회 진성 이석정회장님은 5월28 - 29일 동화사 통일대불전에서 대구불교대학 재학생 및 졸업동문 가족지인 철야 3000배 기도동참을 권유하셨다.
이어 인솔자는 공지사항으로 5월21일과 22일 대불산악회 무박 설악산 봉정암 산행 동참을 홍보하였다.
-13:45경 공양간 별관에서 주지스님 법문 종료를 하고 회원들은 대웅전과 요사체 별관동에서 정기법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13:50 - 14:40경 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및 명찰순례 (제2회)55차 서산 부석사 정기법회에 들어갔다.
0.정기법회는 의식봉사회 장건환님,최영찬님 집전으로 삼귀의례,반야심경,발원문낭독을 오늘 발원문낭독은 43학번 정선자님께서 발원문을 낭독하셨다. 이어 목탁집전에 맞추어 108배 대참회에 들어갔다. 108참회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법회를 마감하였다.
-14:30경 정기법회를 마감하고 회원들은 삼삼오오 각자 사찰을 관람하고 사찰주변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씩 촬영도 하였고, 몇몇 회원들은 다가올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고 기념하기 위해 가족들을 위한 연등을 접수를 하였다.
-15:20경 부석사 경내를 뒤로하면서 4월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기념 연등이 주변에 어우러져있는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서 봄내음 물신 풍기는 왕벚꽃 가로수를 배경으로 하여 회원들은 활짝웃는 모습과 장난기 어린 호기심으로 회원들과 하하호호 즐거움을 과시 하였다.
-15:25 - 15:45경 간월도 간월암으로 차량은 이동을 하였다.
-15:50경 간월암에 도착을 하여 작년성지순례때 동참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 한번 더 간월암을 찿았다. 마침 물떼가 들어오지 않아 걸어서 간원암에 도착 경내를 두루 관람하였고 55학번 새내기 후배님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촬영에 정신이 없다.
-16:45경 간월암을 출발을 하여 곧이어 차중 회향법회를 하였다
0.회향법회는 예불문,반야심경,교가,사홍서원,산회가순으로 회향법회를 마감하였다.
-17:10경 법회를 마감하고 잠시 피곤함을 뒤로하고 무여열반에 이르렀다...
.
.
.
-18:40 - 19:15경 옥천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국수를 맛있게 저녁공양으로 대신하였다. 출발전 차량내 쓰레기 주변정리를 깨끗이 하고 차량은 출발을 하였다.
0.차량은 출발을 하면서 오늘 52학번 배명모 회장이 보시한 등산용 스카프를 추첨하여 장춘원님,소명섭님,박향자님,김종순님,김미경님등 경품을 전달하고 모두가 박수로 축하를 하였다.
-20:20경 차량은 어느듯 대구 인근에 접어들었다...
0.1호차 차량 내에서는 오늘 행사전반에 인솔자는 마감을 하면서 53선지식 단장 청하 장재영님 마감인사와 인솔자의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오늘 행사를 마감 하였다..차량은 어느듯 북대구IC를 거쳐 신천대로로 이동 수성교 삼덕동을 지나 시내를 통과하여 반월당 보현신협 앞에 도착...
0.불기2555년 5월 8일 대구불교대학 53선지식 행사 하루도 저물어간다...
-20:45경 대구 반월당에 도착했다.
0.오늘 53선지식 행사때는 따사로운 봄 햇빛과 초연이 푸르른 실록을 뒤로하면서 무사히 오늘 순례 행사를 마감한데 대하여 53선지식 동참한 회원들의 원력과 부처님의 가피로 알찬 53선지식 하루였으며, 여법하게 법회를 마쳐준 모든 회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면서 회원들은 각자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글의 흐름상 존칭은 개략 생략한다.....
2011년 05월 10일
덕원德原 김동훈金東勳 기록하다
0.본 순례 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단장님, 각실무국장 및 차장님, 사무국직원님들 수고했습니다.
0.보시내역등 자세한 내역이 결산보고를 통하여 공개 됩니다...
0.불기2555년 05월08일 충남서산 부석사,간월암 53선지식(제2회)55차 행사에 참석한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칭은 생략합니다)
1호차량
김종순,최영찬,허운자,장재영,송대섭,송점순,서태교,김정자,문길선,박향자,김명숙,오희수,김태숙,소명운,백경이,장영애,윤숙자,김두하,김동훈,장주일,이경태,장춘원,소명섭,배병모,최영옥,김정선,최해기,김미경,박수경,성재화,전영미,55학번김정자(이상32명)
2호차량
진정옥,장건환,정선자,김상수,이춘생,김숙기,김방자,김갑득,김정숙,유미경,김영준,유광용,윤상호,이현숙,신경순,이석정,정종국,이웅기,정토야,박영옥,47학번이영미,김옥화,김병훈,윤견희,강영열,김음순,홍화선,허선애,서영덕(이상29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