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박사,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
요 약 서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전남 강진에 유배당한 정약용은 목민심서외에도 흠흠신서등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흠흠신서는 형법을 다루어야 할 관리들이 참고해야 할 주석이다. 본서를 통해서 법과 상황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놀라운 통치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
〇 평생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를 대상으로 약 도매업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의 고향인 영광출신 약사나 의사가 극소수이지만 강진출신은 많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와서 가르쳤고, 양반이 유배당해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유배당한 양반들은 심신이 피폐해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다산은 천주교 박해로 18년간 유배당하여 책을 저술하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흠흠신서(欽欽新書)은 30권 10책으로 구성된, 형사사건을 처리할 때의 원리와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산은, 정조 임금의 지지를 받으며 세상을 바꾸고자 애썼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여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한 것 또한 너무도 유명합니다.
각 장에서 1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하고자 합니다.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므로 책을 구입하거나 밀래의 서재에서 e북으로 읽기를 권합니다.
〇 내용요약
제1장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면 안 된다
= 강진에 사는 윤덕규에게는 첩의 아들 태서와 언서가 있었다. 아들형제가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다가 아버지를 발로 차고 때렸다, 그 후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반드시 복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38일 만에 죽고 말았다. 본처 아들 윤침과 윤항은 숙부와 함께 이복형제를 찾아가서, 언서를 둘은 붙들고 윤항이 칼로 찔러 죽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복부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서 피가 흐르는 내장을 자신의 목에 둘렀다. 신고받는 출동한 포졸들에 의해서 윤항은 즉시 체포되었다.
- 전라도 관찰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은 것뿐이라고 강변하는 윤항의 진술에 복수로 인한 살인 행위로 불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사건이 오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여동생 윤임현이 상경하여 정조 임금의 행차길을 막고 꽹과리를 치며 복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일반적인 살인 사건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끔찍한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친아들의 잔인한 복수에 여러 가지 의구점이 있지만 비교적 약한 형벌을 준다. 이에 다산은 정조의 생각엔 동의하지만 친아들의 잔인한 복수에 대해서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2장 나라에 법이 있다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 옥졸은 관례대로 예전(例錢: 관례대로 주고받는 뇌물)을 받아서 축적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죄수에게 예전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았다. 화가 난 관원은 고참 죄수(장무)에게 구타하라고 시키자, 거역할 수 없어서 22일이나 무방비 상태로 고참죄수에게 얻어맞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건을 알게 된 정조 임금은 크게 분개했다. 죄수를 잘 다스려야 할 관원이 금품을 요구한 것과 장무가 다른 죄수들을 괴롭힌 것 때문이다. 정조는 사주한 관원을 섬에 노비로 보내고, 악행을 저지를 장무와 감독할 의무가 있는 지방 수령과 조사관들을 처벌하라고 하였다. 관원은 물론이고 고참죄수가 다른 죄수를 괴롭히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감옥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서 잡고자 하였다.
- 다산은 보통 감옥 안에서는 서열과 권력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새로 죄수가 들어오면 잔인한 형벌을 주는 것이 관례이고, 관원의 사주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폭행을 한 죄수를 벌하는 것을 잘못이다.
제3장 법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 황해도 토산에 사는 김천의가 길가에서 실체로 발견되었으나 사망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형조에서 더 세밀하게 조사하라고 명령하여 네 번째로 조사관을 맡은 서홍 현감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
- 시체가 부폐하였음에도 복부는 팽창한 채로 썩지 않은 상태를 발견하고, 식초, 벼의 껍질, 파, 매실 등을 혼합한 액체를 만들어 검사한 끝에 몇 곳에서 상처 자국이 남아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원한 관계등을 알아보다가 김몽세로부터 자백을 받았다.
- 김몽세의 아들이 병약하여 요절했는데 며느리가 아들이 죽기전부터 머슴과 불륜 관계에 있었다. 아들장례식장에서도 며느리는 수절할 뜻이 없다고 하면서 슬퍼하기는커녕 아낙들과 히죽대며 자신은 절대 수절할 뜻이 없다고 하였다. 김몽세는 머슴 김천의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였다.
- 정조임금은 사건에 연류된 자들을 한 차례 형장으로 벌한 다음 석방하고, 시신은 유가족에게 내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의 문제점은 자연과 혈연으로 얽혀있는 마을에서 사적이익을 위해서 덮고 싶어 했다. 살해범과 유가족들이 화해가 있었고, 마을 감찰 업무를 보던 유천복도 청탁을 받고 관아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 다산은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허송세월한 지방 수령은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서홍 현감은 검시 절차를 성심껏 밟았고, 문장도 명석하고 수완도 있어서 뛰어난 선비입니다.
제4장 조선판 유전무죄 무전유죄
= 황해도 송화연에 사는 백만장이라는 자가 부모를 강씨 집안 소유의 산에 투장(偸葬 남의 산이나 못자리에 몰래 자기 친족의 묘를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을 하였다. 화가난 강문행이 친족 강의손을 데리고 백만장의 집에 들이닥쳐서 뜰에 던지고는 발로 걷어차는 등 구타하며 분풀이를 했다. 백만장은 나흘 만에 죽었다.
- 초기 검사에서는 맞아죽은 것으로 판단해서 폭행한 강의손을 주범으로 지목하였으나, 두 번째 검사에서는 땅바닥에 던질 때 내장계통이 손장을 입어 죽은 것으로 보고 강문행을 주범으로 보았다. 주범과 종범이 바뀌면서 3년이 흐르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 정조 임금은 불확실한 사건의 경우 한 사람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것이므로 공평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이 사건의 경우 시발점인 강문행에게는 강의손에 보다 1등급 더 엄한 형벌을 주고 풀어주라고 명령하였다.
다산은 이 사건을 암행어사로 조사한 뒤 살인자가 순순히 자백하지 않고 변명만 일삼고 있습니다. 이런태도는 교활하고 악랄하니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합니다.
= 신혼부부였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중에 남편은, 아내가 손재주도 부족한데다가 부모한테 못되게 군다고 불만이 많았고, 아내는 오히려 남편이 일방적으로 복종을 요구한다며 불평을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삼끈을 제대로 삶지 못하자 남편이 벼락같이 화를 내며 끓는 잿물을 아내의 머리에 덮어씌우고 무지막지하게 때려 사망하게 한 후에 자살로 위장하였다.
- 정조 임금은, “설사 남편이 아내를 죽였을지라도 그 죄에 대해 정상을 참작하여 사형을 면해 주라고 명령했다”고 하여 겨우 장형 100대를 맞는 형으로 종결되었다.
다산 또한 “영조 임금께서는 불효한 며느리 때문에 남편을 벌한다면 어찌 올바른 왕정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라며 정조와 의견이 일치된다.
제5장 법이란 억울한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 황해도 해주에 사는 신착실은 엿을 팔아 연명하고 있는데 박형대가 엿2개를 외상으로 사먹고는 돈을 주지 않았다. 연말에 외상값을 달라고 독촉하자 오히려 화를 내며 갚은 생각을 하지 않자 신착실이 손으로 박형대의 가슴을 밀쳤다. 박형대가 넘어지면서 지게의 뿔이 엉덩이의 한가운데를 찔러서 항문을 통과하여 복부를 관통했고, 그 자리에서 즉시하고 말았다.
- 다산은 본래 지게의 뿔은 곧지 않고 비스듬하며, 항문의 구멍은 은밀한 곳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게의 뿔이 엉덩이의 한가운데를 찔렀다는 것은 공교롭게도 서로 충돌한 것으로 봐야지 고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착실이 밀친 죄는 있지만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정조 임금은 정약용의 의견을 받아들여, 과오로 죽인 경우와 뜻하지 않게 죽은 경우에 처벌을 낮춰주는 원칙에 따라 신착실의 사형을 면해주고 유배를 보낼 것을 명했다.
〇 느낀점
- 정조에 대하여 조선의 제22대 임금으로 대단한 독서광이라는 것과 한국사 최후의 명군이며 성군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서를 읽고 장수했더라면 나라가 발전했겠다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효가 강조되어서 여성들이 존중받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법과 정중에서 한쪽에 치우지 않아야 한다는 정조의 판결문이 우리시대에 들려주는 함성으로 들렸습니다.
- 서문 “사대부들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오직 시나 부(賦)를 지을 뿐이므로 갑자기 목민관이 되면 어리둥절하여 손쓸 바를 모른다. 그러다 살인 사건 같은 강력 범죄가 일어나면 감히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고 간사한 아전에게 맡겨 버리니, 저 돈만 밝히고 의리를 천하게 여기는 아전이 어찌 시중에 맟춰 형벌을 할리 할 수 있겠는가. 〜”
첫댓글 다신 정약용 저, 오세진 편역, 『조선시대 살인사건 수사일지 다신의 법과 정의 이야기』, 홍익출판미디어그룹,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