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제유배문학 김진규, 백거이의 시를 차운하여 유배객의 심경을 변주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거제도 유배객인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차운(次韻)'하여 남긴 3편의 칠언율시와 더불어, 원시(原詩) 백거이(白居易, 백락천)의 칠언율시 3편을 모두 소개하겠다. 김진규의 차운시(次韻詩) 3편은 백거이가 느꼈던 계절감과 정서(元韻)를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김진규 본인이 처한 거제도 유배 생활과 조선의 지식인으로서의 내면을 투영하여 변주(變奏)해 낸 대표적인 한문학적 교류(시공간을 초월한 의탁)의 결과물이다.
○ 대문장가였던 두 사람(백거이, 김진규) 모두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남쪽 변방으로 좌천과 유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진규는 남방 강주로 쫓겨 가 쓸쓸하게 봄날을 맞이했던 백거이의 슬픔에 깊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도 유배지 거제도의 봄바람 속에서 이 시를 지어 올린 것이다.
또한 백거이가 겪었던 좌천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시적 공간(楚國)과 시어들을 차용하여 김진규 자신의 유배 상황을 고전적으로 미화하고 감정을 고조시켰다. 결국 봄날 유배지에서 느끼는 화사한 자연 풍경과 반대되는 유배객의 쓸쓸한 심회(心懷)와 향수(鄕愁)를 묘사한 것이다. 화려한 봄날의 색채(붉은 꽃, 빛나는 호수)와 서글픈 내면을 대비시키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전통적인 작법이 돋보인다.
○ 이번 백거이와 김진규의 6편의 칠언율시는 서로 간에 공통점이 더러 있다. 창작 공간이 백거이(백락천)는 당나라 남호(南湖) 지역에 찾아온, 이른 봄날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얼음이 녹고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감상하며 지었고, 김진규는 유배지 거제도의 바닷가에 투영된 봄 경치를 바라보며 차운하여 창작했다. 김진규는 백거이가 노래한 봄날의 생동감을 빌려와, 거제도라는 낯선 땅에 찾아온 봄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여기에 고립된 공간에서 과거를 그리움과 소외감으로 대비시키는 구조가 공통적이다. 김진규는 백거이 시(詩)의 시상 전개와 압운(韻字)을 엄격하게 따름으로써, 수백 년 前, 당 시인이 느꼈던 보편적 고독과 서정에 깊게 동조하였다.
● 한편 당나라 백거이의 율시(律詩)를 조선의 김진규가 차운하여 완성한 시편들의 문학적 배경을 살펴보겠다. 먼저 백거이는 관직 생활 중 비교적 자유로운 풍류나, 또는 좌천 중에 지방 고을에서의 소외감이 주제였으나 김진규는 기사환국(1689)으로 인해 절해고도(絶海孤島)의 혹독한 거제도에서 귀양살이가 창작의 모티브였다. 또한 백거이는 친구 간의 우정, 과거 풍류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연 경치와 인간의 감정을 직설적이고 평이하게 연결했다. 또 김진규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운 귀양살이, 그리고 배소의 쓸쓸함을 드러내다 보니 백거이의 평이한 시어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억눌린 유배객의 심경을 고도의 상징과 슬픔으로 변주해 내었다.
○ 조선의 김진규 선생은 당나라의 백거이 문학의 담백하고 일상적이며 감정 변화에 솔직한 시풍을 애호하여 유배지까지 백거이의 문집을 가져와 읽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진규는 백거이의 시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백거이의 시라는 거울을 통해 거제도에 갇힌 자신의 슬픈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도구로 삼은 것이다. 당부컨대 김진규의 차운시 연작을 읽을 때는 백거이가 노래한 당나라의 화려하고 여유로운 봄날의 가사와, 김진규가 처했던 조선시대 거제도의 척박한 바닷가의 유배 현실을 머릿속으로 대조해 가면서 읽으면, 그 속에 숨겨진 슬픔과 문학적 완성도를 훨씬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작품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의 차운시(次韻詩) 「차백락천조춘억유사암남장(次白樂天早春憶遊思黯南莊)」, 「차백락천남호조춘(次白樂天南湖早春)」, 「차백락천한식기양동천(次白樂天寒食寄楊東川)」 등 칠언율시 3편과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선생의 「조춘억유사암남장, 인기장구(早春憶遊思黯南莊, 因寄長句)」, 「남호조춘(南湖早春)」, 「한식일기양동천(寒食日寄楊東川)」 등 칠언율시 3편을 다음과 같이 차례대로 소개한다.
1-1) 다음 ‘尤’ 운목의 칠언율시 「차백락천조춘억유사암남장(次白樂天早春憶遊思黯南莊)」 즉, ‘이른 봄날 사암(우승유)의 남쪽 별장에서 놀던 일을 추억하며’, ‘차운(次韻)하여’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이 한시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백락천)의 「조춘억유사암남장인기장구(早春憶遊思黯南莊因寄長句)」 시를 차운(次韻)하여,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벗과의 깊은 정, 그리고 다시 만나 함께 놀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김진규는 백락천의 이 한시의 압운자 ‘遊’, ‘頭’, ‘樓’, ‘愁’ 자를 차운했다. 백거이(白居易)의 이 한시는 838년 낙양에서 우승유의 별장을 추억하며 봄 풍경의 아름다움과 함께 거닐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낸 초대 한시다. 얼음이 녹아 물이 불어나고 눈 갠 산이 누각으로 들어온다는 묘사가 특징적이며, 김진규가 이 시의 운을 빌려 지은 답시가 이 작품이다.
○ 내용인즉, [수련(1~2구)]에선, 벗과의 인연과 추억을 회상했다. 동각(東閣)에서 서로 깊은 학문적·정치적 우정을 나누던 일과 봄을 맞아 예전에 남장(南莊)에서 벗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노닐던(勝遊)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함련(3~4구)]에선, 시선이 미치는 모든 곳(極目)에 봄기운이 가득 차올랐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곳마다 마치 꿈속의 선경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워 황홀한 감정을 느꼈다. [경련(5~6구)]에선, 난간(雕檻)에 늘어진 '연초록빛의 부드러운 버들가지'와 화려한 누각(畫樓)에 불을 밝힌 듯 화사하게 피어난 '하얀 매화'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봄의 생동감을 더했다. [미련(7~8구)]에선, 늙고 소박한 처지의 시인 자신(대지팡이)과 높은 관직에 있고 귀한 신분인 벗(수레의 큰 가리개)과의 재회에 대한 소망을 한다. 자신이 지팡이를 짚고 당신의 뒤를 따를 테니 다시 한번 남장에서 만나자고 청한다. 만약 우리가 만나지 않는다면, 이 좋은 봄날의 꽃과 새들마저도 우리 대신 슬퍼할 것이라며 은근하면서도 세련되게 만남을 재촉하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차백락천조춘억유사암남장(次白樂天早春憶遊思黯南莊)」** 백거이(白居易)의 「‘이른 봄날 사암(우승유)의 남쪽 별장에서 놀던 일을 추억하며 이에 긴 시(칠언율시)를 지어 보낸다(早春憶遊思黯南莊因寄長句)」를 차운하여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平生東閣投深契 평생토록 동각(동문)에서 깊은 우정 나누었으니
此日南莊憶勝遊 오늘 같은 날 남쪽 별장에서 함께 즐겁게 놀던 일이 생각나네.
正値春光來極目 마침 봄빛이 눈길 닿는 곳마다 가득히 밀려오니
怳疑佳境入回頭 고개 돌리면 그 아름다운 선경 속으로 들어온 듯 황홀하구나.
柳條新嫩垂雕檻 새로 돋아난 부드러운 버들가지는 조각된 난간에 드리워져 있고
梅蘂初明映畫樓 막 피어나 밝아진 매화 꽃봉오리는 그림 같은 다락집을 비추네.
須許枯筇陪大盖 바라건대 마른 대지팡이 짚고 귀하신 당신의 수레를 모시게 해 주고
莫敎花鳥獨含愁 저 꽃과 새들이 우리를 보지 못해 홀로 시름을 머금게 하지 마소.
[주1] 동각(東閣) : 과거 한나라 공손홍이 현명한 선비들을 모아 대접하던 곳.
[주2] 남장(南莊) : 친구의 남쪽 별장을 의미한다.
[주3] 고공(枯筇) : 늙거나 소박한 처지의 시인 자신(대지팡이)을, 대개(大盖)는 높은 관직에 있거나 귀한 신분인 벗(수레의 큰 가리개)을 상징한다.
○ 결국 봄날에 느끼는 벗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의 소망을 묘사한 글이다. 김진규는 당나라 백거이의 시를 모티브로 삼아, 화려하고 감각적인 봄의 경치(버들, 매화, 꽃, 새) 속에 벗을 향한 애틋한 정과 동양적인 풍류를 깊이 있게 담아냈다.
1-2) 다음 ‘尤’ 운목의 칠언율시 「조춘억유사암남장, 인기장구(早春憶遊思黯南莊, 因寄長句)」는 백거이(白居易)가 838년 봄, 낙양(洛陽)에 머물던 시절 절친한 벗인 우승유(牛僧孺, 자가 사암(思黯))에게 보낸 한시다. 초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빌려 "더 늦기 전에 어서 만나 함께 봄을 즐기자"라는 다정한 우정과 풍류를 담아냈다.
○ 내용인즉, [3구 4구]에선, 대나무 회랑(시각)과 버드나무 다리의 바람(촉각)을 영탄조로 회상한다. 이어지는 [5구 6구]에선, 얼음이 녹아 수량이 풍부해진 모습과 눈이 개인 뒤의 산을 대구(對句)로 배치하여, 초봄 생명력이 움트는 낙양의 대자연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그려냈다. 마지막 [7~8구]에선, 세월의 덧없음과 만남의 재촉했다. 지금 당장 이 초봄에 만나지 않고 "꽃이 만발하는 늦봄에나 만나자"고 미루다가는, 순식간에 꽃이 지고 새가 떠나는(鶯殘花落) 쓸쓸한 봄의 끝자락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는 단순히 자연의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에 접어든 자신과 친구의 삶을 투영하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좋은 시절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만나서 즐기자"라는 애틋하면서도 적극적인 만남의 제안인 셈이다. 백거이 특유의 평이하면서도 깊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춘억유사암남장, 인기장구(早春憶遊思黯南莊, 因寄長句)」 ‘이른 봄날 사암(우승유)의 남쪽 별장에서 놀던 일을 추억하며, 이에 긴 시(칠언율시)를 지어 보낸다’ / 백거이(白居易, 772~846)
南莊勝處心常憶 사암 자네의 남쪽 별장 빼어난 풍경을 마음속으로 늘 그리워했으니
借問軒車早晚遊 수레를 몰아 언제쯤 그곳으로 놀러 가려나 묻고 싶네.
美景難忘竹廊下 대나무 회랑 아래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경치는 잊을 수 없고
好風爭奈柳橋頭 버드나무 드리운 다리 위로 불던 고운 바람은 또 어찌 그리 좋은지.
冰消見水多於地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 땅보다 많아 넘실거려 보이고
雪霽看山盡入樓 눈이 개자 바라보이는 산들이 온통 누각 안으로 들어오누나.
若待春深始同賞 만약 봄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함께 감상하려 한다면
鶯殘花落卻堪愁 꾀꼬리 뜸해지고 꽃마저 져버려 도리어 시름만 가득할까 걱정되네.
[주1] 사암(思黯)의 남장(南莊) : '사암'은 당시 당나라의 정치가이자 재상이었던 우승유(牛僧孺)의 자(字)이다. 그는 낙양 남쪽에 아름다운 원림(정원과 별장)을 가꾸고 살았다. 백거이는 우승유, 유우석 등과 함께 낙양에서 시를 지으며 노년을 함께 보낸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주2] 빙소견수다어지(冰消見水多於地) : 겨울 내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강과 호수의 물이 불어나,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차오르는 듯한 초봄의 생동감을 절묘하게 포착한 명구다.
[주3] 설제간산진입루(雪霽看山盡入樓) :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자, 먼 산의 수려한 풍경이 누각의 창문으로 한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시각적 청량감을 준다.
2-1) 다음 ‘庚’ 운목의 칠언율시 「차백락천남호조춘(次白樂天南湖早春)」 ‘백락천의 〈남호조춘〉 시를 차운하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백락천)의 시 「남호조춘(南湖早春, 남호의 이른 봄)」의 운을 따서 지은 칠언율시 한시다. 김진규가 기사환국(1689년) 때 거제도로 유배를 가서 5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는 거제도 유배지에서 맞이한 아름다운 봄 풍경과 그 속에 감춰진 고독, 고향 및 임금을 향한 그리움을 백거이의 시에 차운하여 표현했으며,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김진규는 백락천의 〈남호조춘〉 시의 압운자 ’晴‘, ’明‘, ’生‘, ’成‘, ’情‘ 자를 차운했다.
○ 내용인즉, [수련 1, 2구]에선, 분성(湓城)은 백거이가 유배 가 있던 강주(江州)의 옛 지명이지만, 여기서는 김진규 자신의 남쪽 유배지(거제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가 그치고 새로 갠 맑은 봄날, 눈앞에 펼쳐진 호수와 산이 마치 수놓은 비단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모습을 묘사했다. [함련 3, 4구]에선, 동백꽃이나 매화 같은 봄꽃 봉오리가 붉게 터지는 시각적 아침을 극적으로 묘사했고 또 봄바람에 잔잔하게 이는 물결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용의 비늘처럼 반짝인다는 역동적인 표현을 했다. [경련 5, 6구]에선, 청각(갈매기의 따스한 울음소리)과 시각(집을 짓기 위해 진흙을 물고 오는 제비)을 활용하여 이른 봄의 생명력을 노래했다. 그러나 '둥지를 아직 완공하지 못한 제비(壘未成)'의 모습은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떠도는 작가 자신의 처지를 은연중에 투영하기도 했다. [미련 7, 8구]에선,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감상할 만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시선이 멀리(북쪽 조정과 고향이 있는 곳) 닿을수록 외로움과 유배객의 슬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傷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애달픈 심정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차백락천남호조춘(次白樂天南湖早春)」** ‘백락천의 〈남호조춘〉 시를 차운하다‘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湓城春色屬新晴 분성(유배지)의 봄 빛이 마침 새로 개인 날씨를 만났으니
望裏湖山錦繡明 바라보는 눈길 속 호수와 산은 비단처럼 밝고 아름답구나.
猩血漸斑花蘂坼 성혈(붉은 원숭이 피)처럼 붉은빛이 점차 얼룩지며 꽃봉오리 터지고
龍鱗欲動水紋生 용의 비늘이 움직이듯 물결 위로 잔잔한 파문이 이누나.
羣鷗泛渚聲初暖 갈매기 무리 물가에 떠도는데 울음소리 비로소 따스하고
雙燕銜泥壘未成 쌍쌍이 나는 제비는 진흙을 물어 나르나 아직 둥지를 이루지 못했네.
楚國風光雖可賞 초나라(남쪽 유배지)의 봄 풍경이 비록 감상할 만하다고 하지만
其如極目易傷情 눈이 닿는 저 멀리 끝까지 바라보니 마음 상하기 쉬움을 어찌하리오.
[주1] 성혈(猩血) : 짙고 선명한 붉은색을 뜻하는 시적 표현이다.
[주2] 용린(龍鱗) :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을 묘사한 것이다.
[주3] 초국(楚國) : 중국 남쪽 지방 초나라, 시인에게는 남쪽 귀양지 거제도.
2-2) 다음 ‘庚’ 운목의 칠언율시 「남호조춘(南湖早春)」 '남쪽 호수의 이른 봄'은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당나라 원화 12년(817년), 강주(江州, 지금의 장서성 구강시) 사마로 좌천(유배)당해 있을 때 지은 작품이다. 여기서 '남호(南湖)'는 좌천된 지역 인근에 있던 파양호(鄱陽湖)를 가리킨다. 이 시는 이른 봄날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을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하면서도, 마지막 구절에서 자신의 처지와 노쇠함을 한탄하는 반전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조선의 김진규는 백거이의 이 시를 완벽히 마음에 품고 자신의 시를 지었다. 백거이가 쓴 '雨初晴'을 김진규는 '新晴'으로 받았고, 백거이의 '語未成(어미성-꾀꼬리 소리가 완성되지 않음)'을 김진규는 '壘未成(루미성-제비 둥지가 완성되지 않음)'으로 변주했다.
○ 내용인즉, 백거이는 제목에 충실하게 봄이 막 시작(早, 이른)되는 찰나의 순간을 시각과 청각, 촉각으로 포착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아니라, 이제 막 피기 시작해 점점이 붉은색을 띠는 산살구(碎紅)와 이제 막 수면 위로 싹을 틔운 물풀(新綠)을 대비시켰다. 또한 봄이 완연하다면 기러기는 가뿐하게 날고 꾀꼬리는 맑게 노래하겠지만, 기러기는 봄비에 날개가 젖어 무겁게 날고, 꾀꼬리는 아직 날이 추워 혀가 굳어 서투르게 운다. 이 '서투름'과 '무거움'이야말로 이른 봄의 계절감을 완벽히 살린 묘사다. 이어 아름다운 자연(선경)과 우울한 내면(후정)의 극적인 대비를 서술했다. [1구~6구]까지는 비가 갠 뒤 투명하고 눈부신 강남의 봄날을 그렸다. 하지만 [7~8구]에 이르러 분위기가 급변한다. 풍경은 이토록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데, 정작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 자신은 타향을 떠도는 유배객 신세에다 몸까지 늙고 병들어(衰病) 도저히 이 봄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는 깊은 고독감을 토로했다.
**「남호조춘(南湖早春)」** '남쪽 호수의 이른 봄' / 백거이(白居易, 772~846)
風廻雲斷雨初晴 바람 돌고 구름 흩어지며 비가 막 개니
返照湖邊暖復明 호숫가에 비치는 석양빛에 다시 따스하고 밝아지네.
亂點碎紅山杏發 점점이 부서진 붉은빛으로 산살구 꽃 피어나고
平鋪新綠水蘋生 새로운 초록빛이 평평하게 깔리며 물풀(부평초)이 돋아나네.
翅低白雁飛仍重 (봄비에) 날개 낮춘 흰 기러기는 날기가 여전히 무겁고
舌澀黃鸝語未成 (아직 추워) 혀가 굳은 꾀꼬리는 울음소리가 서투르네.
不道江南春不好 강남의 봄 풍경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年年衰病減心情 해마다 노쇠하고 병들어 가니 (봄을 즐길) 마음이 줄어드네.
3-1)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 「차백락천한식기양동천(次白樂天寒食寄楊東川)」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한식날 동천 자사 양여사에게 보낸 시의 운자를 빌려(次韻) 지은 작품이다. 멀리 변방의 요충지 지방관으로 부임해 간 지인을 부러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 내용인즉, 이 시는 대비 구조를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였다. [1~6구]에선, 멀리 요직을 맡아 떠난 친구(지인)의 상황이다. 그는 아름다운 촉나라 땅에서 좋은 명절을 맞아 맛있는 술을 마시고 좋은 옷을 입으며 화려하고 즐거운 봄을 보내고 있다. [7~8구]에선, 화려한 변방의 풍경과 대조적으로, 시인은 쓸쓸하게 고향이나 서울 한구석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멀리 있는 친구를 부럽고 그리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시는 백거이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김진규가 자신의 유배 생활이나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의 외로움, 그리고 멀리 가 있는 지인을 향한 정을 절묘하게 투영한 격조 높은 칠언율시다.
**「차백락천한식기양동천(次白樂天寒食寄楊東川)」**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使節光輝臨重鎭 사절의 빛나는 위엄으로 중요한 요충지에 임하니
名區風物屬佳辰 이름난 고장의 빼어난 풍경이 좋은 명절(한식)을 만났구려.
蜀城芳樹迷朝日 촉나라 성의 꽃나무는 아침 햇살 속에 아른거리고
巴水淸流漾暮春 파촉의 맑은 강물은 저무는 봄날에 출렁이누나.
滿酌郫筒應浹骨 대나무 통술(비통주) 가득 부어 마시니 뼈속까지 시원할 것이요,
新裁賨布想宜身 새로 마른 대나무 섬유 옷(종포)은 몸에 잘 맞으리라 생각하네.
蕭條洛下分司客 쓸쓸히 낙양에서 한직에 머무는 나그네(시인 자신)는
惟對山妻憶遠人 오직 못난 아내를 마주한 채, 멀리 있는 그대를 그리워하네.
[주1] 중진(重鎭) : 군사나 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중요한 고을을 뜻함.
[주2] 촉성(蜀城)과 파수(巴水) : 모두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지역(현재의 사천성 일대)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지인이 부임한 곳의 풍광을 백거이 시의 배경을 빌려 묘사했다.
[주3] 비통(郫筒) : 사천성 피현에서 나는 대나무 통에 담은 명주(술)를 뜻한다.
[주4] 종포(賨布) : 과거 사천 지역 소수민족이 바치던 특산물 베(직물)로, 시원한 여름 옷감이다.
[주5] 락하분시객(洛下分司客) : 당나라 때 낙양에 두었던 조정의 한직 관리들을 뜻한다. 여기선 자신이 한양에서 물러나 한가롭거나 쓸쓸하게 지내는 처지를 비유했다.
3-2)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 「한식일기양동천(寒食日寄楊東川)」 ‘한식날 동천의 양여사에게 보내다’는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작품이다. 이 시는 백거이가 가까운 벗이자 촉나라(사천성) 지역의 동천 자사로 부임해 간 양여사(楊汝士, 백거이의 아내 양씨의 친척이자 절친한 친구로 '양육(楊六)'이라 불림)에게 한식날을 맞아 보낸 시다. 김진규는 이 시의 압운자 辰(신), 春(춘), 身(신), 人(인) 자를 차운했다.
○ 당시 백거이는 조정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낙양 등에서 한직을 맡으며 비교적 쓸쓸하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친구 양여사는 촉나라 동천 지역의 최고 행정관(자사)으로 화려하게 부임해 나갔기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자네 그 좋은 곳에서 엄청 재미있게 놀고 있겠지? 나한테 자랑이라도 해보게나" 하고 친근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질투 섞인 정을 표현한 명작이다.
**「한식일기양동천(寒食日寄楊東川)」** ‘한식날 동천의 양여사에게 보내다’ / 백거이(白居易, 772~846)
不知楊六逢寒食 양육(친구 양여사) 자네는 이번 한식을 맞아
作底歡娛過此辰 어떤 즐거운 오락을 즐기며 이 명절을 보내고 있는가?
兜率寺高宜望月 그곳 두솔사는 높아 달을 바라보기 좋을 것이고
嘉陵江近好遊春 가릉강은 가까우니 봄을 즐겨 노닐기 참 좋겠구려.
蠻旗似火行隨馬 남방의 붉은 깃발은 불꽃처럼 말 뒤를 따르고
蜀妓如花坐繞身 촉나라 기생들은 꽃처럼 자네 몸을 둘러앉아 모시겠지.
不使黔婁夫婦看 검루(黔婁) 부부 같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誇張富貴向何人 그 화려한 부귀를 대체 누구에게 자랑하겠는가?
[주] 검루(黔婁) : 가난하게 살다 죽은 청렴한 선비.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은사(隱士)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위왕(威王)의 스승.
○ 백거이는 친구가 가 있는 가릉강(嘉陵江), 촉나라 기생(蜀妓) 등을 언급하며 사천 지방의 화려함을 노래했다. 김진규 역시 이를 이어받아 촉성(蜀城), 파수(巴水), 비통주(대나무 통술), 종포(대나무 섬유 옷) 등 촉나라(사천)의 대표적인 풍물을 그대로 시에 녹여냈다. 백거이는 자신을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았던 고사 속 인물인 '검루 부부'에 비유하며, 화려한 지방관으로 부임해 풍류를 즐기는 친구를 익살스럽게 부러워하고 있다. 조선의 김진규 역시 이 구조를 그대로 빌려와, 후반부에서 화려하게 지내는 지인의 모습과 '낙양의 쓸쓸한 한직 관리(분시객)'로서 아내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극적으로 대조시켰다. 또한 역시 당쟁에 휩쓸려 거제도 등지로 유배를 갔던 인물이기에, 이 백거이의 시에 깊이 공감하여 차운시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 백락천(白樂天)은 중국 당나라 시기[중당(中堂)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자(字)이자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별칭이다.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또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관직에 있던 815년에 발생한 재상 무원형(武元衡) 암살사건에 관하여 직언을 하다가 조정의 분노를 사 강주사마로 좌천되기도 했다. 820년 복귀한 후 여러 고위직을 역임하다가 842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끝으로 관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며,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으로 시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통속적이고 쉬운 언어를 구사했고 평생의 문우(文友)였던 원진(元稹)과 함께 평이하면서도 감정 표현이 풍부한 시풍을 유행시켰다. 그의 시집인 《백씨문집(白氏文集)》은 당대 중국뿐만 아니라 신라와 일본 등 이웃 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일본 헤이안 시대 문학(겐지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시 역사상 가장 다작을 남긴 시인 중 한 명으로, 약 3,800여 편의 시문이 전해온다. 백락천의 시는 서사성과 서정성, 그리고 사회 비판적 시각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주요 대표작으로는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신악부(新樂府), 대주(對酒) 등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