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이호아에서 온 편지(6)
그 뒤로도 화홍은 허 병장을 오빠라고 부르며 따랐다.
허 병장은 화홍의 그런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왠지 화홍이 변 하사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싫었다. 그냥 놔두고 싶지 않았다. 화홍은 날이 갈수록 허 병장을 가까이하고 싶어 했고, 의도적으로 변 하사를 피했다.
그런 눈치를 알고 변 하사는 더욱 화홍에게 치근덕거리며 접근하는 것 같았다. 만나기 싫어하는 화홍을 기를 쓰고 따라다니는 변 하사가 허 병장은 미웠다. 단지 제 욕심을 채우겠다는 흑심을 품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변 하사로서는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화홍으로서는 일생이 걸려 있는 일이다. 아무리 힘없는 외국 여인이지만 그냥 재미의 대상으로 어째 보겠다는 심보라면 벌 받을 일이다. 그래서 허 병장은 화홍을 지켜주고 싶은 보호 본능 같은 심리 작용으로 화홍을 가까이하고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투이호아로 나온 뒤로 곽 참모의 심부름이 더 많아졌으므로 허 병장은 화홍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되니까 화홍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고, 변 하사는 노골적으로 허 병장을 미워하게 되었다.
한번은 변 하사와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는 살벌한 지경까지 간 일이 있었다. 그날도 참모의 심부름이 있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트랑으로 가는 군용차를 얻어 타고 병참부대 PX로 갔다. 이 준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번호판 없는 지프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곽 참모가 비밀스럽게 쓰는 그 지프는 그 PX 옆에 있는 작은 텐트 속에 숨겨져 있었고, 그것은 주로 허 병장이 곽 참모의 지시에 따라 사용되었지만 때로는 곽 참모가 직접 운전하여 시내에 가서 사적인 일을 보고 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곽 참모나 허 병장은 부대 마크와 계급장이 없는 옷차림이었다. 그 차는 모든 초소에서 무사 통과였다.
허 병장은 이 준위가 실어 주는 물건들을 마의 거래처에 가져다주고 마의 집으로 갔다. 변 하사가 불쑥 나타났다. 오늘은 허 병장이 변 하사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
“선임하사님은 여기가 근무처입니까?”
갑자기 공격을 받은 변 하사가 당황해하며 역공했다.
“허 병장은 참모님의 꼬붕인가? 참모님을 등에 업고 목에 힘주지 마라. 내가 첩보보고 하나 쓰면 허 병장은 어찌 되는지 알지?”
“해 보시죠. 변 하사님이 근무지 이탈하여 화홍에게 빠져 있는 거는 영창감인 걸 아시죠? 나는 첩보보고 못 올리나요?”
“허 병장 정말 해 볼 거야?”
“그뿐 아니지. 병참부대에서 맥주, 담배, SP, 심지어는 씨레이숀까지 틈만 있으면 내다가 베트콩 시장에 팔아먹고, 심지어는 미군부대 PX장과 결탁해서 지프, 쓰리쿼터까지 팔아먹은 거, 그거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일아? 모두 베트콩 부대로 넘어가는 거야. 내 첩보 보고 한 장이면 당신은 바로 사형이야!”
“너 정말! 야 너 죽고 싶어?”
“그래 해 보자! 계급장 떼어!”
“그래 좋다!”
변 하사가 모자를 벗어서 땅바닥에 팽개치며 덤벼들었다. 이때 집 안에 있던 화홍이 달려와서 허 병장을 끌어안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변 하사는 더욱 열통이 터졌다. 화홍이 왜 자기가 아니고 허 병장을 껴안고 들어가는가? 옆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주먹으로 몇 번 쥐어박고는 모자를 집어 들고 휭하니 사라져 버렸다. 해먹에 누워서 그 촌극을 다 감상한 뚜엉이 빙긋 웃으며 돌아누웠다. 밖에 나갔던 마가 들어와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마는 변 하사를 싫어하는 마음이 점점 더해갔다. 그래도 변 하사는 끊임없이 화홍을 따라다녔다. 마에게는 PX 물건들로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그런 변 하사를 화홍도 마도 개 쫓듯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가 군인들과 군용 물품을 부정 거래하는 것을 변 하사가 모두 꿰뚫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을 미끼로 하여 장사를 해먹는다는 말을 들어도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화홍도 이래서 변 하사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변 하사는 그런 상황을 바탕에 깔고 생쥐처럼 핼금거리며 계속 드나들었다.
상대편의 약점을 손아귀에 쥐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변 하사의 욕심은 뻔하다. 화홍과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면 모르되, 그의 행동거지나 성품으로 봐서, 그는 단지 화홍을 농락거리로 여기고 접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서 화홍이나 마는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설사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더라도 일단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호감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변 하사와 허 병장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만만치가 않다.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서로가 함께 망가지고 마는 입장이니 그냥 모르는 체 넘어가며 지내는 것이었다. 또한 허 병장의 나이가 자기의 형뻘이니 아무리 계급 사회이지만 막 대할 수가 없고, 허 병장 또한 변 하사가 아무리 나이 어린 동생뻘이지만 계급으로 상급자이니 막 대할 수가 없다. 이래저래 둘은 견원지간일 수밖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