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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가 어제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는 말씀에 대한 교제를 함께 나누었는데요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곧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의 모습을 보았을 때 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표현을 본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람의 모양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합법적이고도 적합한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그러한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의 온전함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이 필요하셨고 그리고 3년 반 동안의 그분께서 나이 30세쯤 되셔서 천국복음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자신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이미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이 완전히 성장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표현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나타내셨습니다.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의 본성과 완전한 인간의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주의 자격을 가질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신성한 본성과 함께 뛰어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이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고 보증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일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시고 또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줄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닌 참 사람이셨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그리스도가 될 자격을 가지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요한일서 1장 7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1: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특별히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셔서 그리스도로서 구원 능력을 제공해 주고
보증해 주는 그러한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주님의 신성이 인성 안에 있는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제공해 주고 부여해 주고 보증해 주는 것을
계시하고 있지만 특별히 사도행전을 통하여 그것이 적나라하게 직간접적으로 우리들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 말씀에서는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의 그 신성이 그분의 인성 안에 구원의 능력을 제공해주고 부여해 주고 보증한다 라는 말씀이 요한일서
1장 7절에 아주 자세하게 계시되고 있는데요. 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주님의
인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 안에는 주님의 인성을 암시하고 있고 또한 그 아들이라는 명칭을 통하여 주님께서 신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구원 능력을 제공해 주고 보증하는 이 요한일서 1장 7절의 말씀에서 그분의 피가 왜 그 아들에
대한 주님의 신성과 예수님에 대한 주님의 인성을 함께 우리들에게 암시해 주고 있을까요? 그것은 인성을 암시하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구속한 피를 흘리심을 위하여는 주님의 인성을 가지고 오신 자라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신 것은 구속하는 피를 흘리신 것인데 이것은 구속하는 피를 흘리심을 위해서는
주님께서 사람의 인성을 가지고 오신 참 사람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의 인성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사람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지신 그분께서 이 구속하는 피가 영원한 효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아들이라는 이러한 명칭의 표현을 통하여 주님의 신성을 지니신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들에게
암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흘리신 구속한 피가 우리들에게 사람들에게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효능을 갖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님의 이 피가 영원한 효능을 나타나게 함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전혀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영원한 구속하는 효능을 우리들에게 부여해주고 제공해 주고 보증해 준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있어서 그분은 영원한 인성 안에 있는 참 사람으로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주로서의 자격을 가지시고 또한 하나님이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피의 효능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줌으로 말미암아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는 그러한 구원의 능력에 효능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고 또한 공간적인 면에서 제한이 없는 그러한 영원한 효력을 위한 구원의 능력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시공간적으로 전혀 제약을 받지 않고 그분의 인성과 신성 안에 있는 참 사람과 참 하나님이신 그 아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 능력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어서 자세하게 나타내 우리들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이 백부장 하인을 고치신 장면입니다.
마태복음: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전혀 제약과 제한을 받지 않고 바로 그 피의 영원한 효능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제공되어지고 부여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타락한 피조물들을 그 아들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데 있어서 필요한 참 사람의 합당한 씨임을 암시해 주고 주님의 신성을 암시해 주는 그 아들이라는
명칭을 통하여 그 주님께서 구속하는 그 피가 영원한 효능을 가지게 되었다 라는 것을 합법적으로 보증해 주는 것이
바로 그 아들이라는 명칭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에서는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요한일서 1장 7절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무슨 피 입니까? 예수님이란 주님의
인성을 암시해주는 사람의 피였고 또한 그 아들이라는 명칭을 통하여 주님의 신성을 암시해 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 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에 기록된 그 아들 예수님의 피는 실제적으로 사람 예수님의 피였을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의 아들의
피였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을 때 이중의 신분을 가지고 죽음을 당하셔서 우리들을 구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신분과 하나님의 신분을 동시에 지닌 분의 피였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사람을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라고 그 구속하는 피의 영원한 효능이 바로 이러한 일 때문에 발생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구속에 필요한 예수님이라는 그 주님의 인성을 암시해 주는 참 사람의 순수한 피였고 또한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통하여 주님의 신성 안에 있는 피였기 때문에 이 피의 효능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신성으로 인하여 확정되어져서 참 사람의 순수한 피에 의하여 인간이 그 피의 영원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성은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하나님으로 잉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질을 가지시고 신성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그 아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바로 주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주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영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주님의 신성을 떠나서는 그 예수님이 인성을 암시하는 구속하는 피를 흘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참된
신성이 없이는 그분의 구속하는 피가 영원한 효능을 부여해주고 제공해 주고 보증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인성과 주님의 신성들을 가지신 그러한 이중의 신분의 속성들을 지니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흘리신
그 예수님의 피가 참된 신성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 능력을 부여해주고 제공해 주고 보증해 준 것입니다.
이것을 단 한마디로 요약해서 얘기를 한다면 주님의 인성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주님의
인성을 암시해주고 있는 인성을 통하여 구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속하는 피를 흘리심을 위한 어떤 그런 기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에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아들이라는 주님의 신성을 암시해주는 신성은 그분에게 우리를 구원할 그 구속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구속하는 일을 가지게 함에 있어서 구원할 능력을 확실하게 보증해 주고 부여해주고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이 구주께서는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닌 사람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성을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묘사함에 있어서 바로 사람을 암시하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그러한 칭호를 통해서 사람 구주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참된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참된 사람이시다라고 사람은 사람인데 참된 사람이라고 우리가 말로
칭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성육신 하셔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사람이 되신 것이 참 되시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람으로서의 본성은 어떤 허구적이거나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참으로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참 사람이셨고 실제의 사람이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은 참으로 완전한 것입니다.
참으로 완전한 우주의 인간적인 미덕들을 가지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된 그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그리스도 유일한 구원자가 될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 예수님은 실제적인 인간의 본성과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셔야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육신이 주님의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이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기간들이 참으로 필요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사람으로서 참되신 분이십니다.인간적인 본성에 있어서 실제적인 분이십니다.
그리고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에 있어서는 너무나 완전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위한 사람으로 오신 구주
곧 세상 가운데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서 그리스도가 될 자격이 있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실제적인 인간의 본성과 완전한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구주로서 사람들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이끌어가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 구주가 될 자격을 갖기 위해서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신
그것만 가지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예 그 아들 예수님이라는 인성을 암시해 주고 있는 그분은 인성을
통해서 사람 구주가 될 자격 곧 십자가 위에서 구속의 피를 흘리실 필요가 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성을 가지시고 바로
사람 구주가 될 자격을 가졌지만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더욱더 제공해 주고 보증해 주기 위해서는 바로 신성을
가지신 참되고 신성한 본성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가진 자라야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고 제공해 주고 확증해 주고 보증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님으로 잉태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잉태되셨고 사람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왔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오신 이 두 종류의 그러한 본질을 가지고 오셔서 인간적인 본질과 신성의 본질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성을 통해서는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질 수가 있었고 신성을 통해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보증해주는
하나님으로서의 그 신성을 암시해 주는 그 아들이라는 명칭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공해 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성육신하신 사람을 구원하시는 주 예수님을 말씀의 교제를 통해서 이렇게 나타내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참 사람이셨고 온전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참 사람이신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릴 필요를
가진 인성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질 수가 있었고 온전한 하나님이셨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고 보증해주고 확정해주고 제공해 주는 바로 그러한 일들을 이루실 수가 있으셨다라는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참 사람이셨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이셨으므로 온전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참되고 신성한 본성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그리스도의 자격을 더욱더 강화시키고 부요하게 하고
고양시키고 그리고 거룩하게 하고 그 능력을 보증해주는 참된 신성한 속성들을 통해서 바로 구원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편적으로 교회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인도자들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로는 그리스도가 온전한 하나님이시라고 말들을 하고 동의는 하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시며 또한 그 영이시라는 것은 부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하고 있는 주님에 대한 그러한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치기는 하나 마치 그리스도를 어떤 하나님과 그 아들과 그 영에 단지 속하여 있는
한 분이라고 말하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칫 오해하게 하고
그릇되게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온전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셔야 되고 그 아들이셔야 되고 그 영이 되셔야만 온전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말로는 고백하지만 그분은 단지 그 아들뿐이며 아버지가 아니고 그 영이 아니라고 말한다라면
그 우리들이 고백하는 말들이 제한을 받게 되고 그릇되게 되고 뭔가 미비함과 부족함과 결격사항과 잘못됨이 나타내지는
그러한 어떤 부분적인 하나님만을 우리가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온전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아버지이셔야 되고 그 영이 되셔야 되고 그 아들이 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분이 온전한 하나님이신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기 위해서 구약 성경 39권과 신약 성경 27권을 통해서 지속적이고 계속적인 교제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길을 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수많은 장애물들과 방해물들을 제거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아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시고 참으로 온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바로 기억하고
인식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성육신되신 하나님으로서 바로 사람 마리아의 몸에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실제적인 인간의 본성을 가지시고
그 인간적인 본성과 함께 더불어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 구속하는
피를 흘리심에 필요한 것을 소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람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되고 신성한 본성과 그리고 뛰어나고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바로 그 온전한 하나님이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이신 분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인성을 가지고 오신 참 사람이셨기 때문에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질 수가 있었고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고 부여해 주고 보증해 줄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 예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참되시고 실제적이며 완전하신 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하나님으로 잉태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에 관하여는 신성한 본질과 신성한 속성을 가진
분으로서 신성에 관하여는 그분이 온전하고 참되시며 뛰어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오신 구주께서는 참 사람이시며 온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참되시고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셨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구주와
함께 더불어 연합되어져서 바로 부여해 주고 보증해 줌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을
가지실 수가 있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은 그분의 신성으로 보장되고 그분의 신성으로 보장된 것은 완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으로 오신 구주가 될 자격을 가지신 그분에게 더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그분의 신성으로
보장하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신성한 본성과 속성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의 어떤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을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행하심에 있어서 그 능력을 제공해 주고 부여해 주고 보증해 준다라는 것을 아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지니고 계신 그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속성들이 바로 사람 으로 오신 구주의 구원 능력을
더욱더 그리스도로서의 자격을 가지신 그분에게 구원 능력을 제공해 주고 부여하고 보증해 준다라는 이 말씀을 암시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하여 이 구주의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속성들이 구주의 구원 능력을 부여하고 보증해
준다 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 전체가 주님의 신성이 인성 안에 있는 그분의 구원 능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을 통한 말씀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그분의 인성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로서의 자격을 가지게 하며 그분의
온전한 인성은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 미덕들을 지니신 참 사람으로서의 인성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있게 하며 그리고 그분께서 가지신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의 신성은 그분에게 사람으로 오신 구주에게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제공해주고 확증해 주고 보증해 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신성은 또한 사람을 구원할 그분의 능력을 보증해 줌으로 말미암아 요한일서 1장 7절에 기록된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계시에 대한 의미를 통해서 우리가 암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주님의 인성을 암시하고 그 아들이라는 명칭은 주님의 신성을 암시함으로 말미암아 이 주님의 신성이 사람을 구원할 구주의 능력을 보증하는 것이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는 피에 영원한 효능을 가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을 행하시는 주 예수님의 모든 행함들이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참 하나님이시고 온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사람인 여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인간 본성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미덕들을 지니게 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분께서 성육신 하지않고 사람의 모양을 입고 사람으로 오시지 않는다면 사람 안에 있는 인성 안에 있는 그 아름다운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닐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니고 계신 그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담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주께서 가지신 인간적인 미덕들이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사람의 인성도 그리고 구주의 인성도 하나님을 담고 표현할 수 있는 바로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닮고 표현할 수 있는 이 인간의 미덕들을 지닌 인간 본성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참 사람이자 온전한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주께서는 하나님을 담고 표현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닐 수 있도록 인간의 본성을 소유하기
위해서 여인의 몸인 사람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사람의 모양을 입고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을 가지고 살아오신 구주께서는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표현하였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구주께서는 참 하나님이요 온전한 사람으로서 이 사람의 몸을 통해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본성을 가진 참
사람이시고 하나님의 잉태를 통하여 세상에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 사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처럼 열심을 다해서 발휘하고 최선을 다하실
필요가 어떤 의미에서는 없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바로 인간 본성 안에 있는 그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닌 주님의 인간적인 본성과 함께
신성한 속성을 통하여 나타내 주신 그리스도의 삶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자들과도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하고도 완전한
신성한 속성들로 충만하여진 온전한 하나님과 참 사람이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께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신 이유는 바로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인간적인 미덕들 안에 하나님을 담고 표현하도록 하기 위한 그분의 참 하나님이신 그 내용과
참 실제가 되는 참 하나님을 담기 위해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신 분으로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담고 표현할 수 있게 되셨고 참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서 그분 안에 있는 참 실제와 참 내용이 되는 그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오신 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그분의 내용과 참 생명이신 참 하나님이신 그분의 참 내용과
참 실제가 되는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셨고 그리고 그분께서 가지고 계신 인간적인 본성 안에 있는
참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되었던 것이 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구주께서는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속성들을 소유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인간적인 인간 미덕들을 지닌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바로
참 사람으로서의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그분을 가리켜 하나님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주께서는 자신의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실제적인 하나님을 참 생명의 내용과 실제이신 하나님을 소유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담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들에게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마치 장갑과 손의 어떤 그런 관계와 같습니다.
장갑이 손을 표현하려면 그 장갑 안에 손을 넣어줘서 손이 움직일 때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장갑이 그대로 표현되어져서
나타나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오시기 위하여 사람의 인성을 입고 오셔서 인성을
가지신 분이 되셨고 참 인간의 본성을 가지신 인성을 가지신 분이 되었고 그리고 참 내용과 참 실제이신 하나님을 담기 위해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을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빛남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담을 수 있는 마치 하나님을 담는 그릇과 같은 존재로 세상에 오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인성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되셨고 신성을 통해서는 참 생명이신 하나님을 소유할수 있는 손 그 자체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그분의 인성 안에 신성이신 하나님을 가지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신 삶의 모든 전반적인 것들은 실상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마치 장갑 안에 그 참 실제이며 참 내용이 되는 손이 담아 있지 않다면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장갑은 무용지물이 되어서
움직이지 못한 것이 되는 것처럼 표현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바로 하나님을 담는 인성을 가지고 오신 그릇인 그 인성
안에 바로 참 실제이며 참 내용이신 참 하나님이 그 인성 안에 인간적인 미덕을 통하여 행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행함을 통해서 보여 나타내져서 표현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온전한 사람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의 인성을 가지신 사람이시며, 참 생명이시며, 참 내용이시고 참 실제이신
하나님 그 자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바로 이 구주의 인성 안에 참 미덕 안에 참 내용이며
실체이신 하나님이 살아 하나 되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행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요 하나님의
움직임이요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사셨던 그분의 공생애의 삶의 모습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담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그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우리는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참된 하나님의 본성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그분의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을 통하여 나타내신 그분의 삶을 통하여 행하신
모든 일들은 참된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구주께서 사람들을 접촉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현상은 실제적으로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담고
표현하도록 바로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외형적인 어떤 나사렛 출신의 비천한 목수의 신분의 사람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참 하나님이 그분의 인간의 어떤 본성을 지니신 구주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수많은 미덕들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표현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사람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일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마치 그 구주의 인성
안에서 구주의 인간적인 본성 안에 있는 아름다운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한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표현되는 것처럼 바로 우리 안에서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인간적인 본성을 통한
아름다운 인간적인 미덕들이 우리와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본성을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미덕들과 구주의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동시에 한꺼번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그 예수님을 어떤 힐책하고 정죄하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종교 지도자들은 그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인간적인
미덕들만 볼 뿐 그분 안에 내재되어져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인 신성한 속성들을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오해를 갖게 돼서 끊임없이 주님을 괴롭히고 정죄하고자 쫓는 삶의 무리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주님과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과 제자들은 그 주님의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와 본성을
봄으로 말미암아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나타난 주님의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그들이
경악하여 즉각적으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쫓는 주님을 따르는 변화되는 삶을 사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이 그분 안에서 동시에 함께 연합되어져서 조성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사람이 행한 그런 모든 일들이 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을 통하여 구주께서는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시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께서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과 그리고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행하시는 구주의 공생애 사역을 통한
이 연합되어지는 일을 통하여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통해서 어떤 제3의 본성이 산출되거나
나타나지는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가지시고 신성한 속성을 가지셔서 연합되어졌다고 해서 전적으로 그분께서 인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신성하지도 않은 어떤 제3의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그 두 본성인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의 두 본질들이 연합되어져서 하나의 조성을 이룬 후에도 그것은 여전히 뚜렷하게
확연하게 그대로 남아있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차를 타 마실 때 그 찻잔 안에는 뜨거운 물과
함께 차가 들어가 있고 커피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를 제거하고 또 이 물 안에 있는 커피를 제거하여서 우리가 커피물을 마시고 차를 마실 때 그러한 그 두 본질들이
연합되어져서 하나의 조성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본성과 차의 본성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두 본성인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의 두 본질들이 하나로 완전히 연합되어져서 하나의 조성을 이룬 후에도
그것들은 독특하게 그것을 가지고 있을 뿐 제2의 제3의 어떤 다른 혼동되어지고 혼합되어진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 안에서 이 신성과 인성의 연합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것을 산출하거나 다른 어떤 주님의 신성한 속성과
인간의 어떤 본성의 연합 외에 다른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신성한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의 두 본질들이 연합되어지는 일은 너무나도 귀하고도 비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곧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비밀한 분이시지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제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우리가 앎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더 따르고 주님이 확실하게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을 행하시는 일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합당하고 정당한 구원의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우리가 알게 되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견고해지고 강화되고 고양되어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시면서 사람이신 주 예수님 하나님 사람이신 구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2천년전에 생명의 떡집이라고 칭하는 그런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그분은 비록 아기 예수님으로
세상에 나오셨지만 하나님이셨으며 참 사람이셨다라는 것입니다.
참 사람 무엇이 참 사람으로써 우리가 일컫게 되는 것입니까?
바로 그 주 예수님은 실제적인 사람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왔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온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그리고 완전한 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완전한 인간적인 미덕들을 지닌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가리켜
참 사람이시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참 사람이심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일컫습니까?왜 고백을 합니까?
그분께서는 하나님 곧 성령님으로 잉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질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신성한 본성과
우월하고 우수하고 탁월하며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이신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고
참 사람으로 오시기 위하여 사람 여인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기 예수님이 그 신성한 본성과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실제적인 인간 본성과 완전한
미덕들을 지닌 참 사람이심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님이 그것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을 합니까?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점점 자라고 성장하여 12살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그 주 예수님의 12살 생애 속에서 나타난 삶 속에는 그분 안에 가지고 계신 신성한 속성들이 일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진 것이 바로
누가 복음 2장 49절부터의 말씀입니다.
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2: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 아기 예수님은 바로 그분의 생명의 삶 속에 있는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고 오신 참 온전한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속성들의 표현을 온전히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2살 때 그것이 표현되어져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까?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라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은 구주의 삶 속에 신성한 속성들이 어느 정도 일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이 30세쯤 돼서 이 신성한 속성들이 완전히 성숙되어져서 드디어 완전한 표현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공적인
사역인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 30세쯤에 복음을 가르치더라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나이 30세 되어서야 그 구주 안에 있는 삶 속에 그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표현되어져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성장하신 것이 바로 성육신하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 주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죽으시기 전에 왜 아기 예수님으로 성장하셔서 12살이 될 때 한 번의 그 말씀을 통하여 일시적인 신성한 속성들을 표현한 말씀을 누가 복음을 통해서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고 그리고 30년이 지난 30세 때에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사역을 위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신성한 속성들이 주님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기 위해서는 나이 30세가 되어야 정상적인 신성한 속성들이 성숙해지고
성장해져서 온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기 예수님으로서의 성장의 시간을 가지셨던
것이고 12살이 되어서야 일시적인 표현인 그분의 삶 속에 있는 그러한 신성한 속성들이 조금 나타낸 것을 보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30세가 되어서야 그분의 삶을 통하여 삶 속에서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성숙한 나이가 되었을 때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담고 표현하는 그 미덕들을 지닌 인간적인 본성을 소유하신 참 사람이셨고 또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그분의 내용과 참 생명의 실체가 되는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이분이 바로 아기 예수님으로 태어나신 그분은 하나님 사람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그분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는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하게 나타나기 위해서 성육신 하시고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을 지나고 그리고 공생애의 또 3년 반을 통해서 그것이 열매로 나타내지는 삶을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신 것을 통하여 온전한 구원자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사시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6일 동안 창조하신 것과 달리 주님께서 특별히 덧붙여져서 사람으로 오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시는 복잡한 과정의 계획을 가지시고 그리고 사람의 삶의 기간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구주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소유하시고 획득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주께서는 참 사람의 삶을 사셨지만 사람의 생명으로서 사람의 미덕들 안에서 외형적으로는 멀찌감치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단순히 나사렛 출신의 목수 아들의 신분의 사람으로 보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가장 가까이 따랐던
무리들과 참 제자들은 그분의 삶을 통해서 삶 속에서 나타내지는 그러한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한 삶이 사람 자신이신
예수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 안에 감추어져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삶을 사셨지만 참 사람의 생명으로서 사람의 미덕들 안에서 사람 자신인 예수님 자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공생애 사역을 하셨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참 사람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생명인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구주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 안에서 행한 모든 것들이 예수님 자신인 사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춰져 있고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 구주께서 오셔서 참 사람의 삶을 사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구주의 삶을 통해서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미덕들을
통해서 사람 자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표현했다는 말씀이 요한복음 5장 30절 말씀인 것입니다.
5:30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또한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의 뜻을 행하거나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고 전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고 표현하기 위해서 사역을 행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의지와 사람의 감정 곧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생각과 구주의 의지와 구주의 감정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었던 것입니다.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의지는 사실은 주 예수님 자신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나" 라는 존재인 자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나 자신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데 특별히 그 의지가 그 생각과 감정을
어우러져서 나타내서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의지이기 때문에 의지는 바로 주님 자신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는 사람의 자신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 전체를 대표하는 의지와 더불어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나타내게 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 전체를 대표하는 의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또한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사고 안에서만 사고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대표하고 의지는 행함에서 행동을 통하여 우리 자신
곧 우리 자신 전체인 우리의 혼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생각은 사고 안에서 주 예수님 자신 곧 구주 자신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고 안에서 주님 자신을 대표하는 것은 주님의 생각이고 그리고 주님의 의지는 주님의 활동과 행위를 통하여 주님의
활동과 행위 안에서 주님의 의지가 주님 자신을 대표한다라는 것입니다.
의지는 활동과 행함 안에서 생각은 사고 안에서 의지는 우리 자신 전체인 혼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함 안에서
우리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생각은 감정과 연루되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이러한 어떤 감정과 함께 더불어
나타나는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자신을 대표하셨고 의지를 통하여 자신의 행하시고 활동하시고 행동하시는
모든 것을 통하여 구주 자신을 대표하여서 나타내고자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의지를 구하거나 행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사람으로 살아계시는 동안에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감정으로 인하여 전혀 살지 않으시고 곧 그분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으로 인하여 살지
않으셨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으로 사셨지만
그분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은 곧 하나님과 동일한 생각과 하나님과 동일한 의지와 하나님과 동일한 감정으로 구성되어져서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삶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의 삶을 사신 이러한 성경의 사례들이 특별히
누가복음에 아주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37절 사이에 강도를 만난 자를 구원해 주는 선한 이웃으로 나타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례가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긴 말씀 중에서 32절과 33절에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거기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고 또 데나리온 둘을 꺼내서 주막
주인에게 끝까지 그를 치유하고 구원시켜달라라고 비용을 지불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다름 아닌 구주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그 강도를 만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서 곧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불쌍한 강도를 만난 자를 위하여
구주께서 베푸시고 행하신 그러한 삶은 분명히 외형적으로는 인간적인 삶을 통하여 나타내진 긍휼과 사랑과 자비의
모습이었지만 그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상징된 구주의 인간적인 외형적인 삶 속에는 하나님의 그 어떠한 것이
표현되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왜 여행하는 중에 거기에 이르러 그 강도를 만난 자가 죽게 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라는 이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고 계셨던 기름과 포도주를 그 기름과 포도주는 바로 성령님과 바로 이 신성한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포도주를 상징하고 있는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활 후에는 생명 주신 영이신 기름으로 나타나주신 것이 보혜사 성령님이신 기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그분께서는 강도를 만난 자를 위해서 치료해 줌으로 말미암아 긍휼을 베풀고자 긍휼한 사랑의 자비의 마음을 보여주셨을 때
사실은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을 주시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강도를 만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셔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싸매고 자기가 타고 가는 짐승에 그를
태워서 이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주인에게 맡겨서 온전히 그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케 하기 위한 그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으로 외형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인간적인 사랑 속에는 신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강화되어지고 부요해지고
고양되어지고 온전케 되고 거룩하게 되고 능력을 받아 완전해진 인간적인 사랑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적인 외형적인 사랑을 통해서 신성한 살아계신 하나님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에
대한 사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긍휼을 베푸시는 인간적인 사랑을 통하여 보이지 아니하는 아주 탁월한
사랑을 지니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 사람 구주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인 삶에 관한 그러한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인간의 본성과 신적인
본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이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19:1 〔예수와 삭개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특별히 5절과 6절에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여기서 삭개오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 삭개오를 다루심에 있어서 단지 주님께서 한마디만
하셨을 뿐입니다.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수천 수만의 군중이 모여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삭개오를
발견하실 수가 있으셨을까요? 예!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 안으로 들어오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삼기 위해서 바로 만세 전에 택정을 받은 이 삭개오와 같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리고성에 들어오셔서
그를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여리고성 안에 들어오신 것은 삭개오 같은 자를 만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여리고성으로 들어가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 뽕나무 나무 위에 올라와서 주님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그 삭개오를 발견하신 후에 그를 향하여 그 나무
위에서 속히 내려오거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라는 이 단순한 말씀을 통하여 삭개오가 주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장면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삭개오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그 어떠한 것이
자신에게 접촉되어져서 부어지는 것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삭개오가 구주를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삭개오를 다루시는 그 마음에 예수님께서 신성한 어떤 것을 나타내게 된 것은 외형적인 주님의 그
삭개오를 긍휼히 여기시는 바로 인간적인 사랑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비하고도 귀한 신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인되어지고
접촉 되어져서 만나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인간적인 사랑은 신성한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한 사랑이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아름다운 미덕들 삶을
나타내고 있는 그분의 삶을 갖게 하는 그러한 인성 안에 강화되어지고 능력을 받고 부요해지고 온전케 된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신성한 어떤 큰 놀라운 귀하고도 신비한 사랑을 삭개오에게 접촉하여져서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삭개오를 만난 그 구주의 인간적인 그 사랑 안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신성한 전지전능하신 어떤 그 이상의 신비한 그분의
어떤 놀라운 사랑과 생명이 존재했기 때문에 삭개오가 즉각적으로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인간적인 어떤 사랑을 통해서 나타난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그 미덕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진 것은 뛰어난
신성한 속성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고 행함을 통하여 마주함을 통하여 접촉함을 통하여 나타나져서 그분의
인간적인 미덕들을 강화시킨 그 신성한 속성들로 인하여 나타나진 것이 신성한 전지전능하심 이상의 어떤 신성한 사랑과
신성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비한 그 신성한 생명의 속성들과 신성한 생명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인하여 능력 있게 된 인간적인 미덕들을 삭개오에게 보여 나타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삭개오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12살 때 주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12살이셨을 때 아주 적은 나이에 불과한 인간적인 아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장 49절과 51절, 52절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2: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분은 참 하나님이셨고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사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2살 때 예수님의 행적을 통하여 그 12살 된 예수님께는 신성한 그 어떤 우리가 영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그 신성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이 그분의 12살 된 아주 소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적인 생명 속에 하나님의 속성들이 표현되어져서
나타내진 것이 바로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는 이러한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들이
주 예수님의 12살 된 삶을 통하여 바로 신성한 속성들이 일시적으로 아주 조그마한 부분으로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참 사람의 생명을 사셨지만 그분의 참 사람의 생명 안에서 신성한 요소와 신성한 요인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사람의 생명을 사시고 인간의 본성을 사시고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아름다운 미덕을 통해서 외형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사셨지만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그 생명 안에서 신성한 요소와 신성한 요인들을 지니신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을 표현하지 않고 참 사람의 생명을 사셨지만 신성한 요소와 신성한 요인들을 가지신 구주께서는 사람을
표현하는 대신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람의 생명이며 삶을 사신 구주의 삶의 모습이요 행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 행적과 구주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기관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감정 역시 참 생명이신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그 생각과 의지와 감정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감정으로 나타내진 하나님의 신적인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삶 속에서 그분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지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기관으로 그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사용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장갑 안에 있는 손가락처럼 장갑 안에 살아있는 손가락의 내용과 실제가 들어가 있지 않는다면 장갑은 무용지물이 되어서 살아 역사하는 모양을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그 생각과 구주의 그 의지와 감정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요 기관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그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담기 위하여 사람의 본성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은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담는 기관으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나타내고 표현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님이 가지신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로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기
위한 껍데기와 같은 그러한 형상이 되어진 것이라고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기록되어 있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에 의하여 바로 구주의 본성 안에 있는
곧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은 하나님의 그 속성의 특징적인 4가지 가장 큰 특징적인 요인으로 나타난 사랑과
빛남과 거룩함과 의로움을 담아낼 수 있는 창조된 껍질이요 형상이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의 미덕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하나님 사람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가지고 계신 구주의 인성 안에 있는 사람의
미덕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삶 속에서 나타나 보여지고 표현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바로 사람의 본성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기 위한 껍질인 형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형상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속 부분이 형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성인 사람의 미덕들로서 이 사람의 미덕들이 하나님이 사람의 삶 속에서
나타나 표현되어질 수 있도록 형상이 된 것이 사람의 미덕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미덕들은 곧 껍질인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그릇과 같은 기관과 같은 존재가 바로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라고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 인간적인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믿음 또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기관이요 그릇이요 껍질이요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삶 속에 표현될 수 있도록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의 미덕인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그러한
미덕을 통해서 곧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왜 성육신 하셔서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왜 땅에서 반드시 사셨어야만 되는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온전하고도 완전한 구속을 이루려고 죽으시기 전에 성육신 하셔서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땅에서 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성들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한 사람의 미덕들이 신성한 속성들을
정상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그러한 기간의 단계를 거치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이 짧은 시간에 연단되어지고 성장되어지고 조성되어졌다라면
짧은 시간을 통해서 신속한 속성들이 성숙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이 신성한 속성들을 그 아기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표현될 수 있었을까요? 절대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요? 그분께서는 그분의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인간의 미덕들이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바로 사람의 30년이라는 기간의 성장을 가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삶 속에 신성한 속성들이
표현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2살 때 일시적으로 표현되어진 그분의 모습을 우리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것을 알지 못했습니까?
왜 나를 찾습니까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분의 삶 속에서 12살 때에 나타나 보여 표현될 수 있는 신성한 속성들이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30세가 되어서 주님께서 신성한 속성들이 완전히 성숙되어지고 성장되어져서 온전케 됨으로 말미암아 그제부터서야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주님께서 그 아담을 지으셨을 때 이 어린 아이와 유아의 시기와 소년의 시기와 청년의 시기 장년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 그 아담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담은 이러한 삶 속에서 신성한 하나님의 속성들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나타내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는 존재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뱀으로 변신한 마귀에 의해서 실패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인
바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생명나무를 통해서 가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둘째 사람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 일을 성취하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구주의 삶 속에는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해지고 완전해지는 이 신성한 속성들이 정상적으로 발휘되고 기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30세의 나이까지 기다리셨어야만 됩니다.그것이 레위기서에 기록돼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돌보는 레위 족속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봉사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나이 30세부터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 레위기서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말씀에 따라 그분의 삶을 통하여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히 빛나지고 온전히 나타나지고 온전히 고양되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그 30년 동안의
인생의 기간을 사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짧은 시간에 땅에 사셔서 만약에 10년을 사셨다든가 뭐 15년 20년 이렇게 사셨다라면 그분의 삶 속에
나타나지는 신성한 속성들이 마치 일시적으로 표현되어져서 나타나지만 신기루처럼 무지개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구주의 온전치 못한 신성한 속성들의 표현이기 때문에 온전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분의 삶 속에서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히 표현되어져서 나타내지기 위해서는 그 33년 반 동안의
땅에 사시는 삶의 기간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시는 동안에 그분은 어떤 결격 사유나 흠이나 부족함이나 모자람이나 잘못됨이나 점도
없는 어떤 불완전한 것이 결코 전혀 없음이 증명되신 것이 30년 동안의 세월이라는 것이며 30년 동안의 이것이 갈고닦아지고
연단되어지고 정말 빛나지고 온전해지고 완전해짐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삶 속에서 신성한 속성들을 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구주의 자격과 신분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30년이라는 이 긴 세월과 3년 반 동안에 공생애의 기간인 33년 반 동안에 땅에 사시는 일을 통하여 흠이나 불완전한 것이
완전히 없게 되셨을 때 십자가 위에서 그 구속의 피를 흘리심을 통하여 구속하는 피의 영원한 효능을 갖게 하여서 타락한
모든 피조물들을 구속하시는 데 필요한 완전한 참사람의 합당한 피가 신성한 그 아들이라는 명칭을 가지신 주님의 신성을
통하여 그 구속하는 피의 영원한 효능을 보장하는 것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삶이 절대 실패하지 않고 온전히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성취하고 이루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우리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셨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이 불완전한 것으로서 실패하는 삶이 아니라 온전하고도 완전한 성공적이고도 성취하는 삶을 통한
인생을 사셨다는 것을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전 우주에 바로 공개적으로 증명 하신 것이 바로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구주의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은 하나님의 속성들의 표현을 위한 형상이었고 기관이었고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인간적인
미덕들의 삶을 통해서 표현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인간적인 미덕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표현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람의 삶을 온전히 사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그리스도가 되는 자격을 온전히
조성되어진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미덕들의 삶 속에서 신성한 속성들이 온전케 된 이 삶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 대한 모델이
되시고 원형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믿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고 원형을 조성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조성을 통하여 이 믿는 자들에게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그리스도의 신분과 그리스도의 자격을 조성한 완전하고도 온전한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이 원형된 이 삶을 통하여 구주의 인성 안에 있는 미덕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진 이 원형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안에 하나님 사람을 똑같이 복사품으로 복사물로써 대량으로 산출하고 재산출하기 위한 일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구주께서 하나님 사람으로서 사신 삶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 되어 생명으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인 하나님의 아들들로 바로 재산출될 수 있도록 하나의 원형으로 조성한 것이 바로 그분의 믿는 이들에 대한 원형과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자격을 조성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사람이시고 온전한 구주가 될 신분과 자격을 가지시고
조성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똑같은 복사품이 될 수 있도록 원형을 조성하였다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서 오늘의 모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