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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생명 빛 비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말씀/ 요한복음 14:1-14
요절/ 요한복음 14:6
예수님과 나의 비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쥐를 보고서 평화와 박애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를 생각해 냈습니다. 좋은 비전을 품은 사람은 바른 지도를 가진 사람과 같습니다. 지도는 전체를 보여 주고, 방향을 보여 줍니다. 틀린 지도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태도가 긍정적이고 믿음이 강해도 지도가 바르지 않다면 그 결과는 잘못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른 지도가 있다면 그 모든 노력과 헌신과 방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비전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인생의 지도를 잃어버린 시대요,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인생의 올바른 지도를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비전이 넘치며,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비전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13장 말씀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내가 잠시 후 너희 곁을 떠날 것이라’,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앞에 제자들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마태는 고수익이 보장되는 세관직장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올인 하였습니다. 그들이 올인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의 장래를 책임져 주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장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시지 않은 채 그들 곁을 떠나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저축해 놓은 돈도 없었고, 직장도 없었고, 거처할 집도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에게는 결혼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장래문제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해진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1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제자들이 근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답답했을 것입니다. 답이 너무나 틀에 박힌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이나 목자님이 ‘기도하세요’와 같은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보시기에 제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많은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표적을 보이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인 자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그가 하신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사건만 보았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은 갖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제자들과 같은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수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질병 가운데 고쳐 주셨습니다. 또 어떤 이는 사고 가운데 살려 주셨습니다. 직장도 주셨고, 시험에도 합격하게 하셨고, 좋은 성적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였던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참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많은 은혜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우리의 앞길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완전무결하신 선하신 뜻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근심에서 벗어나 평강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합니다.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근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육신의 모습이 아닌 영의 모습으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시는 이유는 새로운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다시 오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집에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고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집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약속된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인격적인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청결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새로운 성전시대를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제 새로운 성전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하나님의 새 백성들이 새로운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 속에 성령 하나님이 영원히 머물며 거하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근심과 두려움과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시고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사 우리를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으로 빚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어떤 근심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성전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제자들의 근본적인 근심의 원인은 길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아직도 인생의 길에 대해 알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도 없다고 합니다. 생각한들 뭐가 나오냐고 합니다.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너무나도 귀하고 값진 인생입니다. 이 인생을 그냥 아무런 의미와 생각 없이 산다는 건 내 인생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건 아닐까요? 인생의 올바른 방향과 길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분명한 삶, 도전하고 정복하는 비전의 삶을 살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지는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까? 목적지에 바르게 도달하려면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근심하며 이리 저리 헤매다 목적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산으로 버섯을 따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물줄기를 따라가면 바다가 나오고 마을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산에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작은 물줄기는 점점 커져 깊은 계곡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을은 나오지 않았고 갈수록 물은 깊어졌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죽게 된 상황 앞에 목 놓아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교회에 빵 먹으러 갔던 제가 길을 잃고 죽을 고비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집에 돌아가게 해 달라고 길을 찾게 해 달라고 그러면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눈을 떠 보니 작고 좁은 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갔을 때 마을이 나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무엇보다 올바른 길을 잘 찾아야 합니다. 깊은 바다 속을 가기 위해선 심해 잠수정을 타야 합니다. 잠수정을 타지 않고는 다른 방법으로 심해까지 갈수 없습니다. 우주정거장에 가기 위해선 우주선을 타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걸어서, 자동차로, 기차로 비행기로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우주선을 타야만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은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는 유일무이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길을 가르쳐 주시는 안내자일 뿐만 아니라 그 길 자체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디모데전서 2:5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인간은 죄 속에서 살다가 죽고 영원한 파멸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종교나 도덕이나 법도 죄의 사슬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예수님께서 새로운 산 길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신 유일한 길 되신 예수님을 높이 찬양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진리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이며, 왜 나의 영혼은 목마르며, 어두우며, 무력하며, 자유가 없으며, 고통하며, 방황하는 존재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영혼의 목마름과 어둠과 무력함과 부자유와 고통과 무지와 방황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곧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본인 자신이 죽은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살아났습니다. 그 영혼이 살아나고 소생케 되는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김스마일 목동은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얼굴은 어두웠고 생각 또한 부정적 이였습니다. 몸도 매우 말랐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명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영혼이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얼굴이 환해졌고 생각 또한 믿음의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인생이 가야할 목적지가 하나님이라는 말에 빌립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정말 근심하지 않고 잘 믿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립의 요구에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으나 거룩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신비한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광명의 천사도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써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고, 성령이 함께하며 길 되신 예수님을 알 때 근심의 어두움은 그 어디에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근심 대신 이제는 비전과 소망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병을 고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도록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와 똑같은 일을 할 것이요, 이 보다 큰 일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제자들이 무슨 수로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면 예수님이 행하겠다 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렇게 연약하고 근심 많던 제자들이 담대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담대한 정도가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는 하루 동안에 3천명을 회심시켰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옥문을 열고 걸어서 나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라는 죽은 여자를 살려내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기도했을 때에 이처럼 크고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세계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겨우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일하셨지만 제자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복음역사를 감당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계속해서 예수님의 그늘에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근심은 적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호아래 안정된 제자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곁을 떠나시고 그들이 오직 예수님만 믿고 기도에 매달리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자기들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크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하신 이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큰 인물로 키우고자 하는 비전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고 키워주고 도와주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원하시며 그의 영광이 들어나길 원하십니다. 나를 통해 죄와 죽음으로 고통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캠퍼스와 전 세계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통해 강대한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으키고자 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고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나를 향한 예수님의 비전을 다시 붙잡고 일어나야 겠습니다. 비전 없이 살아가는 자는 동물원의 원숭이와도 같습니다. 보호된 환경 속에서 던져주는 음식이나 받아먹으며 아무 근심도 없이 고난 없이 살아갑니다. 당장에는 좋아 보이나 아무런 희망도 변화도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좀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밀림의 호랑이와 같이 긍지를 갖고 표호하며 청년의 기상을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저것 계산하면서 근심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도전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평생 사소한 일로 근심하며 졸장부같이 살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품고 도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많은 방황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여름수양회 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이런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리라” 말씀으로 사람 낚는 어부,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졸업 후 예수님께 all in 하였습니다. 좋은 스카웃 제의도 들어왔지만 눈에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좋았고 예수님과 같이 사람을 돕고 섬기며 살리는 삶이 좋았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돈이 없지 믿음이 없냐 하며,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해 살고자 하였습니다. 양들과의 만남은 즐거웠고 일대일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들이 자꾸 떠나갔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떠나갔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all in 하였는데 떠나가기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근심과 회의가 들어 이제는 내 자신이 떠나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양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항상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참된 위로와 소망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지극히 큰 상급이요 방패가 바로 예수님 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도록 도우셨습니다. 양들을 통해 인정받고 목마름을 채우고자 했던 자에게 예수님만이 모든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실패로 인해 어두움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에게 참 빛이 되사 밝은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떠나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하는 가운데 길 되신 예수님을 통해 다른 길이 아닌 참된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 예수님만을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아무런 열매가 없어도 보이는 것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말씀만을 믿고 따라 살고자 결단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했을 때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생기니 자유 하였고 소망이 되었고 비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복의 근원된 가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이를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저의 이름은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하사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자와 함께 하사 저와 일대일한 그 어떤 사람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친히 이 비전을 이루어 가십니다. 기도의 능력으로 생명을 구하고 강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황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