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함께』(작사 고 향, 작곡 남국인)는 1972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린 「남 진」이 부른 곡으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하면서 어린아이들도 모두 따라하는
노래가 되어 장기 자랑 시간은 물론 하루 종일 레코드 가게
에서 흘러나와 거리엔 온통 『님과 함께』가 울려 퍼졌습니다.
게다가 이 곡의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떼 창'을 할 때는
중간에 "짜짜라 짜라짜짜~" 하는 후렴을 만들어 넣어 부르다
이 후렴구 조차도 바꿔서 "지x하고xxx졌네"등 이상한 노래로
만들곤 했던 곡입니다.
『님과 함께』는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되고 불길 같이 타오르던 "새마을 운동"과 맥을 같이해 온
국민의 "희망가"로 정부 정책과도 잘 맞아 떨어진 곡이었으며,
더구나 단절된 남북교류가 물꼬를 트고, 적십자 회담과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기대와 희망이 넘치던 시기와도 잘
어울린 곡이었죠.
1967년 「남 진」은 "가슴 아프게"와 "우수", "그리움은 가슴마다"
등 드라마와 영화의 주제곡을 부르고 영화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 몰이를 하게 됩니다. 인기가 절정에 있을 때 군에 입대하게
된 그는 1968년 해병대의 비호(庇護) 아래 '연예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연예 활동을 하다가 언론에서 문제가 되자 당시 함께 복무
중이던 '진송남', '박일남'과 월남 파병으로 2년을 참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그의 음악적 방향도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월남에서
돌아오니 함께 작업을 하던 작곡가 '박춘석'은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던 '나훈아'와 손잡고 있었던 것.
더구나 월남 파병에서 미군들과의 교류와 미국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던 「남 진」의 음악 성향은 처음부터 그가 추구했던 락 스타일로
전환되면서 영화 주제가가 아닌 밝고 빠른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마음이 고와야지", "너와 나", "그대여 변치마오", "젊은 초원 ",
"님과 함께" 같은 곡들로 바뀌면서 팬층도 과거 영화를 좋아하던
중장년 층 에서 젊은 층으로 완전히 바뀌며 특히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오빠부대를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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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 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 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 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 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