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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파사디나, 캘리포니아
- 개장: 1923년 1월 1일
햇빛 찬란한 캘리포니아의 축구 열기
유서깊은 축구 경기장이 없는 미국이 1994 FIFA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예외적이었다. 그러나 한 달 간 진행된 극적인 국제 행사와 생동감 넘치는 수많은 관중들 덕분에 결국 세계의 이목은 1994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로즈 볼 경기장으로 집중되었다.
로스앤젤레스 북쪽 산 가브리엘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이 오래되고 우아한 경기장은 94,19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각기 월드컵 우승을 세 번씩 거머쥐었던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화려한 결승전이 벌어졌던 곳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맥빠진 경기 끝에 브라질이 승부차기를 통해 네 번째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 세 번째 우승 후 줄리메컵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 이후 결국 브라질은 또 다시 FIFA 월드컵 트로피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이 경기의 진정한 스타였던 호마리우와 로베르토 바지오의 대결은 바지오의 승부차기 실축에 대한 것 말고는 비교적 조용했다. 어쨌든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관중들은 햇빛 아래에서 썬탠을 즐겼고 분위기는 긴장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축제 같았다.
'메이저 리그' 경기장
© AFP 로즈 볼 경기장은 화려한 헐리우드와 불과 수십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주목을 받곤 했다. 1994 FIFA 월드컵 뿐만 아니라 1984년 올림픽 축구 경기 결승전도 로즈 볼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이때 101,799명의 관중이 프랑스가 브라질에 2-0으로 승리하는 것을 관전했다.
월드컵 미니상식
- 원래 로즈 볼 경기장은 57,000 좌석을 갖추고 남쪽 끝이 열려 있는 말굽 모양의 경기장이었고 건설하는 데 미화 27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었다. 1928년 좌석을 76,000석으로 늘렸고, 다시 1932년(83,000석), 1949년(100,800석) 및 1972년(105,000)에도 확장했다. 현재는 대략 93,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데 1973년 미식 축구 경기를 관전한 관중 수는 거의 107,000명에 달했다.
- 로즈 볼 경기장의 좌석은 약 77열로 되어 있다.
- 경기장 둘레 펜스의 길이는 1.6킬로미터에 달한다.
- 경기장과 펜스 사이에는 100여종의 다양한 장미 넝쿨이 우거져 있다.
- 1994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FIFA 월드컵 결승전 가운데 승부차기로 승리가 결정된 유일한 경기였다.
로즈 볼은 또한 그 유명한 1999 FIIFA 월드컵여자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렸던 곳으로 이때 승부차기로 개최국인 미국이 중국에 승리를 거두었다. 90,000명이 넘는 관중이 이 경기를 지켜보았고 이 경기는 지금까지 여자 축구 가운데 백미로 손꼽힌다. 이 경기장에서는 미식 축구 슈퍼볼 경기도 가끔 열리지만 미국에서는 대학 미식 축구가 열리는 곳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22년 완공된 로즈볼 경기장은 수용 인원이 수 년에 만에 처음 57,000명에서 90,000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형태도 원래의 말굽 모양으로 타원형으로 바뀌었고 원래 미식 축구 경기장이였던 것이 점차 그 용도도 확장되었다. 수많은 쇼와 콘서트, 세계 최대의 '노천 시장' 및 수많은 국제 축구 경기가 열려 많은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로즈볼 경기장은 수십 년간 메이저 리그 축구 팀인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의 홈 경기장이었으며 미국 국가 대표팀 정기전 뿐만 아니라 멕시코나 다른 중앙 아메리카 지역 국가 팀들과 많은 부류의 응원단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응원단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스페인어권 응원단들과의 대결은 보통 피하지만 미국은 로즈볼에서 15차례의 경기를 가졌고 단 세 경기에서만 패했다.
그 중 첫 번째 패배가 1994년 6월 26일에 있었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였는데 미국은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1-0 패배를 맛보았다. 그보다 4일 전 미국은 같은 경기장에서 예상을 깨고 콜롬비아를 2-1로 이겼다. 93,000여명의 관중들이 1950년 이후 FIFA 월드컵에서 미국의 첫 승리를 지켜보았고 이 젊은 팀이 영광스러운 승리를 따냈을 때 기쁨의 함성이 이들을 뒤덮었다. 한편 수치스러운 자책골을 넣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그 직후 살해되었다.
잊지 못할 순간들
© AP 물론 로즈볼에서 있었던 축구 경기에 대한 일화들이 모두 그렇게 암울한 것만은 아니며 미 대륙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94 FIFA 월드컵 2라운드에서 루마니아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3-2의 값진 승리를 거둔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일리에 두미트레스쿠는 이날 알비셀레스테(아르헨티나)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가 왼쪽에서 찬 프리킥이 포물선을 그리며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이스라스 머리 너머로 떨어진 순간 그날의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었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페널티를 통해 그의 통산 네 번째 골이자 이번 경기의 마지막 골로 동점을 만들어 냈지만 두미트레스쿠가 후반전 들어 단 18분에 교묘하게 다시 한 골을 성공시켰다.
두 팀 간의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경기가 계속되고 로즈볼 관중들은 또 다시 마술과 같은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데, 두미트레스쿠는 세 명의 수비수를 돌파하고 게오르그 하지에게 완벽하게 볼을 꽂아 준 것이다. 이 경기의 또 한 명의 스타인 게오르그 하지는 그의 오른발 강슛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스탠드에서 이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아벨 발보가 다시 한 골을 추가함으로써 경기의 마지막 15분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결국 두 차례나 우승 경력이 있는 아르헨티나의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결말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 AP 파사데나의 이 경기장에서 다크호스 스웨덴도 결국 준결승에서 호마리우의 다섯 번째 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웨덴의 요나스 슈테른이 퇴장당함으로써 브라질의 사기는 더욱 치솟았고 이 작지만 눈부신 스트라이커는 보기 드문 헤딩 골로 그 기쁨을 배가시켰다.
결승전은 그다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부상을 당한 바지오가 머리를 감싸고 있던 모습, 손에 손을 맞잡고 승리를 자축하던 브라질 사람들, 사력을 다해 뛰었으나 페널티 킥 실축으로 눈물을 흘리던 노장 리베로 프랑코 바레시의 모습 등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로즈 볼 경기장의 세련된 벽에 걸려 있던 깃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축구의 역사를 만들자(Making soccer history)."
훨씬 규모가 작은 축구 전용 구장인 홈 데포 센터가 로스앤젤레스 남쪽에 건설됨으로써 국제적인 스포츠 전당으로서 로즈 볼의 광채가 바래긴 했지만 전세계 축구의 태양이 비추었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개최대회
- 1994 FIFA 월드컵 결승전(브라질 0-0 이탈리아 - 3:2 PSO)
- 1994 FIFA 월드컵 3-4위전(스웨덴 4-0 불가리아)
- 1994 FIFA 월드컵 준결승전(스웨덴 0-1 브라질)
- 1994 FIFA 월드컵 16강전(루마니아 3-2 아르헨티나)
- 1994 FIFA 월드컵 조별 경기(4회)
- 1984 올림픽 축구 경기
- 2002 골드컵
- 1999 FIFA 월드컵여자축구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