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 요셉은0 어떻게 그의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외국 상인들에게 자신을 팔아버리고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생각했던 이복형제들, 일찍 어머니를 잃고 형제들 틈에서 어린 나이에 자랐던 그에게 이런 몹쓸 짓을 행한 형제들이 아니었던가? 애굽의 종살이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심지어 누명을 쓰고 옥살이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 무슨 이해할 수 없고 어이없으며 기구한 운명이냐고 한탄하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처지가 바뀌어서 빼앗던 자들이 빼앗기는 자가 되고 죽이던 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요셉의 말 한마디면 순식간에 목이 날아가 버릴 처지가 된 그의 형제들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 형들을 보고 그 정을 억제치 못하고 울었다.
(창 45: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수고와 고통의 시간을 보낸 그 긴 세월이 요셉에게는 어떻게 원한과 악한 감정을 쌓아 온 세월이 아니라 그리움과 사랑으로 보낸 인고의 세월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 상황은 “갈아 마셔도 분이 풀리지 않을” 그런 이복형제들이 아닌가?
(창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그의 형들은 이 충격스러운 고백에 놀라서 뒤로 자빠질뻔했을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죽지 않고 당대 최고의 제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니 이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요셉은 분명히 자신을 가리켜서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그들이 지난 죄악을 상기시켰다. 그 죄를 저지르고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지켜 온 비밀인 요셉 실종 사건의 전말이 마침내 드러났다.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러나 그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요셉이 분명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여기서 두 번이나 하나님의 섭리를 언급했다. 비록 그 형제들이 시기심으로 자신을 애굽에 팔았지만, 그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의 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의 일 이전에 하나님의 섭리가 우선한다. 요셉은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해할 목적으로 그를 애굽에 팔았지만,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요셉을 성숙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애굽의 재상이 되어서 민족을 구원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 그가 어려서 꾼 위대한 꿈을 성취할 수 있게 하셨다.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원한과 미움으로 세월을 보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이들은 자신을 힘들게 한 원수를 사랑하고 고통의 세월을 거슬러 사탄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된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부르심과 보내심의 섭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요셉처럼 위대한 인물로 탄생한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여기 주님의 보내신 가운데 있는 저희가 주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해 소중한 세월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욕에 빠져서 허망한 일들에 목숨을 걸고 정작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는 방관자가 되어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 이 시대의 요셉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세류를 거슬러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고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을 세상의 구원자로 서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섭리를 믿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