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으로 가거라.”(2사무 2,1) - 다윗이 임금으로 세워지다
여섯 번째 이야기 : 2사무 2-5장
다윗이 부하들을 데리고 필리스티아 임금이 준 성읍 치클락에서 망명생활을 한 지 일 년 사 개월 되었을 때 사울 임금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는다.(1사무 27-31장) 다윗은 전쟁의 용사였던 사울과 요나탄의 죽음을 기리면서 ‘활의 노래’(1,19-27)를 지어 부르며 그들을 애도한다. 이제 다윗의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는 지났다. 그는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유다 땅으로 가려는 마음이 들어 주님의 뜻을 묻는다.
“그 뒤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거라.’ 하고 이르셨다. 다윗이 다시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자, 그분께서는 ‘헤브론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2,1)
다윗이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라고 두 차례에 걸쳐 묻는 가운데 서두르지 않는 태도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보다 주님의 계획에 따른 허락을 기다리는 겸허함 때문이다. 다윗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항상 주님께 묻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쭈어 보았다’로 번역된 동사 ‘샤아르’는 ‘묻다’라는 뜻으로 다윗이 주님과 대화하는 사무엘기의 네 가지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크일라에 도피하던 다윗은 사울이 자기 때문에 그 성읍을 파괴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윗은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의 종인 저는…”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면서, 그곳을 떠나야 할지 묻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1사무 23,1-5)
둘째, 다윗과 부하들의 거주지였던 치클락을 아말렉족이 약탈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끌고 간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 때이다. 군사들은 불탄 성읍을 보고 다윗을 탓하며 돌을 던져 죽이자고 수군거린다. 곤경에 처한 다윗은 주님께 이 강도떼를 쫓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는지 여쭙는다. “쫓아가거라. 반드시 따라잡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종일토록 전쟁을 치르고 마침내 모든 것을 도로 찾아온다.(1사무 30,1-20)
셋째, 위에 인용된 단락으로 사울의 죽음 이후의 상황에서 다윗은 주님께 유다 땅에 거주지를 마련해도 되는지, 구체적으로 어디로 정할지 묻는다. 다윗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헤브론으로 거처를 옮긴다. ‘네 개의 성읍’이라는 뜻을 지닌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유서 깊은 곳이며 아브라함, 이사악, 사라 등 이스라엘 성조들의 무덤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다윗에 대한 주님의 계획이 무엇이기에 헤브론으로 그를 보내셨을까?
“다윗은 함께 있던 부하들도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 자리 잡았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와, 거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2,3-4)
헤브론에서 다윗은 비록 유다 지파만을 통치하지만 기름부음받은이로서 군주가 된다. 한편 사울 군대의 장수였던 아브네르는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2,8-9) 서로 다른 임금을 둔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는 가운데 다윗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갈수록 약해진다.
다윗이 유다를 다스린 지 일곱 해가 지났을 때 사울의 장수 아브네르는 이스라엘의 임금인 이스 보셋을 배반한다. 결국 이스 보셋이 내부의 적에게 살해됨으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마음은 다윗에게 기울어진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5,3)
헤브론에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리는 첫 임금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하느님께는 큰 그림이 있었지만 다윗에게는 언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알지 못하는 그림이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때에 따라 묻고 듣는 가운데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었다.
임금이 된 후에도 다윗은 중요한 상황 앞에서 여전히 주님께 묻고 그 뜻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샤아르(묻다)’ 동사가 쓰인 넷째 이야기는 다윗이 임금으로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필리스티아가 그를 잡으려 쳐들어 온 때의 일이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을 치러 올라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주님께서는 “올라가거라. 내가 반드시 필리스티아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라고 답하신다. 다윗은 주님의 지시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적들을 격퇴시키는 대승을 거둔다.(5,17-25)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행위는 ‘듣는 것’이다. 피조물들이 자연법칙에 따라 하느님 뜻을 실현한다면, 인간은 하느님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그분의 협력자가 된다. 하느님께 묻지 않고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묻지 않으며, 그 역도 성립한다. 그는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섬기게 되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먼저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듣는 연습을 해 나가면 어떨까. 주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 뜻을 자주 드러내시니 말이다.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2,1)
-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