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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래 거지떼 아이들이 일곱은 아침밥을
구걸하러 나가고 거지대장 걸보어른 혼자서
움막의 뚫어진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그때 구걸 나갔던 거지 한 녀석이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오자, 걸보어른이 놀라서
눈만 크게 뜨고 있는데, 거지가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 놓았다.
최부잣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대문 옆에
아기가 울고 있어 대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하는 수없이 아기를
안고 왔다고 하였다.
걸보어른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받아 안고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며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에, 걸보어른이 아기를 안고서
최부잣집으로 찾아갔다.
사랑문을 열고서 곰방대를 땅땅 두드리던
최부자가 걸보어른을 보면서 내게는 손자
손녀가 넘쳐나니, 얼어죽든가 던져놓든가
삶아먹든가 썩 꺼지라고 고함쳤다.
걸보어른이 다리 밑으로 돌아오자 배고픈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으며 그날부터
걸보어른과 머리큰 거지 아이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안고 젓동냥을 다녔다.
밤에는 걸보어른이 아기를 안은 채 모닥불
옆에서 밤을 새웠고 두달쯤 지나자 아기가
방긋방긋 귀엽게 웃기 시작하자, 거지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언뜻언뜻 어느 여인이
다리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거지들과
눈을 마주치면 몸을 숨겼으며, 걸보어른은
아기의 어미란 걸 알았다.
어느날 밤에 아기가 울자 걸보어른이 우는
아기에게 젓 한모금을 보내주지 않는 삼신
할미가 너무 무심하다고 하자 움막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걸보어른이 조용히 움막 밖으로 나가 아기
어미를 데리고 들어오자 아기 어미는 와락
아기를 끌어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동안
흐느끼던 여인은 돌아앉아 젓을 물렸다.
어느덧 밤이 깊어 어린 거지들은 깊은잠에
빠졌고, 아기 어미와 걸보어른의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 되었으며 이야기 사이 사이엔
아기 어미의 흐느낌이 채워졌다.
귓볼에 솜털이 가시지 않은 열일곱살 아기
어미 지월은 일찍 어미를 여위었고 아비는
새장가도 가지 않은 채로 지월이를 데리고
훈장 노릇을 하며 떠돌아 다녔다.
지난 겨울 훈장이 숙부상을 당하여 고향에
갔을때 최부자의 셋째 아들 최록이 서당에
잠입하여 훈장의 딸 지월을 덮쳤다.
지월이가 죽은 어미한테서, 받은 은장도로
자신의 목을 겨누자 최록은 눈물을 보이며
지월이와 같이 혼인하지 못하면 이 세상을
등지겠다고 문고리에 목을 맸다.
놀란 지월이가 줄을 끊자 최록은 손가락을
깨물어 지월과 백년해로 하겠다고, 혈서를
썻으며, 꽃피는 춘삼월에 혼례를 올리자는
말을 남기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석달이 지나기 전에 최부자의 셋째 아들이
강건너 권참사 둘째 딸과 혼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퍼졌으며, 설상가상 아버지 훈장이
피까지 토하드니 이승을 하직했다.
어느덧 지월의 배가 불러왔고 혼자 출산을
했으며 한달 후에 포대기에 아기를 싸안고
최부자 대문앞에 아기를 갖다 놓고 멀리서
보다가 움막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거지 아이들의 들뜬 아침이 밝았고 오늘은
최부잣집 잔칫날이며, 평소에 최부잣집에
밥빌러 각설이를 갔다간 거지들의 쪽박이
깨지기 쉽상이다.
하지만, 오늘같은 잔칫날엔 고깃국 한그릇
얻어먹겠지 기대했으며, 아기를 안고 울던
지월이가, 걸보어른에게 큰 절을 올리더니
아기를 안고 홀연히 사라졌다.
걱정을 하던 걸보어른이 열댓살 열여섯살
거지 아이들을 불러서 귓속말을 하였으며
지월이가 최부잣집 안마당 디딜 방앗간에
목을 매자 잔칫판이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거지 아이 둘이서 한녀석은 지월을
안고 다른 한녀석은 낫으로 새끼줄을 끊어
사람은 살려 냈지만, 잔칫집은 아수라장이
되고 새색시가 탄 가마는 되돌아 갔다.
신부측 권참사의 하객으로 따라온 사또가
노하여 지월을 동헌으로 압송하여 형틀에
묶으라고 하자 걸보어른이 앞으로 나와서
지월의 기막힌 사연을 사또에게 고했다.
여봐라! 새신랑을 당장 잡아오렸다!
새신랑 최록은 밧줄에 꽁꽁 묶인채로 오고
그 아비인 최부자는 아들 뒤에서 헐레벌떡
따라왔으며, 최록은 형틀에 묶이기도 전에
사색이 되어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나으리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월이와 혼례를 올리겠습니다.
사또가 지월을 내려다 보자 지월은 당차게
저런 인간과는 혼례를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평생동안 자기의 아들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자 사또가 고함쳤다.
최부자는 백마지기의 논과 함께 돈 천냥을
사흘내로 지월에게 건네주도록 해라!
지월이 사또에게 큰 절을 올리고 걸보어른
거지떼들과 현청 밖으로 나오자, 철썩철썩
곤장을 때리는 소리,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최록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지월이가 다리밑의 움막집에서 오늘부터
걸보어른은 삼촌이고 거지 아이들은 모두
지월이의 동생들이라고 말하자, 움막집은
완전히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넓은 기와집을 마련하여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했으며 이제 우리는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고, 모두가 농삿꾼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와아~~~!!!
- 옮겨온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