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2-9 2 석로釋老 9 야좌간경夜坐看經 밤에 앉아서 불경을 보며
일주향잔추야심一炷香殘秋夜深 한 줌 향은 다 타가고 가을밤은 깊었는데
단성월색교선심蛋聲月色攪禪心 귀뚜라미 소리며 달빛이 禪의 마음 흔들어 주네.
백년인사불가계百年人事不可計 백년 한 세상 사람의 일 헤아릴 수 없고
삼세망연무처심三世妄緣無處尋 삼세三世의 망령된 인연 찾을 곳이 없어라.
정수정수풍로경庭樹正愁風露勁 뜰 나무는 정히 바람 이슬 딱딱한 게 근심되고
산금사화동운침山禽似話洞雲侵 산새는 골 안에 구름 든다 재재거리는 듯
포단지장청어수蒲團紙帳清於水 창포 방석 종이 장막 물보다 더 맑은데
한전선경열고금閑展禪經閱古今 한가히 불경 펴 들고 고금을 열람하네.
한 줌 향은 사위어가고 가을밤은 깊어지는데
귀뚜라미 소리 밝은 달빛이 선정에 든 마음을 흔드네.
백년 사는 사람살이도 헤아릴 길 없고
삼세의 망령된 인연은 찾을 곳이 없구나.
뜰 앞의 나무는 매서운 바람 이슬 근심하듯 고개 숙였고
산새들은 골짜기로 구름이 몰려온다고 알리는 듯 지저귀네.
창포로 만든 방석과 종이 장막이 물보다 더 맑으니
한가롭게 불경을 펼쳐놓고 고금의 일들을 열람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