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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9일 추수 감사절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01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시67:1-7절(구848)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추수 감사에 대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 감사절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와 걱정이 함께 하는 추수 감사절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현재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어려움 가운데서 진정한 감사의 꽃이 피는 법입니다. 우리 추수 감사절의 유래인 1620년경에 미대륙에 도착하였던 영국 청교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를 타고 멀고 위험한 항해 끝에 미대륙에 11월경에 도착하였습니다. 강풍과 눈보라가 치는 혹독한 겨울 추위, 질병과 식량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102명 중에서 생존한 50명은 봄이 돌아오자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그해 가을에 추수하였습니다. 그들은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 추수를 주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쁨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막절(초막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막절은 농업적으로 수확이 끝난 것을 감사하며, 역사적으로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임시로 만든 초막에서 7일간 지내는 것은 사막에서의 궁핍함이나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6a절입니다.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올해의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도 장막절을 맞이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막절에 추수 감사의 노래로 사용되었던 시67편을 통하여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확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어 동사의 시상에는 크게 완료형과 미완료형이 있습니다. 이는 시간적 시상 개념이라기보다는 행동을 나타내는 시상입니다. ‘완료형’은 행동이 완료된 것이기에 주로 과거의 사실, 또는 확실한 미래(하나님의 약속이나 예언)에 사용되며, ‘미완료형’은 행동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이기에 가능한 일, 동작의 진행, 또는 현재와 미래의 시제로 사용됩니다.)
시67편에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6a)만이 오직 완료형이며, 나머지 동사는 다 미완료형입니다. 그래서 시67편의 미완료형 동사들을 학자들에 따라 현재(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현재 완료(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미래형(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등등으로 다양하게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67편에서 3절과 5절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6a절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재나 미래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아브라함 언약(복음)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선포하기를 원합니다(1-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우리말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로 이해하여 1-2절의 미완료형 동사를 간접 명령 형태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사가 문장 첫머리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히브리어 문장구조에서 1절처럼 하나님(엘로힘)이 문장 첫머리에 도치되어 강조된 주어로 나타나 있기에 1절을 하나님께 간구로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이스라엘) 자신에게 선포(예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은 2절을 1절에 이어서 계속 간구로 번역하였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 전치사 ‘레’와 ‘부정사(알리소서)’가 연결되어 사용되면 주로 목적을 나타내기에 ‘알리소서(라디아트)’(2)는 1절에서 사용된 세 개의 동사들의 목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즉 ‘알려지도록’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1-2절을 우리(이스라엘) 자신에게 선포하는 내용으로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가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것입니다. 셀라. 당신(주)의 도가 땅 위에, 당신(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 위에 알려지도록.” 여기서 목적 부정사로 사용된 동사 ‘알려지도록(야다)’(2)은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이해한 ‘앎’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실 것이며,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하나님(1)은 ‘땅이 그의 소산을 내게 하신’(6a) 창조주(엘로힘)이십니다. 땅에서 오곡백과 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땅에서 나게 하신 다양한 과일 색깔들을 보세요.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답습니까?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창조주가 우리(이스라엘)에게 누구시라고 합니까? 시편 기자는 땅이 그의 소산을 내게 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엘로힘)’을 ‘우리 하나님(엘로헤누)’ 곧 언약의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6).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특별한 소유(출19:5)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우리의 언약 하나님(여호와 또는 주)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실 것이며,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것입니다(1). 이것은 우리(이스라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기 위해서(2)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위한 이 선교적 목적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며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의 은혜와 복, 그리고 우리 위에 비추시는 그의 얼굴은(1) ‘주의 도’와 ‘주의 구원’(2)입니다. 여기서 ‘주의 도’는 그의 율법입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우리를 통하여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을 알게 된다는 것은 ‘주의 율법을 순종하는 우리’를 통하여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도’는 우리의 성화 구원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선교의 방법(원심적 선교)입니다. 이것, 즉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 없으면,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할 권위(구심적 선교)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근거는 우리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그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것도 그의 은혜가 전제됩니다. 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출33:20).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의 얼굴을 보고 산다는 것(그와 연합)은 그의 크신 은혜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엄청난 은혜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며,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후4:6-7절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우리는 보배, 즉 예수의 부활 생명의 사람이며(고후4:8-12), 세상의 빛(마5:14)입니다. 믿는 우리는 성화 구원이 이루어지는 새 언약(복음)의 사람입니다. 고후3:16-18절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도 여러분, 땅의 모든 민족을 위해서, 즉 “주의 도가 땅 위에, 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 위에 알려지도록”(2) 우리가 믿음으로 주께로 돌아가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이것을 하실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신약을 통하여 주 예수의 복음(새 언약)을 밝히 알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구약의 이스라엘의 시67:1-2절의 확신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은혜 언약’을 통해서입니다. 창12:2-3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바벨탑의 심판을 받은 인류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될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 언약의 하나님에게 의롭지 않은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게 의로운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갈3:13-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갈3:13)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아브라함과 그리스도)에게 ‘너는 복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약속들에 대하여 하나님만 생명의 맹세하신 아브라함 언약, 즉 그에게는 오직 믿음만을 요구하는 은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창15:17-18).
그러므로 육신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갈3:7), 아브라함 언약의 사람들입니다. 갈3:29절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신 주 예수의 복음(새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 하나님이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며,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예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천지가 흔들려도 아브라함 언약(복음)에 따라 우리는 그 언약대로 되는 하나님의 복 자체이며, 땅의 모든 민족에게 그 복의 통로(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1-2절(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 하나님께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3-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왜냐하면)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여기서 3절과 5절은 4절을 감싸고 있는 같은 내용입니다. 3절과 5절은 1-2절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며, 4절은 1-2절의 결과와 3절과 5절의 기도 응답의 결과입니다.
먼저 3절과 5절의 간구입니다.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을 우리 위에 비추사, 그런 우리를 통하여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은혜의 구원을 받아 주를 찬송하게 하시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복음적 기도요, 세상을 위한 선교적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언약을 바로 알고 이 기도를 하였다면, 장막절 마지막 날(10월 7일)에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도 아마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에 대한 희생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의 사람과 세상에 그 복의 통로로서 복음의 약속에 근거하여 세상(심지어 우리의 원수)을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기도에 대한 우리의 확신입니다(4a).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 것입니다.” 여기 ‘온 백성’은 우리를 통해 주의 도와 주의 구원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 즉 주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들이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이유는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4b). 여기서도 ‘민족들’은 우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민족들입니다.
주가 그들을 공평히 심판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기쁘고 즐겁게 주를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 대한 주의 공평한 심판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율법 언약에 따라 공평히 저주의 심판을 받았다면,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의롭다’라는 그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기쁘고 즐겁게 주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주의 공평한 심판일까요? 언약적으로 그들을 대표하신 그리스도가 그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롬3:25-26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그의 정죄함(심판)이 없으니(롬8:1), 기뻐 감사하며 즐겁게 주를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유는 “(주는)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c).
여기서도 ‘땅 위의 나라들’은 우리를 통하여 주의 구원을 받은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다(타느헴)’는 ‘인도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나하’의 사역형입니다.
시23:1-3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주(왕, 목자)로서 우리를 전적으로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 감사하며 즐겁게 주를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게 아브라함 언약(주 예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선포하기를 원합니다(6-7).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여기서 ‘땅의 모든 끝’(7)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것(6-7)은 1-5절의 요약적 결론입니다. 즉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그 결과로 땅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우리 자신에게 아브라함 언약(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 언약(복음)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확신이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6a)라는 사실(증거)에 근거합니다(레26:3-4). 즉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라는 사실(노아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복음)대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땅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라는 증거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주 예수의 복음)의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올해도 신실하게 땅이 그의 소산(오곡백과)을 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시67편을 통하여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리 현재 상황이 암울하다고 해도 우리에게 주 예수의 복음(새 언약)이 있기에 절대 소망 중에 기뻐 감사하며 즐겁게 우리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 예수의 복음(새 언약)대로 되는 복(영생)의 사람이며, 심지어 세상 사람에게 그 복(영생)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땅에서 내신 오곡백과를 보실 때마다, 사과, 귤 하나라도 드실 때마다 감사함으로 주 예수의 복음(새 언약)을 기억하시고 선포하시며,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아무리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됩니다. 이것이 2023년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강한 외침입니다.
찬송 588장을 부르시고 성찬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