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13-18 상처와 니즈가 해결되면 거칠 것이 없다[담대해진다]
1. 문제제기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야겠다고 말씀하셨다(10). 모세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말이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거절했다. 그것도 5번씩이나. 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해야만 했을까?
2. 해결, 복음제시
모세는 막상 부름을 받고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에 큰 차이[gab]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바로를 비교해 보았을 때, 하늘과 땅 차이를 느꼈다. 강력한 군대와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바로에 비해 자신은 너무 초라했다. 어떤 군대도 권력도 지지자들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어졌다.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막강 바로의 손에서 형편없는 미디안의 일개 목자에 불과한 내가 무슨 수로 동족을 구출할 수 있겠는가!’이다. 해 보나 마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100% 불가능하다. 그리고 ‘40년 전 모든 권력과 능력을 쥐고 있어도 이스라엘 동족들의 마음을 살 수 없었는데, 보잘것없는 양치기에 불과한 내가 무슨 수로 이들을 설득할 수 있으며, 무려 40년 동안 동족들과 관계를 끊고 살았는데 어떻게 이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비관적인 하지만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으로 느껴졌다. 40년 전 냉정하게 동족들에게 배척당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모세를 괴롭혔다. 이런 상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게 했다. 그래서 그가 던진 첫 마디가 자기비하적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말이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3:11)
그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3:12)고 말씀해 주셨다. 모세의 생각이 조금은 바뀐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하면 그이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3:13) 가보겠는데 현장에서 부딪치는 이름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야훼+아도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말하라”(3:14,15)고 대답해 주셨다. 더 나아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출애굽할 땐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제시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시나리오가 어디 있겠는가! 시험 보기 전에 답안지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워서 떡 먹기였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모세는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모세는 다시 이스라엘 동족에 대한 트라우마가 올라왔다. 동족들의 거부와 배척, 이로 인한 애굽에서의 불가피한 탈출, 초라한 양치기의 삶 등. 그리고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뚜렷한 하나님의 증거가 없었다. 그러자 모세는 생각을 틀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4:1) 40년 전 모세를 거부하고 배척했던 동족들이 이번에도 똑같이 자신을 거부할 것이라는 상처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상처는 세월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다.
하나님은 이런 의심과 불신을 지워버릴 수 있는 3가지 기적을 보여주신다. ❶지팡이 기적, ❷한센병 기적, ❸피 기적이다. ❶하나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땅이 던지자 뱀이 되었고, 모세는 놀라 피했지만, 하나님이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한 대로 잡자 곧바로 지팡이가 되었다. 뱀은 교활하고 강력한 애굽왕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런 뱀 같은 애굽 왕도 모세의 손안에 있음을 기적을 통해 보여주셨다. 원래 뱀을 잡으려면 꼬리가 아니라 머리를 잡아야 한다. 꼬리를 잡으면 뱀에게 물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있는 한 뱀의 꼬리를 잡아도 어떤 방해도, 피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❷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의 손을 품에 넣었다 빼보니 한센병이 생겼다. 불치병이다. 이는 애굽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처절한 노예 생활을 말해준다. 그러나 하나님 명령대로 다시 손을 품에 넣어다 빼보니 본래 살로 돌아왔다. 이는 하나님이 노예 생활과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구할 것임을 보여주셨다. ❸이 2가지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면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줄이다. 풍년을 가져다주는 농업용수이며 동시에 하피[hapi] 신이었다. 생명의 신 오시리스[osiris]가 보내준 성스러운 물이었다. 그런 물을 피로 만든다는 것은 애굽의 생명줄을 끊고, 신들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결론은 이미 나 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답할 답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출애굽을 시켜야 하는지 매뉴얼도 가지고 있고, 바로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모세를 향한 이스라엘의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3가지나. 그리고 그 기적에는 승리, 구원, 탈출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이 정도면 두려울 게 없다. 이제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모세는 또 틀었다. 말주변이 없다는 것이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4:10) -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려면 애굽 왕 앞에서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말을 해야 하고, 600만 명의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려면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 설득할 수 있는 말재주[언변 실력]가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40년 전 왕자로 있을 땐 어느 정도 말에 능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양만 키우다 보니 그런 능력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4:12)고 말씀하셨다. 그 상황에 적합한 말을 시시때때로 가르쳐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마 10:18-20, 요 14:26) 대박이다. 나에게도 이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4:13)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도 능력인데 사람의 능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계속 거절하는 모세에게 마침내 화를 내셨다. 하지만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아론은 모세를 만나러 나올 것인데, 모세를 보자마자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의 입에 함께 있어 행할 일을 가르쳐 줄 것이니 그 말을 모세는 아론에게 전해주고, 아론은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말하는 대변인이 될 것이고, 아론의 눈에 모세는 하나님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4:14-16). 하나님은 모세의 니즈를 채워주셨다.
이젠 더 이상 변명거리가 없어졌다. 이것은 모세가 40년 동안 무의식 속에서 자라왔던 모든 두려움, 열등감, 자기 비하, 의심, 불신, 염려, 근심 등이 해결[치료]되는 시간이었다. 모세가 5번에 걸쳐 거절한 것은 이런 깊은 상처들 때문이었다. 누구나 상처를 받게 되면 현실의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커지게 된다. 현실의 문제가 더 강력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거절에 대해 책망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해결책을 제시해 주심으로써 그의 깊고 오래된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이런 상처들이 해결되었으니 남은 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정뿐이었다.
여러분의 의문점, 아픔 등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아뢰자. 그리고 동시에 회개하자. 여러분을 평생 괴롭혔던 상처와 악감정이 사라지면 주님의 어떤 말씀도 따르고 싶어진다. 모세처럼 숨기지 말고 다 드러내어 말씀드리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부를 때 모세처럼 거절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속으로는 힘들어하면서 “예”는 아닌 것 같다. 솔직하게 힘든 점을 말씀드리고 주님으로부터 해결 보고 편하고 힘차게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예하고 반응한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모세를 포함하여 갈등한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기드온이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로 순종하지 못했다. ‘큰 산 모세가 죽은 후 그 빈자리를 과연 채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모세의 패턴에 길들어져 있는데 내 말을 들을까? 모세처럼 내가 과연 이스라엘을 이끌 수 있을까?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자 두려웠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강하고 담대하라”를 무려 3번씩이나 말씀하셨다(수 1:6,7,9). 그리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면 평탄하고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자 여호수아 안에 있던 두려움, 근심, 걱정이 떠나고 담대함으로 바뀌었다. 여러분의 복잡한 감정과 상처를 회개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두렵게만 보였던 삶에 자신감이 생긴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사자가 포도주 틀에서 미디안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도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의문점을 제기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미디안에게 이렇게 당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습니다!”(사 6:13) 주의 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드온에게 “내가 너를 보냈다.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원하라”고 명령했다. 기드온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가? 아니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6:15,17) 곧이 곧대로 하지 않는다. 고기와 무교병을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붓도록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바위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태워버렸다. 이 과정을 통해 그의 고민과 갈등과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병사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기드온은 또 승리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둘 테니 이슬이 양털 한 뭉치에만 있고, 마당에는 없게 해주시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는 것으로 알겠다고 기도했다. 그대로 되었다. 기드온은 자기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는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다시 한번 기도했다. “이번엔 양털 뭉치만 마르고 땅은 이슬이 젖게 해 주십시오”(6:39) 하나님은 그대로 해 주셨다. 그의 의심을 하나님이 기적으로 제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병사들을 돌려 보냈다. 32,000명을 300명으로 만드셨다. 이때 하나님이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7:9)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아멘하고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기드온은 또 두려웠다. ‘300명으로 어떻게?’ 그래서 하나님은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했고, 보초를 서고 있는 적군이 꾼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서 주신 매뉴얼대로 전쟁하여 대승을 거뒀다.
3. 결론 - 상처와 니즈가 해결되면 거칠 것이 없다[담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