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9월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평창터미널 → 평창교 → 갈림길 → 활공장 전망대 → 장암산 → 893봉 → 이정표 → 700 빌리지 갈림길 → 배골 갈림길 → 1,090봉 → 남병산 → 기러기재 → 하한 4리 마을회관' 15km, 6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1
남병산[南屛山]
높이: 1,151m
위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주진리
첩첩산중인 평창의 가리왕산(1,560m)과 이웃하고 있다. 주변에 유명한 오대산, 계방산, 발왕산 등 높고 큰 산이 많아 국도변에 위치하여 있으면서도 지나쳐 버리는 산으로 취급되어 왔으나 인적이 드문 관계로 해묵은 수목이 군락을 이루어 볼 만하다. - 한국의 산하
장암산
높이: 836m
위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장암산은 평창강이 빚어 놓은 예술품이다. 평창군에는 유난히 전인미답의 1,000m급 고봉들이 모여 있다.
장암산은 주변에 남병산(1,149m)을 비롯하여 가리왕산(1,560m), 청옥산(1,256m), 백덕산(1350m) 등이 인접해 있어 그 유명한 산들의 위세에 눌려 이름조차 생소한 산이다.
이 산 서쪽으로는 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속사천을 거쳐 평창강과 남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장암산을 끼고 돌아 산 정상에서 보는 주위 경관이 더욱 수려하다.
장암산은 남병산을 베게 삼아 남북으로 길게 누웠는데 반으로 갈라 북쪽은 장암산이라고 하고 남쪽은 송계산이라고 한다. - 한국의 산하
애초 이번 주 토요산행은 금요 무박으로 진고개, 대관령의 백두대간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확히 내가 원한 건 백두대간이 아니라 그 구간에 있는 해발 1,000m가 넘는 황병산이었지만. 그런데 이 산행은 2021년 1월 16일 예정했던 산행으로 큰 기대를 걸고 2020년 12월 20일 회비를 입금하고 자리를 배정받았었다. 그런데 코로나의 여파와 한파로 취소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성원을 채우지 못해 이번 주 토요일 즉 2021년 5월 29일로 5개월 이상 연기됐었다. 일정이 연기된 것에 크게 불만이 없었던 상태라 그에 맞춰 산행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산행 일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중요한 결혼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산행을 취소해야 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취소하기는 했으나, 일견 크게 아쉽지는 않은 게, 백두대간 팀이 있는 한 그 코스 산행은 일 년에도 몇 번은 진행될 거라는 것과 해서 가능하면 눈 내리는 겨울 가고 싶었다.
내가 원하든 아니든 토요산행이 불가능해 각 산악회 게시판을 뒤지며 적당한 일요산행을 급하게 찾았다. 그때 눈에 띈 게 월 1회 이상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 산행을 진행하나, 대부분 성원 미달로 취소되는 산악회의 계획이다. 그런데 4월 30일 내가 이 산행을 발견할 당시 목적지만 있었지, 아직 구체적인 산행계획이 나오기 전임에도 두 명의 열성 산꾼이 신청한 상태였고, 성원 미달로 취소될 확률이 높았으나 일단 신청했다. 그 산행 계획이 평창 남병산, 장암산 연계 산행이다. 사실 이 산행 계획은 2019년 9월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할 계획을 이미 세워둔 것인데, 산악회가 가겠다니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바였다. 성원을 채울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런데 성원 미달로 취소될 거 같던 이 산행이 이유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5월 27일, 28일 양일간 신청자가 몰리더니 성원을 초과했을 뿐만 아니라,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을 정도의 신청자 숫자를 달성했다. 마감 막판에 몰린 이유가 뭘까? 대단히 궁금하나 확인할 방법이 없는 숙제다! 어쨌든 나야 손쉽게 원하는 산에 갈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는 상황에 5월 29일 토요일 정확히 산행 하루 전날 산악회 주인장이 올린 공지를 보고 오랜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단히 고무된 상태다. 그 공지는 별것이 아니라 날머리 식당이 문을 연다는 거다. 처음 산행을 계획할 때는 산에서 라면을 끓일 생각이었으나, 저 공지를 보고 빨리 달려 점심은 하산 후 먹기로 했다. 고로 과일과 간단한 간편식만 배낭에 넣어 가고, 미세먼지도 없고 날이 화창할 예정이라니, 좀 무겁기는 하나 배낭이 가벼워 줌렌즈와 그에 맞는 카메라를 가져가기로 했다.
2 - 1
특별히 배낭을 쌀 것도 없어 기상하자마자, 냄비에 누룽지와 물을 부어 불리는, 동안 점심으로 먹을 간편식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며 냉동실에서 얼린 결명자차가 든 물병을 꺼냈다. 이후 간편식과 물통을 들고 아지트로 가, 마저 배낭을 싼 후 배낭을 들고 다시 돌아가 누룽지가 든 냄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누룽지가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산악회 버스 좌석과 기상 상태를 확인했다. 어제저녁과 바뀐 건 없었다. 끓인 누룽지를 아침으로 먹은 후 유유자적 이를 닦고 평소보다 늦은 6시 5분경 집을 나섰다. 이번에 평소 산악회가 양재역에서 7시에 출발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 동행하는 산악회는 신사역에서 7시 1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약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물론 거기에 맞춰 평소보다 20분 늦게 기상했지만.
6시 10분경 집을 나서 재개발 구역을 지나, 대조시장을 통과해 불광역으로 향하며, 마을버스의 동향을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동명탕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우를 범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승차장으로 내려가 전철을 기다렸다. 예정대로 6시 27분에 도착한 지하철은 텅텅 비어 있었다. 6시 6분 차는 빈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데 그보다 20분이나 늦은 차가 텅텅 빈다는 것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아마, 6분 차는 대화에서 출발하고, 27분 차는 구파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자리에 앉아 패드로 음악 감상과 독서를 겸하며 신사역으로 달렸다.
6시 56분 신사역에 도착해 전철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 4번 출구로 나가니 각지로 떠나는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등산객의 성지 중 하나인 신사역은 지난 1월 23일 이후 4개월 만이다. 코로나 시절 소규모 산악회의 성원 미달로 신사역에는 거의 올 기회가 없었으나, 코로나가 같이 가야 할 대상으로 굳어지며 산악회가 살아나는 분위기 덕에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라는 생각은 못 하고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릴 생각으로 정류장으로 이동하며 관광버스를 보니 버스 문, 창문에 산악회명과 목적지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남병산, 장암산"이다! 6시 55분에 명동역에서 출발할 예정인 버스가 7시도 안 된 시각에 신사역에 도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깜짝 놀라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다.
비록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신사역에 도착했으나, 출발은 예정대로 7시 10분이 조금 지난 7시 11분에 출발해 죽전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야외로 나가는 차량을 뚫고 달린 산악회 버스는 8시 39분 횡성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했다. 딱히 할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휴게소에 왔으니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볼일을 보고 왔다. 애초 9시에 휴게소를 떠날 예정이었으나, 모든 승객이 다 탑승하고 있어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휴게소를 떠나 들머리로 향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버스가 휴게소를 떠나자 인솔 대장이 버스 탑승 시 입구에서 나눠줬던 지도를 들고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 코스 중 들머리인 도원동에서 남병산까지의 구간은 남병산이 워낙 오지라 길이 명확하지 않아, 소위 얘기하는 알바하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고 하며, 버스에서 내려 임도를 따라 200여 미터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로 가라고 했다. 직진해도 길이 있기는 있는데 워낙 희미해 찾기가 쉽지 않다고. 그리고 기러기재에 도착하면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설명을 들을 당시에는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산행 시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지도에는 총 거리가 12km로 표기되어 있으나 GPS로 측정하면 13.5km에서 14km가 조금 넘게 나오니 시간당 2km 정도로 시간을 책정해 총 6시간 30분의 산행 시간을 준다고 했다. 추가로 남병산 정상에 오른 이후에는 무조건 능선만 따라가면 되고, 길 상태가 좋으니 가능하면 6시간 내에 도착해 마감보다 일찍 서울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9시 20분경 버스가 고속도로를 나와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버스 내에서 신고 있던 슬리퍼를 다시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이물질이 등산화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니 스패츠도 착용했다. 그리고 보니 우중 산행에서 등산화에 빗물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착용하던 미니 스패츠가 어느 순간부터 필수 착용 장비로 변했다. 바람막이는 벗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기온이 낮으니 입고 시작하기로 했다. 9시 39분 산악회 버스가 들머리인 도원동에 도착하자, 인솔 대장이 마감 시각을 발표했다. 6시 30분의 산행 시간이 주어져 정확하게 4시 10분 마감!
2 - 2
9시 40분이 되기 전 선두 그룹은 출발했고, 바쁜 거 없는 나는 중후반에 처져 선두를 따라갔다. 그렇게 졸졸 따라가고 있는데, 좌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났다. 분명 버스 안에서 인솔 대장이 200여 미터 올라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좌로 가라고 했는데, 대장을 포함한 선두 그룹 10여 명이 계속 직진하고 좌로 방향을 트는 산꾼은 하나도 없었다. 뭔가 꺼림칙했으나 남병산의 위치가 오른쪽이니 직진하다가 능선으로 들어서는 게 맞는 거로 생각해, 선두를 따라 10여 미터 올라가자 선두 그룹에서 돌아가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게 들렸다. 그럼 그렇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뒤로 돌아 후미에 좌측 길을 가리키며 그 방향으로 가라고 알려주며, 오던 길을 내려가 비포장 임도로 들어섰다.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산은 포장도로 오른쪽에 있는데, 우리는 포장도로 왼쪽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우리가 처음에 올랐던 포장도로가 향하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그 도로는 임도 림길에서 100여 미터를 올라가서는 유턴해 반대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지점이 마을 끝으로 보였고, 그 포장도로는 마을로 향하는 도로였다. 고로 그 포장도로가 유턴하는 지점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인솔 대장의 말에 의하면 그 길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거고. 궁금증을 해소하고 이슬에 젖은 풀 길을 헤치며 임도를 따라 위로 올랐다. 그런데 임도 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왜들 그렇게 빨리 가는 건지?
아래에서 "임산물 채취 금지" 입간판을 보고 올라왔으나 별생각 없이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풀이 우거진 임도 옆으로 울타리가 보이고 익숙한 모습의 거대한 잎을 가진 풀이 보였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병풍취다! 바로 지난주 비취가 들고 광고를 찍었던[산행기]. 병풍취를 재배하고 있는 밭이다. 상태로 봐서는 생으로 먹기에 너무 쇠었다. 약으로 쓰려는 걸까? 채취 시기를 놓친 걸까? 궁금해하며 병풍취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선두그룹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인솔 대장이 길이 아닌 거 같다며 다시 내려오는 등. 분명 임도를 따라 올라오며 좌우를 유심히 살폈으나 길은 없었다. 고로 위로 올라가는 게 맞는데 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 소리 없이 계속 위로 올라가는데, 선두에서 철책을 넘어가면 길이 있다며, 내려가던 인솔 대장을 다시 불러 세웠다.
철책을 넘어 약간의 방황 후 길을 찾아,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위로 가자, 요란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위로 오를수록 커지는 그 소리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헉헉대고 올라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차다. SUV, 순간 썰물처럼 밀려오는 짜증! 아니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는데,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다고? 어쨌든 차가 있는 도로에 도착해 표지석을 보니 기러기재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는 도로가 아니라 임도로 그 두 대의 차는 다행히 산꾼의 차가 아니라 벌목꾼이 타고 온 거였다. 당연히 그 요란한 소리는 벌목 중인 체인톱 소리. 그런데 거기 기러기재에서 잠깐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태가 발생했다. 통성명은 하지 않았으나 여기저기 산악회에서 자주 만났던 나보다 5~6세 많아 보이는 산꾼과 나는 지도를 보며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인솔 대장은 본인이 버스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붙으라고 설명하지 않았냐며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비록 산행 초반과 철책 앞에서 길을 잃어 신뢰를 조금 잃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무시해도 좋은 인솔 대장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폰을 거꾸로 들고 진행 방향을 바꾸고 보니 오른쪽이 맞다. 매번 이래서 알바를 한다. 폰의 등산 앱 지도 표시는 늘 북쪽이 위에 있어 남진하는 경우 실제와 좌·우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걸 가끔 놓쳐 소위 얘기하는 알바를 하게 된다. 인솔 대장 말을 순순히 듣고 앞서간 등산객을 따라 능선에 오르고 보니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한 밧줄이 없으면 오르기가 쉽지 않은 길이다. 전형적인 흙산으로 어제 내린 비로 미끄러워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순간 대형 사고다. 그렇게 급경사의 숲을 통과하니 앞이 뻥 뚫렸다. 앞에 있어야 할 나무가 다 베어져 쓰려져 있다. 그 쓰러진 나무를 뚫고 급경사의 능선을 올라야 했다.
벌목으로 쓰러진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급경사를 오르자 왼쪽으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 보다 더 경사로 보이는 벌목한 허허벌판이 보였다. 그 급경사에 아담하게 생긴 벌목용 포크레인 두 대가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있는 게 보여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아니, 저런 경사에도 미끄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진을 찍고 다시 등산로에 들어서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오른쪽 숲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등산객이 "산삼 깨러 가시나 보죠?"하고 말을 건다. "네!"라고 답하고, 등산객이 왜 저런 소리를 하지라고 생각하며, 조금 가자 왼쪽 숲 사이로 정차해 있는 아담한 포크레인이 보였다. 산삼 얘기를 한 사람은 등산객이 아니라 포크레인 기사였다. 험지에서 일하니 당연히 복장이 등산객과 비슷해 착각한 거다.
벌목지대를 지나, 가끔 희미해지는 길을 찾아 30여 분을 가니 등산 앱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해발 1,000m가 넘는 158개의 산 중 115번째로 오른 남병산이다.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조망이나 모든 게 왜 이 산이 인기가 없는 지와 오지 중의 오지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오지 전문 산악회가 아니면 찾지 않을 산이다. 남병산행을 기획한 산악회에 감사를…. 정상에는 3명의 등산객이 벌써 도착해 정상석을 보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유는 정상석이 너무 초라해서! 뭐 초라하든 말든 상부상조로 인증을 찍어 주고 나도 부탁해 인증을 남기고 바로 다음 목적지인 장암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 시각이 11시 25분이다. 9시 40분을 산행을 시작해 11시 25분에 해발 1,150m인 남병산 정상에 도착했으니, 1시간 45분이 걸렸다. 인솔 대장 예상 12시보다 35분가량 빠르다.
산악회에서 나눠준 지도에 의하면 들머리에서 남병산까지 대략 4.5km, 정말 험하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2시간도 안 걸렸고, 남은 거리는 7.5km 남병산이 해발 1,150m, 장암산이 해발 834m 그리고 지도에 의하면 비록 기복은 있을지라도 계속 하산하는 코스다. 길 상태를 알 수 없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생각보다 빨리 들머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일단 들머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도착 목표 시간을 2시 30분으로 잡았다. 그리고 희미한 길을 따라 장암산 쪽으로 가는데, 강한 바람에 날렸는지 나무에 거꾸로 붙어있는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나, 봉우리라니 그러려니... 그 봉우리는 해발 947m의 삼거리 봉이란다.
남병산을 떠나며 희미한 길을 따라 장암산으로 가는 동안 수시로 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앞이나 뒤나 등산객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삼거리봉 도착 10여 분 전에도 길목에 서서 폰으로 확인하고 있는데, 여기저기 산악회에 가끔 동행했던 노년의 등산객이 뒤에서 나타났다. 해서 이게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앞서서 길을 가다가 삼거리봉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춘 순간 나를 추월해 갔다. 사진을 찍은 후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삼거리봉의 해발이 얼마냐?”고 묻는다. 나이가 많은 등산객이라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지, 내가 귀가 어두운지 어쨌든 처음에는 남병산 해발을 묻는 거라 알아듣고 알려주니, 또 물어 이번에는 장암산 높이를 알고 싶은 건가 해서 또 내가 아는 고도를 알려줬다. 그런데,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삼거리봉이라고 명확히 들렸다. 별 신경 안 쓰고 지나친 줄 알았는데, 거꾸로 붙어 있던 이정표를 본 거다.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노련하다. 해서 "947m였습니다."라고 하자, "많이 내려왔네" 하고는 갈 길을 쿨하게 갔다.
쿨한 노년의 등산객을 따라가며 뭐 볼만한 게 있나 찾아봤으나 보이는 거라고는 울창한 숲이 다인 길이라 앞만 보고 그저 신나게 가다 보니, 우리의 멋진 노년의 등산객이 배낭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뭔가 쓰러진 나무가 보이고.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정목이 썩어서 쓰러진 거였다. 그런데 바닥이 썩어서 쓰러진 거에 비해 머리 쪽 이정표는 아주 깨끗한 게 설치한 지 며칠 안 되어 보였다. 그런데 왜 넘어졌을까? 썩어서가 아니라 최근에 내린 비로 튼튼하지 못한 토대 때문에? 쓰러진 이정목에 의하면 장암산은 직진이고, 우로 방향을 트는 건 산악회 B 코스 들머리인 주전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노년의 등산객은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인 거 같고, 나야 하산해서 먹기로 해서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올랐다. 그런데 그 올라가는 길목 바닥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산악회 임시 표지다. 분명 인솔 대장은 뒤에 있는데 누가 놔뒀을까? 가끔 이런 경우를 보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에 감탄하며 희미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니 왼편으로 시야를 가리는 게 사라지고 갑자기 능선 위로 풍력 발전기 군락이 나타났다. 산행 전 이 코스에서 가리왕산을 비롯해 내가 평창의 위엄이라고 칭하는 유명 산들이 보인다는 소개가 떠오르며, 아무래도 6월 19일 야유회 산행으로 갈 예정인 청옥산[산행안내]으로 생각되는데…. 청옥산이 떠오른 이유는 몇 번 가려다 실패한 산행지라 그때마다 산 소개를 읽어, 올라 본 적은 없으나 산에 대해서는 익숙하고 그 익숙한 모습이다. 해서 산행 후 지도로 확인해보니 맞다. 청옥산이다!
능선 위의 풍력발전기의 모습에서 청옥산이라 예상되는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앞에서 남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나보다 앞선 등산객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등산 앱의 지도를 잘 따라가고 있었으나, 뭔가 꺼림칙했는데, 앞선 등산객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로를 따라 장암산으로 가고 있는데, 앞선 두 등산객의 목소리가 등산로가 아닌 숲속에서 들렸다. 해서 12시도 지났으니 그늘에 자리 잡고 앉아 점심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그쪽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밥 먹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는 게 아니라,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어느 산악회에서 왔는지 묻고 같이 온 일행인 게 확인되자 자기가 헤매고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 했다. 아니 멀쩡히 내 앞에 길이 있는데, 길이 아니라니! 혹시 길이 중간에 끊어져서 다시 뒤돌아와 길을 찾고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확인이 필요해 눈앞의 길을 따라 전진했다. 역시 예상대로 30여 미터 가자, 길이 아주 많이 희미해졌다. 그런데 봉 감독과 오지 산행에 익숙한 내 눈에는 틀림없는 길이다. 해서 두말하지 않고 희미한 길을 따라가며 뒤의 두 등산객에게 여기가 길이니 빨리 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희미한 길을 따라 100여 미터 전진하자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며 과거 임도였다고 생각되는 거의 차량이 다녀도 좋을 만한 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그 두 남녀가 길이 어딘지 묻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해서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냥 능선을 따라오라고 다시 크게 외치고 널찍한 길을 따라갔다. 그 시각이 12시 23분으로 전체 코스의 절반 정도를 지났다. 9시 40분경 산행을 시작해, 코스의 절반을 지나는데 2시 40분가량 걸렸다. 전체 코스에서 가장 힘들다는 절반을 2시간 40분이 걸렸으니, 굳이 뛰지 않아도 평소 내 페이스면 남은 구간은 2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2시 30분! 그런 판단이 서자, 점심은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계속 앞만 보고 갔다.
울창한 숲에 가려 좌우에 보이는 게 전혀 없는 능선을 따라 앞만 보고 가니, 등산 앱이 알려주는 속도가 3.5~3.3km/h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나마 가끔 야생화나 함박꽃이 보여 사진을 찍느라 잠깐 멈추는 거 외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거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널찍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등산로가 아니라 성벽 위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말 두 마리가 너끈히 나란히 달리 수 있는 정도의 폭과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은 완경사! 해서 성벽의 흔적을 찾으며 걷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석축을 쌓은 흔적은 보이는데, 이게 성벽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는 못 하겠고, 그렇다고 등산로를 이렇게 잘 닦는 것도 이상하고…. 해서 구글링해보니, 가까운 노성산에 노산성 성을 쌓은 기록은 있는데, 장암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없다!
성벽이 틀림없을 거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가니,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인 곳이 나타났다. 산불감시 초소와 송신탑이다. 오랜만에 조망이 트인 곳에 도착했으니, 주변을 더 잘 보기 위해 감시초소로 올라가 둘러봤으나 나름 유명한 산이라고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아 약간 실망하며 내려왔다. 송신탑과 감시초소를 떠나 좌우가 탁 트인 길을 따라 20여 미터 가니 장암산 정상석과 이정표가 나타났다. 봉우리가 아니라 허허벌판에 정상석이라?! 내가 정상석에 도착할 즈음, 반대편에서 등산객이 올라왔다. 내가 감시초소로 올라갈 때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을 거처럼 보이더니, 내려오자 사라진 등산객이다. 내가 정상석 접근하자 인증을 부탁하기 위해 되돌아온 거였다. 해서 서로 인증을 찍어 주고 몇 마디 나눠보니, 처음에는 정상 부근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조금만 내려가면 날머리라 내 생각과 같이 하산해서 먹기로 했다고…. 둘이 내려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배낭을 안 들고 갔을 거라”는 얘기가 주였다.
북쪽 끝 남병산에서 출발해, 남쪽 끝 장암산을 지났으니, 이제는 정말 내려가는 것만 남았다. 장암산도 836.3m에 이르니 내려가야 할 고도가 만만치 않다. 당연히 급경사의 하산길이나, 다행히 등산로 옆으로 안전시절이 갖춰져 있어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급경사를 따라 내려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패러글라이딩이다. 활공장이 멀지 않았다. 내가 폰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등산 앱은 두 가지로 하나는 공식 구간에 사용이 편한 "트랭글", 그리고 비공식 구간에서 길을 확인할 수 있는 "e산경표"다. 당연히 이번 구간에서도 두 지도를 같이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 코스는 트랭글 지도를 믿을 수 없어, 산경표를 주로 이용했는데, 그 지도에 의하면 활공장은 장암산 도착 전에 있는 거로 나와, 장암산에 도착할 때까지 활공장을 찾지 못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장암산 정상 이정표에 진행 방향으로 “활공장 600m” 라는 표기를 보고 산경표의 지도에 오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활공 중인 패러글라이딩을 본 후 3분 정도 더 내려가자 활공장이 나타났다. 그 시각이 1시 16분이다! 그리고 마침 이륙하는 글라이더가 있어 그걸 동영상으로 찍은 후 활공장 이륙장으로 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활공장에 방해물이 있으면 안 되니 탁 트인 조망 속에 아래로 평창강의 모습이 절경이었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마음껏 날고 있는 글라이더를 구경했다. 그리고 전망대로 가 주변을 사진으로 찍었다. 딱히 볼 거라고는 평창강의 모습밖에 없었지만. 활공장에서 주변과 날아다니는 글라이더를 대략 5분간 감상한 후 날머리를 향해 내려갔다. 활공장을 위한 도로를 벗어나 등산로를 접어들자 급경사의 계단으로 하산이 쉽지 않았다.
가장 싫어하는 급경사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고 저 밑으로 식당이 보인다. 그 시각이 1시 53분으로, 점심을 해결할 식당이다. 아래로 식당을 보며 급경사 계단 주변의 야생화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하산해 1시 55분에 도로에 도착했다. 목표한 시각보다 5분 빠르다. 도로 한쪽에는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해서 일단 버스로 가 배낭을 옆자리에 벗어두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식당으로 향했다.
3
식당으로 가 메뉴를 보니, 장어와 막국수 외에는 먹을만한 게 보이지 않아 장어 1인분만 달라고 하니 1인분은 안 판다고. 이런 황당할 때가?! 국수는 지난 설악산 음지골 산행 시 먹었던 메뉴[산행기]라 다른 걸 먹고 싶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안주 없이 막국수로만 빨갱이를 마실 수도 없고. 의외로 빨갱이는 있었다. 해서 메뉴를 다시 훑어보다가 "코다리 추가"라는 걸 발견했다. 코다리 추가? 그럼 코다리가 들어 있는 메뉴가 있다는 건데? 해서 위에서부터 메뉴를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다가 위에서 "코다리비빔막국수"를 찾았다. 다른 대안이 없어, 볼 것도 없이 코다리비빔막국수와 코다리 추가, 빨갱이를 주문했다.
주메뉴가 나오기 전 밑반찬과 추가 주문한 코다리와 빨갱이가 먼저 나왔다. 역시 예상대로 내가 아는 코다리가 아니라 명태 식해다! 명태 식해를 안주로 빨갱이를 홀짝이고 있는데, 주메뉴인 코다리비빔막국수가 나왔다. 해서 먼저 식해를 건져, 추가 식해 쟁반에 담아 안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육수를 조금 붓고 골고루 잘 비볐다. 맛있게 먹으며 옆을 보니, 식초와 겨자 병이 보인다. 평소와 달리 식초와 겨자를 전혀 넣지 않은 막국수를 먹은 거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 아니면 애당초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는 게 더 맛있었을까? 어쨌든 먹으며 전혀 맛의 부족을 느끼지 못해 식초나, 겨자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명태 식해, 막국수를 안주로 빨갱이 두 병을 비운 후 육수를 더 달라고 부탁해 마시고 식당을 나간 시각이 3시 10분경이다.
마감 시각은 4시 10분이나 산행 대장이 가능하면 3시 30분까지 도착해 서울로 일찍 출발하자고 언급했었고, 코스 자체가 많은 시간이 있어야 하는 구간이 아니라, 예의상 비공식 마감 시각인 3시 30분보다 20분 일찍 버스로 갔다. 그런데 아직 많은 등산객이 도착하지 않았고, 버스는 찜통이다. 해서 다시 버스에서 내려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늘로 가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에 기대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보다가 평창강이 기억났다. 개울이 없어 발을 씻지 못했는데, 평창강이 있다는 게 떠오른 거다. 해서 벌떡 일어나 평창강을 향해 갔으나, 마감 시각이 임박해 강으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버스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막상 산악회 버스는 공식 마감 시각이 거의 다 된 4시가 조금 넘어 서울로 출발했다. 이후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버스는 휴게소에서 10분가량 휴식했다. 그 쉬는 시간을 이용해 편의점에 들러 식혜를 사서 마시고 다시 버스에 탔다. 일반 대중교통이라면 상상도 못 할 가장 편한 자세로 서울을 향해 달려 양재에 도착하기 직전 양말을 신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양재역에서 내렸다. 그 시각이 6시 46분이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양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연신내역에 환승 후 구산역에 내려 출구로 나오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우산을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슬리퍼를 넣어둔 가방에 비상용 우산이 있다는 게 기억났다. 해서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이 7시 40분으로 평창의 위엄 중 하나인 남병산행이 끝난 시각이다.
산악회 계획에 따라 '도원동 → 기러기재 → 남병산 → 낙엽송숲 → 이중바위 → 삼거리봉 → 칠곡사 갈림길 → 장암산 → 활공장 → 삼거리 → 평창교'의 14.37km(트랭글 기준), 4시간 18분의 오지 탐험과 산책로 탐방의 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18분, 휴식 Zero!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씨의 산행이었다. 그럼에도 활공장 외에는 볼만한 조망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애초 조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목표였고, 158개의 해발 1,000m가 넘는 산 중 115번째 산에 올랐으니 만족한다.
오지 산행을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권할만하나, 조망이나 암릉을 좋아한다면 비추다.
첫댓글 청옥산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차박 및 인스타 성지인 육백마지기에서 20분이면 왕복가능하더라.
정상에는 별로 볼 게 없어서 구경은 육백마지기에서 다 해야 하고.
태기산도 그렇지. 사실 강원도 지역이 다 그런 듯하지만, 차로가 아니라 등산로가 있음.
'지동리 → 청옥약수 → 주능선 → 청옥산 → 육백마지기 → 청옥산 → 삿갓봉 → 고길리보건진료소' 11km, 6시간
그래봐야 야유회 산행이지만.
이런 산행에 따라 붙어야 하는데...
욱백마지기로 검색해보면 인스타 성지답게 멋진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
그때쯤 데이지꽃이 많이 피어나겠다.
내 주 관심사는 꽃이 아니라, 해발 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