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 공부를 계속할 뜻이 있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나라가 서던 때였다. 이츠하크 라빈(1922~1995)은 유학의 꿈을 접고 이스라엘 건국 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쟁터에서 숱한 공을 세웠지만 라빈은 전쟁이 싫었다. 외교를 잘해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참모총장 시절에는 아랍 여러 나라를 물리치고 엿새 만에 크게 이겼다. 이것이 유명한 1967년의 ‘6일 전쟁’이다.
전쟁영웅 라빈이 평화를 주장하니, 호전적인 사람들도 전쟁만 고집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는 이집트와 미국과 외교를 통해 수에즈 위기를 극복했다. 1989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티파다 봉기를 일으켰을 때에는 총기를 자제하고 곤봉을 사용해 진압하도록 지시했다. 마침내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의 라빈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했다. 평화협정의 기본원칙을 체결한 것이다.
계획대로 되면 좋았을 것이다. 중동에 평화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라빈은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은 군중집회에서 암살당한다. 범인은 자기네 나라의 극우파 대학생이었다. 집회의 구호가 하필 '평화 찬성, 전쟁 반대'였다니, 얄궂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