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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빵구집
이 홍사
뭔 지랄이여? 유쾌한 빵구집이라고?
진상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진상은 또 뭐여?
빵구라고 했다.
펑크라고 칭하는 게 맞는데,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빵구 전문가들은 빵구라고 한다. 고로 타이어 가게가 아니라 빵구집이다.
나는 늘 빵구집에 산다.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빵구집에 대기하는 게 심보가 편하다. 친구 녀석의 빵구집은 지산 삼거리에 있다. 교통이 편리해서 현장을 둘러보러 나가면서 들르고 들어오면서 들러 커피를 마신다. 꼭 일이 없어도 일삼아 나는 빵구집에 출근한다. 일테면 빵구집은 나에게 참새 방앗간이다. 한마디로 빵구집에 오면 나는 유쾌해진다. 이유는 거기에 있다. 유쾌한 빵구집이다.
빵구?
펑크라는 말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들어오는 바람에 빵구로 변형되어 통용된 모양이다. 자동차가 후진하는 말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들어오는 바람에 백이 아니 빠꾸가 되었다. 빵구도 같은 이치이지 싶다.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분명히 없던 신종 직업이다.
친구가 하는 빵구집은 빵구집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중고 타이어 전문점이다. 빵구를 때우러 오는 차량은 극소수다. 그런데 친구는 스스로 빵구쟁이라고 낮추어 부른다. 고로 나는 빵구쟁이 친구다. 친구요, 빵구집에서는 그의 조수에 해당한다. 친구를 만난 건 사십 년이 훌쩍 넘었다. 군에 가서 훈련소에서 만났으니 올해로 사십 년이 막 넘었다. 친구는 나보다 군번이 1번 늦다. 그래서 친구의 군번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다.
사십 년이 넘은 친구의 군번을 외우다니?
다른 이들이게 말하면 놀라는 일이다. 훈련소에서 만나 같이 자대에 가서 같은 소대에 근무하다가 같은 날 예비군복을 입고 전역을 했다. 사십 년 친구라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우리 사이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하긴 우리는 보통 사이가 아니다.
매일 만나는 사이다.
뭔 꼬라지여?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그럼! 보통 사이가 아니지 인마!
만나면 늘 티격태격한다. 그래도 보지 않으면 궁금하다.
이유 없이 궁금하고 상대가 있는 곳에 가고 싶으면 보고 싶다는 말과 진배없다. 녀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 녀석은 때가 되었는데 내가 보이지 않으면 가끔 전화한다. 점심을 짜장면으로 시킬 건데 같이 시킬까? 묻는 전화다. 중국집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옆집이 중국집이지만 꼭 시켜 먹는다. 오전 내내 조수 역할을 하고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 볼일을 보러 나가는 날도 있다.
조수라고 큰일을 하는 건 아니다.
손님이 없으면 말동무가 되어주고, 손님이 들어오면 겨우 새로 타이어를 바꾼 바퀴를 얹어주면 볼트를 죄거나 폐타이어를 야적장을 옮기는 정도가 고작이다. 볼트를 죄는 데 있어서 절대로 나는 에어건을 들고 다 조이지 않는다. 손으로 볼트만 구멍에 맞게 걸어주는 정도다. 그건 녀석과 묵언의 약속이다. 내가 에어건을 들고 조이면 어느 걸 조였는지, 어느 걸 빠트렸는지 헛갈리기에 아예 에어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마무리는 항상 녀석이 점검하고 차를 내보낸다.
아주 옛날의 일이지만 내가 에어건으로 조이니 헛갈려서 차를 내보냈는데 바퀴 하나를 조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출고시킨 차의 바퀴가 빠지는 일이 있었다. 한산한 도로에서 저속 주행을 했으니 망정이지, 참 아찔한 사고였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나는 에어건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묵언의 약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이른 새벽에 일어난다.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에 내려와서 신문을 다 본다. 내가 보는 신문은 지방지다. 대구에서 나오는 매일신문인데 신문이 배달되기를 기다렸다가 지역의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을 훑어본다. 인터넷은 아무래도 정부의 눈치를 보기에 정론을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보고 나름대로 해석하며 올라가 이른 아침을 먹는다. 그 시간도 새벽이라곤 하지만 오밤중이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아침을 찾아서 대충 때운다. 그걸 알기에 아내는 자기 전에 밥을 꼭 해놓는다. 아침을 먹고는 한 시간 정도 잔다. 다시 자는 잠은 언제나 달콤하다.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하다. 그 시간이면 다른 사람들도 일어날 시간이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아침을 먹었느냐 묻는 법이 없다. 개수대에 있는 설거짓거리를 보고 파악한다.
다시 자고 일어나 사무실에 내려와서 그날의 배차 상황을 확인하고 별일이 없으면 조선일보가 그리운 건지, 친구가 그리운 건지 빵구집으로 빨리 가고 싶어진다.
빵구집에는 조선일보가 들어온다.
무엇보다 그게 마음에 든다.
조선일보는 내가 보고 싶은 뉴스를 보여주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해준다. 특히 사설을 읽으면 막혀있던 무엇이 뚫리는 기분이다. 나도 보수인가? 사설보다 더 시원한 건 친구 녀석의 뉴스 해설이다. 입이 걸쭉한 녀석의 해설은 가히 가관이다. 욕설과 궤변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디서 끌어다 붙이는지 녀석의 욕설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상했던 뉴스일지라도 듣는 각도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진다. 녀석은 시쳇말로 지독한 보수요 골통이다. 아무튼, 유쾌한 빵구집이다. 가끔 빵구집에 앉아서 나는 생각한다. 이 친구의 빵구집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서 이렇게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을까?
빵구집 문을 여는 시간은 아홉 시다.
그 시간에 맞추어 나는 빵구집에 출근한다. 어떤 날은 친구 녀석보다 내가 먼저 출근하는 날도 있다.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문을 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다. 어떤 날은 출근해서 빵구집 문을 열고 신문을 다 볼 때까지 친구 녀석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다. 은행이나 병원에 볼일을 먼저 보고 나오는 날은 그렇다. 그런 날은 신문을 보며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있으면 카톡이 날아온다.
이군! 빵구집에 출근했나.
이 자식은 환갑 밑자리를 깔아도 이군이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나도 임군이나 동생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래된 친구는 이래서 좋다. 일단 벽이 없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없다. 동등하게 알몸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녀석의 그런 카톡을 받으면 나는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나도 전화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답장을 한다.
그래 북파! 문 열었다.
북파란 북파공작원의 줄임말인데 우리끼리 통용되는 말이다. 녀석은 툭하면 북파공작원 출신이라고 남에게 말한다. 빵구집에 오는 손님이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군에 있을 적에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나랑 같이 평양을 몇 번 갔다 왔다고 설레발을 친다. 취사병 출신 주제에 북파공작원이라니? 진지하게 말하는데 듣고 있으면 웃음이 쿡 터지고 손님은 어리둥절하게 마련이다.
갔었죠. 평양에 가서 수령님께 진지를 해 올리고.
이렇게 서두를 꺼내 맞장구를 치면 손님은 더 어리둥절해서 무슨 이야기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군대 동기란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하면 손님들은 이해하고 고개를 주억인다.
녀석은 군에 있을 적에 완전히 고문관이었다. 그게 똑똑하다고 생각했든지 선임들에게 후임으로서 덜떨어진 소리를 하고 부적절한 요구를 하고 시키지 않는 짓을 얼마나 하는지, 녀석 덕분에 단체로 얼차려를 많이 받았다. 훈련소에서부터 그랬다. 훈련이나 열심히 받으면 되는 훈련병이 조교들을 오히려 평가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향도를 해서 완장을 차고 군사 기술을 조금 익혔다는 게 오히려 동기들에게 얼차려를 제공했다. 당시에는 녀석과 동기라는 게 싫었지만 지금 돌이키면 이런 친구가 세상에 없다.
녀석은 훈련소를 나와 나랑 같이 자대에 배치를 받고 일찌감치 취사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농업고등학교의 식품 영양학을 배워서 과자 공장에 취직했었다는 이력이 선임들에게 알려져서 취사병이 된 것이다. 우리가 근무한 곳은 부산의 해안경계병이었다. 밥을 삽으로 푸는 곳이 아니라 겨우 스무 명 남짓의 밥을 하는 취사병이었는데 조수로 방위병이 하나 있어서 직접 밥을 하지 않고 부식을 수령하고 취사장 감독이나 하면서 음식 맛을 보는 정도 고작이었다. 그렇게 취사장에서 근무했는데 지금은 툭하면 북파공작원 출신이란다.
북파공작원?
그 말도 늙어가면서 생의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유쾌한 빵구집!
늘 나는 그렇게 호명하지만, 오늘 빵구집은 유쾌하지 않다.
아침을 먹고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빵구집에 갔더니 녀석이 완전히 저기압이었다. 오래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단박에 감으로 읽을 수가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침부터 이상한 작자로부터 괴상한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녀석은 그런 작자를 두고 진상손님이라고 했다. 진상이라면 사물의 참된 모습이나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 그런데 쓰는 말이 아닌데 잘못 쓰고 있는 게 아니면 무슨 말의 줄임말이다.
진상?
이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하니 진짜 속상한 손님이라는 뜻인가?
아무튼, 싼값에 중고 타이어를 끼워서 새 타이어 대리점에 가면 흠을 잡게 마련이다. 제작한 연도가 오래되었다. 고무에 기름기가 없어 경화되었다. 곧 터질 것이다. 기타 등등 좋은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타이어를 교체한 손님으로서는 귀가 솔깃해진다.
한 녀석이 일주일 전에 중고 타이어를 바꾸고 간 모양이다.
그 어린 녀석이 전화가 와서 당돌하게 물어주지 않으면 소비자 무슨 센터에 고발할 거라고 약을 올렸단다. 친구의 타이어 가게는 온라인 당근 마켓에 광고가 나가고 있으므로 그런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거기다가 악플을 달면 엄청난 타격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친구는 순순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좌번호를 받아서 핸드폰으로 타이어값을 송금시켜 주었단다. 그런데 타이어를 가져와야 하는데 다른 타이어 가게에 빼놓을 것이니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래도 타이어는 가져다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되바라지게 되물었다. 이런 경우에 절대로 욕을 하면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수고스럽지만 택배로 보내주면 택배비는 이쪽에서 물겠다고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타이어 대리점 주소를 문자로 남기라고 했는데 날아온 문자 메시지를 보니, 얼레? 대구였다.
중고 타이어 네 짝을 찾으러 대구까지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구미에서 대구까지 타이어를 찾으러 가는 경비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생각하면 약이 오르는 일이지만 방법이 없다. 언제나 손님은 갑이요 녀석은 을이다. 을이 참아야 하는 일이다. 녀석은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있다.
공정거래?
이런 것은 없다. 싸가지라고는 서 푼어치도 없는 갑이 우선이다. 싸가지를 운운하니 생각난 것인데, 언젠가 삼척에 있는 녀석이 타이어 사진을 보고 주문한 일이 있다. 그런 경우에 타이어를 싼값에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타이어를 택배로 받은 녀석이 타이어를 보고 나서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보낸다고 연락이 왔다. 환장할 일이다. 왕복 택배비는 고스란히 녀석의 몫이었다. 그런 일도 가끔 있다. 녀석이 그렇게 속이 상해 있을 때 나는 말한다.
이 짓거리도 할 짓이 못 된다. 일흔까지만 하고 그만하라고.
그러면 녀석은 늘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예순아홉까지만 하고 때려치울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하면 우리의 나이가 적은 게 아니다. 오늘도 그 말을 했다. 일흔까지만 하고 때려치우자고, 그 말에 그 대답을 하는 걸 보니 쓸개가 조금 풀린 모양이다. 나는 대구에 무언가 볼일을 만들어야 했다. 가는 김에 중고 타이어를 찾아올 생각이었다. 녀석을 도와주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녀석이 짬을 내어 대구까지 가자면 무척이나 속이 상할 것이다. 그런 점을 먼저 헤아리는 게 진정한 친구가 아니든가?
무슨 볼일이 없을까? 대구에 볼일을 만들어야 했다.
단순히 타이어만 찾으러 가기에는 나도 약이 오르는 일이었다.
궁리하다가 생각난 것이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를 충전시키는 일이 생각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충전해야만 하는데 그게 바닥이 났는데 시킨다고 하면서 자꾸 잊고 있었던 터다. 대구로 가면서 칠곡휴게소에 들러 잊지 않고 충전을 해야지. 가기 싫은 자는 핑계를 만들고 가고 싶은 자는 방법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다.
“야! 대구 타이어 있는 곳에 주소를 줘! 내가 찾아올 거야!”
일을 하는 녀석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냅둬! 다음에 찾아오지.”
녀석은 시큰둥했다.
“대구에 다른 볼일이 있단 말이야.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찾아올 거야.”
“대구에 무슨 볼일?”
녀석은 역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작은마누라가 유산 수술을 받는다고 하네.”
“그렇다면 가봐야지.”
녀석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장갑을 벗고 주소가 적힌 문자 메시지를 내 핸드폰으로 전달했다. 인상은 여전히 일그러진 저기압이었다.
녀석은 이런 손님을 두고 진상손님이라고 하는데 진상손님이 무슨 뜻일까?
그 점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물을 기분이 아니었다. 녀석도 대답할 기분이 아닐 것이다.
출발을 하려는데 녀석이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라고 했다. 그냥 가면 녀석이 혼자서 우거지상으로 점심을 먹게 된다. 그 점이 맘에 걸려 녀석에게 뭘 먹을 건지 묻지도 않고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 와써여!
빵구집만 유쾌한 게 아니다. 옆에 붙은 중국집도 유쾌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집에 배달하는 녀석이 새로 들어오고 중국집은 유쾌해졌다. 순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왔다는 노랑머리의 배달원이 들어오자 우중충한 중국집 분위기가 분명히 바뀌었다. 짜장면은 금방 배달되었다.
짜장면 왔써여!
노랑머리의 배달원이 소리치면 이상하게도 금세 시장기를 느끼게 된다. 정말 생각하면 희한한 녀석이다. 구미가 당기게 만드는 목청을 지닌 녀석이다. 저런 목소리는 천성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짜장면 와써여!
알았써여!
짜장면 쟁반에 코를 박고 먹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아무래도 후딱 다녀오는 게 마음이 편하고 금세 잊을 것이다.
고속도로 칠곡휴게소에 들러 하이패스 카드를 충전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대구라도 다 같은 대구는 아니다. 대구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서 한 시간의 차이가 난다. 칠곡휴게소에서 내비게이터를 켜서 검색하니 동대구에서 내리라고 나왔다. 그렇다면 대구의 저쪽 변두리에 있는 카센터인 모양이었다. 약이 오르는 일이다. 내가 약이 오르는 판인데 녀석이 가자면 얼마나 약이 오를까? 그 생각을 하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주소로 찾아간 곳은 작은 카센터가 아니었다. 잘 꾸며놓은 타이어 전문점이었다. 아마도 여기서 감언이설을 들은 모양이다. 마당에 차가 들어가니 직원으로 보이는 놈이 쫓아 나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결코 인사를 받을 손님이 아니었다. 차창을 열고 손을 내저으며 구미에서 타이어를 찾으러 왔다고 소리쳤더니 새파란 녀석이 차를 저쪽으로 빼라고 하며 폐타이어가 쌓인 곳을 가리켰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폐타이어가 쌓인 곳에 타이어 네 짝을 따로 쌓아두었다. 이것이 오전에 그 젊은 작자가 빼놓은 타이어가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일주일을 탔다고 했는데 얼마나 탔는지 서당 개 삼 년인 내가 보아도 중고 타이어로서 상품 가치는 이미 상실했다.
이렇게 나달나달한 타이어를 찾으러 여기까지 왔나?
억울하고 약이 올랐지만 그래도 가져가야 한다.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든 없든 그건 유쾌한 빵구집의 북파가 보고 결정할 일이다.
타이어가 네 짝이면 승용차 트렁크에 다 실리지 않는다. 돌아보니 그토록 친절하게 인사하던 점원인 녀석은 벌써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없다. 내가 손수 실어야만 했다. 두 개는 트렁크에 싣고 두 개는 뒷좌석에 실어야 했는데 뒷좌석에는 신문지라도 깔면 좋겠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간 녀석에게 신문지를 구걸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로 적개심이 내 안에서 퍼져있었다.
그냥 시트를 청소하겠다는 생각으로 타이어를 뒷좌석에 실었다. 그리고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나섰다. 물론 친절 본위라고 자랑하는 점원 녀석의 인사도 없었다.
이 타이어를 싣고 가서 유쾌한 빵구집의 녀석에게 뭐라고 하지?
돈 벌어서 뭐 할래? 서비스 정신으로 해 인마!
내가 북파 녀석에게 늘 하는 말인데 오늘도 속이 상해 있을 녀석에게 그 말을 해야겠다. 그 말을 하면 녀석은 대꾸한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가 없지만, 불행은 막을 수가 있다고. 녀석이 늘 하는 대꾸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가 없지만, 불행은 막을 수가 있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지당한 말이다.
이미 상품으로서 가치를 상실한, 나달나달한 타이어를 싣고 올라오니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녀석은 없었다. 어디 볼일을 보러 나간 모양이라 생각하고 싣고 온 타이어를 가게 밖에 내려서 쌓아두고 차를 빼서 주차장으로 옮겼다.
짜장면을 먹고 급하게 가느라 커피도 한잔 못 마셨다.
할 일을 다 했다는 기분으로 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는데 차가 한 대 들어왔다. 소형 화물차인데 뒷타이어 하나가 빵구다.
이 자식이 어딜 갔나?
소형 화물차에서 내린 중늙은이가 내가 타이어 가게 주인으로 아는지 타이어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했다.
서당 개 삼 년이지만 나는 타이어를 교체할 줄 모른다. 북파는 수많은 타이어 중에서 어느 치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해도 타이어를 교체할 수가 없다.
“타이어 가게 사장님, 조금 전에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요.”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전봇대 위에서 어떤 사내의 엉덩이만 보였다. 바로 가게 옆 전봇대 위에서 어느 전공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보지 못했다. 변압기가 달린 전봇대였는데 굉장히 위험하고 난해한 작업으로 보였다.
“구급차요? 어딜 다쳤나요?”
전봇대의 엉덩이를 쳐다보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밑에 좀 비켜주세요. 전선이 내려갑니다.”
말이 끝나자 전봇대 위에서 전선 다발이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그 말을 들은 화물차의 중늙은이가 다른 가게로 간다면서 출발하고 나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하다가 어디를 얼마나 다쳤으며 어느 병원에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게에 딸린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시던 커피는 완전히 식어 있었다.
이 자식 혈압이 좀 높다고 했는데 타이어 때문에 전화를 받고 씩씩거리다가 혈압이 터진 거 아니야?
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들었지만, 달리 마땅히 할 짓이 없었다. 마냥 연락이 오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받지도 않는 전화를 계속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신문을 펼치니 아침에 다 읽은 기사뿐이었다.
기사를 재탕으로 읽으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유쾌한 빵구집의 북파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미에 올라왔느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고 어느 병원이냐고 되물었다.
시내의 정형외과라고 했다.
“정형외과? 혈압이 터진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물었다.
“멀쩡한 혈압이 왜 터져? 발가락이 부러졌어.”
“야, 인마!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동네 시끄럽게 구급차를 타고 가냐?”
“오른발 발가락이 세 개나 부러졌어.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
“망치로 내리쳤냐? 왜 발가락이 세 개씩이나 부러져?”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시내 어느 정형외과냐?”
역 부근의 어느 정형외과라고 하며 아무래도 오늘 문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니 가게 문단속을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문단속하며 생각하니 녀석은 오늘 일진이 사나운 것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유쾌한 빵구집이라고 수식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게 앞문을 잠그고 문단속하는데 아주 오래된 모델의 소형 승용차가 유쾌한 빵구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려서 타이어를 싼 것으로 교체하러 왔노라고 했다. 지금 타이어 사장이 조금 다쳐서 문을 닫는 중이라고 했더니 김천에서 당근 마켓을 보고, 오전에 전화했는데 오후에 오라고 해서 일부러 내려왔다며 난감해했다. 그래요? 녀석이 약속해놓고 급하게 병원으로 간 모양이었다. 타이어를 교체할 줄은 모르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일단 예의를 지키고 돌려보내야 하는 일이다. 타이어 상태를 보니 한 일주일은 더 타도 문제가 없겠다.
나는 타이어 가게 사장이 아니고 사장은 지금 발가락이 부러져서 급하게 병원에 갔으니 다음 주에 전화해보고 들르라고 하고는 탁자 위의 명함을 가지고 나와서 주었다. 대신 아주머니는 헛걸음했으니 다음 주에 오면 더 싸게 해줘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흔쾌히 내가 우겨서라도 그렇게 해드리겠노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돌아가고 메인 전원 스위치를 내라고 문단속을 했다. 그리고 녀석이 말하는 정형외과로 갔다.
빵구집에서 정형외과까지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차를 주차 시키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복잡한 도심에 있는 정형외과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만 오는 병원인가?
차를 세우고 병원으로 들어갔더니 녀석이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오른쪽 발은 플라스틱 보호대를 대고 붕대로 칭칭 감아놓았다.
“뭔 지랄이래?”
“햐! 오늘 일진 더럽다.”
녀석은 붕대를 감은 제 발을 내려다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발가락이 부러졌어? 몇 개나? 깁스를 했나?”
발가락은 깁스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대신 발가락 세 개에 핀을 박았다는 것이 녀석의 설명이었다. 복합골절이라고 며칠간 입원하라고 하는데 집으로 가서 안정을 취하겠노라고 했단다.
“빵구집에서 발가락이 부러질 일이 뭐 있어? 너 참 별나다.”
내가 대구로 가고 난 뒤에, 타이어를 교체해서 간 어느 녀석이 차가 달리면 타이어에서 소리가 많이 난다고 교체하러 왔었단다. 중고 타이어는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운전에 민감한 사람들이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을 급하게 교체해주고 돌아서는데 휠을 쌓아둔 곳에서 타이어를 정리하는데 맨 위에 있는 휠이 떨어졌다는 것인데 바로 발끝을 정통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휠은 종류별로 분류해서 차량, 한 대 분, 그러니까 네 개씩 쌓아둔다. 그 높이가 가슴팍까지 온다. 맨 위의 휠이 떨어져 발에 맞았다면 발가락 세 개 부러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요즘 휠은 텅스텐의 재질로 되어서 꽤 무겁다. 그 모서리가 발을 찍었다면 발가락이 성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안전화를 신으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슬리퍼를 꿰차고 작업하는 것이 눈에 거슬려 그런 말을 했다. 공장이나 현장에 가면 당장 쫓겨난다고. 그러나 녀석은 발에 땀이 찬다면서 작업을 하면서 슬리퍼를 고집했다.
“그게 떨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대가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다.”
“알아들었어. 그만해.”
녀석을 부축해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뒤꿈치를 땅에 대고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발가락이 세 개나 부러졌으니 어지간히 아프겠지. 녀석을 인도에서 기다리게 하고 냉큼 차를 가져와서 뒷좌석에 태웠다.
“사장님!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갈 것을 예상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는데 녀석은 가게로 가자고 했다. 며칠간 문을 못 열 것인데 내가 한 문단속이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닌 녀석이었군. 가게로 차를 몰았다. 얼레? 저게 왜 저렇게 되었어? 가게 옆 공터에 차곡차곡 쌓아둔 폐타이어가 무너져 인도를 점령하고 더러는 이 차선 도롯가에 떨어져 있었다. 대형 사고였다. 차들은 도롯가에 나뒹구는 타이어를 피해서 다니고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어. 저게 간당간당하더라고.”
“저걸 치우는 건 노비의 몫이네?”
나는 노비임을 자청했다. 그리고 윗도리를 벗고 장갑을 끼고 도롯가에 흩어진 타이어를 주워다가 다시 쌓았다. 차들이 타이어를 피해서 지그재그로 운전하고 어떤 녀석은 차창을 열고 나에게 욕설을 하며 지나갔다. 기분이 고약했다. 그래도 어쩌냐 발가락이 부러진 놈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참 타이어를 주워다 쌓고 있을 때 유쾌한 빵구집 옆의 유쾌한 중국집의 배달원이 나타났다.
짜장면 그릇 찾으러 왔써여.
소리치는 녀석을 보니 다시 유쾌해졌다.
유쾌해지는 순간 녀석이 대구에서 가져온 폐타이어를 살피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적반하장이다.
“이 꼬라지의 타이어를 가지러 대구까지 갔어?”
“대구에 다른 볼일이 있었어.”
“다른 볼일은 무슨.”
총기와 눈치를 겸비한 녀석은 단박에 넘겨짚었다. 녀석은 그게 내 잘못인 양 화를 냈다.
“저는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인데요.”
“인마! 눈으로 보았으면 그 카센터에 버리고 왔어야지. 폐타이어 버리는 값만 들잖아?”
“버리고 싶었지만 대빵나으리의 검열은 받아야죠.”
“이런 건 네가 판단해야지. 너 배알도 좋다.”
이런 씨. 실컷 하고도 욕을 먹는군.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먼.
에이 엿 먹어라. 도로에서 폐타이어를 녀석에게 굴리며 걷어찼다. 그런데, 그런데 타이어가 정통으로 굴러가 녀석의 부러진 발을 정확히 덮쳤다. 녀석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꼬꾸라졌다.
아 유쾌한 빵구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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