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것에 주어진 숙명...시지프스 신화

[정찬호]

시지프스는 어제도 오늘도 돌을 굴린다. 돌을 굴려 저 높은 산위까지 밀고 올라간다. 그러나 꼭대기에 이르면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 마련이다. 시지프스는 산을 내려와 또 돌을 굴린다. 시지프스는 죽지 않는다 . 죽고 싶지만 죽어서 이런 일을 멈추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신이 만든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니까. 혹시 신의 마음이 바뀌어 용서해준다면 모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신은 그렇게 자비스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는 정말 우주가 다 할 때까지 돌을 굴리고 또 굴릴 것이다. 요즘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제목이 시지프스라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시지프스가 검색 단어 상위권에 든 모양이다. 이 드라마가 어떤 줄거리를 가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인간이 지닌 숙명 다시말해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하려 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시지프스(고대그리스어: Σίσυφος['sɪsɪfəs],라틴어: Sisyph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다. 시지푸스,  시지프 등으로 표기하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코린트스 시를 건설한 왕이었다.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져 있다. 현대 작품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가 있다.

시지프스는 꾀가 많은 것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욕심이 많고 속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신들 사이에 알려진 이야기니까 액면 그래로 받아드리지 않았으면 한다.신들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드린다면 참으로 순진한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여행객과 방랑자를 살해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시지프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그를 데리러 오자 오히려 타나토스를 잡아 족쇄를 채웠다. 죽음의 신이 체포돼 활동을 못하게 됐으니 사망자는 당연히 생기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신들이 어떤 존재인가. 신들은 항상 인간들을 지켜보며 인간들이 잘 되는 것을 아주 시기했다.자신들이 만들어 놓고도 자신들이 시기하는 아주 희안한 사이가 바로 신과 인간관계이다. 신들은 인간이 잘 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겠지. 결국 전쟁의 신 아레스가 와서 타나토스를 구출하고 시지프스를 압송해 갔다. 전쟁의 신은 항상 죽음을 동반하고 다니지 않던가. 시지프스가 끌려가고 난 뒤 인간들은 급속하게 사망했다.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 벌어지는 지구촌의 전쟁도 이런 과거유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시지프스가 누군가. 신들 사이에서도 골치아픈 존재 아니던가. 그는 죽기 전 꾀를 내어 아내에게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일러뒀었다. 그래서 저승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자 저승의 신 하데스을 설득한다. 아내가 뭔가 착오가 있어 자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다시 이승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설득하겠다고 말이다. 하데스 신은 시지프스의 말에 속아 넘어가 그를 이승으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코린토스에 간 시지프스는 저승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헤르메스가 억지로 시지프스를 데리고 저승으로 향했다. 헤르메스는 신의 왕 제우스의 아들이자 신들의 사신으로 행동했던 신이다. 음악을 후원하고 웅변의 신이기도 하다. 지금도 헤르메스는 예술의 후원자로 인식되지만 실상을 잘 들여다 보시라.

저승으로 잡혀간 시지프스는 저승에서 벌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가 이 벌을 받은 정확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혹자는 그가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린 벌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여행하는 이들을 살해한 벌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들 사이에서 항상 요주의 존재로 알려진 시지프스이기에 그에게 그런 형벌을 내렸을 것이다. 그냥 죽이지 않고 평생 고생하며 사는 것을 보면서 신들은 쾌감을 얻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스를 통해 인간에 대한 철학을 서술했다. 그가 바위를 굴러 올렸으나 떨어질 줄 알고도 바위를 굴리는 것과 밀어 올린 바위가 굴러떨어졌을때 다시 바위를 올리려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인간승리라고 평가했다. 카뮈는 이러한 행위를 부조리라고 평가했다. 정상에 도착하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아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인간. 카뮈는 시지프스가 이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뿐이다라고 언급했다.

옳은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시지프스의 저주를 받아 바위를 굴리며 평생을 살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돌을 밀고 올라갔다가 돌이 아내로 굴러내려가면 다시 내려가 돌을 다시 올리고 그렇게 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실상과 같지 않은가. 맞다. 바로 우리네 인생사가 바로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저주이다. 평생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아야하니 여간 지겹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인간에 주어진 숙명인데 말이다.

시지프의 신화는 우화나 전설이 아닌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상이다. 어찌 이렇게 인간의 삶을 절묘하게 표현했을까.  슬프지만 감탄이 터져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비워진 배를 채워야 한다. 옛날에는 동물들을 잡아 먹고 식물의 열매를 따 먹었고 지금은 식량이라는 것을 조리해 뱃속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의 뱃속을 채워주기 위한 식량을 마련하려 하루종일 일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굶거나 타인의 식량을 빼앗아야 한다. 타인의 식량을 빼앗는 것이 바로 도둑질과 전쟁 아니던가. 일한 뒤 피곤함을 잊기위해 술 한 잔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것이 인간의 하루생활이다. 하루 하루가 그런 싸이클로 회전한다. 시지프스가 돌을 굴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인간만 그런가. 그렇지 않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만 그런가. 식물도 마찬가지다. 식물도 뿌리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잎으로 광합성을 쉼없이 되풀이해야 살 수가 있다. 추운 겨울도 뿌리는 결코 쉬지 않는다. 봄을 위해 영양분을 저장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같은 신세이다. 살아있는 존재가 가진 숙명인 셈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있는 존재가 이런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을 신들은 재미있게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도망갈 구석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그렇게 하면서 사는 것이지. 어제 저지른 과오를 오늘 되풀이하고 후회하고 그 후회한 짓을 또 저지르고. 조그만 희망을 품었다가 곧 좌절하고.  아니 그런 조그만 희망마져 사라져버리고 마는 삶. 그런 삶을 탓하지 마시라. 어짜피 인간이 짊어진 운명이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돌 굴리는 일을 즐겨야 한다. 싫어도 즐겨야 한다. 즐겁다는 표정으로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 만이 신들에 대해 저항하는 일 아니겠는가. 머리를 굴리지 말고 힘을 다해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피곤해져야 잡념을 잊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한다.특히 코로나 시절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1942년 첫 작품으로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소외와 반항을 그린 『이방인』을 발표해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에 ‘문학적 사건’을 일으킨 알베르 카뮈. 그 후 그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공허함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프랑스의 지식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쌓아 나가던 중, 1947년 발표한 대작 『페스트』로 허무에 빠진 현대인에게 연대 의식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1957년에는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라는 한림원의 평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1913년 생이니까 45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노벨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 중에서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과 같은 카뮈 작품의 문학적 기반이 되는 사상의 단초를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 이야기로 풀어 나간 철학 에세이로, 소설 『이방인』, 희곡 『칼리굴라』와 함께 '부조리 3부작'을 이룬다. 그는 신의 저주에 의해 영원히 산 아래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시지프의 운명을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삶에 빗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자살이 아니라 그 삶을 끝까지 이어 나가는 것임을 밝힌다. 카뮈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명징한 의식과 반항에 대한 열정이다.

『시지프 신화』는 “부조리와 자살의 관계”로부터 그의 주장을 시작한다. 세계에 ‘내던져진’ 자아로서 현대인은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를 찾지만, 부조리 가운데 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흔히 자살은 공허에 대해 인간이 쉽게 찾는 해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뮈는 자살을 단순한 개인적 비관이나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선택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카뮈에게 그것은 일종의 도피로서,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여기서 카뮈가 가정하는 제2의 방안은 ‘희망’이지만, 희망 역시 '어떤 거창한 관념을 위한 속임수'일 뿐이다. 내세의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은 현세에 대한 기만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3의 방안은 ‘반항’과 그와 동반되는 ‘자유’와 ‘열정’의 감각이다.

카뮈는 인간이 이 세계 앞에서 망각과 無로 도피하지 않고, 삶을 직시하며 ‘반항’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처럼 영원히 돌을 밀어올리는 것과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내려는 반항적 의지와 저주를 한몸에 받아들어 감수하면서도 미소를 띨 수 있는 삶에 대한 열정인 것이다. 이처럼 『시지프 신화』는 실존적 비극에 대한 '영원한 혁명'의 윤리로 독자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 소개-알베르 카뮈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 철학과 재학 시절,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창작의 세계에 눈을 떠 가는데, 무엇보다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긴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 일을 한다.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하는데, 이 작품은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카뮈는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삼 년 후인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와 함게 파리로 떠나다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그의 나이 48살이었다.

2021년 2월 1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