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
속삭이는 고향
속삭이는 안방
가득히 이끌어 주시는
속삭이는 종교
험난한 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천둥 번개 치는
천지 개벽에도
어머니는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生
아득히, 가득히
속삭이는 눈물
속삭이는 기쁨
- 조병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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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서이초 교사 사건, 묻지마 살인 등 비인간화의 실상을 우린 매일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우울감이 우리 사회를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분노사회가 될수록 종교의 역할이 커지기 마련이지만, 세상에 평화를 안겨다 주는 종교인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무더위 속 세상을 식힐 시원한 소나기와 같은 존재이기를 늘 바래왔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가는 역동성이 있었지요.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때에 세상은 그런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교회 원로분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자주 전화나 심방을 하곤 합니다. 낙상하셔서 무릎을 크게 다치신 이영애 원로권사님은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셔서 조금씩 거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다른 원로분들이도 외부활동을 삼가고 집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요즘 같아선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요.
이 더위를 뚫고 화성에 사시는 엄마께서 큰 누나네 가족과 셋째 매형과 함께 의성에 내려오셔서 1박2일의 시간을 함께 하셨습니다. 너무도 푸근한 시간이었지요. 셋째 매형이 개인적으로 기도하며 후원하는 빛마을교회를 방문하여 이희진 목사님과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기도제목도 나누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아들 집에서 하루 묵으셔서 좋으시긴 하셨지만 최근 감기로 고생하셔서 약간 힘겨워 보였습니다. 첫날 저녁 해인이 방을 엄마께 내어드리고 일찍 주무시라 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시고 얼마 후에 홀로 누워계신 엄마 곁에 저도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날따라 엄마에게 폭 안기고 싶었습니다. ‘엄마’ 하고 나직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안겼습니다. 막내라지만 50이 가까운 아들이니 왜 안 징그러우셨겠습니까. 그럼에도 엄마는 좋으셨던지 “어이구.. 그래.. 내새끼” 하고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셨습니다. 어렸을 적 저를 재우실 때 토닥여주시던 그 리듬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리듬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 시간이 꿈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아늑한 품이 그간 쌓인 마음의 짐과 걱정들을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게 했습니다. 엄마의 품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엄마가 다시 화성으로 올라가신 후 저는 다시 엄마의 품을 떠올렸습니다. ‘나도 그런 품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저의 현실자각과 ‘그런 품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를 음미해봅니다. 어머니는 속삭이는 존재입니다. 큰 소리보다는 속삭이는 음성으로, 가만가만히 몸소 행하시는 삶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시지요. 사랑하는 이에게는 큰 소리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속삭일 뿐입니다. 그 속삭임에는 우주가 들었고, 사랑이 들었고, 말씀이 들었고, 인생이 들었습니다. 한 생애 속삭이신 어머니의 눈물과 기쁨은 그녀의 뱃속에서 생명을 얻은 모든 자식들의 삶의 바탕이 되었지요. 삶이 힘겨울 때면 나직한 소리로 ‘어이구.. 그래.. 내새끼’ 하며 등을 토닥여주셨던 엄마를 소환하렵니다. 저는 여전히 엄마의 속삭임이 필요한 부족한 아들입니다. <2023. 8. 5.>
첫댓글 💌 속삭이는 존재... 가신 지 열아홉 해가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어머니의 속삭임은 여전히 진공관 라디오처럼 내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주파수를 따로 맞추지 않아도 정규 방송이든 재방송이든 아들이 원하는 시간이면 나직나직 틀어 주십니다. 📻 🔘 📻
열아홉해.. 어머니 없이 살아오신 짧지 잃은 시간이지만 사실 어머니는 선생님 마음 속에 아니 계신 적이 없으셨겠지요.. 너무 가까이 계셔 나직이 속삭일 수밖에 없으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