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275) / 독일
슈파이어 대성당(Speyer Cathedral; 1981)
라인란트팔츠 주[State of Rheinland-Palatinate]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에 속한 슈파이어 대성당은 탑 4개와 돔 2개로 구성된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당으로 1030년에 콘라트 2세가 창건하였고 11세기 말에 개축하였다. 대성당은 신성로마제국 시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중요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거의 300년 동안 독일 황제들의 묘지로 이용되었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11~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독일, 유럽은 물론 세계의 복원 원칙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성당은 보름스(Worms)와 마인츠(Mainz)에 있는 성당과 함께 로마네스크 양식 예술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크기로도 최대 규모이며, 독일 왕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상 중요한 교회이다. 성모 마리아와 성 슈테판에게 봉헌된 슈파이어 대성당은 콘라트 2세의 명령에 따라 1030년・1106년에 창건하였다. 이 성당은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성 미카엘 성당의 설계를 적용하였으며, 라인란트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된 배치의 유형을 완성하였다. 평면 배치는 동관과 서관의 평형, 네이브(nave; 바실리카 성당 등에서 좌우 측랑 사이에 끼인 중심부로서 예배자를 위한 장소)과 트랜셉트(transept; 십자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가 형성하는 주요 부분의 틀을 세우는 탑들의 대칭적이고 단독적인 배치가 특징적이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하인리히 4세 치세 때 개축・증축되었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전체를 둘러싸는 회랑(回廊)이 있는 건물로는 최초의 구조물이다. 보수 작업 중에 추가한 회랑 체계 또한 건축 역사상 처음이었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1689년 화재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그 뒤 18세기에 건축가 I.M. 노이만(I.M. Neumann)은 이 건물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하는 한편, 바로크 양식의 서향구조(Westwerk)도 만들었다(1772~1778).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1세는 내부의 채색을 의뢰하였다. 1846~1853년까지 요하네스 슈라우돌프(Johannes Schraudolph)와 요제프 슈바르츠만(Josef Schwarzmann) 유파의 화가들이 후기 나사렛 화풍으로 작업을 완료하였다. 이 추가 작업물은 1854년・1858년에 서관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사상에 일치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방 작품이었다. 같은 기간, 슈라우돌프(Schraudolph)와 그의 문하생들은 성당 내부를 장엄한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장식적인 그림과 거대한 역사적인 사각형 판으로 장식하였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11세기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1957년부터 그림과 채색된 회벽층 제거 작업을 시작하였다. 묘지로 쓰이던 지하실은 현재까지 원래 상태를 유지하였기에 특히 의미가 있다. 지하실에는 1039년・1309년에 매장된 8명 이상의 중세 독일 황제와 왕의 묘소가 있다. 이곳에는 또한 콘라트 2세의 무덤도 있는데 그가 죽었을 때는 지하실이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2년 동안 다른 곳에 묻혀 있었다. 슈파이어 대성당 정문 앞 광장에는 1,560L 용량의 거대한 석재 세례반이 있다. 이 세례반은 한때 교구와 도시 사이의 경계선을 상징하였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신성로마제국 시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중요한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위풍당당한 3랑식[triple-aisled] 아치형 바실리카는 11~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 발달에 영향을 많이 미친 설계의 절정이었다 |
첫댓글 이런 보물이 어떻게 남아있게 되었는지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