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36〉
■ 쌍봉 낙타 (김승희, 1952~)
해인이와 왕인이가
내 등 위에 올라타 앉아 있다.
엄마는 낙타,
목이 말라도 몸이 아파도
뜨거운 모래 위를
무거운 짐을 지고도 걸어가야만 한다.
낙타의 등에는 큰 혹인 육봉(肉峰)이 있는데 거기에는 수일 동안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지방과 영양분이 저장되어 있답니다. 이 혹이 하나 있는 것은 단봉낙타라고 하며 두 개 있는 것은 쌍봉낙타라고 합니다.
쌍봉낙타는 단봉낙타보다 힘이 세서 250kg 정도의 짐을 지고도 시속 4km로 하루에 40km를 갈 수 있답니다.
(<엄마랑 아기랑> 1988년 7월호 33~34면)
우울증에 신경질에 죄악망상
파라노이아 증상까지 겹쳤어도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죽지 않고 가는 것은
내 등 위에 짐 지워진
두 개의 육봉 때문일까.
오, 라후라라고
부처님께서 부르신,
부처님께서 버리신 피의 인연으로
나는 힘센 쌍봉낙타가 되어
뜨거운 사막 속을 가고 있다.
다락처럼 무거워도
야근처럼 피로해도
엄마는 낙타.
쌍봉낙타는 더 힘이 세다.
- 1989년 시집 <달걀 속의 생> (문학사상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선정할 때 늘 1위로 꼽히는 단어가 ‘어머니’라고 하는데, 우리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어머니는, 한없이 다정하고 자애로울 뿐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겠지요.
대개의 아버지들이 상대적으로 말이 없고 무뚝뚝하며, 사랑을 보여주기 보다는 자식을 엄하게 꾸짖는 역할을 해 온 탓도 있겠습니다만,
이 詩는 사막을 걷는 고단한 낙타의 생활에 비유하여, 자식이라는 짐을 진 채 힘들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희생적인 삶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한창 자라나는 두 자녀를 둔 시인은, 잡지에 실린 쌍봉낙타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모습이 자신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낙타가 힘겨운 사막을 지나가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이 시대 우리들의 어머니 또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의 운명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말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어렵고 고단한 현실을 거뜬하게 이겨내는 모성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식을 버리면서까지 출가를 감행한 석가모니의 ‘오, 라후라’라는 외침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석가모니는 출가 전 출생한 아들로 인해 자신의 수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아들 이름을 ‘장애’라는 뜻의 ‘라후라’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오, 라후라’라는 외침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식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