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미술 올바로 읽기 (36회)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여래가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보주임을
조형해석학적(造形解釋學的)으로 풀어내다
지난 글에서 남장사(南長寺) 괘불의 얼굴 부분을 분석하여 보았는데 화불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분석하지 못했다.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고, 그 무량한 보주에서 무량한 여래가 각각 화생하니,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가 들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래의 정수리가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그동안 생명생성의 과정을 여래의 갖가지 도상에서 추구하여 왔는데, 이 남장사 괘불에서 그 극치의 광경을 볼 수 있다. 용(龍)도 몸의 각 부분이 영기문에서 생성하여 용 자체가 되듯, 여래도 그 정수리에서 그 무한한 생명생성의 극치를 볼 수 있으며. 여래도 몸 자체가 모두 영기문으로 이루어졌으며, 보주에서 여래가 화생하므로 화생된 여래로부터 보주가 무량하게 화생하고 다시 보주에서 여래가 화생하여 끊임없이 생명이 생성한다. 그래서 ‘여래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 1. 남장사 괘불 상단 부분
조형미술에서 만물생성의 근원을 조형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연꽃을 영화시킨 영기꽃, 모란을 영화시킨 영기꽃, 용(龍), 일체의 영기문(靈氣文), 보주 등이 있다. 이 모든 조형은 ‘물’에서 비롯한다. 생명의 근원인 여러 조형이 물 그 자체이기도 하고, 갖가지 동물모양이나 식물모양으로 형상화하되 모두 ‘물’에서 생긴 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만물생성의 근원을 가장 단순하고 정확하게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보주이다. 그 보주 안에는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생명력이 충만해 있다. 즉 삼천대천세계의 대생명력이 보주 안에 응축하여 있다. 더 나아가 그저 보주가 아니고 대 무량보주(大無量寶株)이다. 그 모든 무량한 보주는 큰 보주에서 모두 나온 것임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작은 보주든 큰 보주든 크기에 관계없이 무량한 보주가 줄줄이 나온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웅변하는 것이 석가모니여래의 보관 아닌 보관이다. 우리는 여래나 보살의 화려한 모자를 보관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 그 큰 보관을 쓸 수 없다. 온갖 형태의 영기문의 집합체여서 실제로 머리에 쓰면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보관(寶冠)’은 잘못된 용어이다. 여래나 보살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를 갖가지 영기문으로 집합시킨 것이다.
(도) 2. 남장사괘불 화불 백묘
(도) 3. 붕긋붕긋한 머리칼을 지우다
(도) 4. 여래의 정수리로 부터 다섯 여래가 영기화생하는 광경, 오방불(五方佛)일 가능성이 많음.
남장사 괘불의 얼굴 부분에 대한 글을 쓰고 난후 나는 그 도상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여래의 얼굴은 얼굴이지만 얼굴이 아니고 보주로 보이기 시작했다.(도 1, 도 2, 도 3, 도 4) 보주이기 때문에 줄줄이 한없이 보주가 화생하여 발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래의 정수리 구멍 입구가 겹겹이 되어 있는 것은 줄줄이 보주가 나오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 우선 가장 작은 보주부터 나오려 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라서 공중에 떠 있는 큰 보주로 변하고, 다시 그 큰 보주에서 작은 보주들이 줄줄이 나오려 한다. 그러므로 얼굴도 똑같은 보주이다. 다만 얼굴을 타원체의 형태를 띨 뿐이다. 보주란 항상 둥근 공 같은 구형(球形)이 아니며 타원체(橢圓體)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장신구에도 많고, 용 꼬리모양의 용마루 양쪽의 기와에도 타원체의 보주가 많다.
(도) 5. 여래의 눈, 코, 입 등을 지우니 타원체 보주가 되다.
(도) 6. 다른 네 여래의 얼굴에서 눈, 코, 입을 지우다.
남장사 괘불의 얼굴을 오래 동안 응시하며 여러 번 머뭇거리다가 문득 얼굴의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수염모양 영기문들을 과감히 모두 지워버렸다.(도 5) 지우는 나의 손은 약간 떨렸다. 그랬더니 타원체의 보주가 되었다. 그 타원체의 보주에서 둥근 보주가 나와 거기에서 강력한 영기문이 붕긋붕긋한 사태극(四太極)을 맺으며 양쪽으로 두 갈래의 영기가 뻗쳐 나가더니 광배 뒤로 사라지고 만다. 원래는 끝없이 뻗쳐 나가지만 상단에 여러 불상의 도상들이 있어서 광배 뒤로 뻗쳐나가도록 했다. 그리 흔하지 않는 예이다. 그 영기문 갈래 사이에서 연꽃이 화생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여래가 화생하고 있다. 그 작은 비로자나 여래도 붕긋붕긋한 머리칼을 제거하면 본존 석가여래와 마찬가지로 정수리에서 보주가 나오고 그것이 크게 변하며 큰 보주에서 무량한 작은 보주가 화생하여 발산한다.
같은 방법으로 하여 화생한 광배 주변의 화불 네 분 역시 정수리를 분석하면 석가여래나 비로자나여래나 같은 도상들이다. 그러니까 화불 다섯 분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여래를 상징한다. 모든 나머지 다른 화불의 얼굴의 눈과 코와 입과 귀 등도 과감하게 지웠다.(도 6) 모두 타원형 보주가 되어 역시 둥근 보주가 줄줄이 화생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뻗쳐 나오는 영기문 갈래 사이에서 화생하는 여래들은 생략했다고 보아야 한다.
(도) 10. 여래를 모두 보주로 바꿈
(도) 11. 여러 보주로 확산할 수 있음
(도) 12. 보주가 더 많이 생길 수 있음
(도) 13. 채색분석 시작
(도) 14. 오방불을 다섯 보주로 환원. 그 보주에서 각각 무량한 보주 생김.
(도) 15-1. 석가여래의 큰 타원형 전체를 붉은 색으로 칠하여 보주로 만듦
(도) 15-2. 타원체 보주에서 나오는 가장 작은 보주에서 주변 보주들을 화생시킴
나는 모든 여래의 얼굴을 보주로 환원시켰으며 그 타원체에서 줄줄이 나오는 둥근 보주만을 남겨 모두 붉은 색을 칠하여 강렬한 보주로 만들었다.(도 10, 도 11, 도 12, 도 13, 도 14, 도 15) 석가여래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고 다시 무량한 여래가 화생하는 광경을 모두 보주로 환원시키고 보니, ‘우주에 충만한 보주’가 되어버리지 않는가!(도 16, 도 17) 법당의 건축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발산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지난 달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발표했다. 역사적 발표였다. 그것은 매우 난해한 이론으로 풀어낸 진리이므로 처음 듣는 건축사 전공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탑에서도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여 발산한다는 것도 석탑 연구자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괘불 같은 불화의 여래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그런 불가사의한 광경이 적라나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고려-조선시대 조각에서도 회화에서와 같이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는 것을 표현했다. 그리고 조각과 회화에서 보관 아닌 보관을 머리에 쓸 때에는 갖가지 영기문들의 집합체로 만들되 역시 보주가 무량하게 줄줄이 화생하여 조형 상 사방으로 뻗쳐 나가고 있다.
(도) 16. 모든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 화생함
(도) 17. 더 많은 작은 보주들이 생김
그러므로 여래는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는 도상과, 학계에서 쓰는, 이른 바 보관을 쓴 ‘보관여래’ 두 가지가 있다. 학계에서는 후자를 보관으로 보고 무량한 보주를 그저 화려한 장식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래나 보살로부터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인 것이다. 어느 경우든 모두 머리로부터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여래의 정수리와 보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므로 여래의 몸도 과감하게 지워버린 셈이다. 그러면 여래의 머리만 중요하고 몸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우선 오른 손에 받든 영기꽃을 다루어 보고 몸은 후일을 기한다.
(도) 7. 영기꽃을 채색분석하다. 제2영기싹채색
(도) 8. 그 두 갈래 사이에서 영기꽃 봉오리 화생
(도) 9. 다른 줄기에서 영기꽃이 활짝 핌. 이 영기꽃에서도 무량한 보주가 나옴
오른 손에 받든 영기꽃의 작은 봉오리는 영기문 갈래 사이에서 화생한다.(도 7, 도 8, 도 9) 연꽃을 들고 있어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광경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모든 사람은 말한다. 가섭은 그 연꽃을 보고 왜 말없이 미소만 띠었을까. 나는 지금 이 연꽃은 연꽃이 아니고 영기꽃이라 홀로 인식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나의 염화미소’이다. 왜냐하면 석가여래가 든 꽃은 연꽃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 꽃잎이 겹치면서 사이에 빨간 칠을 한 공간이 생기는데 그것은 ‘씨방’이다. 그 인식의 단계를 여기서 설명하려면 간단히 되지 않으므로 따로 몇 회에 걸쳐 밝힐 것이다. 그 옆에 활짝 핀 영기꽃도 꽃잎이 길게 변형된 영기꽃이고 중심에 역시 봉오리에서 같은 빨갛게 칠한 공간이 생기는데 역시 씨방이다. 바로 그 씨방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는데 나만 홀로 그 의미를 알기에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도) 18. 연꽃모양 영기꽃의 씨방을 여러 가지 보주로 표현
아, 구태여 말하자면, 오늘 비로소 씨방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씨앗들은 씨앗들이 아님을 알았다. 현실에서 보는 꽃들이 영기꽃으로 영화되는 순간, 그 영기꽃 안의 씨방의 씨앗들은 이미 씨앗이 아니고 보주들이다! 그래서 이미 고구려 수막새의 연꽃 아닌, 연꽃을 영화시킨 영기꽃의 중심에서 ‘하나의 큰 반구형 보주’가 씨방 자리에서 나오며, 다시 그 가운데의 큰 하나의 보주에서 작은 보주들이 돌기처럼 돋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도 18) 영기꽃들의 씨방 안에 보주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 바로 오늘이다. 어쩌면 이 결론이 나의 길고도 긴 학문의 역정의 종착역이 될지도 모른다. 비록 영기꽃이 영기문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이지만, 조형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덩굴모양 영기문이나 영수(靈獸)모양 영기문과 어깨를 겨루고 있어서 ‘영기꽃’의 발견을 나는 마음껏 뽐내고 싶다. 그 영기꽃의 중심에는 씨방이 아니라 보주이며, 그 안에 둥근 보주들을 넣으면 몇 개 들어갈 수 없어서, 보주 안에는 둥근 파처럼 겹을 이루어야 수많은 보주가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여래의 정수리에 그렇게 겹겹이 보주가 들어차 있도록 그린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래야 보주(혹은 여래의 얼굴) 안에 무량한 보주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보주의 단면은 무수한 동심원을 이룰 테지만, 외부에서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투명한 씨방 아닌 보주 안에 작은 보주를 무수히 그려 넣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심원의 도상은 보주를 겹겹이 담은 큰 보주의 단면인가. 나의 연구실 다탁(茶卓) 옆에 둔, 수 백 억 년 전에 바다에서 처음으로 산소를 내뿜어 생명체를 탄생시킨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바로 겹겹이 보주가 들어있는 큰 둥근 보주를 단면으로 자른 상태가 아닌가.
(도) 19. 다섯 보주를 화생케 한 중앙의 타원체 보주를 구형 보주로 바꾸어 봄
그 다음 날 타원체 보주를 구형 보주로 바꾸었다.(도 19) 그 도상을 앞 서 분석한 것처럼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가 연쇄적으로 전개시켜 보니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주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도 20, 도 21) 그러니 남장사 괘불 전체(도 22: 비록 상단 부분이지만 머리 부분이 가장 중요하므로 전체라 해도 무방하다.)를 단순화시켜 보면 우주에 충만한 보주의 세계(도 23)로 환원시킬 수 있지 않은가!
(도) 20. 그 다섯 보주 각각에서 다시 다섯(무량의 뜻) 보주가 화생
(도) 21. 하나의 작은 보주가 각각 다섯 보주가
화생하는 끝없는 과정을 표현하려 하였음.
삼천대천세계를 충만케 하는
무량한 보주, 즉 대생명력
(도) 22. 남장사 괘불 상단 부분 (도) 23.삼천대천세계를 충만케 하는 무량한 여래가 보주로 표현됨
그런데 남장사 괘불의 정수리에는 동심원을 표현한 부분 가운데 왜 매우 작은, 더 이상 작을 수 없는 보주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보일락 말락한 작은 보주는 큰 보주 안에 겹겹이 쌓인 보주들 가운데 가장 중심에 깊숙이 들어있었던 핵(核)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여래는 그 작은 핵(보주)이 폭발하면서 현신하는 것이다. 마치 히로시마에서 핵이 폭발할 때 뭉게구름 같은 것이 엄청나게 생기면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필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핵폭발은 핵반응이 빠르게 일어나 급작스럽게 에너지가 터져버리는 것을 뜻한다. 대기권에서의 핵폭발은 버섯구름을 만든다. 핵폭발시의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하여 원자폭탄, 수소폭탄 등의 핵무기가 만든다. 그러나 그 뭉게구름 같은 것은 구름이 아니다. 핵폭발과 영기화생은 비교할 바가 아니나, 다만 그 현상만이 비슷하여 설명하려는 것이다. 영기화생에서는 가장 작은 보주가 형이상학적인 엄청난 영기를 내뿜고 있다. 그 작은 핵 같은 작은 보주는 히로시마 같은 도시가 아니라,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여래의 주변에 있는 구름모양은 구름이 아니라 핵이 폭발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가 버섯구름 같은 형상으로 보일뿐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인 영기의 폭발이다. 그 가장 작은 핵의 폭발이요, 가장 작은 보주의 대폭발이다.
마지막으로 채색분석을 시도해 본다.(도 24) 중앙의 큰 보주에서 겹겹의 보주들 한 가운데 깊숙이 있었던 가장 작은 보주가 밖으로 뚫고 나오고 있다. 흰 색의 가장 작은 보주이다. 바로 이 보주가 주변의 무량한 보주를 무한히 화생시키고 있다. 바로 여래의 핵이고 보주의 핵이다.
(도) 24. 이 모든 변화는
중앙의 큰 보주(태양, 석가여래가 설한 진리)에서 나오는
매우 작은 흰 색 보주에서 생긴 것이다.
연꽃이 이미 연꽃이 아니듯
씨방의 씨앗도 이미 씨앗이 아니어라.
씨방도 이미 씨방이 아니어서
씨방 모양 보주가 되어
큰 보주 안에 무량한 보주가 겹겹이 가득 차
무량하게 나오고 있네.
영기꽃이란
잎을 영화시켜 지극히 아름답고
순환하는 대생명력을 보이고 있지만,
정영 영기꽃일 수 있는 것은
중심에 무량한 보주를 지닌
큰 보주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
겹겹이 쌓인 보주 가운데
가장 작은 보주핵이 먼저 머리를 내미는데
그 핵의 위력은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버섯구름모양 강력한 영기로 폭발하며
마침내 여래가 우리 앞의 나타나네.
여래는 항상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그 몸을 나투느니라.
2012년 7월 5일 밤 11시 3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