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소록도(小鹿島) 한센병 박물관 & 중앙공원 트레킹 #1
2024. 9.1(일) 맑음, 7명
<트레킹 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2.93m, 약 1시간 30분 소요>
거금휴게소/13:35-거금대교-소록도 주차장/13:45-개원 50주년 기념비/14:06-애환의 추모비/14:07-소록도 박물관/14:10/14:35-
중앙공원/14:5-검시실/감금실-구라탑/14:54-소록도 성당/14:56-벽돌공장 가마터/생태습지/14:58-보리피리시비/15:00-소록의 꿈 벽화/15:05-소록도 주차장/15:20
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면 600m 전방,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섬의 면적은 4.42㎢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녹동항에서 운항되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활개바위, 거북바위 등 갖가지 기묘한 바위들과 함께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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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일) 거금대교 휴게소 건너편의 은희네 식당에서 점심식사후 13:35 거금대교를 지나 소록도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마치 황금룡이 바다 위를 헤엄치는 듯한 거금대교는 <바다 위를 걷는 다리> 혹은 <금빛대교>라 불리는 고흥 명소로
거금도와 소록도를 연결하며 자동차, 자전거, 도보로 갈 수 있어 다양한 여행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13:45 소록도 주차장(주차료는 무료)
중앙공원 가는 길 방향으로 진행한다.
소록도 둘러보기 안내도
국립 소록도 병원 안내소
전라도 길/소록도로 가는 길에(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고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작업화)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아름다운 솔밭은 슬픈 사연이 깃든 수탄장(愁嘆場)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병원에서는 감염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서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지역 도로에서 한달에 한번 면회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이때 자녀와 부모는 도로 양편으로 갈라선채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기에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소록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장흥 제암산(806m)
푸른 득량만 너머로 남해바다를 내려다보는 장흥의 산들이 무척 아름답기만 하다.
득량만 전망대
소나무 숲길 사이로 잘 조성된 보행자 데크로드
제비선창은 소록도 경비를 목적으로 정기적인 순찰을 용도의 새로운 배인 제비호가 인접하는 해안의 바위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새로 만든 배는 자동차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배들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하였는데
이리하여 붙여진 '제비'는 지금까지 '제비선창'으로 남을 수 있었다.
제비선창을 통해 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입도하였는데 건너편 녹동의 외진 해변에 위치하였던
무카이집(迎える(무카에루: 맞이하다, 마중하다)에서 유래)이 구술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센병 환자는 선창을 통해 입도하였으며 1930년대 확장공사로 선창이 만들어지면서
입원자는 북관사 도선장과 동생리 선창을 주로 이용하게 되었으며
해방후 모집 또는 강송에 의한 입원도 마찬가지로 선창을 통해 이루어졌다.
해당 구술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비선창은 제비선창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당시 환자들을 무동력선으로 싣고 오가던 장소(무카이집)였음을 알 수 있다.
1984년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제비선창은 폐쇄되었지만 여전히 선창과 그 선창을 누비며 운행했던 구라호
또 구라호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수 많은 한센인들의 애한은 소록도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2009년 3월 2일 소록대교 개통 이후 방문객 증가(2012년 방문객 56만명)
2022년 보행자를 위한 별도의 통행로를 개설, 2023년 재시공 완료
공사기간은 203.8.28~2023.12.30. 길이 790m, 폭 2.5~3m 이다.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국가등록문화유산68호>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남관사길 14(소록리 82) 외 4필지
1937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소록도에 격리시킨 한센병 환자들을 관리, 감독했던 곳으로
일제의 인권 유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사무 본관은 붉은색 벽돌 건물로 건립되었으나 정면이 핑크색 타일로 마감되어 기본 골격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강당은 사무 본관 뒤편으로 증축하여 복도로 연결하였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마룻바닥 하부를 환기할 수 있도록 장방형의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명칭변경 : 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사무본관 및 강당>
구 소록도갱생원 원장 관사
1934년 건립된 이 건물은 소록도갱생원을 지휘하고 감독했던 원장이 거처하던 관사이다.
소록도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구릉지에 있으며
1층으로 된 주거용 건물과 2층으로 된 손님용 객실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응접실 한쪽 벽에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일본식 가구가 많이 보이는 등 일제 강점기 기관장을 대상으로 한 관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사의 호화로움은 당시 고통을 겪었던 한센병 환자들의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
2009년도 개통된 소록대교는 국도 27호선을 이용하여 소록도까지 이동 가능하며
이로 인해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소록도 주민들이 섬 밖으로 왕래하기가 편리해졌다.
<등록문화재 제69호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만령당(高興 舊 小鹿島更生院 萬靈堂)>
소록도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일본의 보탑을 모방해서
1937년 10월 준공된 만령당(납골당)은 콘크리트로 원통형으로 높이 15m, 둘레 20m에 지붕에는 갓을 씌운 모양으로 되어있다.
내부에 선반을 만들어 칸칸이 유골함을 안치할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유골함은 가로, 세로 20cm 정도의 나무상자로 겉에는
유골번호, 연번, 본적, 주소, 성명, 생년월일, 사망연월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지붕 위쪽은 탑의 상륜부처럼 장식물을 올렸으며 정면에는 감실을 두어 참배객들이 망자에 대해 배향을 할 수 있게 하였고
뒤쪽 문으로 들어가면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고 작은 분향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국가등유산 제70호 식량창고>
식량창고는 1940년에 바닷가 선착장에 인접하여 건축한 박공형 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조 건축물로 육지로부터 환자에게 보급되는 식량을 보관하던 곳이다.
바닷물 속에 잠기는 부분의 기초는 교각모양의 콘크리트 주초에 벽돌로 아치를 틀어 건축한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를 갖고 있다.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국가등록문화유산72호)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산 180
1937년에 건립된 이 등대는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무인등대이지만 건립 당시는 녹동항으로 가는 배들의 길잡이 노릇을 한 시설물로
일제에 의한 인권 유린의 현장을 보여준다.
<명칭변경;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
<고흥 순천교도소 구 소록도지소>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2010년 8월 24일 전라남도 국가등록문화재 제469호 '고흥 순천교도소 구 소록도지소 여사동'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7월 6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35년 건립된 "구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 여사동"은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유린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교도소 건축으로 건립당시 원형이 잘 간직되어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순천교도소 구 소록도지소는 건물의 일부인 '여사동'만 등록문화재 제469호로 등록되어 있다.
섬 전체가 울창한 산림과 바다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소록도
고흥 소록도 구 녹산초등학교 교사(高興 小鹿島 舊 鹿山初等學校 敎舍)
대한민국 전라남고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설립된 보통학교 교사이다.
2004년 2월 6일 대하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장방형의 본관 건물과 화장실 및 샤워실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교실을 배치하고
북쪽에 복도를 두는 등 오늘날 학교 건축과 유사하게 설계되었다.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설립한 초등학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록도 자혜의원(慈惠醫院)은 대한제국 1909년(융희 3) 지방에 설치된 근대의료기관이며
제중원(濟衆院, 1885), 대한의원(大韓醫院, 1907)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국립 근대의료기관이다.
한센병 환자를 위해 평생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펼쳤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보행자 데크로드에서 바라 보이는 소록대교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곳. 일제시대 강제 격리수용과 감금 등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 이후로도 편견의 벽에 갇혀 소외의 굴레를 벗지 못한 섬,
전남 고흥 소록도(小鹿島)는 육지에서 불과 500m 떨어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훨씬 멀게 느껴졌던
소록도에 중앙에 87.5m 높이의 다이아몬드 모양 주탑 2개를 세워 케이블로 연결한 현수교 소록대교가 2009.3월 개통되었다.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국가등록문화유산71호)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선창길 98-6(소록리 산 31)
1935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한센병 환자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하여 지은 신사이다.
일본 신사 건축의 형식과 배치를 취하고 있으며 목조 건축 양식을 모방하여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건축되었다.
예배에 사용되는 배전(拜殿)과 신체가 봉안된 본전(本殿)의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변경 :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
소록도 병사성당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 있는 성당이다. 소록도 병사성당은 소록도 2번지에 있는 성당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머무는 지역 내 유일한 성당이다.
소록도 1번지에 있는 성당은 관사성당이라 한다.
소록도 병사성당(2번지 성당)과 관사성당(1번지 성당)은 1961년 건립되었다.
병사(病舍)는 병원의 건물을 뜻하는 말로 병사성당은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받던 병사 지역에 세워진 성당이다.
소록도 병사성당의 건축에는 한센병 환자들도 직접 참여했다.
성당은 경사지를 다듬어 평탄하게 만든 지대에 세워졌으며 건축에 쓰인 벽돌은 바닷가에서 채취한 모래를 찍어 만들었다.
병동성당 건설 직후 신자 수는 1,200여 명에 이르렀으나 1966년 이후부터는 음성환자가 정착촌으로 전출되면서 감소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트별 희년(Jubilee of Mercy) 순례성당으로 소록도 병사성당이 지정되었다.
2016년 6월 14일 문화재청이 소록도 병사성당과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을 등록문화재(제659호, 제660호)로 지정했다.
14:06 개원 50주년 기념비
14:07 애환의 추모비
1945년 해방 이후 환자들이 자치권을 요구하자 갱생원 직원과 한센인간에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희생된 한센인 84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많은 한센인이 병원 운영을 둘러싼 행정직과 의사의 갈등 속에서
치안대는 협상을 위해 나온 원생대표들을 모두 살해하고 모래구덩이에 송탄유를 붓고 불태워 묻었다 한다.
그후 56년 만인 2001년 유골 작업을 거쳐 그 자리에 한센가족의 이해와 온전한 인권회복을 위한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한다.
목숨/한하운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세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렸한 것이냐
국립소록도병원
1916년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설립된 후 소록도갱생원, 국립나병원 등 여러 이름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3년 7월 기준 한센 사업 대상자 390명이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전염력을 가진 환자가 없다고 한다.
소록도 국립소록도 병원 건물의 일부인 한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