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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두레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김기동01
014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 [박지원이 갔던 중국, 맥도날드가 들어선 중국]
이번 회에는 ‘노인이 길에 쓰러져도 모른 채 하는 이유’ 라는 제목으로 연재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중국사람 이야기’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한국사람이 중국과 중국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의 교류가 좀 더 원활해 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생겨,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중국과 중국사람을 부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는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 이야기’ 머리글로 준비하였던 내용을 먼저 소개하게 됐습니다. 연재 순서에 혼란 드린 점 양해 부탁 합니다. (작가 말)
중국 열하 피서산장 현판 <김기동>
[조선국 사은사 박지원, 열하 피서산장에 가다]
1780년 박지원은 조선국 사은사 300여 명의 일원으로 중국 열하(현재 지명 하북성 승덕(承德)) 피서산장에 갑니다. 원래 사은사는 북경에서 열리는 청나라 건륭제 70세 생일 축하연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건륭제가 북경에서 동북방향으로 230km 떨어진 열하에 있어서, 사은사 중 70여 명이 다시 5일 이동하여 열하에 도착합니다.
이때 박지원은 자제군관(사은사의 자식이나 친척으로 추천 받아 사은사에 참여하는 수행원) 자격으로 특별히 맡은 임무가 없고 또 나이가 사십이 넘어, 중국 북경과 열하에서 겪은 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와, 세계가 변하고 있고 이런 세계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조선에서는 북학파 사상이 필요하다는 <열하일기>를 쓰게 됩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당시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수구세력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열하에 도착한
조선국 사은사 대표 3명은 피서산장 이궁의 정전인 담백경성전(澹泊敬诚殿)에서 건륭제를 만납니다.
이때 조선국 사신 3명은 건륭제 앞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하게 됩니다. 삼배구고두례는 세 번 절하고 그때마다 세 번씩, 모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방법으로, 중국에서 주나라 때부터 시작된 의례지요. 이
당시 청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GDP의 1/3 이상으로 세계 제일의 강국이었기에, 조선국 사신이 중국 건륭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중국 열하 피서산장 담백경성전 <김기동>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 열하 피서산장에 가다]
1793년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는 11개월 걸려 중국 열하를 방문하여 청나라 건륭제 84세 생일 축하연에 참석합니다. 14년 전 조선국 사은사가 청나라 건륭제를 만났던 장소인 피서산장 담백경성전(澹泊敬诚殿)에서 영국 매카트니는 건륭제를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가 청나라 건륭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했는지는 영국과 중국의 기록이 다릅니다.
매카트니가 남긴 기록에는 청나라 황제에게 한쪽 무릎만 꿇고 어깨를 숙였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에게만 두 무릎을 꿇는 영국인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중국 ‘고종순황제(건륭제)본기’와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 수행원이 남긴 일기에는 매카트니가 건륭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 매카트니가 청나라를 방문한 실재 목적은, 청나라 홍차 수입으로 무역수지 적자에 빠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청나라 3억 명 소비자에게 영국 모직물과 면직물을 팔 수 있도록 무역규제를 완화하고 관세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려 했지요.
그래서 이런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영국 사절단은 산업혁명 최신 기술로 제작된 총, 대포, 기선 모형, 천문측정기, 망원경, 철광석 융해기 등을 건륭제에게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매카트니는 생일축하연에서 건륭제를 만난 이후, 더는 건륭제와 이야기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외교적 성과 없이 영국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대신 올 때는 바다를 통해 왔지만, 갈 때는 내륙 운하를 이용하여 청나라 내륙 지도를 완성해 영국에 가져갑니다.
청나라 건륭제는 이때 나이가 84세로 늙었고, 또 실재 국가운영은 중국 역사 최고 부패관리인 ‘화신’이 담당하고 있어서, 매카트니가 가져온 산업혁명 과학기기 선물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북경 원명원에 중국 골동품과 같이 보관됩니다.
청나라 건륭제는 세계가 산업혁명으로 변하고 있고, 앞으로 영국이 청나라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거지요. 아니면 수구세력인 ‘화신’이 건륭제의 눈을 가렸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1793년부터 북경 원명원 정원에 보관되던 매카트니 선물은 1860년 영국이 북경 원명원을 침탈 할 때 영국군이 다시 본국으로 가져갑니다.
중국 열하 피서산장에서 임종하는 함풍제 <김기동>
[청나라 건륭제 증손자 함풍제가 열하 피서산장으로 피난 가다]
1860년 영국은 청나라에 더 좋은 조건으로 마약 아편을 팔기 위해, 프랑스와 함께 2차 아편전쟁(아래 참조)을 일으켜 청나라를 침략합니다. 이미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청나라는 영국의 침략에 적절히 대응할 힘이 없었습니다.
아편전쟁은 무엇?
-- 1700년대 후반부터 영국은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청나라에 마약 아편을 불법적으로 수출한다. 1839년 청나라는 흠차 대신 임칙서를 무역항구 광동에 파견하여 영국 상인이 보관하던 마약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하여 폐기한다. 1840년 영국은 이를 트집 삼아 청나라를 침략, 남경조약을 체결하여 공공연하게 마약 아편을 중국에 팔 수 있게 되었다. --
1840년 1차 아편전쟁은 전쟁터가 중국 남부로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영국군이 청나라 수도 북경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나라 건륭제 증손자인 함풍제는 황급히 열하 피서산장으로 피난 가야만 했습니다. 1793년 증조할아버지 건륭제는 열하 피서산장에서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에게 생일 축하를 받았지만, 67년이 지난 1860년 증손자 함풍제는 영국 군인에 쫓겨 열하 피서산장으로 도망을 간 거지요. 함풍제는 이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이듬해 피서산장에서 31세로 죽고 맙니다.
중국국가박물관 '부흥의 길' <중국국가박물관 홈페이지>
[중국국가박물관 ‘부흥의 길’ 전시관]
북경 자금성 앞 천안문광장 동쪽에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은 중국에 있는 박물관 중 규모가 제일 큽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고궁인 자금성, 중국을 대표하는 광장인 천안문광장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지요.
중국국가박물관에는 상설전시로 운영되는 ‘부흥의 길(复兴之路)’ 관이 있습니다. ‘부흥의 길’이라는 단어에서 ‘부흥’은 다시 흥해진다는 의미이지요. 즉 과거에는 번창했는데 어떤 일로 쇠락해져서 지금 다시 번창하려 애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흥의 길’ 관은 서구열강 국가가 처음 청나라를 침략하는 1940년 아편전쟁이 시작되기 전, 청나라 상황을 설명하는 전시물로 시작됩니다. 먼저 제국주의 서구열강 침략에 청나라가 어떻게 대처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 본 후, 서구열강 국가가 청나라 국민을 유린하고, 청나라 경제를 수탈하는 자료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중국이 다시 번창하기 위해서는, 앞선 청나라가 왜 서구 제국주의에 무너졌는지 그 원인을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중국사람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지요. ‘부흥의 길(复兴之路)’ 관에 있는 전시물 3개를 소개합니다.
중국국가박물관 전시물 '시국도' <김기동>
[1898년 시국도 그림]
1885년 청나라는 청프전쟁에서 패하여 베트남을 프랑스에 빼앗깁니다. 1895년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패하여 타이완을 일본에 빼앗깁니다. 전쟁 와중에 청나라 집권자 서태후는 전쟁 경비의 반을 빼돌려 이화원 정원을 건축합니다.
1898년 청나라 황제 광서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청나라 사회 전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키지만,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실패합니다. 결국 광서제는 궁궐에 유폐되고 말지요. 이러자 서구 열강 국가는 노골적으로 청나라 영토를 넘보기 시작합니다.
1898년 그린 거로 추정되는 ‘시국도(时局图)’는 서구 열강 국가가 청나라 영토를 빼앗으려 군침을 삼키는 모습과 이런 와중에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는 중국사람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구 열강 국가는 탐욕스런 동물로 그렸는데 곰은 러시아, 호랑이는 영국, 뱀은 독일, 두꺼비는 프랑스, 태양은 일본, 매는 미국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부분은 중국사람 모습으로, 시계 방향으로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청나라 황실, 사치를 일삼는 귀족, 돈만 벌면 된다는 사업가, 뇌물 받는 관리를 그렸습니다.
중국국가박물관 전시물. '자금성에서 전승 행사를 하는 서구열강 국가', '자금성 황제 옥좌에 앉은 미국 침략군' <김기동>
[자금성 황제 옥좌 앉은 ‘미국 침략군’(坐在紫禁城皇帝座上的美国侵略军)]
1899년 서구열강 국가의 경제 침탈로 내륙시장이 개방돼 물가가 폭등하고 세금이 가중되자,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 청나라 국민이 서구열강을 몰아내자는 의화단운동을 일으킵니다. 1900년이 되자 의화단은 북경에 있는 서구열강 국가 공사관을 포위합니다.
서구열강 국가 공사를 추방할 힘도, 의화단을 제어할 힘도 없는 청나라 정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서구 열강 8개 국은 5만 명의 연합군으로 북경을 공격합니다. 근대적 무기로 의화단을 제압한 연합군은 중국 북경 자금성에서 전승 행사를 열고, 자금성 문화재를 약탈합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제국주의 8개 국가는 청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본격적으로 경제 침탈을 시작하게 되지요.
중국국가박물관에는 자금성에서 전승 행사를 하는 제국주의 8개 국가 모습 사진과 자금성 황제 옥좌에 앉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미국 침략군 사진이 전시돼 있습니다(坐在紫禁城皇帝座上的美国侵略军).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전시공간을 설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금성 황제 옥좌에 앉은 미국 침략군 사진 전시물 건너편 창문으로 100여 년 전 서구 열강 국가에 치욕을 당했던 자금성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중국국가박물관 '자금성 황제 옥좌에 앉은 미국 침략군' 전시물 건너편으로 보이는 자금성 <김기동>
중국국가박물관 서구열강 경제침탈 전시물 <김기동>
[용등 대신 기차를 들고 춤추는 열강들(各国联合龙燈大会)]
청나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가 기반 산업을 서구열강에 팔게 됩니다. 철도 산업, 전기 산업, 통신 산업, 자원 채굴 산업이 서구열강에게 넘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관세와 소금세 징수권을 서구열강에 빼앗기면서 이제 청나라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게 됩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고통스런 순간이지만, 서구열강 입장에서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겠지요. 서구열강은 청나라 기반 산업을 장악한 후에 금융산업마저 빼앗기 위해 은행을 세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풍자하는 그림 전시물이 각국연합용등대회(各国联合龙燈大会)입니다. 1911년 그려진 그림 전시물에서 서구열강 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일본 순으로 용등(龙燈,龙灯)(중국에서 명절에 용모양의 등을 들고 춤을 추는 전통 놀이) 대신 기차를 들고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1912년 청나라는 멸망합니다.
중국국가박물관에는 청나라 멸망 후 중국이 겪은 혼란스런 모습과 그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부흥의 길(复兴之路)’로 가야 하는지의 내용이 차례로 전시돼 있습니다.
중국전통 용등놀이 <중국 바이두>
중국 북경 스차하이 미국 맥도날드 가게 <김기동>
중국 상해 예원 미국 케이에프씨 가게 <김기동>
[중국 젊은이의 거리에 들어선 미국 자본]
중국 북경 스차하이는 한국 서울 북촌 같은 곳으로, 중국 젊은이의 거리입니다. 북경 스차하이에 있는 미국 맥도날드 가게는 중국 전통건물에 입점하여 중국어 마이땅라오(麦当劳)(McCafe) 간판으로 영업합니다. 중국 상해 예원에 있는 미국 케이에프씨는 중국 전통 내부 장식을 하고 중국어 컨더지(肯德基)(KFC) 간판으로 영업합니다. 중국에 있는 미국 맥도날드와 케이에프씨 가게는 중국 소비자를 위해 아침에 중국전통 음식 죽(粥)과 튀킴꽈배기(油条)를 팔고, 하루 종일 쌀밥도 팝니다.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서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8조 달러이고,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1조 달러입니다. 현재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 입장에서도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 14억 소비자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인가 봅니다.
2016년 한국무역통계진흥원(TSS) 발표에서 2015년 한국이 중국에 수출한 금액이 1,371억 달러인데 이는 한국 총 수출금액에서 26%를 차지합니다. 반면에 중국이 한국에 수출한 금액은 903억 달러로 이는 중국 총 수출금액에서 6%를 차지합니다. 만약 지금 당장 한국과 중국의 무역거래가 중단되면 한국은 수출 부분에서 26% 감소하고 중국은 수출 부분에서 6% 감소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매년 100원어치 물건을 팔던 한국이라는 회사가 74원밖에 팔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중국사람 이야기 글은 <오마이뉴스> 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About me] 20년 동안 봉급쟁이로 일하다 회사에서 잘린 뒤, 집에서 1년 정도 백수로 놀았습니다. 2006년부터 중국사람과 무역 일을
시작했고, 3년 전에 돈이 될까 싶어 중국에 와서 장사를 했지만 헛심만 쓰다가, 지금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학교에서 중국학생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2014년 '한겨레신문출판사'에서 <어린이 문화교실> 책을 출판했고, 2015년 고맙게도 '한우리독서논술'에서 제가 쓴 책을 논술교재로 채택해주어 인지세를 받아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습니다.
[Story] 한국에서 무역 일로 중국 사업가를 만나면서, 중국에서 장사 일로
중국 고객을 만나면서, 중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중국학생을 만나면서 알게 된 중국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쓰려고 합니다. 나무만
보고 산을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인터넷에 넘쳐 나므로 저는
저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첫댓글 좋은정보네요
감사합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