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른사람보다 조금 늦게 현재의 대학에 오게 되었다.
정상적인 현역으로 들어온 애들보다 2살이 많은거다.
난 고등학교때 3년동안 반장을 줄곧 하면서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즐겨했다.
1학년 중반부터는 완젼 학교생활에 나태해져서 수업도 1교시 마칠때나 들어가곤했다.
고등학교 입학때 장학금 받고 들어갔지만 점점 점수는 내려가고,공부에 대한 의지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때 나를 안타깝게,,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걱정해주는 사람은 우리 어머니 말고는 없었다.
아버지도 날 버려논 자식,어디서 굴러들어온 쓰레기라 여길뿐,,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수능날,
난 그 아침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안에 있는 편지 한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애도 아니고 뭘 이런걸 적어주냐면서 속으로 말은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수가 없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깎이고 깎이던 점수는 ,,
난 생각치도 않던 과를 선택할수 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는 Y대 공대였다.
그 입학하는 날 씁쓸한 기분은,,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그랬듯 나에게 전화한통도 없으셨다.
내 쓸쓸한 기분을 함께해준건 어머니셨다.
그렇게 적응못하던 난,,결국 학교를 한달도 다니지 못하고 방황했다.
남들이 다 학교 갈때,,PC방 알바,주유소,편의점 알바등을 하면서 벌어둔 여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에 임했다.
한 6개월 남짓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 날밤,,둘이서 얼마나 끌어안고 울었던지 난 아직도 그 때가 생생하다.
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 날로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학교는 자퇴) 재수종합학원에 등록했다.
8월달부터 시작은 했지만 그동안 쉬었던게 몸에 배였는지라 쉽게 헤어날순 없었다.
결국,,재작년수능에서 원점수 400점을 겨우 넘는 결과를 받았다.
어머니는 혼자 우셨겠지,,
내겐 담담하게 일년 더 해보자고 ,,우리 아들은 할수 있다고 꼬옥 안아주셨다.
나이로는 삼수,,,이젠 물러날 길이 없었다.
난 시작했다.
남들이 뭐라든 똑같은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 했다.
3월 첫 모의고사,예상보다 성적이 약간 높게 나왔다.
그 때부터 리듬을 탔나 보다.
6월 평가원 때, 수리와 외국어에서 생각했던것 만큼 성적이 안 나왔지만 내가 잘못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았다.
학원에서 여러 사설모의고사를 치면서,수능기출문제와 정석 등의 기본서를 병행했다.
그리고 8월 중순부터는 서서히 넘기는 문제집(파이널 용)을 풀기 시작했다.
아마도 수리 문제집은 시중에 나온것은 거의 다?(대략 11권 정도)풀었고 외국어도 감유지를 위해서 사흘에 1회분씩은 줄곧 풀었다.
너무 조급하지도 않게,그렇다고 너무 긴장한 상태도 아닌,,
삼수때는 그 전 해보다 더 힘들긴 했다.
학교까지 자퇴한 상황에서 내가 갈곳은 없었고,더군다나 몸은 더 피곤했다.
9월 평가원시험,,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공부했던 일년반의 시간이 헛 고생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어머니께서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셔서 내 도시락을 싸주시고 그 도시락 속에는 한통의 편지가 꼭 들어있었다.
드디어 수능...
나를 시험할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난 그러나 떨지 않았다.
부담감,,전혀 없었더라면 거짓말이겠지만 날 더 힘낼수있게하는 긍정적인 방향이었다.
난,,,우리 어머니를 생각했다.
장남의 며느리로 시집와서 평생을 시부모님 모시고 아프신 할머니 병수발 드시느라 입으신것 드신것 하나없는 우리 어머니를,,
편안하게 수능시험은 치뤄졌고,,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난 어머니 손을 꼭 잡은채로 서울시 교육청에 성적표를 받으러 갔다.
오전 10시..성적표가 나오고 그걸 낚아채 먼저 보신 어머니는,,,
그 사람들 많은 교육청 강당에서 펑펑 앉아 우셨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내가 드린 첫 기쁨의 눈물을,,
총점 479점에 언어 100 수리가 100 외국어 98 과탐 181점 이었다.
올해 원서 낸 의대 세군데에서 모두 최초합격이라는 생전 첫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두군데에서 장학금 공지가 날라왔다.
그 결과는 모두가 어머니의 편지와 그 눈물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내게 이런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
수능 수기를 적는데 어머니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좀 그랬는지도,,모르겠다.
하지만 이 수능에 관한 글을 적으면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지 않을수 없기에,,
서두 잘 맞지 않은글 읽어주느라 ㄳ,,
첫댓글 성의 붙을 점수네...05때 언수외-4 국민과탐 -20 받으니깐 성의 예비 한자리수 받고 가더라. 수험생활때 정서적 안정감이 중요한데 너희 어머님이 애 많이 쓰셨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가 다 마찬가지 마음이시지 뭐,, ㅎ
ㅇㅇㅇ 굿~
Y대 공대면;;;;;연세? 근데 다 읽었는데 눈물이 ㅠㅠ
ㅇㅇ ㅋ,,어머니 아직도 생각만 해도,,ㅎ
깎이고 깎여서 연공이였군..-_-;
대략 난감..
그러고보니 ㅡㅡ
ㅡㅡ;미안,,그런 의도는 아님,그것두 추가로 겨우 붙었음 ,,;
씨밤 깍이고 깍여서 연공이래 공부에 대한 의지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의지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럼 난뭐냐 썅 ㅜ.ㅜ
그런 욕까지 할 필욘;;다들 출발선이 있고 목표점도 다른법이잖소;각자의 길을향해서 나아간다는게 중요한것이지 그 결과를 보고 두말세말 할 필욘 없다고 생각하오,,
원래 공부를 잘하셨구만 ㅇㅇ 어머니의 사랑은, 특히 아들사랑은 어느 집이나 다 똑같은가 봅니당. 잘 읽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