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54) - 오랜만의 외국나들이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드는 추분 앞두고 오랜만의 외국여행길에 올랐다. 행선지는 아들이 체류하고 있는 미국 동부의 보스턴, 21일 새벽 아내와 함께 인천공항 행 버스에 올랐다. 청주에서 두 시간 걸려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6시,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3년만의 공항이용, 셀프체크인과 무인수하물발송 등의 자동처리시스템이 전보다 편리하다.
출국에 앞서 휴대전화의 로밍처리와 서점에 들러 책 한 권 사들고 출국심사를 거쳐 탑승구에 이르니 출발 한 시간 전, 비행기는 오전 9시 반 정시에 이륙하였다. 보스턴까지는 14시간의 장거리, 여러 차례 유럽과 아프리카지역 등 장시간비행의 경험이 있지만 체력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기도. 다행히 탑승 후 도착 때까지 심신이 쾌적한 상태여서 한시름 놓았다. 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최근 화제작으로 떠오른 김훈의 소설 하얼빈, 세 번의 기내식과 한두 시간의 토막잠 외에는 책읽기에 몰입하니 어느새 10여 시간이 훌쩍 지난다. 막바지에는 창밖으로 눈을 돌려 양털처럼 새하얀 구름, 아스라이 펼쳐지는 초원을 바라보며 무심의 경지에 들어서기도.
양털처럼 새하얀 구름 아래로 넓은 초원이 아스라이 보인다
가끔 기류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순항한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게 보스턴공항에 무사히 착륙, 입국수속도 수월하게 마치니 드디어 까다롭다는 미국 땅에 들어섰다는 안도감이 든다. 출국장을 나오니 아들이 영접, 곧바로 20여분 거리의 숙소로 향하였다. 숲이 울창한 공원 옆의 아들집에 여장을 푼 후 낮 동안 휴식, 저녁에는 집 주변의 대형스토아에 들러 식료품과 과일 등을 한아름 사는 것으로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숙소에서 바라본 공원의 숲이 울창하다
미국은 1980~90년대에 세 차례 방문 후 26년만의 여정, 두 달여 머무는 동안 심신의 휴식과 충전을 도모하는 가운데 격동하는 시대 속의 외국 생활상을 두루 살피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여러분도 건승하소서!
* 보스턴 행에 즈음하여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 등 미국 동부지역을 다룬 책자를 살폈다. 그 책의 보스턴 편에서 보스턴 공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보스턴 로간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8km가량 떨어져 있다. 전 세계 주요도시는 물론 미국 내 각지와 많은 항공편이 연결되어 규모가 큰 편이다. 인천-보스턴 직항노선은 2000년에 중단되었다가 2019년에 복항하여 주5회 운항(현재는 주3회)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4시간이다.’ 보스턴을 처음 찾은 것은 1996년 여름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캐나다의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거쳐 보스턴을 지났었다. 그때 보스턴에 입성하기 전날 묵은 호텔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살폈다. ‘We are all travelers. From “berth till death” we travel between the eternities.’ 보스턴에 들어서며 ‘인생은 나그네길’인 것을 되새기누나.
기내에서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다가 다음부분에서 깊은 상념에 젖었다. ‘황제의 열차는 1909년 1월 7일 아침 여덟시 십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했다. 대한제국 황제 순종은 6박 7일의 남순(南巡) 일정에 올랐고 한국통감 이토가 동행했다. 열차가 출발하기 전 역 구내 응접실에서 순종은 이토를 접견했다. ‘폐하, 저의 소청을 받아들이시어 이처럼 추운 날씨에 원행에 나서니 만민의 복이옵니다.’ 성환에서 잠시 머문 후 대구에서 정차했다는 기록을 보며 작년에 부산-서울 간 옛 조선통신사 귀로 길을 담사하던 중 대구 달성공원 앞 도로에 세워진 순종의 대구행을 기린 황금빛 동상 앞에서 순종이 어떻게 대구에 들렀을까 품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작가는 그 사실을 순종실록에서 살폈다고 후기에 적었다. 순종이 한강 철교를 지나며 느낀 소회가 마음에 닿기도. ‘열차가 한강 철교를 지날 때, 머리 위로 쇳덩어리들이 다가오고 지났다. 이것이 쇠로구나. 쇠가 온 세상에 깔리누나.’ 노량진 철교를 지날 때마다 육중하게 다가오는 쇠붙이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였구나. 지금 타고 가는 비행기도 그 육중함으로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다. 우주여행도 그 연장선일까?
착륙 직전 기내에서 살핀 보스턴 항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