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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나이와 모용구매
헌원삼광의 붉은 얼굴은 기쁨이 가득찼다.
"얼마나 걸겠소?"
자의 소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믿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 도박장의 규칙을 위
반하고 싶지는 않아요. 더군다나 돈도 없이 말만 하는 것은 재미
가 없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맞았어, 맞았어. 아가씨들은 과연 도객(賭客)이오."
그는 돌연 다시 웃음을 멈추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이제 걸 돈이 없지 않소?"
"비록 은은 다 잃었지만 사람은 아직 잃지 않았어요."
헌원삼광은 놀라면서 물었다.
"사람?"
자의 소부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도박을 할 때 때때로 사람을 걸 수도 있지요. 댁은 오십 년 동
안이나 도박을 했다면서 그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좋아, 좋아요. 아가씨들은 나보다 더 도사이시군!"
자의 소부가 말했다.
"남자들은 도박을 할 때 급하면 자기 마누라를 맡기지만 우리는
마누라가 없으니 자기를 맡길 수밖에 없군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남자보다 더 잘하죠!"
"재미있어. 난 온 천하를 다니면서 도박을 벌였지만 오늘에야
정말 상대를 만났군!"
그는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어떻게 도박을 하시겠는지 말만 하시오."
"우리의 도박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하나를 걸면 하나를 물어주
는 것이지요."
헌원삼광은 눈을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무엇을 걸겠소!"
"한 사람을!"
헌원삼광의 눈초리가 그들의 몸을 감돌더니 크게 웃음을 지었
다.
"그러나 아가씨 같은 사람과 비교될만 한 것은 나에게도 없소."
헌원삼광은 눈을 더욱 크게 뜨더니 말했다.
"아가씨가 진다면!"
자의 소부는 여전히 미소를 보였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우리 자매 중의 한 사람이 당신을 따라가
는 것이오!"
이 말이 나오자 장내에는 다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런 도박의 방법이 헌원삼광에게 유리하다
고 생각하였다.
만약 이런 미인을 이길 수 있다면 큰 복이 굴러들어오는 것이고
진다고 해도 이런 미인과 같이 다니게 된다니 남자들이 바라던 세
계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개심은 눈을 크게 뜨고 도교교에게 말했다.
"저 여인이 악도귀에게 반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도박이 어디있지?"
도교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까지도 점점 알 수 없게 만드는군. 그녀들이 왜 왔는지 모르
겠는데."
헌원삼광은 쉬지 않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정말 좋아...... 하, 하."
자의 소부는 그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
"그렇다면 우리의 방법에 당신이 동의한다는 말이지요?"
"내가 동의 못할 것이 어디 있지?"
"그럼 당신의 친구는 어떻소? 그도 동의하는 것이오?"
비록 헌원삼광에게 물어 보았어도 그녀의 눈초리는 그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신비스러운 검은 사나이를 향하고 있었다.
도박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얼굴이 약간 격동하며 강렬
한 빛을 내는 것 외에는 그는 시종 멍하니 앉아서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이 도박장의 떠드는 사람들을 떠난 것 같았고, 이 세계를
떠난 것 같은 태도였다.
헌원삼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이 동생의 병은 나와 같소.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도박만은 좋아하오. 도박이라면 어떤 방식도 동의 할 거요."
자의 소부는 여전히 검은 사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그의 한마디 말을 들어야겠어요."
헌원삼광은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좋다. 그럼 네 자신이 한마디 말을 해라!"
검은 사나이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사방을 몇 번 둘러보다가
말했다.
"무엇을?"
"만약 우리가 진다면 그녀들을 따라 가겠니?"
검은 사나이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
"좋아!"
자의 소부가 즉각 물어왔다.
"어디 가든 간에 다 좋단 말이에요?"
검은 사나이는 길게 탄식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어디에 가든 상관이 없어. 나에게는 어디든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정합시다."
검은 사나이는 말했다.
"음."
헌원삼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이 동생이 비록 바보 같이 생겼지만 사실은 그도 사나이
오. 한 번 말을 하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성미지."
자의 소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믿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아가씨들이 먼저 거시오."
그는 낡은 주발을 잡고 자의 소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당신은 홀수에 걸겠소, 짝수에 걸겠소."
"짝수!"
그녀는 여전히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짝수를 택했다.
사람들은 다시 탄식 소리를 냈다.
그들은 이번에도 그녀가 질 것으로 생각했다.
헌원삼광은 주발을 흔들다가 멈추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호남(湖南) 사람인가요?"
"아니에요."
"호남사람이 아니면 어찌 노세와 같은 성질이 있지?"
그는 크게 웃으면서 다시 그릇을 흔들었다.
자의 소부는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
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헌원삼광은 이미 그릇을 상 위에 내렸으
나 한쌍의 큰 손은 여전히 그릇을 덮고 있었다.
그릇을 흔들 때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도박꾼들은 그 맑은 주발의 소리를 들으면 즉각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릇을 내려놓은 후 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떻든 간에 이번에는 정말 큰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세 분의 아름다운 부인은 여전히 안색도 변하지 않고 미소를
띠웠다.
그들은 마치 도박의 승부는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헌원삼광도 그녀들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장내는 조용하기만 했
다.
돌연 큰소리가 났다.
"젖혀라!"
이대취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두 자식이 어디로 갔지? 혹시 그 악도귀와 붙은 것이 아닐
까?"
합합아가 말했다.
"하하, 안심을 해라. 칼을 목에 들이 댄다해도 백개심은 도박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악도귀의 얼굴에 꽃이 핀 것도 아닐 텐데 왜 아직까지도 돌
아오지 않는 것이지?"
두살이 돌연 소리쳤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
이대취는 즉각 하나의 예리한 도구를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벌써부터 손을 써야 했어. 이화궁주는 조금의 힘도 남아
있지 많을 거야."
"하하, 이대취도 이렇게 돈에 미치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그 몇 개의 상자를 보고 싶어하는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단 말이냐?"
"우리는 몇십 년의 친구인데 내마음도 몰라 주니 정말 슬픈 일
이군!"
합합아는 눈알을 돌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너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줄 아느냐?"
"네가 안단 말이냐?"
"빨리 들어가서 이화궁주의 고기를 먹고 싶단 말이지? 죽은 사
람의 고기는 먹고 싶지가 않을 테니까 죽기 전에 빨리 손을 쓰
자!"
"좋아, 과연 내 친구다."
그는 도끼를 들고 벽을 치기 시작했다.
화무결은 마음 속으로 기쁘기도 하였지만 긴장에 휩싸였다.
그들은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그들이 산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화무결은 마음 속에서 일어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산굴에 들어선 후 이화궁주가 만약 반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붙잡힌다면 그때에 일어날 일을 화무결은 생각할 수도 없
었다.
도끼를 내려치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겼다.
짝수다!
이번엔 짝수였다.
도박장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올렸다. 도박꾼들도
필경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진 사람을 동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헌원삼광은 긴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가 만약에 이 정도의 아량이 없었다면 악도귀라 불릴 수 있었
을까?
그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당신들이 이겼구나. 당신들이 자주 패하면 도박의 매력
을 잃게 될 텐데, 그러면 되겠나?"
자의 소부가 살짝 웃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이긴 셈이죠?"
"물론 당신이 이겼소."
"그럼 주인이 물어 주어야지요."
헌원삼광은 옷소매로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정말 날더러 따라가잔 말이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당신이 아니에요."
헌원삼광이 놀라운 빛을 드러내면서 물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요?"
"이 사람이에요."
그녀의 손은 그 검은 사나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귀하는 우리를 따라 가시지요?"
검은 사나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일어섰다.
헌원삼광은 그를 잡고 말했다.
"너...... 네가 정말 갈테냐?"
검은 사나이가 말했다.
"음!"
"이곳의 자본 중 반은 너의 것이야."
"모두 가지시오!"
그는 자기의 몸까지 아끼지 않았는데 재물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헌원삼광은 탄식을 했다.
검은 사나이는 이미 부인들 앞에 섰다.
자의 소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하시오. 당신이 우리를 따라가면 불행은 없을 테니까요."
검은 사나이는 마치 하늘을 날 듯이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 태도
였다.
부인들은 헌원삼광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는 세
여인이 몸을 돌렸다.
헌원삼광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가 소리쳤다.
"잠깐!"
소리를 치면서 그의 커다란 몸이 하늘의 새처럼 날았다. 그는
문앞까지 날아 가서 부인들의 갈 길을 막아 버렸다.
그가 경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그 자의 소부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본전도 필요없고 이제는 도박도 하기 싫으니 비키시
오."
헌원삼광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나의 이 검은 동생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았소. 당신
들은 도대체 어쩌자는 거요? 그를 어디까지 데리고 갈 작정이오?"
"이 일은 당신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당신이 패한 마당
에서 어쩔 셈이오?"
악도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당신들이 만약에 졌다면 정말 나를 따라 왔겠소?"
"물론이지요!"
헌원삼광은 아래 위로 이 부인들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자매는 정말 많더군요."
"물론 많죠!"
"아홉 명이 아니오?"
자의 소부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말했다.
"그래요."
이 말이 나오자 헌원삼광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침묵을 지키던 검은 사나이도 놀라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
러더니 그 부인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당신은 모용......."
자의 소부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난 칠랑이에요. 이 분은 여섯번째의 언니이고...... 이 사람은
여덟번째의 동생!"
그녀의 옆에 서있던 부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 중에서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비록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래 전부터 당
신을 알고 있었소."
그 검은 사나이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뒤로 물러섰다.
모용칠랑이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우리도 당신이 한 말을 변경 않는다는 걸 아오. 당신이 졌으니
우리를 따라가야지요."
헌원삼광은 돌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강호에서 듣기엔 모용 아홉 자매가 모두 좋은 남편을 찾았고,
또 재주가 있다고 들었소."
모용칠랑이 담담이 물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이 어찌 좋은 남편을 찾겠어요?"
"그 말이 맞아. 말은 잘 했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강호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모용자매 중에서 무술이 가
장 뛰어난 사람은 두번째의 모용쌍이오. 가장 재주가 좋은 것은
칠랑이고, 그리고 가장 영리하고 아름다운 것은 막내 모용구매이
지."
모용구매란 이름을 듣자 그 검은 사나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
다.
헌원삼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당신들 세 분도 모용구매보다 못생기진 않았
소. 다만 남자의 마음 속에서는 처녀가 항상 예쁠 뿐이지."
모용칠랑이 미소를 보였다.
"당신도 말을 잘했어요. 또 다들 알고 있는 것을 말해 보시오."
"난 이 모용구매의 운수가 여덟 명의 언니보다 못하다는 것을
아오. 어느새 묘하게 사라져 버렸지요. 그녀의 여덟 명의 형부들
은 비록 세가(世家) 출신의 사람이고 천하를 많이 다녔지만 그녀
를 찾지 못했소."
묘용칠이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아는 것도 많군요."
모용육도는 웃으면서 말했다.
"인해가 막막한데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에요."
헌원삼광은 웃음을 뚝 그치더니 돌연 말했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은 그녀를 잘 대했고, 또 양으로 음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남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모
용구매를 유괴했는줄 알고 있었지."
모용칠랑이 말했다.
"둘째 언니와 세째 언니는 그를 심문할 의사도 없었고 또 악의
도 없었소. 다만 그 동안의 막내 동생의 생활을 알아보고 싶었던
거요."
모용육랑이 말을 받았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너무나 막내를 걱정한 나머지 물어볼
때 성질을 부렸을 것이오. 그러나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에게 감
사하고 있을 거예요."
모용팔랑이 다시 말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떠나갈 때 그녀들은 그에게 보수를 주려고 했던
것이오."
헌원삼광이 말했다.
"그렇지. 그가 떠나갈 때 그녀들은 그에게 오천 냥의 금을 주겠
다고 했으니까. 그것도 작은 숫자는 아니야. 만약 거지에게 주려
면 만 개 이만 개 이상으로 나누어야 할 테니까."
헌원삼광은 돌연 안색이 새파랗게 되어 날뛰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은 거지가 아냐! 그는 너희들의 막내 동생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 고생은 말할 나위가 없었
고. 그가 너희들의 약간의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줄 알아? 너
희들 자매는 모두 영리한 사람들인데 왜 그의 뜻을 모른단 말이
냐?"
모용칠랑이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다만......."
헌원삼광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모용자매의 남편들은 모두 훌륭한 남편들인데 나의 이 검은 동
생은 돈도 없고 세력도 없지. 또 명문 출신도 아니지. 동생을 이
쪽으로 시집보낼 수는 없다는 말이지?"
그는 다시 날뛰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이 어느 점이 어울리지 않지? 그는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사나이란 말이다. 너희들 자매의 동생이 그에게
시집을 오는 것은 영광이야."
그는 손을 휘두르면서 소리를 치다가 손가락이 모용칠랑의 코를
칠 뻔했다.
그러나 모용칠랑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가 좋은 사람이고 우리의 동생을 모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헌원삼광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아느냐?"
"큰 언니가 나에게 말하기를 황금 오천 냥을 그의 앞에 주어도
그는 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고 하더군요."
"그가 가는 것은 너희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냐? 한편으론 오천
냥의 금을 절약할 수도 있는데 왜 그를 찾는 것이지? 왜 그를 데
리고 가느냐 말이다."
모용칠랑은 다시 길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가 이 일을 모두 당신에게 말했다면, 나의 막내 동생이 이
몇 년 동안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겠죠. 그리고 중병에 걸렸다
는 것도 말예요?"
"내가 알기로는 흑 동생이 그녀를 돌려보낼 때는 그녀의 병에
차도가 있었지. 너희들은 그녀가 좋아질 줄 알고 그에게 시집보내
지 않으려 했던 것이야."
"그때에는 우리도 확실히 그녀의 병이 좋아질 줄 알았죠. 그때
는 그녀가 이미 큰언니를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이분 흑 노제가
떠난 뒤 그녀의 병이 돌연 악화되어서 큰언니를 알아보지 못했어
요. 그리고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지요."
모용육랑도 탄식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입을 벌릴 땐 '그 이는 갔어요?' 하고 묻는 것이 고작
이었어요. 그후 그녀는 아주 말도 하지 못하고 매일 멍하니 눈물
만 흘리는 것이에요."
그 검은 사나이는 물론 오만하고 괴상스러운 흑 지주였다.
그는 마치 인형처럼 서있다가 이런 소리를 듣자 얼굴을 침으로
찔린 것처럼 움찔했다.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그 구(九) 아가씨는 다정한 사람이었군."
모용칠랑은 여전히 탄식을 했다.
"지금에야 우리는 그녀의 마음을 알았어요. 세상에 어떤 일은
억지로 할 수가 있지만 '정(情)'만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알았
어요."
"너희들은 너무 못나지도 않았군."
모용육랑이 대답했다.
"막내 동생은 그토록 심하게 앓고 있으면서도 그를 잊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동생은 그에게 깊이 정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의 가
슴도 살로 만든 것이니 이런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반
대하지 않겠어요."
모용팔랑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찾으려는 거예요."
모용칠랑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도 그의 행방이 묘연해서 어디로 가서 찾아야 할지
를 몰랐죠. 다행히 다섯째 형부가 무한을 지나면서 당신과 그의
도박을 목격했어요."
헌원삼광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의 다섯번째 형부가 누구지? 어찌 우리를 알지?"
"나의 다섯번째 형부는 바로 '신안서생' 낙명도예요. 그는 몇
년 전에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지요. 그는 한 번 본 사람은 잊
지 않아요."
"그가 나를 안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나의 이 흑
노제는 항상 신출귀몰하여 그를 본 사람은 얼마 없지."
"다섯번째의 형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요. 그러나 그를 찾기
위해 셋째 언니는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다섯번째 형부는 그림을
본 후 그가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는지 생각이 났던 거예요."
모용육랑은 미소를 보였다.
"나의 셋째 언니는 그림을 잘 그리죠. 어느 날 그녀는 나의 둘
째 언니와 형부랑 농담을 하게 한 후 형부를 벽에다 그렸는데 언
니는 한때 분별을 못했기 때문에 벽에 대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모용팔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의 둘째 언니는 너무 많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눈이 좀 나
빠요."
헌원삼광은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너희 집에는 인재(人才)도 많구나. 그래서 강호의 사람들이 너
희들에게 어쩔 수 없이 당하는구나."
모용칠랑이 말했다.
"우리는 다섯번째 형부의 말을 듣자 즉각 무한쪽으로 달려 왔어
요. 마침 당신들이 이 근방에서 도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은 것이에요."
"그러나 너희들은 착각을 말아라. 나의 이 흑 노제는 나와 달라
서 그는 도박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심정이 아프기 때문이야."
애정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이 도박장에서 기분을 내는 것은 옛
날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모용칠랑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심정은 우리가 이해를 해요. 그가 오만한 사람이라는 것
도 알고 있어요. 우리가 그냥 찾아와 가자고 했으면 그는 필시 가
지 않을 거예요."
모용육랑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도박의 방법을 생각했던 거예요."
헌원삼광은 참을 수가 없어서 물어 봤다.
"그러나 너희들이 만약 패했다면 어떻게 하였겠느냐?"
"만약 우리가 졌다면 우리의 자매 중에 한 사람이 당신들을 따
라가겠죠. 그렇죠?"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진다면 막내동생을 당신들에게 따라가게
할 작정이었어요. 난 우리 셋 중 하나를 걸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
고 우리 자매 중 하나를 걸겠다고 했으니까요. 당신들은 절대로
그녀에게 불친절하지는 않으니 그녀만 좋다면 누가 누구를 따라가
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았어. 너희들 자매는 과연 대단하군!"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도박친구를 하나 빼앗아 버렸어요. 그가
우리의 막내 동생과 혼인이 맺어지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다만 직접 이 동생과 그 아가씨가 혼사를 이루는 것을 보
고 국수라도 먹는다면 석 달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관계가 없
지."
그는 돌연 웃음을 멈추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국수는 먹지를 못할 거야."
모용칠랑이 물었다.
"왜요?"
"모용가의 아가씨가 혼사를 치룬다면 필시 이름이 있는 인물들
이 초대될 거야. 나 이 악도귀가 만약 그 자리에 찾아간다면 김이
새어 버린단 말이다."
모용칠랑은 화사하게 웃었다.
"안심하세요. 그 술자리에는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 다른 사람
은 초대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청할 거예요."
헌원삼광은 손뼉을 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좋아. 내가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난 개새끼다."
그러다가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연 이마를 치며 말했다.
"가져가라! 여기있는 은도 모두 가져가라. 조금도 남기지 말
고."
"이거...... 이건 무엇 때문이죠?"
"잔치술을 마시려면 자연히 예물을 드려야지. 당신들이 받지 않
으면 나를 무시하는 것이며, 잔치에 나를 초대하지 않으려는 것이
오."
"정 그렇다 해도 당신이 도박할 금을 남겨야 하잖아요?"
"절대로 남겨선 안 돼. 난 돈을 완전히 잃지 않으면 멈추지 않
는 성질이야. 그래서 난 큰 재산을 얻게 된 후에는 한번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지. 지금, 돈을 내버릴 기회가 있으니 당신들이
받지 않는다면 나를 해치게 되는 셈이야."
모용칠랑은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처럼 손이 넓으니 우리가 받지 않으면 안 되겠죠?"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모용가의 아가씨가 이토록 통쾌할줄은 몰랐는 걸. 나의 이 흑
노제가 이만큼이나 눈이 좋을지는 몰랐는데."
그는 손으로 흑 지주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동생, 아직 가지를 않겠느냐? 너의 마음 속으론 애가 타고 있
는 줄을 알아. 그러나 이젠 너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그 아가
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흑 지주는 멍하니 혼빠진 사람처럼 서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
다.
"내...... 내가 어떻게 그곳에......."
헌원삼광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엇을 망서린단 말이냐? 대장부가 하는 일은 통쾌해야 돼. 더
군다나 도박에 졌다면 목을 쳐도 할 이야기가 없는 거야."
결국 흑 지주는 웃고 말았다.
"소어아는 필시 산에 있을 것이니 그를 본 후에 잊지 마시오."
"안심을 해라. 난 그를 알거든. 잔치에 달려 가라고 할 테니
까."
그들이 좋은 친구가 된 것은 도박 때문은 아니었다. 소어아 때
문이었다.
그들은 소어아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든 간에 소어아를 보면 잊을 수가 없었다.
헌원삼광은 그들을 문까지 바래다 주고서는 돌연 웃으면서 말했
다.
"칠랑 아가씨, 손이 가렵거든 찾아 오시오. 당신 같이 통쾌한
사람은 처음 보았소!"
드디어 흑 지주는 가버렸다.
그의 일생은 고독했지만 이제는 행복을 찾은 셈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가 얻어야 했던 그의 몫이었으므로 어느 누
구도 입에 오르내릴 수는 없었다.
모용구매도 그녀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녀는 비록 기억력을 상실했고, 지혜를 상실했지만 그러나 행
복을 얻었다. 어떤 일이라도 행복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가치가
있는 일이다.
여인의 최대 행복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일이다.
이런 행복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만약 전처럼 괴팍스럽고 오만하고 교활하고 싸늘했다면
그녀는 다만 하나의 성공한 여인이라 할 수밖에 없지 행복한 여인
은 이미 아닌 것이다.
- 제8권에서 계속 -
첫댓글 즐감~~!
^^
좋아좋아
감사 합니다 ^^
감사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