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로마11,29-36)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29-30)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 11장 29절에서 언급한 '은사와 소명'은 무엇인가?
'은사'로 번역된 '타 카리스마타'(ta charismata)는 복수로 '거저 받은 선물들', '부여된 은총들'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이 용어가 영의 분별이나 신령한 언어 등과 같이 특별한 영적 능력을 나타내는 데 쓰였지만(1코린12,8-11), 본절에서는 구원 역사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변치 않는 특권들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쓰였다.
즉 로마서 11장 29절에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받은 도덕적이며 지적인 자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9장 4절 이하에서 열거된 선민 이스라엘로서의 은혜의 특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실은 '은사'에 이어 '소명'이라는 말이 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소명'으로 번역된 '클레시스'(kllesis)를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부여하시는 소명이라는 현대적 의미의 부르심이 아닌, 메시아의 나라에 동참하라는 하느님의 권위로 부르시는 초대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이것은 앞의 '은사'의 의미와 동일하게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회될 수 없습니다'로 번역된 '아메타멜레타'(ametamelleta)는 부정 불변사 '아'(a)와 '마음을 바꾸다', '후회하다'를 뜻하는 동사 '메타멜로마이'(metamellomai)의 합성어에서 나온 형용사로서 '후회할 것 없는', '변경할 수 없는', '취소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시어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민수23,19).
또한 하느님께는 변화도 없도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다(야고1,17).
따라서 유다인들이 불순종과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분명히 달성하실 것임을 사도 바오로는 주장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나 약속하신 것들이 어떤 변수에 의해서취소가 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분의 전능하심과 절대성에 오류가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23장 35절의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신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에는 시행 착오의 여지가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에 관련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아메타멜레타'(ametamelleta)라는 말 속에는 이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절대성이 훼손되는 것을 추호도 용납할 수도, 의심할 수도 없는 신본(神本)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사와 소명을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사도 바오로의 선언 속에는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확신이 베어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한 민족의 우월성과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이 가지는 신실하심과 절대성,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심이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0)
로마서 11장 30절부터 32절까지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이방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게도 자비를 베풀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30절은 이러한 사실을 설득력있게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과거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에 해당하는 '엘레에테테'(eleethete)는 '엘레에오'(elleeo)의 부정 과거 수동태이며, '불쌍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다.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하난'(hanan)과 '라함'(laham)의 역어로 나오는데, 이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자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헤쎄드'(hesed)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히브리어의 개념들은 심리적 성격이 강한 희랍어 개념들과는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즉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들은 법률적 개념에 기초하며, 로마서 11장 30절의 '엘레에오'(elleeo)도 이러한 구약의 전통에 따른다.
따라서 로마서 11장 30절의 자비는 단순히 측은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법률적 조치를 취하여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실증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사도 바오로는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계약에 대한 하느님의 신실하심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복음을 대대적으로 거부했다는 관점에서 이미 밝혔다(로마9,15.16.18).
이것이 복음 선포자들을 이방 세계로 가게 하여 결과적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입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과 관련된 시행 착오가 빚어낸 예상치 못한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
하느님의 선택과 넓은 의미의 예정에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유다인의 실패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퍼져나간 과정은 그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느님의 방법이었다.
결국 실패한 다수의 유다인들은 이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이 계획과 목적에 유용하게 쓰여졌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구원의 길에 들어선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자랑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이방인에게 내렸던 자비가 장차 다시 이스라엘에게 내리게 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로마11,31).
-임언기 신부님 독서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