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어본 을자천
새해를 이틀 앞둔 십이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밀양 지인과 산행이 약속되었다. 지인은 공직에서 은퇴 후 그가 태어난 예림서원 근처 농막을 짓고 귀향한 셈이다. 시내에 그럴듯한 아파트를 두고 굳이 고립과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텃밭을 일구고 산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엔 옳은 농사꾼은 못 되고 그냥 소일거리 정도다. 나와는 전화는 자주 나누나 얼굴은 가끔 보는 사이다.
평소 아침 출근 시간대 반송시장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해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동대구로 올라가는 무궁화를 타고 밀양역에 내렸다. 지인은 광장으로 차를 몰아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올가을 농막 곁에다 별도 살림공간을 더 넓혔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텃밭으로 먼저 향하지 않았다. 예림교를 건너 밀양 시내에서 남쪽에 해당하는 종남산 기슭으로 몰아간 차는 산중턱까지 올랐다.
밀양 동북 산내면과 단장면은 재약산을 비롯한 천 미터에 육박한 고산지다. 영남 알프스가 거기서 시작된다.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면서 하남과 상남 일대 평야지다. 종남산은 밀양부 남쪽에 위치했다. 중국에도 섬서성 서안 남쪽에 종남산이 있다. 중국에 있는 지명이 우리나라에도 더러 있다. 하동 악양과 동정호가 그 예에 해당한다. 곤양과 곤명 역시 중국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고노실이라는 자연마을에서 종남산 허리로 뚫린 임도를 따라 오르니 관음사가 나왔다. 거기서 조금 더 지나니 사포와 연결되는 삼거리였다. 사포는 근래 공단이 들어서고 골프장도 개발되어 예전 풍광과 사뭇 달라졌다. 사포(沙浦)는 모래포구로 향토 지명은 ‘삿개’로도 불린다. 모래 사(沙)는 한자로 쓰고 물가를 뜻하는 ‘개’는 순우리말과 결합된 지명이다. 밀양강이 휘돌아가는 마을이다.
임도 삼거리 광주 안 씨네 선산 부근에 차를 세웠다. 찻길을 계속 더 나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 걷기로 했다. 날씨가 좀 춥기는 했지만 하늘이 파랗고 시야가 탁 트였고 공기는 맑았다. 응달진 암반에서 나온 약수는 빙판이 져 뭉쳐져 샘물 양이 작아 받아먹을 형편이 못 되었다. 바가지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빙판 위에 두고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올랐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다가 볕바른 자리 쉼터가 나와 나란히 앉아 배낭을 풀었다. 김밥은 산정에서 먹기로 하고 곡차를 한 병 비웠다. 안주는 마트에서 산 게맛살이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들판은 비닐하우스단지였다. 전에는 벼농사를 끝낸 겨울은 빈 들녘이거나 보리를 심었더랬다. 햇볕에 반사된 비닐은 윤슬처럼 반짝거렸다. 온 들판이 태양광 발전을 위한 집열판을 설치해 놓은 듯했다.
임도는 산마루에 이르렀다. 더 내려가면 산기슭에는 미덕사가 있고 더 나아가면 구비기마을이 나오고 초동면 방아실로 이어진다. 우리는 임도를 더 걷지 않고 종남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등산로가 훼손되어 생태복원을 하느라 우회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산등선에 오르니 밀양 시가지가 훤히 드러났다. 내가 젊은 날 살았던 지역이고 이십여 년 전 한동안 근무했던 학교도 보였다.
산비탈을 오르니 봄날에는 진달래를 완상하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밀양강은 영남루 앞에서 새 을(乙) 자 모양 을자천이 되어 삼문동을 한 바퀴 휘감아 밀양역 앞으로 빠져 흘렀다. 저만치 밀양 시내가 훤히 다 드러났다. 정상부는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다. 시야가 트여 화왕산과 가야산은 물론 지리산까지 아스라이 보였다. 봉수대 남향에서 남긴 곡차와 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올랐던 등산로를 되돌아 차를 몰아 사포로 내려가 예림서원 인근 지인 농장에 들렸다. 근래 농막 곁에 지었다는 살림공간을 살펴보았다. 그런대로 지낼만하게 꾸며 놓았다. 양파와 마늘은 파릇한 잎줄기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지인은 내가 가져가라고 비닐로 덮어둔 배추를 두 포기 자르고 구지뽕나무 가지도 박스에 담아 놓았다. 산그늘이 내려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 밀양역으로 갔다. 18.12.29